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나무 숯불 속에서 부르는 노래(시120:1-7)
갈등
1. 산불이 지나가는 숲을 보셨나요? 붉은 불길이 산 전체를 집어삼킵니다. 소방관들이 밤새 물을 뿌립니다. 아침이 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불은 다 꺼진 것 같습니다. 연기도 거의 보이지 않아요. 검게 탄 나무들만 서 있습니다. 소방관들은 곧바로 철수하지 않습니다. 불꽃은 사라졌지만, 숯불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검게 탄 재를 막대기로 한번 뒤집어 보면 그 아래에서 시뻘건 불씨가 드러납니다. 바람이 한 번 불면 다시 살아납니다. 마른 풀 하나가 닿으면 다시 불이 됩니다. 산불이 무서운 것은 눈에 보이는 불길만이 아닙니다. 재 아래 숨어 있는 불씨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그런 불씨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 사람과의 대화도 끝났습니다. 몇 달이 지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했던 말 한마디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당신이 뭘 알아?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저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 사람 말은 믿지 마.”말은 몇 초 만에 끝났는데, 그 말이 남긴 불씨는 몇 년 동안 가슴에서 타기도 합니다. 어느 날 누군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마음속 재가 뒤집힙니다. 다시 빨갛게 살아납니다.‘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말.’입니다. 오늘 시편에는 그 불이 등장합니다. 평범한 불이 아닙니다. 시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4절,“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2. 로뎀 나무, 우리나라의 싸리나무와 비슷합니다. 오늘 시인은 로뎀 나무 숯불 밖에서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이 다 꺼진 다음에 찬송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뜨거운데 노래합니다. 1절,“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시인은 지금 환난 가운데 있습니다.‘환난’이라고 하면, 병이 들었든지-돈을 잃었든지-전쟁이 발발하든-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등... 시인은 2절,“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노래합니다. 시인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칼이 아니었습니다. 혀였습니다. 돌이 아니라 말이었습니다.
돌을 던지면 어디에 떨어졌는지 보입니다. 칼에 베이면 상처가 보입니다. 말은 보이지 않아요. 누군가 한마디 하고 지나갑니다. 말한 사람은 저녁이면 잊어버립니다. 들은 사람은 잠을 자지 못합니다. 말한 사람은“내가 뭘 그렇게 심하게 말했다고 그래?”들은 사람의 가슴에는 이미 화살이 꽂혀 있습니다. 시인은 거짓된 혀를 화살에 비유합니다.“장사의 날카로운 화살”이라고요. 화살의 무서움은 멀리서 날아오는 것입니다. 칼은 가까이 와야 찌를 수 있습니다. 영화, 영웅-천하의 시작. 진시황제를 살해하려는 이들(이연걸이 뽑힘-십보일살, 죽이지 않음, 중국 통일이 이뤄져 살생이 끝나기를)
3. 화살은 멀리서도 사람을 쓰러뜨립니다. 화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화살에서 숯불로 이미지가 바뀝니다. 왜 숯불일까요? 화살은 순간적으로 찌릅니다. 숯불은 오래 탑니다. 겉으로는 검습니다. 불꽃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 손을 대면 뜨겁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어떤 말들이 그렇습니다. 그때 들었던 말-나를 무시했던 말-사실이 아닌데 사실처럼 퍼진 말-내 진심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말. 세월이 지난 후 누군가 그 사람 이름만 꺼내면, 마음속 숯불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인은 7절,“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대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나는 화평을 원하는데 세상은 싸움을 원합니다. 나는 화해하고 싶은데 상대방은 나를 이기려고 합니다. 싸리나무 숯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습니까?
갈등 심화
4.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말’에서 눈을 들어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라봅니다. 5절,“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메섹은 이스라엘에서 멀리 북쪽 지역입니다. 게달은 아라비아 광야의 유목민들이 있는 곳이에요. 시인이 아침에는 메섹에 살다가, 저녁에는 게달의 장막으로 들어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혼의 노래입니다. 시인은“나는 내가 속하지 않은 곳에 사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있는데 나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평화를 원하는데 내 주변의 언어는 왜 이렇게 거칠고 공격적입니까?
나는 진실하게 살고 싶은데 왜 거짓이 더 힘을 얻는 것처럼 보입니까?”그는 탄식합니다.“화로다!”이 노래는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에게도 찾아오는 아주 깊은 외로움입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타향에 있습니다. 해외에 오래 여행하는 분들이 그래요. 낯선 도시에서 저녁이 됩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식당마다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자동차가 지나갑니다. 불빛이 환합니다. 어느 순간 이상하게 외로워집니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창문 밖을 바라보면 문득 집이 그리워집니다. 시인이 지금 그렇습니다.
