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단한 남자들도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자앞에서는
꿈쩍도 못하는 것이 참 신기한 세상사입니다.
세상역사를 주름잡는 여인들이 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등
로마의 최고 권력자들을 매료시켰던 클레오파트라 7세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인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스의 헬레네,
신화 속 인물이지만, 그녀의 빼어난 미모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원인으로 묘사될 만큼 강력한 파급력을 지녔습니다.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 혼란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집니다.
중국에서는 양귀비가 유명합니다.
현종의 깊은 사랑을 얻어
결국 현종이 국정도 제대로 못하게
안사의 난이라는 큰 반란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한나라 원제 때에 시골 미인 왕소군(본명 왕장)에 대한 이런
재미난 일화도 있습니다.
왕비 간택령에 의하여 뽑혀서 왕비 후보로 왕궁에 오게 되었습니다.
중국 천하에서 이렇다 하는 미인들이 다 뽑혀온 그곳에서도 왕소군을 필적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왕이 친히 나와서 미인들을 살폈다면 단연코 왕소군이 왕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궁중 법도가 그렇지 않아서 먼저 화공(畵工)을 시켜 미인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황제께 바치고 그 중에서 선택된 몇 미인들 가운데서 왕비를 선택하였답니다.
그러므로 왕비가 될 수 있는 길은 화공의 그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미인들은 자기의 용모를 더욱 빼어나게 그려주기를 원하여 화공에게 뇌물을 주었습니다. 왕소군은 워낙 가난하여 뇌물을 줄 수도 없었으나, 뇌물을 주지 않아도 자기의 용모대로 그리기만 하면 틀림없이 황제의 눈에 들 것이었습니다.
화공은 왕소군의 초상화를 벌써 다 그려놓고도 뇌물을 기다리느라 그림을 바칠 마지막 날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소군에게서는 영 뇌물이 오지 않았습니다. 심술이 난 화공은 그 고운 왕소군의 볼에 먹점 하나를 그린 다음에 그 초상화를 바쳤습니다.
왕소군이 왕비가 못될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초상화는 왕소군은 왕소군인데 왕소군이 아니지요? 그의 본 얼굴에는 먹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초상화에는 먹점을 그려 넣었다는 말입니다. 그 그림을 척 보면 한눈에 왕소군으로 보이지만 분명히 진짜 왕소군의 초상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왕소군인 것입니다. 진짜 왕소군의 볼에는 먹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대로 연구하지 않으면 비록 고의가 아니라도 다른 예수를 그릴 수가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잘못 소개된 예수님을 진짜 예수님인 줄 믿고 나면, 성경대로 그려주는 진짜 예수님을 거절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잘 용납하는 구나" 라고 탄식하였습니다. 한나라 원제는 그 잘못된 그림을 보고 왕소군을 얼굴에 먹점이 있는 사람으로 알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후일 황제가 직접 왕소군을 볼 기회가 왔을 때 비로소 그림의 왕소군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황제가 조처한 일은 화공을 잡아 처벌하는 것뿐이었고 호지를 떠나간 그 미인을 붙들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그릇된 초상화를 그리면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런 사람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고후 11:13~15).
베드로와 바울의 요한 등 사도들이 살아 있을 때에도 이렇게 하였으니 지금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줄 알아야 합니다(딤후 2:15).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자신도 모르게 다른 예수를 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
가짜는 진짜를 닮았습니다.
그러나 가짜는 진짜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만나고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닮기 위해서
날마다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우리는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묵상해야 합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참 신앙은 이론이나 논리가 아닙니다.
참 신앙은 주님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그 주님과의 교제, 말씀의 깊은 경험을 통해 생각이 변하고, 말이 변하고, 인생이 달라지는 경험이 예수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대지(大地)와 같아 당신을 의지하고 맡긴 자들을 아름다운 꽃으로 열매로 피어나고 성숙되게 하여 주십니다.
바울은 그 경험의 절정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누리며
주님을 닮아가는 복된 날 되시길 축복합니다.
https://youtu.be/eWQfKjvxAYU?list=RDeWQfKjvxAYU
https://youtu.be/37ubSD0Jj_g
https://youtu.be/En8pdC4U-zo?list=PLlvX4ELJMrhXnSj2o2h2coTWkJjXDe1F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