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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 발표
전통 라틴어 미사 거행 제한된다, 전체 가톨릭교회 일치 위한 결정
[외신종합]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라틴어 미사 전례 거행을 제한하는 자의교서를 발표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일치라는 선익을 위해 이 같이 조치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7월 16일 로마 미사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을 발표했다. 자의교서와 함께 전 세계 주교들에게 전한 서한에서,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교회의 일치를 위해 확장했던 라틴어 미사 허용이 오히려 분열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허용했고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더 큰 아량으로 확대한 라틴어 미사 거행은 다양한 전례 감성을 가진 교회 단체들의 일치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라틴어 미사 거행은 단체 사이의 간극을 확대시켰고 불일치를 조장해 교회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막아, 결국 교회를 분열이라는 아픔에 빠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의교서에 따라, 현재 라틴어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은 계속 미사를 봉헌해도 될지에 대해 주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한 자의교서 발표 이후 서품되는 사제들이 전통 라틴어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서는 주교에게 공식 요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주교는 허용하기 전 교황청과 협의해야 한다.
교황은 또 주교들에게 라틴어 미사를 거행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정할 것을 요청했다. 새로운 규정 실행에 대한 전권은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갖는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을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미사경본 사용을 허락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라틴전례 교회의 모든 사제가 교황청이나 주교의 추가 허락없이 1962년 미사경본을 사용해 ‘특별한 형태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미사경본은 공의회 뒤인 1969년 공표된 미사경본을 토대로 수정돼 왔다.
[글로벌 칼럼] (86) 라틴어 미사에 작별 고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를 뒤집는 파란을 일으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2007년 모든 사제들에게 장상의 승인 없이 ‘트리엔트 양식’의 라틴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내어 준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교황은 자의교서 「전통의 수호자들」(Traditionis Custodes)을 발표하고, 14년 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발표한 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의 모든 주요 조항을 무효화시켰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교구장 주교들에게 누가 어떤 상황에서 이 라틴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지 승인할 권한을 준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제 각자에게 전권이 위임돼 있었다. 교황은 또 주교들에게 라틴어 미사 전례문 사용을 엄격히 제한할 구체적인 지침까지 내렸다. 결국 교황의 분명한 목적은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개정된 미사경본만 사용해 미사를 드리도록 하는 것이다.
교황에 선출됐던 2013년부터 그가 이 오래된 라틴어 미사 양식이 지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을 불쾌하지 않게 하고 교회 내 분열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라틴어 미사를 제한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교황은 전임자의 심기를 거슬렀고 보수파의 반발을 일으켰다.
은퇴한 전임교황의 심기는 둘째 치고, 라틴어 미사 거행을 둘러싼 교회 내 분열 양상은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전부터 심각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자의교서 「교황들」 반포 이유를 비오 10세 형제회와의 화해를 이끌고, 예전 미사를 선호하는 신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시도는 교회 내 분열만 확대시켰다. 이러한 분열은 「교황들」이 반포되자마자 바로 감지됐고, 모두가 이를 알고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주교들에게 몇몇 신자들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라틴어 미사 허용을 악용해 “단체 사이의 간극을 확대시켰고 불일치를 조장해 교회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막아, 결국 교회를 분열이라는 아픔에 빠지게 했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1962년 미사 경본을 도구로 사용해 전례개혁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부하려는 시도에 가슴 아프다”면서 “이들은 공의회가 교회의 전통과 ‘진정한 교회’를 배신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에 교황은 “현재의 자의교서(「전통의 수호자들」)에 앞서 있었던 규정과 지침, 허용, 관습을 폐지하고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반포한 전례서만이 제2차 비티칸공의회의 교령에 따르며, 유일하게(unique) 로마 전례 기도의 법칙(lex orandi)에 따르는 것이라고 선언한다”고 밝혔다.
교황의 이번 자의교서 발표로 예전 미사 양식을 선호하는 몇몇 추기경과 주교, 사제, 전통주의자들은 마구 화를 내며 항의할 것이 뻔하다. 이들은 교회 안에서 작은 소수이지만 전임교황 아래에서 주객을 전도시킬 정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 교황은 이들을 무시해왔으며 자의교서 발표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애썼다.
