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쉐보레가 4세대 실버라도 1500(이하 실버라도)의 얼굴을 깜짝 공개했다. 네모반듯했던 눈매를 얇게 저며 날카로운 인상을 강조하고, 보타이 엠블럼은 까맣게 칠해 젊은 세대를 유혹했다. 동그란 파이프로 덩그러니 남겨뒀던 머플러는 이제야 디자이너의 손을 거쳤다. 납작한 벌집 모양으로 멋을 내고 범퍼 양쪽으로 두 개를 달았다. 시골 아저씨 이미지를 훌훌 털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모습에 뭇 사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올해 1월 2018 북미국제오토쇼에선 차체 크기를 비롯해 엔진 라인업 등 세부 정보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가령 길이는 5,883㎜로 41㎜ 늘었고, 휠베이스는 3,744㎜로 기존보다 100㎜ 더 길다. 4세대 실버라도의 적재공간은 1,783L. 쉐보레는 “포드 F-150보다 20% 이상 넓다”고 뽐냈다.
쉐보레가 밝힌 실버라도의 엔진 라인업은 총 5가지. 이 가운데 V8 6.2L, 5.3L와 V6 4.3L 가솔린 자연흡기, 그리고 직렬 6기통 3.0L 디젤 터보 등 4가지 엔진을 먼저 선보였다. 지난 5월 18일, 쉐보레는 남은 한 가지 엔진 정보를 공개하며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 주인공은 직렬 4기통 2.7L 가솔린 터보. 쉐보레는 실버라도의 20년 역사상 처음으로 4기통 엔진을 주전으로 앞세웠다.
풀사이즈 픽업을 끌기에 4기통 엔진이 힘에 부치진 않을까? 쉐보레는 “기존 V6 4.3L 가솔린 엔진의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를 모두 뛰어 넘는다”고 말하며 우려를 잠재웠다. 직렬 4기통 2.7L 가솔린 터보 엔진의 최고출력은 310마력, 최대토크는 48.1㎏·m다. 6기통 엔진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25마력, 6.0㎏·m 높다.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 최대토크를 뿜어내는 점도 특징이다. 실버라도의 직렬 4기통 2.7L 엔진은 1,500rpm부터 4,000rpm까지 최대토크를 줄기차게 뽑아낸다. 쉐보레는 “오직 트럭의 주행성격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 엔진”이라고 말하며 “두터운 토크 밴드를 자랑해 무거운 짐을 싣고도 발걸음이 가볍다”고 전했다.
이어 6기통 엔진을 얹은 포드 F-150과 램 픽업을 콕 집어 말하며 “이제 4기통으로도 이들을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가속 성능도 매섭다. 쉐보레에 따르면 실버라도 2.7L의 0→시속 60마일(시속 약 96㎞) 가속 시간은 7초 미만. 쉐보레는 실린더 개수를 줄이는 대신 피스톤 스트로크 길이를 102㎜로 늘려 힘을 키웠다.
스트로크가 길면 피스톤과 맞닿는 실린더 벽면 마찰이 늘기 마련. 쉐보레는 ‘오프셋(Offset) 크랭크샤프트’를 적용해 마찰을 최소화했다. 피스톤이 상하운동을 할 때 보다 곧게 수직 왕복할 수 있도록 크랭크샤프트의 위치를 비트는 기술이다. 기다란 스트로크가 만들어내는 높은 압축을 견딜 수 있도록 피스톤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빚고 크랭크샤프트와 커넥팅 로드는 강철을 단조 공법으로 빚었다. 쉐보레는 “실버라도의 4기통 엔진은 V8 심장에 버금가는 내구성을 자랑한다”고 전했다.
연료효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흔적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핵심은 ‘전자식 가변형 캠 샤프트’에 있다. 엔진 회전수에 따라 캠 로브 높이를 바꿔 흡기와 배기 밸브의 개폐량, 속도를 조절해 연료를 살뜰히 아낀다. 가령 큰 힘이 필요할 땐 밸브를 빠르고 활짝 여닫는다.
8기통 엔진에서 볼 수 있었던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Active Fuel Management)’를 4기통에도 적용해 흥미롭다. 짐이 없거나 정속 주행을 할 때면 실린더 절반에 연료 분사를 멈추고 연비를 높인다. 이제 실버라도는 실린더 2개에만 연료를 써가며 달릴 수 있는 셈이다.
4기통 실버라도의 연비는 아직 공개 전. 4세대 판매를 시작하는 올 가을 구체적인 수치를 알릴 전망이다. 한편, 직렬 4기통 2.7L 가솔린 터보 엔진 조립은 미국 테네시주에 자리한 GM 스프링 힐 공장에서 맡는다. 미국 풀사이즈 픽업 시장에서 ‘만년 2인자’에 머물고 있는 실버라도. 4기통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F-150과 어떤 대결을 펼칠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