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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자라토(Maurizio Lazzarato, s.d.) 파리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철학자이다.. 그의 항목은 위키이탈리아(itWiki)에는 나오지 않고 위키프랑스에 나오는 데 출생에 관해서 기록이 없다. 그의 탐구 작업은 비물질적인 노동, 임금제의 분산, 노동의 존재론, 인지 자본론(le capitalisme cognitif) 등에 근거한다. 그는 또한 생명정치와 생명경제에 개념에 흥미를 갖고 있다.
그는 파리1대학의 마티스연구소 연구원이며(Matisse/CNRS, Université Paris I)이며, 파리의 국제철학학교의 구성원이다.
그는 잡지다중(Multitudes)의 창간에 참여했고 그 편집위원이다.
그는 주로 들뢰즈(Deleuze), 푸꼬(Foucault), 가타리(Guattari), 따르드(Tarde)의 영향을 입었다.
<부채인간>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허경, 양진성역, 메디치미디어, 2012.10.01
책소개
빚을 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 열심히 일하는데 왜 계속 빚을 지게 될까? 이 책은 들뢰즈·가타리, 니체, 마르크스, 푸코 등의 논리를 빌어 ‘부채’가 단순히 개인의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문제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고전경제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부채는 화폐에서 파생된 부차적 개념이 아니다. 화폐에 앞서 권력관계가 존재했고, 그 권력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부채와 부채를 진 ‘부채인간’이 탄생했다. 국가기관마저 금융기관에 의존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부채의 억압 구조는 공고해졌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빚을 진 인간(부채인간)’이 되며, 평생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채는 개인의 정치적 힘과 미래까지 약탈하고 있다. 이 책은 확장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더욱 불평등해지는 권력관계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자본주의가 어떻게 ‘부채인간’을 만들어 내는지 살펴본다. 저자는 인간 억압 조건으로서 부채를 재인식하고, 개인 단위가 아닌 사회와 연대 차원으로 문제의식을 끌어올린다. [YES24 제공]
출판사 서평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통제하는가?
니체에 따르면 도덕의 근본 개념 중 하나인 죄(Schuld)는 부채(Schulden)라는 지극히 물질적인 개념에서 나왔다. 이 이치는 우리가 주택을 사기 위해(주택대출), 대학을 가기 위해(학자금대출), 매일매일 삶을 위해(신용카드) 크고 작은 빚을 지는 순간 죄인이 된다는 사실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빚을 지는 순간 ‘부채’는 개인의 삶을 유린하기 시작한다. 채권자는 채무자의 내적?외적인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으며, ‘의무’, ‘죄책감’, ‘양심’ 등 개인적이며 도덕적인 부분까지 건드린다.
신자유주의는 부채를 통해 개인의 도덕과 양심, 일상 통제하며 그것이 개인의 자발인 선택인 양 착각하게 만든다. 금융 권력들은 사람들을 ‘빚을 진 죄인’으로 세뇌시키는 데 여념이 없으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주체성을 잃고 ‘부채인간’으로 조립·?제조?생산된다. 신자유주의 시대, 부채인간들은 빚이라는 죄를 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노동’에 복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이 책에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대출과 은행〉·《자본》, 니체의 《도덕의 계보》, 푸코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등을 통해 ‘부채인간’의 생산 과정을 보여준다. ‘부채인간’은 현대 신자유주의의 착취와 억압 메커니즘을 드러내주는 핵심 키워드다.
‘부채인간’의 탄생
전통적인 경제학적 관념만으로는 부채와 신자유주의 메커니즘을 분석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 즉 사회적인 것, 개인적인 것, 도덕적인 것, 정치적인 것을 모조리 경제적 효용가치로 환원시켜 버린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핵심 원리가 바로 채무자-채권자 관계다. 그리고 ‘빚’이라는 ‘원죄’를 진 인간, 즉 ‘부채인간’의 형상이 여기서 생겨난다.
프랑스에서는 신생아 1명당 2만 2,000유로의 빚을 지고 태어나며, 한국에서는 2011년 가계 빚이 912조 원을 넘어섰다. 수치상 1인당 1,830만 원에 달하는 액수다. 이 액수는 줄어드는 인구와 맞물려 더욱 빠른 속도로 불어날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빚을 진 인간’은 채무자-채권자라는 관계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다. “빚을 갚으라”는 지상명령은 무엇보다도 강력하게 인간의 삶을 짓누른다.