더 이상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교황이 지난번 수술을 받을 때 의사들이 교황에게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례 탐구 생활 (57)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사제가 성찬의 빵을 성반이나 성작 위에 들어 신자들에게 보이며 그리스도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면,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으로 자신을 낮추는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 전례문은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낫게 해 달라고 청한 어느 백인대장의 입에서 나온 겸손과 신뢰의 말에서 가져왔습니다. 마태오 복음 8장 8절의 문장을 한 단어 (‘제 하인’)만 바꿔(‘제 영혼’) 사용합니다. 다만 우리말 번역문에서는 단어 하나가 더 바뀝니다. 라틴어 원문은 성경의 표현대로 “제 지붕 아래로(sub tectum meum) 주님을 모시기에”라고 되어 있지만, 우리말 번역은 “제 안에”로 대신하였습니다. 아마 곧 성체를 받아 모실 교우들에게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전례문과 성경 본문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약해졌다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참고로, 미사 전례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성경 원문에 깃들어 있는 의미의 색조가 조금 옅어진 경우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감사 기도 제2양식에서 사제가 예물 위에 두 손을 펴 얹으며 축성을 위해 성령을 청하는 부분이 있는데, 현재 우리말 전례문은 이렇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 여기서 “성령의 힘으로”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은 “Spiritus tui rore”인데, “당신 성령의 이슬로”, 또는 “이슬 같은 당신 성령으로” 정도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이 표현은 하느님의 능력을 이슬에 비유한 이사야서의 두 구절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26,19)와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45,8)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이 ‘위에서 내려오고’ 또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슬’로 표현하고 전례문도 같은 표현을 이어받았는데, 우리말 전례문은 단순히 ‘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례문을 번역할 때는 정확한 번역 말고도 고려할 사항이 많기에, 그 모든 요소들을 숙고하고 참작하여 지금의 번역문이 나온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와서, 예수님께 이 말을 한 로마군 백인대장은 하느님 계약 밖에 있는 이방인이자 하느님 백성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제국의 군인으로서, 자신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겸손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에 나오는 다른 많은 이들을 능가하는 커다란 믿음을 보여줍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멀리 떨어져 계신 채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백성 가운데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며 감탄해 마지않으십니다.
이 백인대장처럼 우리도 주님의 몸을 내 안에, 즉내 영혼이 사는 집 안에 모실 자격이 없음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백인대장이 예수님께서 자기 종을 치유해 주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실 수 있다는 신뢰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성찬례를 통해 그분을 가장 친밀한 손님으로 우리 영혼 안에 모시게 될 것입니다. 이 전례문으로 우리는 주님의 몸을 모실 마지막 준비를 마칩니다.
전례 탐구 생활 (56)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 준비 기도를 마친 사제는 깊은 절을 한 다음, 성체를 성반이나 성작 위에 조금 높이 받쳐 들고, 교우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부른 이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고 말했습니다(요한 1,29). 그 이튿날에도 요한은 다시 그곳에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자기 제자 두 사람에게 똑같이 말했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
요한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을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고난받는 주님의 종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언젠가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 줄 당신 종을 보내실 텐데,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이사 53,7) 보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예언의 이미지는 파스카 축제 때 도살되는 어린양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칩니다.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는 어린양이 아니라 실제로 한 인물이 어린양처럼 제물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종이 백성의 죄악을 짊어지고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 덕분에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이사 53,10-11 참조).
