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띠방에서 이벤트를 한다기에
김 난 석
나는 개가 아니나 개띠방에 이벤트라 해 구경 왔더니
개는 없고 강아지들 뿐이로구나.
강아지가 크면 개가 되는 법이요, 개도 개구지면 강아지가 되는 법이니
개나 강아지나 한 우리에 어울려도 탓 할 건 아니리라.
보아하니 지인들도 있는데, 그 외에 내 아우도 병술생 개띠이니
이래저래 관심이 가기도 해 들려본다.
내일 모래면 달이 만삭이요, 그게 다 이지러지면 설이니
올해도 설이 보름 남짓 남았나보다.
이때쯤이면 어머니는 장에 가셔서 양말 여남은 켤레 사다 반닫이에 넣어두셨다.
설날 찾아오는 아랫것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요량이셨던 것이다.
그 시절 그게 제일 좋은 설 선물이었던 셈인데
나도 그 추억이 있어 이때쯤이면 으레 시장에 나가 양말을 사곤 한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 나는 서울에서 살았는데
설이 다가오면 할아버지가 올라오셨다.
아마도 공직에 계신 아버지가 내려가지 못하니 그러셨던 것일 텐데
으레 가래떡을 해오셨다.
가래떡 보자기를 풀어보면 옆구리가 터지고 쉰내가 나기도 했으니
당시는 장항선 열차가 최고의 완행열차라서
하루 종을 걸려 올라오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뒤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할아버지댁으로 피란 내려갔는데
서울 수복 후에 마을에도 방아깐이 생겨 기계로 가래떡을 뽑아 먹게 되었다.
이것을 처음 본 순간 그 미끈하하고도 길쭉한 것이 쉬지도 않고 말랑거렸는데
그걸 조금 굳혔다가 칼로 어슷하게 썰어서 떡국으로 끓여 먹어야 할 것을
굳기도 전에 가위로 조금 잘라 먹었던 맛이란 난생 처음 맛본 꿀맛이었다.
유난히 말수가 적은 나지만, 그걸 한 발 쯤 잘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먹고싶다 했더니
옆에서 듣던 고모님이 두고두고 나를 놀려댔던 기억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닮아서 그랬던지 어린 시절부터 애어른처럼 굴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년시절의 개구진 추억은 찾기가 어렵다.
그저 책상에 앉아 책이나 보고,
유난히 보채던 막내누이를 돌보는 게 일이었는데
그 막내누이가 무술생 개띠다.
그 누이가 어머니 임종까지 지켜보고 모셨으니
나는 고마워 정미소를 하나 차려줬는데
지난 해엔 설악에 전원주택을 지어놓고, 나보고 거기 가서 글도 쓰고 지내라 하니
눈물이 나도 그런 눈물이면 얼마나 따스하냐.
이곳 개띠방의 개나 강아지들이 내 아우요 누이인 것만 같아
지난 2018년 개띠해를 맞았을 때의 글을 아래에 붙여보며
개띠방의 이벤트를 축하한다.
설이 이틀 앞으로 / 김 난 석
새해 들어 어정어정하다보니 설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나 보다.
양력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지만
오래 전부터 음력 1월 1일을 설로 쇠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엔 새해로부터 한 달 보름 만에 설을 맞는데
흔히 새해 초엔 밖의 일들에 대해 새로운 다짐을 하고
설날엔 안의 일들에 대해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 같다.
특히 이번 설로부터 시작되는 해는 십간십이지로 무술년이라 해서
개띠 해라 부르며 개와 연관하여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 같다.
개에게도 오륜(五倫)이 있다 한다.
털색이 서로 비슷함이니 부자유친이요-毛色相似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 않음이니 군신유의요-知主不吠
한 마리 개가 짖으면 동네의 모든 개가 짖음이니 붕우유신이요-一吠衆吠
수태하면 수캐를 멀리 함이니 부부유별이요-孕後遠夫
작은 개가 큰 개에게 덤비지 않음이니 장유유서라 한다.-小不大敵
이것은 강령탈춤에 나오는 사설이지만
사람이 개만도 못해서야 쓰겠느냐는 풍자일 것이다.
두 딸을 옆에 두고 살아가지만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큰 것은 그래도 간간 피아노와 벗하며 지낸다지만
작은 것은 몰취미로 셈하는 것만 밝히는 것 같다.
그러니 한 눈 팔고 사는 나와 어찌 부자유친이라 하랴.
함께 문화생활을 권하려 해도 저희들 끼리나 어울린다는 것이니
어찌 또 군신유의라 하랴.