공공의 영역으로 확대된 부채
개인이 노동자이든, 실업자이든, 소비자이든, 생산자이든, 은퇴자이든 상관없이 자본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이며 책임을 진 인간, 즉 ‘채무자’다. 개인 대출을 받은 적도, 그럴 자격조차 없는 사람조차 공공부채를 갚는 데 동원된다.
계속해서 커져가는 공공부채는 사회 전체를 채무자로 만든다. 엄청난 돈이 채무자로부터 채권자로 흘러들어 가는데, 채무자는 대부분 민중이며 부유층과 기업이 채권자의 자리는 차지하고 있다. 채무가 증세로 흡수되지 않는 한, 미래 세대까지 이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채권자-채무자 관계로 인해 불평등은 심화되며, 신분의 차이는 점점 커진다.
국가 간에도 부채 메커니즘을 통한 주체성의 박탈, 죄책감, 불평등이 존재한다. 독일 언론은 그리스를 기생충, 게으른 죄인이라고 비난한다. 아일랜드는 EU와 IMF에 손을 벌림으로써 ‘공식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포기했다’.
부채에 관한 시각을 바꿔야 답을 찾을 수 있다
부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부채에 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부채는 단순한 개인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과 투쟁의 문제다. 부채는 단순히 돈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실존을 생산·통제하고 있다.
‘부채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를 횡단하는 새로운 연대, 새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빚을 갚거나 파산 신청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답이 되지 못한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부채의 담론, 부채의 도덕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YES24 제공]
목차
한국어판 서문 │
해제 │
옮긴이 서문 │
머리말
I. 부채를 사회의 기반으로 파악하다
왜 금융 경제가 아닌 부채 경제에 대해 말하는가
부채의 생산
특수 권력관계로서의 부채
II. 부채와 채무자의 계보학
1. 부채와 주체성: 니체의 공헌
1) 사회적 관계의 기초로서 채권자-채무자 관계
2) 가능성ㆍ선택ㆍ결정으로서의 부채 시간
3) 주체화 과정으로서의 경제
2. 두 명의 마르크스
1) 매우 니체적인 마르크스
2) 《자본》에 등장하는 객관적 부채
3. 부채 논리에 있어서의 행동 및 신용
4. 들뢰즈와 가타리: 부채의 짧은 역사
1) 무한 부채
2) 야만적 흐름
3) 자본주의적 흐름
III. 신자유주의에서 부채의 영향력
1. 푸코와 신자유주의의 탄생
2. 부채에 의한 주권ㆍ규율ㆍ생명관리 권력의 재배치
1) 주권권력
2) 규율권력
3) 생명관리권력
3. 부채의 시험에 직면한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헤게모니인가, 통치성인가
1)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2) 서브프라임 위기
3) 국가 부채의 위기
4. 부채와 사회적 세계
1) 세 가지 부채: 사적 부채, 국가 부채, 사회 부채
2) 부채 주체성의 테크닉 안에 존재하는 위선, 냉소주의 및 불신
3) 가치평가와 부채
4) 사회적 예속화 및 기계적 노예화로서의 부채
5. 반생산과 반민주주의
결론 │ 주석
*** ***
[서평] '부채 경제'를 통찰하는 철학 에세이 <부채인간>
박현진(phj9356)
우리는 '빚 권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루에 서너 번쯤, 기계적으로 지워도 여전히 차고 넘친다. 'X천만 원까지 24시간 긴급대출!' 따위의 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말이다. 프로야구 중계의 막간도 온갖 대출광고가 점령해 버렸다. 그 요란함이 야구장의 응원열기 못지않다. 지하철을 올라 타도, 구석에는 '급전'이라고 쓰인 큼지막한 종이쪼가리가 붙어있기 일쑤다. 어느새 일상 곳곳의 대출광고는 익숙한 일이 되었다. 그들은 손짓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간편하게, 돈을 빌리라고.
그렇다고 대출광고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부채의 대부분은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자금을 대출한 인원이 2011년에만 73만 명을 넘어선다. 한 해 등록금이 천만 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부채 이외의 다른 해결책을 찾기는 힘겨울 터다. 졸업을 한다고 빚낼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언론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라 시끄럽지만, 서민 입장에서 주택가격은 여전히 큰 부담이다. 결국 '내 집 마련'은 부채 없이 꿈꾸기 어렵다.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로 대표되는 정부의 정책도 부채를 권장하는 꼴이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같은 신조어들이다.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열쇳말 중 하나로도 '가계부채 1000조 시대'가 꼽힌다. 일자리도 구하고 내 집까지 마련했건만, 어째서인지 이자 갚기도 급급하다. 원금 상환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삶 전반에 부채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개인만 부채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공기업을 포함한 한국의 국가부채 역시 1000조를 넘어섰다는 보도도 등장했다. 모두가 채무자로 살아가는 시대, 무엇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었을까.
