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계 박태징 선조와 명재 윤증 선생의 인연은 개인적인 인연을
뛰어 넘어 가문간에 혼인으로 이어 졌다는 것이다.
필자가 몇년전, 카페에 가입하게 된 계기도 둔계 선조께서 어떠한
계기로 명재 선생과 친분을 맺었던 것인지 그 내력을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지 못하고 한동안 소강 국면으로
접어 들었는데, 얼마전부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그 관계를
집중적으로 추적하기로 결심하엿다.
현재 박태징 선조의 생애 복원을 목표로 자료수집을 하고 있다.
오늘은 그동안의 연구 현황을 간략히 정리하고 추가로 발견한
사실을 소개한다.
둔계 선조와 명재 선생이 그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예학의
대가이신 시남 유계 선생 문하에서 동문수학을 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명재 선생 문집에 게재된 서찰에서 확인된 것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명재 선생께서 둔계 선조에게 보내신 서찰은
8편이 확인되었으나, 둔계 선조가 명재 선생께 보내신 서찰은
발견되지 않았다.
덧붙이면 둔계 선조께서 1692년 별세하신 이후 명재 선생께서
만시를 지으신 사실을 통해서도 두분의 우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 하다.
그런데 두분간의 인연은 가문의 혼인으로까지 이어 졌다는 것인데,
구체적인 내력은 다음과 같다.
박태징 선조의 사위가 용서 윤원거 선생의 아들이신 윤부 선생이신데,
용서 선생은 명재 선생의 당숙이 되시며, 명재 선생과 윤부 선생은
재종형제간이 되신다.
또한 박태징 선조의 아들이신 치와 박필창 선조의 묘갈명을 필자가
오래전, 둔계 선조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명재 선생의 종손이
되시는 경암 윤동수 선생의 문집에서 발견하였다.
박필창 선조의 장인이 용인이문의 후손이신 이순악 선생이신데, 이
분이 명재 선생의 백부가 되시는 석호 윤문거 선생의 사위가 되신다.
이를 정리하면 박필창 선조는 석호 선생의 외손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문의 인연이 계속 이어 졌으니 박필창 선조의 사위가
이도재 선생이신데, 이분의 사위가 바로 경암 선생의 아들이신 윤광온
선생이 되신다.
이를 정리하면 윤광온 선생은 박필창 선조의 외손서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박태징 선조와 윤증 선생 가문의 2대에 걸친 고귀한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추가로 발견한 사실은 박태징 선조의 외가댁이 함안조씨 가문이신데,
생육신의 한분이신 조려 선생의 후손이 되는 가문이다.
그런데 둔계 선조께서 외조부이신 조익 선생의 가장(家狀)을 지으신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한 박태징 선조의 외6촌 동생이 되시는 손암 조근 선생의 연보에서
두분이 1656년 고양군 대자사란 사찰에서 독서를 하신 기록이
확인되었다.
필자의 앞으로의 목표는 둔계 박태징 선조의 생애를 복원하여 그
일대기를 쓰는 것이다.
2025년 11월 9일(일) 박관우 역사작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