이사야 예언서에 기록된 이 대목은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습니다. 예언이 가리키는 주님의 종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지만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이는 오직 한 사람,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파스카 희생 제물이 되기만 하신 게 아니라,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음으로써 많은 이를 의롭게 하는 주님의 종에 대한 오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따라서 사제가 성체를 받쳐 들고 말하는 이 전례문은 과거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기쁨의 선언입니다. 동시에 미래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에 대한 기대도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사람은 예수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신랑 신부의 합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신랑이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전례문의 후반부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는 바로 이 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묵시록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19,5-10)에 관한 대목이 나오는데, 예수님과 교회의 일치를 비유적으로 말하는 대목입니다. 거기서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양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묵시 19,9),
그러므로 주님의 만찬인 미사에 초대된 이들, 미사에 참석하여 이제 곧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될 이들은 마치 혼인 잔치에 온 것과 같습니다. 일반적인 혼인 잔치가 아니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잔치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자리입니다. 어찌 복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례 탐구 생활 (55) 사제의 영성체 준비 기도
교우들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는 동안 사제는 축성된 빵을 쪼개고 작은 조각을 떼어 성작 안에 넣은 다음,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구원을 얻도록 속으로 기도하며 준비합니다. 미사 경본에는 두 개의 기도문이 제시되어 있고, 사제는 둘 중 하나를 바칩니다.
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이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로 모든 죄와 온갖 악에서 저를 구하소서. 그리고 언제나 계명을 지키며 주님을 결코 떠나지 말게 하소서.
②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이 제게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제 영혼과 육신을 자비로이 낫게 하시며 지켜 주소서.
두 기도문 다 중세 전례문에서 유래하는데, 공의회 이전 경본에 수록되었다가 약간의 수정을 거쳐 현행 미사 경본으로 이어졌습니다.
첫째 기도문은 장엄하고 공식적인 어조로 시작하여, 주님의 기도와 그 후속문에 나오는 청원과 같은 맥락에서, 영성체를 통해 죄와 악에서 지켜 주십사 기도합니다. 기도문은 사제의 삶 모든 순간에 주님과 일치되어 있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마치는데, 그 방법이 아주 구체적입니다. 언제나 계명을 지키는 것, 그것이 주님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확실하고 안전한 길입니다.
두 번째 기도문은 첫 번째 기도문보다 더 단순하고, 영성체에만 집중합니다. 이 기도문에는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품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이 전례문들은 사제가 영성체를 준비하며 혼자 바치는 개인 기도입니다. 사제가 기도하는 동안 신자들도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같은 준비를 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4항). 이 순간은 미사를 거행하는 사이사이 들어있는 침묵의 자리 중 하나이므로 서두르지 말고 품위를 지키며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전 예식들, 곧 사제가 축성된 빵을 쪼개고, 작은 조각을 성작에 넣는 예식, 교우들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는 예식을 적절한 시간 안에 잘 마무리하고, 사제가 영성체 준비 기도를 하는 동안 교우들도 침묵 중에 함께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제가 바치는 이 기도는 사제의 개인 기도라서 소리 내어 바칠 수 없지만, 그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워서 교우들도 알고 있으면 각자의 영성체 준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카롤링거왕조 시대의 성당 건축(751-843년)
중세의 건축양식을 둘로 나누면 전반부는 로마네스크(900-1070년)이고 후반부는 고딕(1120-16세기 중반)인데, 로마네스크 시작 이전에 중세 건축의 징후가 나타난 현상들을 모아서 ‘프레로마네스크’(pre-romanesque)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롤링거왕조는 751년부터 프랑크왕국을 통치했다. 843년에 이르러 프랑크왕국은 베르됭조약으로 카롤루스대제의 세 손자에 의해 서프랑크왕국, 중프랑크 왕국, 동프랑크왕국으로 분할되었다. 세 왕국은 오늘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토대가 되었다. 건축사에서 프레로마네스크가 중요한 시기는 카롤루스대제가 통치했던 768-814년이다.
고대 로마의 영향에서 시작한 프레로마네스크 건축
카롤루스대제는 아헨의 왕궁과 수도원을 건축의 중심지로 삼았다. 왕궁은 정치, 행정, 제도 등을 담당하는 세속 권력의 중심지, 수도원은 문화, 예술, 학문 등을 담당하는 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두 중심이 협력 관계를 통해 중세 문명의 기틀을 닦았다.