5. 그는 사람이 없는 광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가 자신과 다릅니다. 그들은 거짓을 말합니다. 속입니다. 싸우려고 합니다. 시인은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타국에 홀로 떨어진 사람처럼 말합니다.“내가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6절,“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시인은 하루-잠깐이 아닙니다. 오래 살았습니다. 하루의 어려움은 견딜 수 있습니다. 한 번의 오해도 참을 수 있습니다.한 번 들은 모욕적인 말도 기도하면서 넘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늘도 그렇고-내일도 그렇고-한 달이 지나도 그렇고-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면 마음에서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제가 언제까지 참아야 합니까? 언제까지 이 사람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까? 언제까지 제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평화를 선택해야 합니까?”오래 있으면 냄새가 배기 시작합니다. 숯불 피우는 곳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면 괜찮습니다. 그 앞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옷에 냄새가 뱁니다. 머리카락에도 냄새가 밴다. 집에 돌아와서도 몸에서 숯불 냄새가 납니다. 이것이 시인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싸우는 사람들 가운데 오래 살다 보면, 나도 싸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거짓말을 계속 듣다 보면 나도 진실보다 유리한 말을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6. 험담을 계속 듣다 보면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어느 날 나도 거기에 한마디 보탭니다. 공격적인 사람과 오래 지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어느 순간 내가 그 사람을 닮습니다. 욕하면서도 배운다고요.“싸움을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도 어떻게 화평의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싸리나무 숯불 속에 있으면서도 어떻게 내 마음까지 숯불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요?”
실마리
7. 산에 갔는데 해가 졌습니다. 주변은 어두워졌습니다.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멀리서 산불이 번지고 연기가 자욱합니다. 눈이 따갑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사람이 가장 위험해지는 것은 연기만 바라볼 때입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이 그렇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연기가 가득했어요. 누군가는 거짓말합니다. 속입니다-화살 같은 말을 쏩니다. 마음속에는 로뎀 나무 숯불이 타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숯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씨만 들여다보고 있지 않습니다.“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떻게 하면 똑같이 갚아줄까?”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고개를 듭니다. 시인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시인은 문제의 방향을 바꿉니다. 상처를 받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향합니다.“당신이 그랬잖아요!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내가 가서 따져야겠습니다.”시인은 방향을 바꿉니다.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거짓된 입술에서 여호와께로. 화살을 쏜 사람에게서 나를 건지실 하나님께로요. 이것이 내 인생 문제를 푸는 실마리의 첫걸음입니다. 불이 꺼져야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이 문제만 해결되면 기도하겠습니다. 마음이 조금 정리되면 예배드리겠습니다. 저 사람과 문제가 끝나면 다시 찬송하겠습니다.”
8. 오늘 시인은 정반대입니다. 불이 꺼진 다음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불 속에서 하나님을 부릅니다. 숯불이 아직 뜨겁습니다. 상대방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그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기도는 숯불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얼마 만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시인은 노래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부르짖음이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진실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나를 설명하느라 힘쓰지 마십시오.
나를 알고 이해하시는 한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입니다. 화살을 맞았을 때 화살을 다시 쏘지 마십시오. 그러면 싸움을 길어지고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화살을 내려놓아라.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다시 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오는 것이다.”시인은 2절,“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직접 심판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화살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120편은“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134편까지 이어집니다. 그 첫 번째 노래가 무엇입니까?
“할렐루야!”가 아닙니다.“내가 성전에 들어왔습니다!”도 아닙니다.
9. 첫 번째 노래는“화로다!”입니다.“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성전에 올라가는 첫 노래가 예루살렘이나 성전, 찬송 소리가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이 있습니다. 싸움이-화살이-숯불이-메섹과 게달이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메섹에서 방향을 돌리는 순간 시작됩니다. 아직 환경은 그대로입니다. 사람들도 그대로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그대로입니다. 숯불도 아직 타고 있습니다. 한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내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어제까지 나는 나에게 화살을 쏜 사람만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성전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방향이 달라지면 같은 장소라도 달라집니다. 시인은“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았습니다.”신앙은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그대로 있지만, 방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어디에 사느냐’보다‘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입니다. 시인은 메섹에 있습니다. 게달의 장막 가운데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습니다. 메섹에 살되, 메섹을 향하여 살지 마십시오. 몸은 거기에 있어도 마음의 방향은 하나님을 향하십시오. 우리가 세상에 오래 살다보면, 세상 사람들과 닮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그것은 네 본래 모습이 아니다.”너는 거짓의 사람이 아니다. 너는 화살을 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불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평화를 원하는 사람이다.
복음 제시
10. 우리보다 먼저 싸리나무 숯불 속에 서셨던 분이 계십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도 거짓된 입술에 둘러싸이셨습니다. 사람들은 거짓 증언으로 예수님을 고발했습니다. 조롱하고 침 뱉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수많은 말의 화살이 예수님을 향해 날아왔어요. 예수님은 그 화살을 뽑아 되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셨습니다.“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세상은 싸움을 선택했지만 예수님은 화평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살을 맞아도 다시 화살을 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숯불 가운데 있어도 내가 불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섹에 살아도 메섹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 십자가의 평화를 품고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대
1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싸리나무 숯불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던진 말이 화살처럼 박혀 있고, 오래된 상처가 숯불처럼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숯불을 다시 상대에게 던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내게 부르짖으라.”말씀하십니다. 시인은 메섹에 있었지만 메섹의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다. 싸움을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는 노래했습니다.“나는 화평을 원한다.”우리도 숯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어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지 않았어도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메섹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렇게 살도록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