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에서 읽는 부모은중경
김 선 구
새끼를 낳아 본 암소들은 저마다 뿔 위에 각륜(角輪)이라는 나이테표적을 갖고 있다. 뿔 둘래가 깊게 패여서 가락지 같은 골을 형성한 모습이다. 이것은 임신과 출산을 거쳐 송아지를 잘 키워냈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어미 소는 임신 중 자신의 몸을 지탱하는데 쓸 영양분을 태아에게도 일부 나누어줘야 한다. 또 출산 후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려면 더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소가 섭취하는 사료만으로는 이러한 영양분을 충분히 조달하지 못하므로 새끼에게 우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 그런 이유로 어미 소의 건강에 깊은 상흔을 남기게 된다. 쇠뿔에 나타나는 나이테는 이러한 희생의 징표들이다.
나는 축산학도로 일하면서 오래 동안 소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자연히 임신한 소들을 돌보며 분만과 포육의 전 과정을 살피는 기회도 많았다. 그 때만 해도 암소가 송아지를 낳고 키울 때 마다 뿔 위에 생겨나는 나이테무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그 수를 헤아려서 암소들의 연령을 감정해 보는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한우는 두세 살 정도에 첫 새끼를 낳았으므로 여기에 각륜의 수를 더하면 연령이 되었다. 먼 훗날에야 부모은중경을 읽으면서 쇠뿔에 나타난 각륜 표시 속에 부모님의 깊은 은혜가 숨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부모님의 은혜를 찬탄한 부처님의 말씀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애쓰는 내용과 함께 자식이 부모를 홀대하는 모습도 언급했다.
어느 날 부처님이 대중을 이끌고 길을 가다가 길가에 쌓인 한 무더기 뼈를 보고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제자 아난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스승님께서는 무슨 연고로 마른 뼈 무더기에 절을 하십니까?” 부처님이 말 했다. “이 마른 뼈는 어쩌면 전생에 나의 선조이거나 다생 겁을 내려오는 동안 부모일 수도 있다. 그러한 인연으로 뼈에 예배하노라.”
그리고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이 뼈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관찰 해보아라. 남자의 뼈는 색이 희고 무거우며, 여자의 뼈는 색이 검고 가벼우리라. 여자는 아들 딸 낳고 키움에 있어 한번 아이를 낳을 때 마다 서 말 서 되나 되는 피를 흘리며, 아이를 낳은 후에는 여덟 섬 너 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야 하므로 뼈가 검고 가벼워진 것이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하여 출산 할 때까지 열 달 동안의 변화과정과 출산 후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고초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 내용을 보면, 어머니가 아기를 배면 첫 달에는 생명체가 풀잎에 이슬처럼 나타났다가 둘째 달이 되면 한 방울의 우유와 같이 된다. 셋째 달이면 그 모습이 엉킨 피처럼 변하고, 넷째 달이면 점차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다섯째 달이 되면 아이는 머리와 두 팔과 두 무릎, 다섯 부분이 모양을 갖추고, 여섯째 달이면 태아에는 눈, 귀, 코, 입과 혀의 감각과 의식이 열린다. 일곱째 달이 되면 360개 뼈마디와 8만4천 개의 털구멍이 생기고, 여덟째 달이면 아홉 개 기관이 뚜렷해지고 뜻과 지혜가 생긴다. 아홉 달이면 태아가 오곡의 정기를 흡입하고, 열 달이 되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모습으로 태어난다.
부처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가 아이를 밴 열 달 동안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불안하고, 오랜 병을 앓은 사람처럼 소화도 잘 되지 않는다. 달이 차서 아이를 낳게 되면 한없는 고통을 느끼면서 양과 돼지를 잡은 것처럼 피를 쏟아 자리를 적신다. 이 후 젖을 먹여 키우고, 예의를 가르치고, 학문을 익히게 하고, 혼인을 시킨다. 이렇게 고생하며 키우고 정성을 다 하고도 부모의 온정은 끊어지지 않는다.
임신 중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일어나는 생태적 변화를 설한 내용은 오늘날의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임신은 수정란이 난관을 거쳐 자궁에 이르면서 시작되고, 자궁 속의 수정란은 난자기와 배아기 그리고 태아기를 거치면서 온전한 생명체로 성장한다. 난자기에 수정란은 난할(卵割)을 거듭하여 자궁벽에 착상하므로, 이 때의 모습을 풀잎 위의 이슬과 한 방울의 우유로 표현한 것 같다. 배아기에 이르러서는 각종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分化)하고, 이어서 태아기에 하나의 생명체로서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달이 찬 태아는 어머니가 혈액을 통하여 공급해 주는 양분으로는 영양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 또 어머니의 자궁도 좁아서 더 이상 생활공간으로 머무를 수 없다고 투정을 부린다. 이러한 요구에 대한 화답의 신호로 자궁이 열리고 출산을 하게 된다.
소의 출산과정을 지켜보다보면 산모의 고통을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출산을 기다리는 소는 간헐적으로 찾아드는 진통 속에 초조와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가 본격적인 진통과 함께 태아를 만출 한다. 이어서 바로 송아지의 전신을 핥아 태반과 태수 그리고 오물들을 제거하여 송아지의 털이 빨리 마르게 해 준다. 이 후 수시로 젖을 빨리고 한시도 새끼 곁은 떠나지 않는다.
부모은중경에는 어머니가 임신과 육아를 거치면서 겪는 고통 열 가지를 조목조목 나열하여 대중들을 깨우치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은혜를 더 강조하셨다. 효를 잘 헤아리고 실천함으로써 불경의 죄를 멸하고, 부모님도 해탈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설하고 있다. 늦어서야 효를 깨닫고 보니 봉양 할 부모님이 계시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나무가 조용하고자 하나 바람이 멎지 않으며, 자식이 봉양하고자하나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옛말이 메아리처럼 공중을 맴돌았다.
나의 어머니는 팔남매를 낳아 잘 키워냈으므로 여덟 개의 나이테를 새겨두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외부에 나타내지 않았으니 가눔 할 수가 없었지만 “여자의 뼈는 검고 가볍다”는 부처님 말씀에 어머니의 나이테가 뼈 속에 숨어 있었음을 늦게 깨달았다. 살아 계셨을 때는 밖으로 내 보이지 않았고, 죽은 후에야 뼈 속에 흔적을 안고 가셨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다. 쇠뿔위의 둥근 무늬를 떠 올리면서 부모은중경을 생각하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