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따구가 돌아왔다
김주선
밥 한술 뜨고는 잠이 들었다. 설핏 잠에서 깨어보니 남서향 커튼 틈으로 빛이 들어와 칼날처럼 침대 깊숙이 찌르고 있었다. 해시계는 오후 3시쯤, 암막(暗幕)을 활짝 열어젖히고 빛을 따라 아른거리는 먼지를 가만 보았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요 며칠 눈앞에서 성가시게 굴던 날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실눈을 떠야 할 만큼 눈이 부셨다. 여전히 동공은 열려있고 눈알이 빨갛다.
오전에는 월차를 내고 안과에 다녀왔다. 비문증(날파리증)이라니, 참 가지가지 했다. 유리체를 혼탁하게 하는 뿌연 부유물을 들여다보기 위해 의사는 안압을 재고 동공 확장 약물을 넣었다. 수정체 너머의 망막까지 열고 우주에 떠다니는 별을 관찰하듯 의사는 현미경을 들이댔다. 당신 눈은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눈이네요. 그런 말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먼지가 낀 노안이라는 말은 참 슬펐다. 게다가 실지렁이 같은 벌레를 잡으려고 자꾸 눈을 비벼대 결막염까지 생겼다. 소염제 때문은 아닐지라도 의사는 산동(散瞳) 검사 부작용을 설명하며 외출을 삼가고 한숨 자라고 일렀다. 약물 때문에 커진 눈을 핑계로 오수에 들었지만, 가만 누워 생각해보니 기이한 현상이었다.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시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겠지만, 때아닌 눈병 탓에 물웅덩이에서 꼬물거리던 애벌레를 연상했다. 안약을 넣고 눈물샘을 통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쓴 물을 삼키며 별이 진 나의 소우주, 눈동자를 깜빡였다.
아직은 봄인데 언제 깔따구가 돌아온 걸까. 호수(?) 같던 내 눈이 얼마나 혼탁해졌기에 알을 다 낳은 걸까. 남몰래 벌레 한 마리 키우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은 채 잠이 들었던 게다. 어느 여름날의 천변 풍경 속으로 꿈인 듯 날아가 보았다.
나는 여고를 다녔다. 당시 제천시에 여고, 남고, 농고, 여상 이런 식의 학교밖에 없었다. 중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나는 면(面) 단위에 살아서 남녀공학인 시골 중학교에 다녔다. 그 또한 남학생반, 여학생반 뚝 떨어진 교실이어서 동창이라고 해도 모르는 얼굴이 많았다.
어쩌다 남학생 무리 속으로 여학생이 지나갈 때면 수컷의 촉각처럼 털이 나 있는 녀석들이 휘파람을 불고 온갖 야유로 윙윙거리는 것을 보았다. 코밑이 거뭇한 녀석들이 부끄럽긴 해도 여학생은 담담하게 지나간다. 하지만 남학생은 절대 여학생 무리 속에 혼자 지나가지 못한다. 그때 쓰는 은어가 깔따구였다. 아마도 관찰에서 오는 자연 탐구를 통해 별명도 짓고 은어도 만들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다. 보통 날파리과 성충은 생애 첫 비행이자 마지막 비행을 수컷들의 군무 속으로 암컷이 뛰어들면 수컷이 잡아채 멀리 날아가며 혼인비행을 한단다. 곧 죽을 운명임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짝짓기를 하고 물 위에 산란하고 죽으니 관혼상제를 한 날에 다 치르는 셈이다. 바글바글 몰려다니는 이유는 짝을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주로 황혼 녘에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수컷 한 마리가 암컷들 속으로 뛰어들지는 않는다. 화려한 날갯짓을 하며 유혹하는 것은 오히려 수컷들이며 몸의 색깔을 바꾸어 암컷을 홀리는 곤충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깔따구가 욕이거나 나쁜 말인 줄 알고 불손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오해다. 순전히 날벌레의 일종이다.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며 이성 친구를 은어로 표현할 때도 썼고 자기보다 한 수 아래로 보는 친구에게도 이 말을 썼다. 장터에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 먹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썼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진상으로 통하는 인물을 부를 때 별명처럼 쓰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집 근처 탄천을 산책하다 보면 한 무리의 날벌레 떼와 만나게 된다.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곤충들이 얼굴로 마구 날아드는데 보통 하루살이로 알고 있지만 사실 깔따구란다. 남편은 하루살이라고 우기고 나는 깔따구라 우기는 말싸움을 하다 보면 금세 날이 어두워진다. 그때 죽기 살기로 가로등 불빛으로 덤벼들면 하루살이고 사람에게 엉기거나 창문 방충망에 달라붙으면 깔따구라고 나름 합의했다. 강이나 하천에서는 서로 사촌지간이니 굳이 항렬을 따지고 싶지는 않지만, 더러운 곳에 꼬인다고 사람들은 싸잡아 날파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놈이 그놈이란 소리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깔따구를 몰랐다. 모기, 파리를 제외하고 날아다니는 모든 것을 하루살이로 알았다. 조목조목 곤충의 이름을 따지면 강원도 촌사람이라고 면박을 받았다. 하긴 경상도 산간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살이 같은 작은 곤충을 깔따구라 부르기도 하고 충청도에선 날파리라고 부르기도 해 지방마다 다 제각각이긴 하다.
깔따구는 이틀 정도 알로 존재하다가 한 달 정도의 유충으로 살고 성충이 되면 하늘을 날아다니며 짝짓기한다. 입이 퇴화해 버린 성충은 오직 짝짓기만을 위해 일주일가량 산다. 거실 불빛을 보고 사랑을 나누려고 찾아든 한 쌍의 깔따구에게 살충제를 뿌리고 바닥에 떨어져 버둥거리면 파리채로 내리치는 게 나였다. 게다가 모기라는 누명까지 덮어쓰고 죽임을 당하지만 어쩌랴. 입이 없으니 피를 빨아먹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도 물지 않았을 텐데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이니 발견 즉시 죽이고 싶어진다. 짝짓기를 못 해도 어차피 광란으로 탈진해 죽어야 하는 벌레의 생은 아침 창문틀에 수북이 쌓인 사체만으로 불쾌하고 더럽고 징그럽다.
작년 여름인가,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나왔다는 뉴스를 봤다. 일각에서는 수질 오염군인 해충이라고 하고 또 다른 학자는 수질 오염의 분해자 역할을 한다고도 해 여전히 논쟁은 뜨겁지만, 나 역시 돌아온 깔따구는 영 반갑지는 않다.
역전시장 좌판에서 푼돈 뜯던 건달처럼, 징글징글하게 암소를 괴롭히던 깔따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날이 저물면, 외양간 앞에서 쑥을 태우던 아버지가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등을 말고 모깃불 앞에 앉아 있었다. 송아지에게 젖을 물린 어미 소는 엉덩이에 새까맣게 달라붙은 벌레가 성가신지 죽비로 치듯 꼬리를 철썩거렸다. 눈곱이 낀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모습이 졸음이 고인 아버지의 눈만큼 애처로웠다.
어둑어둑 땅거미와 함께 그 옛날 천변에 살던 깔따구가 돌아왔다. 내 눈에 돌아왔다.
2020.8 <한국산문>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에세이스트작가회의
미디어피아 전문기자
제15회 바다문학상 수상
세명일보 신춘문예 詩부문 대상
<'The 수필' 2022 빛나는 수필가 60>선정
<'에세이스트' 2022 대표에세이 50>선정
동인지<폴라리스를 찾아서> <목요일 오후>참여
연간집< 꽃 밟는 일을 걱정하다>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