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시편 120편 1 - 7절
1 내가 고통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게 대답하셨습니다.
2 여호와여, 거짓말하는 자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소서. 거짓된 혀들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
3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행하실 것 같으냐, 그 밖의 무엇을 더하실 것 같으냐? 오 거짓된 혀여!
4 주가 너를 무사의 날카로운 화살로 벌하실 것이요. 말라깽이 나무로 만든 불타는 숯불로 벌하실 것이다.
5 내가 메섹에 살고 있고, 게달 사람들의 동네에 살고 있으니 불행합니다.
6 너무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내가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너무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7 나는 평화를 원하지만,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합니다.
<묵 상>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15편은 표제어가 모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에 3차례,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에 성전으로 올라가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아닌 지역, 여러 지방이나 심지어 디아스포라, 흩어진 씨앗처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순례길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성전 순례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 응답에 대한 기쁨과 거짓에 대한 분노(1-4절)
"내가 고통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게 대답하셨습니다."(1절) 시인이 순례의 길을 걷다가 위험한 협곡을 통과하게 되었거나 강도를 만나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을 만났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할 수 없는 일, 경제적인 문제, 관계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으로 인해 힘든 과정 속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때에 시인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하여 주셨다고 노래합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 중에는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만사형통할 때에 지은 시’, ‘배 부르고 등 따뜻할 때에 지은 시’, ‘자식들이 말 잘 듣고 믿음이 좋을 때에 지은 시’와 같은 것은 단 한 편도 없습니다. 대부분이 극심한 환난이나 절박한 상황에서 지은 시들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환난이 있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관심이 없으시기 때문이거나 외면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도리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거짓말하는 자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소서. 거짓된 혀들로부터 나를 구해 주소서."(2절) 여기서 ‘거짓말’이라는 단어는 ‘배신적 행위를 하는 거짓말’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다가 어느 순간에 뒤통수를 치는 것입니다.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것’입니다. 발에 난 상처야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아물게 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수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고, 심지어는 평생 치유되지 않기도 합니다. '거짓된 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말하는 근거 없는 거짓말’을 뜻합니다. 의도적으로 속이는 것입니다. 특히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고, 목전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위증을 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배신을 당하여 뒤통수를 맞는 상황과 위증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도 느끼고,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큰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에게 무엇을 행하실 것 같으냐, 그 밖의 무엇을 더하실 것 같으냐? 오 거짓된 혀여! 주가 너를 무사의 날카로운 화살로 벌하실 것이요. 말라깽이 나무로 만든 불타는 숯불로 벌하실 것이다."(3-4절) 시인은 거짓과 속임에 대해 분노합니다. “너에게 무엇을 행하실 것 같으냐? 무엇을 네게 더할 것 같으냐?”라며 2중 의문문으로 나타냅니다. 이러한 표현은 고대에 중동지역의 사람들이 서로 계약을 하고서 맹세할 때에 쓰는 표현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계약을 할 때, 한 사람이 “약속을 어기는 사람에게 신이 네게 무엇을 주며, 무엇을 더할까?”라고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은 “이러이러한 저주와 심판들이 내게 더하여질 것이다”라고 화답함으로 맹세를 했습니다. 시인은 맹세가 아니라 속이는 혀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불타는 숯불’과 같다고 합니다. ‘화살’은 문자 그대로 사람을 해치는 무기이고, ‘말라깽이 나무'는 오랫동안 불에 탔기 때문에, 연료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말라깽이 나무로 만든 불타는 술불'은 ‘꺼지지 않는 불’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처럼 무서운 표현을 써가며 거짓된 혀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거짓에서 떠나는 결단(5-7절)
"내가 메섹에 살고 있고, 게달 사람들의 동네에 살고 있으니 불행합니다."(5절) ‘메섹’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야벳의 6번째 아들입니다. 그 후손들이 사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이방도시였습니다. ‘게달’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 후손들이 사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한 이방도시였습니다. 시인은 팔레스타인의 북쪽과 남쪽에 위치한 이방도시들을 언급하며, 하나님을 멀리하며 살았던 삶에 대해서 뉘우치고 있습니다. 특히 시인은 ‘불행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주로 이 표현은 장례식장에서, 다른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외치는 통곡의 말이었습니다. 시인은 죽음을 당한 지인처럼 자신의 삶이 그와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내가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너무 오랫동안 살았습니다."(6절) 거짓을 행하는 사람들, 속이는 사람들과 너무 오랫동안 같이 놀았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과 그만 어울려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전에 밋밋한 생활이었어도 삶에 규모가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 많이 망가졌구나. 이제라도 다시 예전에 믿었던 하나님을 찾아야 되겠다.” 이런 식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시인의 고백입니다.
"나는 평화를 원하지만,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합니다."(7절) 시인은 악을 행하는 사람과 함께 오랫동안 어울려 다녔지만, 지나고 보니 자신과 그들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러나 자신이 평화를 말할 때에, 그들은 전쟁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이전과 다르게 살겠다는 시인의 결단이요. 시인의 회개와도 같습니다.
본문은 시인이 성전을 향해 올라가면서, 이전에 자신이 환난을 겪었던 것과 그 때에 부르짖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기억하고, 또한 자신이 바르게 살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며 새로운 삶을 살 것을 결단하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분에만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수준의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나의 일상에서도, 예배당을 찾을 때도, 무엇보다도 인생 전체가 영원한 성전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올라가는 순례자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내가 하나님의 백성다운지, 그리스도인다운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에만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걸맞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자신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아름답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나의 인생길과 믿음의 길이 영원을 향한 순례자의 길임을 확인시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시는 역사가 있게 하옵소서. 무조건 환난이 없도록 기도하는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환난을 만날지라도 잘 벗어나도록 기도하며, 이런 일을 통해서 나의 삶과 인격과 믿음이 아름답고 성숙되게 하옵소서. 이전의 잘못 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믿음과 용기를 주옵소서.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졌다며 다시 돌아갈 용기가 없어 돌아서기를 주저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언제나 인생 속으로 들어오셔서 애타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에서 순례자의 삶, 성전으로 올라가는 삶, 믿음의 신분과 수준에 맞는 삶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인생 전체가 주님께로 가는 은혜의 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