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면허갱신 안내 문자가 왔다. 칠십오 세 이상의 고령자는 치매 검사와 교통안전교육 및 적성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종전보다 까칠한 조건이다. 최근 운전미숙으로 생때같은 생명을 앗아간 안타까운 뉴스를 자주 접한다. 사고를 낸 사람 대부분이 순발력이 떨어진 노옹이라 동병상련으로 날벼락을 맞은 피해자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산수의 나이에 이르면 면허증을 반납해야 한다는 일부 강경론자의 주장에 머리로는 수긍하면서도 가슴속으로 앙금이 생긴다. 개개인의 신체 계측치를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한 민원 행정이라 말하기 어렵다.
나는 자동차 여행을 즐기다 보니 운행은 필수다. 운전도 넓은 의미에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비록 기계치이지만 액셀과 브레이크를 조작하고 핸들을 조종하며 시간과 공간 속을 가로지르는 질주가 즐겁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옛길을 휑하니 달리다 보면 삶의 찌꺼기가 뭉텅 빠져나가는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드라이브는 손에 움켜쥐고 있는 최후의 낭만이다. 그러니 면허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몇 년 전 동료와 함께 호기심으로 치매 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숫자 백에서 일정한 수를 뺄셈하는 문제가 나왔는데 십 단위 계산이 헷갈려 더듬거렸다. 이번에는 전처럼 쩔쩔매지 않으려 사칙 연산을 머릿속에 궁굴렸다.
치매센터를 방문했다. 담당 직원은 사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곰살맞기를 바랐지만, 치매 예비군에 속하는 어눌한 어르신들만 맞이해서 그런지 무표정하고 사무적이었다. 별실에서 가로막을 설치한 창구를 통하여 선별검사가 이루어졌다.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검사 대상자의 첫째 덕목은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하고 다소곳해야 한다는 점이다. 행여 밉보이면 고난도 문답으로 곤혹을 치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속 보이는 얍삽한 전략은 나의 뿌다구니 같은 성품 때문에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시작은 괜찮았다. 이곳이 뭐 하는 곳이며 어느 행정 구역에 속하느냐 등 장소와 상황을 인식하는 테스트였다. 유치한 질문이라 거들거렸지만, 이어진 질의에 말문이 콱 막혔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물음이었고 족집게 답안지에도 없던 문항이었다.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다니. 뚱딴지같이 그게 왜 궁금하냐며 욱하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알 수가 없었다. 월급날도 아니고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도대체 오늘은 며칠인가.
그녀는 제대로 한 건 걸렸다는 듯이 실눈을 빤짝이며 다그친다. 연중 내내 공휴일뿐인 백수건달이야 세월만 낚으면 그만이지만 직장인은 헬요일을 견디며 주말을 향하는 마음이 가파르다. 오늘은 구월 첫 주 목요일이다. 헤아려 보건대 4일이나 5일쯤 될 것이다. 아니면 3일인가. 점괘 보듯 4일을 찍었다. 직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날이 맞느냐고 다짐한다. 원하는 답이 물 건너간 모양이다. 바둑판이라면 한 수 물려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지만, 꼰대의 습성을 어쩌지 못하고 4일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낯간지러운 언쟁이 또 있었다. 그림의 명칭을 묻는 항목이었다. 그네 타는 그림이 나왔는데 그냥 ‘그네’라고 말했으면 될 일을 뜬금없이 ‘그네 타기’가 맞다며 이번에도 뿌득뿌득 우겼다. 그녀가 딱하게 여겼지만, 그게 그거 아니냐며 따지듯이 투세했다. 얼뜨기 치매기氣가 내 안에 넘성대고 있었던 것일까. 든직하게 숙지한 후 예를 갖추어 응답해도 될 일을 말본새가 데퉁스러웠다.
수필가로서 면목을 세운 일도 있었다. 기억력을 되짚는 긴 문장이었다. 예를 들면 “오늘 수월이 자전거를 타고 시민 공원에서 열한 시부터 야구하려고 하는데 창우가 어쩌고저쩌고….”라는 등. 내가 공들인 뺄셈 문제는 끝내 출제되지 않았다. 약삭빠른 척 설레발치다 허방 짚은 꼴이다.
불현듯 나의 수필 ‘입빠이 いっぱい’의 주인공인 형님 생각이 났다. 맑은 영혼을 지닌 영매한 분이었건만 아흔 나이에 이르러 치매의 경계를 넘나든다. 영매와 치매의 간극이 아득한 것으로 알았으나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집착하던 한때의 영화는 가뭇없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생은 암담하기만 하다.
서녘 하늘의 노을빛이나 곱게 젖은 풍엽楓葉이 누구에게나 그저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지금껏 풀릴 듯 엉켜 있는 실타래 같은, 한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가는 치매로부터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으려나. 나에게 치治로서 치癡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일상에서 멀어져 가는 고운 우리말을 끄집어내어 글을 짓는 일일 것이다.
뒤넘스러웠던 언행으로 문진 결과가 불안했지만, 운행을 허용하는 녹색 신호등이 깜박였다. 적색등도 켜져 살펴보니 지남력, 언어기능이 시원찮았다. 날짜와 그네 타기 등이 감점 요인이었으리라. 차고 있는 줄도 몰랐던 손목시계에서 9월 5일이 선명하다. 내 팔목에서 오늘이 째깍거리고 있었건만 나는 치매하여 알지 못했다. 어쩌면 하루치만큼이라도 애써 더디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가위가 눈앞인 가을 문턱이다. 해거름인데도 염제가 저도 더위를 먹었거나 망령이 도졌는지 정수리에 땡볕을 쏟아붓는다. 불볕더위 탓인지 사거리가 왠지 낯설고 분잡스럽다. 타고난 길치에 방향치인 나로서는 집으로 가는 건널목에서 주춤거린다. 선글라스에 스카프를 휘날리며 젊은 여성이 스포츠카를 몰고 쌩하게 지나간다. 머물기를 거부하는 아름다운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