부채의 확산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다
계속되는 금융 위기는 우리에게 '부채인간' 혹은 '빚을 진 사람', 즉 채무자의 형상을 난폭한 방식으로 드러내보였다. 이 '채무자'의 형상은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공공 영역 전체를 점령해 버린 주체의 형상이다. (…)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부채인간', '즉 '빚을 진 인간'이 주체적·경제적 차원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하나의 탐구이자 계보학이다. - <부채인간>, 머리말에서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마우리치오 라자라토는 <부채인간>(허경·양진성 옮김, 메디치 펴냄)에서 우리시대의 '부채 경제'를 성찰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현대인을 '부채인간'이라 정의내리며, 부채의 관념이 인간을 통제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개인과 공공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부채를 양산한다는 지적도 덧붙인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가 만든 '부채의 담론'과 싸우라고 조언해온다.
저자는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관계를 '자본가-노동가' 혹은 '생산자-소비자'가 아닌, '채권자-채무자'라고 파악한다. 현대의 자본은 생산수단이 아니라, 채권을 소유하는 것으로 형상이 변화했다는 발상이다. 신자유주의의 기초가 범세계적인 금융에 있음을 상기시키며, 어떤 방식으로 부채가 확산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2008년 6월을 기준으로 미국의 부채 총액은 510조 달러를 넘어섰다. 당시 미국 국내총생산(GDP)인 140조 달러의 3배 수준이다. 저자는 그 근원을 1979년의 제2차 석유파동에서 찾는다.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점이라 꼽히는 이 시기를 기준으로 미국의 금리가 치솟았다. 특히 부채 상환을 위한 이자인 명목 금리 인상이 9%에서 20%로 추진된다. 이전 기간, 명목 금리의 변동은 평균 마이너스였다. 이로써 미국의 공공 부채가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가 가난해지자 정책적인 변화가 이어졌다. 이른바 긴축정책으로 복지나 사회보장 부분의 지출이 줄어든 것이다. 공공의 영역에서 해결되던 문제들이 '민영화'되자 개개인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공공 부채의 확산이 개인 부채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책은 최근에 경제위기를 겪는 그리스와 포르투갈도 마찬가지라 지적한다. IMF와 유럽연합이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지만, 이는 구제계획이 아니라 '새로운 민영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복지와 사회보장의 축소뿐만 아니라, 연금이나 임금의 삭감이 그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러한 설명은 맞아 떨어진다. 1999년 214조 원이던 가계부채는 2002년에 439조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한다.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IMF는 한국에서도 강력한 긴축과 공기업의 민영화 등을 관철시켰다. 유럽의 경우처럼, 공공 부채가 개인 부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때가 한국 신자유주의 확산의 본격적인 시작이라 지적한다. 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2008년의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공공 부채가 급증하자, MB정권이 내세운 주요한 해결책 중 하나는 고속철도, 인천공항 등의 민영화였다.
부채는 개인을 '스스로' 옥죄게 만든다
부채의 힘은 억압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채무자는 '자유롭지만' 그의 행동과 태도는 그가 계약되어 있는 부채에 의해 규정되는 범주 안으로 제한된다. 이는 국민이나 사회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부채 상황 능력 내에서만, 소비·고용·세금·사회 비용 등 삶의 양식을 자유롭게 영위할 수 있다. 개인은 매우 이른 시기에, 심지어 고용 시장에 발을 내딛기도 전부터 부채를 관리하는 기술을 터득한다. - <부채인간>, 58~59쪽
그렇다면 확산된 부채는 어떻게 기능할까. 저자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원용하여, 부채가 도덕적 가치로서 삶을 통제한다고 설명한다. 도덕의 근본 개념인 '죄'가 '부채'라는 매우 물질적 개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앞서 언급처럼, 인간 사이의 가장 원천적인 사회적 관계는 채무자-채권자 관계로 이해될 수 있다. 또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자'로 형성되면서, 이미 확산시킨 부채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에 의한 삶의 통제가 가능하다는 파악이다.