카롤루스대제에게 건축 활동 지원은 중요한 항목이었다. 좁은 의미로는 아헨 왕궁 경당을 통해 프레로마네스크 건축을 집대성했으며, 넓은 의미로는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 때 완성된 라틴 크로스(오늘날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십자의 아래쪽이 위쪽보다 긴 십자가 - 편집자 주) 유형을 새롭게 확장하여 그리스도교 전례에 맞춰 분화, 확대하는 종합적 발전을 이루었다.
카롤링거왕조의 건축은 공간 구성 측면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과 구별되어 분화하였고 발전을 이루었으나 시공 기술은 로마 건축술을 집대성하여 사용했다. 이는 로마네스크 건축의 기초를 이루며 이어졌다.
이처럼 건축술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로마네스크 양식까지 여전히 로마 건축이 연속되는 측면이 많았다. ‘로마네스크’라는 단어가 ‘로마답다.’를 뜻한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그 뒤에 나타난 고딕양식은 로마의 영향에서 벗어나 중세만의 독자적 건축술을 이루었다.
아헨 왕궁 경당
카롤링거왕조는 카롤루스가 왕위를 받기 전에 이미 전통 부흥의 일환으로 아헨 왕궁 경당(790-805년 건축)을 계획했다. 카롤루스는 787년 처음으로 방문한 라벤나에서, 기둥을 포함한 대부분의 건축 자재와 경당 설계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 넓은 팔각형의 중앙 공간과 여덟 개의 거대한 문설주가 상단의 둥근 아치를 지탱하며, 기둥으로 나눠진 부수 아치는 ‘산 비탈레 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증가한 수직성과 두꺼워진 벽체, 그리고 모듈(건축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치수 - 편집자 주)이 있는 아헨 왕궁 경당을 통해 게르만족의 역동성과 건축적인 발전을 알 수 있다. 중앙 공간의 지름과 높이의 수직 비율이 산 비탈레 성당은 1.78인데 비해 아헨 왕궁 경당은 2.1로 커졌다.
이외에도 석조의 육중함이나 물성 등을 표현하기 위해 로마 조적(돌이나 벽돌 따위를 쌓는 작업 - 편집자 주) 기술을 종합했다. 카롤루스대제는 아헨 왕궁 경당을 지을 때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원형극장 조적 기술을 참고했다.
아헨 왕궁 경당의 의미는 산 비탈레 성당의 전례 공간을 콜로세움의 구조와 기술로 축조해서 게르만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로마제국과의 유대를 강조하고 게르만족의 역동성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웨스트워크와 이스트엔드로 인한 선형 공간의 확장
중앙 집중형 공간을 갖춘 아헨 왕궁 경당이 프레로마네스크 건축의 문을 열기는 했지만 중세 시대의 교회 양식은 직선의 선형(線形) 공간이 중심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나타났던 라틴 크로스가 정착하면서 복잡하게 분화하고 발전하였다.
고대 로마의 4대 성당 가운데 ‘옛 성 베드로 대성당’과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을 보기로 삼아 서쪽 출입구, 동쪽 성소, 지하 납골당의 세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선형 공간이 확장되었다. 이렇게 해서 커진 서쪽 출입구를 ‘웨스트워크’(westwork), 제대와 주례석 앱스(apse, 후진이라고도 불리며 성당 제대 뒤 반원형 부분을 가리킨다. - 편집자 주)가 있는 동쪽 지성소를 ‘이스트엔드’(eastend)라 불렀다. 지하 납골당에는 고리 모양의 환상형(環狀形) 겹 공간을 만들었다.
카롤링거왕조 때에 그리스도교 전례 정비에 따라 교회의 선형성을 강화하였다. 선형 공간이 강화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금요일에 바친 ‘십자가의 길’을 위한 행렬이었다. 790-799년 건축된 생리키에(당시 지명은 센툴라) 수도원 성당에서는 나날이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때 행렬 예식이 있었는데, 당시 아빠스 알퀴누스(Alcuinus, 730?-804년)가 행렬을 중요하게 여겨 전례에 접목하였다.
