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이과였던 나에게 철학수업은 처음이었다. 이 수업을 신청한 이유는 고등학교와 다른 수업을 듣고자 했던 나의 첫 도전이기도 했고 과학적인 사고와 계산에 익숙한 삶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주간의 철학수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2주차 수업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 이다. 처음엔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였던 주제가 나를 당황 시켰기 때문이다. 제주도라는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제주도라는 공간을 표현하기 힘들기는 처음이었다. 수업을 듣기 전 내가 제주도를 표현할 땐 그저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듣고 나니 철학자 마다 공간을 다양하게 정의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매 순간 공간이란 곳에 살아왔지만 평소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낯설게 느껴졌다. 또 유토피아의 공간을 말하는 시간에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딱 나의 상황이었다. 덕분에 평생을 경기도라는 공간에서 살아온 내가 제주도에 무엇을 바래서 왔을까 다시 생각해 보며 수업을 들었다. 나는 단지 성적을 맞춰 대학을 온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제주도라는 유토피아가 존재하고 있었다. 바쁜 육지와 달리 제주도는 느긋느긋 할 것 같았고 술집이 많은 대학로 대신 자연에 둘러싸여 있어 공강 시간마다 놀러 다니며 자연을 즐기며 낭만적인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육지 친구들 모두 나를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학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육지에 있는 대학로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발달된 번화가가 있었고 쉬는 날엔 놀러 나가기는커녕 피곤하단 이유로 누워만 있었다. 또 놀러 나가기에 대중교통이 불편했다. 그래서 요새는 이러한 삶에 적응하고 놀러 나가기를 벌써 포기 한 것 같다. 제주도에 놀러 오는 관광객들도 저마다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오는 것은 아닐까? 서귀포에서 제주로 통학 하면서 관광객들을 많이 봤다.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도 웃으면서 사진 찍고 불편한 버스를 이용하면서도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육지에 있는 친구들 또한 제주도라는 유토피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겐 정말 말 그대로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 인 것일까? 내가 상상만할 수 있는 공간 일까? 이 글을 쓰면서도 회의감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육지엔 없지만 짧지만 길었던 한달 동안 내가 제주도에서 해왔던 것들 중 감사했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제주도에 살면서 걸어서 바다를 구경할 수 있었고 제주 흑 돼지를 마음껏 먹었고 같은 제주도지만 제주시에는 비가안오고 서귀포시에는 비가 오는 신기한 날도 볼 수 있었고 비가오는날 제주도의 거센 바람에 우산이 뒤집혀 웃기도 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공간에서 만난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아마 내가 예전에 상상했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동안 오직 나에게만 존재하는 제주도라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첫댓글 길지 않은 글이지만, 잘 읽히네요. 이과생인데도 글재주가 있군요. 인문 쪽으로 전공을 해도 훌륭하겠네요. 유토피아는 없는 곳이지만, 그래서 유토피아의 가치가 있지요. 유토피아 제주를 만들어가면서 살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