컴퓨터를 켜면 유투브에 자동 로그인이 되어있어서
제가 노래를 골라 듣다보면 저절로 제가 즐겨 들었던 노래들이 모아져
My Mix라는 비디오리스트들이 만들어지데요.
오늘은 그것을 눌러 들으니 골라들었던 여러 노래들이 흘러나옵니다.
물론 제가 어렸던 시절, 젊었던 시절에 들었던 옛날 팝송들이지요.
그 때는 그 가수들도 젊었지요.
파릇파릇한 청춘들.
모습도 생기있고 날씬한 것이 멋지고, 예뻤던 시절
가수로, 연주자로 꿈을 쫒아 전력질주를 했었을 시절
술이나 마약에 그렇게 심하게는 아직 중독되지 않았고
연애나 결혼, 이혼, 불륜, 폭력 등
요란 복잡한 사생활들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던 시절...
참...^^
생각해보면 꿈 속의 시절들인 듯도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삶을 살게되고
어떤 사람이 될지
아직 알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성공하리라고 믿었다가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정도이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정말 커다란 성공을 한 사람도 있을 터이지요.
사랑에 빠졌던 사람과 헤어지게 될 줄 몰랐고
술이나 약물 중독자가 되어 헤매이며 추락할 줄 몰랐고
몸과 마음에 심각한 병이 들 것이라 생각지 못했고
심지어 일찍 죽을 것이라 생각지 못했을 것이고
정말 젊었던 시절에는
삶이 그리될 줄
몰랐다
앞날을
몰랐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게 맞으리라.
앞날을 모르는 것이
좋으리라.
알았더라면
아예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이
있었을 것이니.
몰랐기에
시작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슴 아린 유명인 가족?
최진실 가족이 떠오릅니다.
최진실이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녀의 전남편 조성민이 또 그렇게 가고
그녀의 남동생 최진영이 또 그렇게 가다.
그녀의 어머니, 그녀의 두 아이들...
어떻게 그들은 그 처절한 상황을 견뎌내오고 있을까?
그 가족 모두가 그렇게 되리라고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아마 그들은 달리 살지 않았을 것인가?
하긴 최진실이 조성민과 결혼하기 전에 어머니가 그들의 궁합을 봤을 때
그들이 결혼하면 둘 다 죽을 것이니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줬던 스님이 있었다지요.
하지만
그 말을 듣지 않고 결혼을 했구요.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결말이 좋지 않으니
시작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시작합니다.
설마?...하는 거지요.
믿어지지 않아...하고
그래도 하고 싶어...하고.
사실
그 게 맞을 겁니다.
앞날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아무리 영험한 사람들이 내다보는 앞날이라도
'높은 가능성'일 뿐이고
미래는 한 가지만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라도
수많은 미래 중에 한 두가지를 보는 것.
그러니
앞날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더라고
결국 하고 싶은 것은
하는 것이 맞을 것.
그러면서 앞날을 바꿔가는 사람들이
왜 없을까요?
그런데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네?
들은대로 앞날이 흘러가고 마는 사람들.
무슨 차이일까?
......
선택의 차이겠구나.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는가의 차이.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길들.
그런데 무엇이 선택을 결정하는 거지?
무엇이 어떤 선택을 하게 만드는가?
이해, 안목, 가치관, 믿음
이런 낱말들이 떠오릅니다.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어떤 이해를 하고 있는가?
어떤 안목을 갖고 있는가?
무엇을 가치있게 여기는가?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가?
이것들이 어떤 순간에
특정한 선택을 하게 만들지 않겠나?
어떤 것은 포기하게 만들고
어떤 것은 쥐게 만드는
선택을 하게 하다.
영화 대사 중에 참 흔한 것이 있데요.
달리 해볼 선택이 없었다.
고개를 흔듭니다.
아니,
항상
다른 선택이 있다.
무엇인가를
잃고 싶지 않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 다른 선택을
안하고
못하는 것일 뿐.
때로는 살기 위해
팔, 다리를 잘라내야하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선택은
치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손실을 감수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달리 해볼 선택이 없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잃고 싶지 않았다는 말인 것.
속담 중에 안 좋은 것이
'꿩 먹고 알 먹고'임을 새삼 생각합니다.
꿩을 먹든지
알을 먹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해야하는 거지요.
둘 다 먹을 수는 없는 것.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다른 무엇인가는 잃을 각오를 해야하는 것.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이것을 배우기가?
정말 힘들지요.
이것을 배우기 위해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입니다.
수없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
선택을 해보고
그 결과를 체험해보는 곳.
절절한 감정들을 통해
영혼 깊은 곳에 배움을 얻어가는 곳.
대부분은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을 거치고
꿈에 부풀어 자신을 펼치기 시작하다가
이제 꼬이는 일들이 생기는 삶에 들어섭니다.
처음부터 삶이 그리될 줄 알았으면
아예 시작도 안했을 것들을
시작하고
그 열매의 쓴 맛을 보다.
물론 단 맛도 있지만
주로 쓴 맛 때문에
생각을 하는 거지요.
무엇이 어찌 되었어야 더 좋았을지.
그렇게 배워가는 공부.
우리가 이곳에 오고, 지금도 존재하는 것은?
이렇게 공부하기 위해서이지요.
목표로한 공부를 할만큼 했다고 느끼면
때가 언제든 떠나가고
해야할 공부가 남았다고 느끼면
더 오래 머무는 것.
최근에 읽은 '세스'책에 이런 대목이 있데요.
'이 차원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약해질 때 죽음이 다가오게 되어있다'고.
더 이상 이 차원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낄 때
촛점을 덜 맞추리라 생각됩니다.
그럴 때 죽음을 생각하고 환영하게 되고.
내면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아니 말입니다.
다른 차원에서의 공부로 이전하는 것일 뿐.
앞날이 숨겨져있는 이유
앞날을 모르는 것이 더 나은 이유가 있다.
공부하라고.
모르기에
가슴을 따르는 일에 심취하는 것.
시도를 해보고
결과를 체험해보는 길을 가는 것.
그래서
배우는 것.
크는 것.
그러니
앞 날을 모르는 것이
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