성가의 도입도 건축에 중요한 요소였다. 신자들이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이끌고자 성가 찬양이 끝난 뒤에도 소리가 오래 남아 울리도록 성당 공간의 수직성과 선형성을 키웠다.
전례 공간의 변화
본디 제대는 대개 이동시킬 수 있는 목재 탁자였고, 일반적으로 성당 중앙에 위치해서 신자들이 제대의 삼면에 모일 수 있었다.
미사 집전자는 제대 어느 쪽이든 동쪽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동쪽은 해가 떠오르는 곳, 부활의 상징이고 햇빛이 많이 내리쬐는 지중해 연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은유였다.
만약 앱스가 동쪽을 향했다면, 집전자는 공동체가 선 제대 쪽에 같이 서서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함께 바라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대는 뒷벽 가까운 곳에 놓이거나 뒷벽에 붙여질 때까지 앱스 쪽으로 더 들어갔고, 제대가 동쪽을 향하든 그러지 않든 집전자와 공동체 모두 제대를 향하게 되었다.
성당 중심부에 있던 제대가 앱스 안쪽으로 옮겨지는 데 기여한 사건 가운데 하나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이 베드로 성인 무덤 위의 앱스로 성 베드로 성당의 중앙 제대를 옮긴 일이다.
제대에 사용되는 재료도 목재에서 석조로 바뀌었다. 4세기에 이미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언급한 석조 제대는 6세기에 이르러 일부 지역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769년에 카롤루스대제는 프랑크왕국 안 모든 교회에서 석조 제대만 사용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또한 성인 무덤 위에 제대를 만들던 관습은 제대 자체에 성인의 유해를 매립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전례 탐구 생활 (54) 하느님의 어린양
사제가 성반 위에서 빵을 떼고, 작은 조각을 성작에 섞는 예식을 수행하는 동안 신자들은 ‘하느님의 어린양’을 바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우리를 하느님 어좌 앞으로 데려가는 또 다른 전례 노래입니다. 이 전례문을 바칠 때 우리는 예수님을 승리하신 어린양으로 찬양하는 천사들의 무리와 하나 됩니다. 성 요한의 묵시록은 그 광경을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나는 또 어좌와 생물들과 원로들을 에워싼 많은 천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백만 수억만이었습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살해된 어린양은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 모든 곳에 있는 만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께 찬미와 영예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묵시 5,11-12)
‘하느님의 어린양’은 예수님께 직접 바쳐 올리는 노래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이 예수님을 우리 구원을 위해 희생되신 새로운 파스카 어린양으로 소개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다”(1코린 5,7)고 말합니다. 묵시록도 예수님께서 “살해된 어린양”(5,6.12; 13,8)이시며, 성인들은 그분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입은 이들이라고 전합니다(7,14). 또 어린양의 피는 사탄의 힘도 이겨냅니다(12,11).
특별히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를 위한 파스카 희생 제물이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요한은 어느 군인이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댄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해면이 우슬초 가지에 꽂혀 있었다고 말합니다(요한 19,29). 요한은 왜 이런 사소한 정보까지 꼼꼼하게 기록했을까요? 왜냐하면 이집트 탈출 때 있었던 최초의 파스카 예식에서 바로 이 우슬초 가지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을 모두 불러 파스카 제물로 작은 짐승을 한 마리씩 잡고, 우슬초 한 묶음을 가져다가 대야에 받아 놓은 피에 담근 다음, 그 피를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라고 지시했습니다(탈출 12,22). 요한은 우슬초 가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파스카 희생 제사로 보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파스카 어린양의 희생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십자가 아래로 내릴 때 군인들이 보통 때 하던 대로 죄수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요한 19,33). 이것은 파스카 제물의 뼈를 부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탈출 12,46)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예수님의 죽음은 파스카 희생 제사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주례 사제가 빵을 떼어 나누는 예식과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춰 주어야 합니다. 원칙적으로는 예식을 마칠 때까지 필요한 만큼 되풀이하다가 마지막에는 ‘평화를 주소서.’로 끝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낭송할 때와 노래할 때를 구분하여 ‘하느님의 어린양’을 시작하는 지점을 정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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