평범한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다. 그가 대학교를 마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학자금 대출이 필요할 터다. 즉 취업이라는 사회진출이 이뤄지기 전부터 그는 부채를 끌어안고 시작하게 된다. 이제 '부채상환'은 삶의 중요한 목표로 자리 잡을 것이다. 부채를 갚아야하는 기한은 이미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삶의 양식을 '스스로' 통제할 수밖에 없다. 취업, 주거형태, 소비방식 등을 결정할 때마다, 그 최우선 기준은 '부채를 어떻게 갚을 것인지'가 되기 쉽다.
저자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시민의 삶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처럼 '스스로' 옥죄게 만드는 것을 다시금 강조했다. "인간들은 법률적·강제적 억압이 아니라도 빚을 갚기 위해 '자율적으로' 자신의 행위를 통제하게 된다"며, "체제는 우리에게 '당신은 자유롭다 부채를 갚기 위해 일하고 생활할 자유가 있잖아'라고 속삭인다"고 지적한다.
가장 시급한 임무는 산업사회에서 파업이 그랬던 것처럼 봉쇄 효과가 있는 투쟁 방식을 고안하고 실험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명령을 탈영토화시킬 수 있는 수준이 필요하다. (…) 근본적으로 두려움의 윤리라 할 수 있는 부채 경제와의 투쟁, 특히 죄책감의 윤리에 대한 투쟁은 또한 특수한 주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 따라서 이는 단순히 부채를 탕감하거나 파산 신청을 내는 것이 아니라―이런 일들이 매우 유용할 때조차도―우리를 가두고 있는 담론 및 부채의 도덕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일이다. - <부채인간>, 222~223쪽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저자는 내면화된 부채에서 벗어나는 것을 꼽는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자본' 혹은 '보편적 채권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도록 만들었지만, 이를 깨트려야 한다는 조언이다. 또 우리가 부채에 대해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잃었다고 역설한다. 앞으로는 가난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재앙으로 몰아넣는 권력 장치의 문제임을 기억해야 다는 것이다.
한국은 '빚 권하는 사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부채인간>은 '부채 경제'가 단순히 개인이나 정책적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시킨다. 어떤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실현하다고 하여도 부채를 일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저자의 조언처럼 '새로운 인식'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확고한 우상으로 기능했던 신자유주의 체제가 흔들리는 지금, 부채에 대한 사유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대안은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옛 수메르 제국에서는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이면, 그것을 기록한 점토판을 모두 파괴해버렸다고 한다. 물론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은 방안이다. 하지만 그 만큼의 혁신적인 해결책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한국은 '빚 권하는 사회'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그 고민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부채인간>의 일독을 권한다.
*아래 자료: 철학자의 사물들(장석주) 중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Maurizio Lazzarato, 1955-
이탈리아 사람으로, 비물질적 노동, 노동의 본질, 인지자본주의에 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회학자 겸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니체와 마르크스, 푸코와 들뢰즈 및 가타리를 끌어들여와 현대사회가 '부채 사회"라는 걸 밝히는데, 《부채인간》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경제 제제에 포박되어 있는 한국사회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부채 경제 사회다.
그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틀에 기대어 빚을 진다는 것의 심층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너도 나도 신용카드가 빚의 덫을 만들어내는 도구라
는 걸 "영구적 부채를 확립하는 신용 관계의 자동적 개설"이라고 말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채무자로 살아가는 '부채 사회'는 자연스럽게 '부채인간'들을 양산해낸다. 대출이 정치 경제가 한 인간의 도덕성에 간섭하는 판단이라는 지적에는 허를 찔린 느낌이다. '부채 경제'에서는 개인 부채를 채무자의 내면화된 고통으로, 부채에 대한 책임감은 도덕적 죄의식으로 바꾼다.
“대출 시스템에 속하는 인간 안에서 철폐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인간은 돈으로 변화한다. 즉 다시 말해 돈이 인간으로 육화된다." 대출 시스템의 사회 안에서 돈은 인간을 삼켜버린다. 개별자의 인격과 도덕성은 한낱 '상품'에 지나지 않고, 돈과 맞교환될 수 있는 한에서 가치를 부여받는다.
돈의 영혼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파고든다. "돈의 영혼이 소유하는 육체, 재료는-이제 돈과 종이가 아니라-나의 인격적 실존, 나의 살과 나의 피, 나
의 사회적 덕성, 나의 사회적 평판이다.” 우리는 신용카드 사용자가 됨으로써 자진하여 대출 시스템에 들어간다. '부채 경제'로 가동되는 사회에서 대출은 우리의 살과 영혼 속으로 스며들고, 마침내 우리는 '부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