아내가 있은들 아침부터 제각각이니 붕우유신도 찾을 데 없고
오로지 남아있는 게 각방 쓰는 부부유별뿐인 것 같은데
제법 크다고 소 닭 보듯 하는 손주들이니
장유유서도 온 데 간 데 없다고나 할까보다.
그렇다면 올해도 안의 일은 각자도생(各自圖生) 할 일이라
서로 간섭 할 것도 없이 도움 청할 것도 없이 자유를 누리면 될 터요
밖의 일에 대해서나 조신 조신하면서 평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개가 짖으니 두 번째 개가 짖고
두 번째 개가 짖으니 세 번째 개도 따라 짖네
사람일까 호랑이일까 바람소리일까
아이가 아뢰기를 산 위의 달이 촛불 같은데
뜰에는 오직 오동나무뿐이라 하네
특별한 것을 보면 놀라는 것이 당연한데
개는 어찌 아무 일도 없는데 짖는단 말인가
짖는 데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니
아이에게 빨리 문을 닫으라 재촉하네.
위 시는 16세기 중반 조선조 이경전의 시문집 “석루유고” 중 일부다.
임진왜란이 1592년에 발발했음을 감안하면
아마도 작자는 난리 통의 불안감 속에 중년을 보냈을 것 같다.
요즘 밖으로 시국이 어찌 돌아가는지조차 아지 못하니
여기저기 시끄러운 구석이 많지만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요,
안으론 여기저기 시원한 구석이 많지 않아 보폭을 넓힐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담 밑을 걷는 기분으로 조신 조신 또 조신하는 발걸음이어야겠다.
2018. 2. 14.
첫댓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네에 고마워요.
설날도
개띠방 이벤트도 석촌님 덕분에 알게됩니다
이곳저곳 빠짐없이 두루 살피시니
올해도 항상 바쁘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거기 내가 좋아하는 아우가 있기에..
석루유고에 나오는
연쇄적인 개들의 짖음...
어째 요즘 시국과 비슷합니다.
남성미가 넘치시는 석촌선배님의
개타령... 그리고 견공오륜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네에 잘 지내시죠?
'개띠방에서 이벤트를 한다기에'
해서 재미난 일이 많았는 가 하고 들어갔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것 같고
개와 강아지의 구별인데 무슨 이야기인지
몽매한 저로군요.
개는 동물중에는 사람 가까이 있는 가축이지요.
충견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습니다만,
2022년도에 오는 임인년 설은,
좀 더 활기차고 밝은 사회이고
각 가정에도 다복하였으면 합니다.
네에 개띠방에 이벤트공지가 있었어요.
설날을 앞두고 설에 관한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올려보라는거지요.
그래서 거기 운영자도 있고 좋아하는 후배들도 있어서 저의 추억과 개띠에 관한 세시 이야기를 올려본 겁니다.
지난번엔 강원방에서 이벤트를 한다기에 강원도도 다녀오고요.
심심해서 그런겁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ㅎㅎ..
순한 양들을 개들이 몰고 다니지 않습니까...
에구..농담이었고요..농담한 거 사과합니다~~^^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수필방 운영위원 콩꽃님도 개띠지만..
요즘 은빛 세계에서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58개띠들이 참 많습니다.
그야말로 개띠가 용진하는 세상이지요..ㅎ
개띠나 잔나비띠나 거기서 거긴데
용진하기 바라요.
개띠 모임에 가니 거기는 완전 개판이더라는 농담을 누가 하더군요 ㅎㅎ.
하긴 개띠 회원만 모이는 곳이니 그럴만도 하겠지요.
저는 카페 가입후 띠방이 그리워서 내 띠방에 갔더니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웬 꼰대가 왔냐는 식의 무반응이 민망해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지요 ㅠㅠ
그런 점이 있긴 하지요.
뭐 분위기 살펴가며 어울릴 수밖에요.
잘 읽었습니다~
저는 개니,소니,닭이니, 용이니, 양이니
하여간 이 띠를 붙여 놓은 이 자체를 완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심심풀이 재미로 했다고 보기도 좀 그렇
지만,
개띠 하면 개를 연상하고 뱀띠 하면 뱀을 연상하고
용띠하면 무슨 근사한 뭐를 연상하고~~ 이거 다
말짱 꽝이다!! ㅎㅎ
그저 뭐 화투장에 그려진 그림같다고나 할까요?
근데 그 흰 가래떡,, 뚝 잘라 조청에 푹 찍어 먹던
기억은 너무도 생생하고 좋게 생각되네요~
더구나 동생에게 정미소를 차려 주셨다니!
참 대단하십니다^
네에 그러시군요.
그런데 현상이나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게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