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福)은 베품에서 온다
조선조 9대 임금 성종이 민정 시찰을 나갔는데, 그는 조용히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폈습니다
그렇게 시찰에 몰두하다 그만 날이 어두워 산중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수발하던 시종 무관이 말했습니다.
"전하 ! 송구하오나 산길을 잘못 든 듯 싶습니다."
"이를 어쩐다"
"전하! 저쪽을 보시지요. 산골짜기의 한가운데 집 한 채가 보입니다. 우선 저곳에서 하루 묵어갈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성종은 이리저리 헤매든 길에 날도 저문데다 급기야 배까지 고파왔습니다
"이보시오. 주인장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소?
길 가는 나그네인데 그만 길을 잃었소"
"죄송하지만 보시다시피 방이 한 칸밖에 없습니다.
누추하지만 이런 곳에서 쉬실 수 있을는지요?"
"그렇게 해주시다면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잠행을 수행하던 시종무관이 급히 성종에게 달려와 귓가에 대고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지내시면 될 듯 하옵니다."
"어 그래! 그거 참 잘 되었구나."
성종이 집 앞에 다다르자 젊은 사내가 부엌에서 메밀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성종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습니다
"거 이보시오. 메밀죽 한그릇만 얻어먹을 수 있겠소?"
그러자 사내가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네 당연히 대접해 드려야지요."
그러더니, 김이 무럭무럭 나는 메밀죽 한 사발을 떠서 상을 내왔습니다.
하도 먹음직스러워, 성종이 얼른 한 입 떠먹으려 하자 사내가 급히 만류했습니다
"나으리 시장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먼저 드릴 사람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더니 병석에 누운 어머니한테 먼저 메밀죽을 올린 후 성종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산길을 헤매다 배가 출출하던 차에다 얼마나 죽맛이 좋았던지 성종은 그 자리에서 메밀죽 한 사발을 금새
다 먹어치웠습니다.
그런 뒤 또 한 사발 갖다 주는 걸 맛있게 먹고 또 한 사발 먹고 이렇게 내리 세 사발을 먹고 나서야 배가 불러왔습니다.
"거참 메밀죽 한번 잘 먹었소!
내 이렇게 맛있는 메밀죽은 생전 처음이오!"
배가 든든해지고 나서 보니 그동안 사내는 한 숟갈도 먹지 못하고 윗목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주인장은 왜 아무것도 안 드시오?"
"저는 배가 불러 괜찮습니다."
성종이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는 밖을 나와 몰래 부엌을 들여다보니 메밀죽을 끓이던 가마솥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성종은 사내의 마음가짐에 짐짓 놀라며 감탄했습니다.
"거 참 미안하오 내가 배가 고픈 나머지 그대의 저녁까지 몽땅 빼앗아 먹었구려"
"아닙니다. 소인은 사실 메밀묵을 쓰기 전에 이미 허기를 채웠습니다."
성종은 다시 한 번 사내의 마음 씀씀이에 감복했습니다.
"실례이오만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성은 이가고 이름은 덕수라고 합니다."
"이가면 나하고 성이 같으니 우리 의형제를 맺는 게 어떻겠소?"
"나으리 좋을 대로 하시지요."
"그럼 내가 그대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니 형을 하고 댁은 아우를 하면 될 듯 싶소 어떻소?"
"네! 좋습니다."
이렇게 사내와 성종 임금은 의형제를 맺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성종이 그 집을 떠나면서 사내에게 말했습니다
"덕수! 내 이 은혜는 언제든 꼭 갚을 걸세!"
"네! 형님! 무슨 은혜랄거까지요.
지나다 배고프시면 언제든지 들리시구려"
그렇게 덕수와 성종은 헤어졌습니다
그런후 며칠이 지나자 덕수의 어머니 병세가 더욱더 깊어졌고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읍내에 한 약방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소요약재가 값이 너무 비싸서 구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덕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간호하는 데에만 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빨간 옷을 입은 지체 높은 양반이 덕수의 집을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여봐라! 걔 아무도 없느냐?"
밖에서 소리가 들리자 덕수가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하인 몇을 데리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뉘신데, 저를 찾으십니까?"
"그래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네. 덕수라고 하옵니다만 뉘신대
이런 누추한 곳까지 저를 찾아 오셨는지요!"
"내가 집을 맞게 찾아왔구나
자, 안으로 좀 들어가자!
나는 이 나라의 어의(御醫)이니라."
어의라는 말에 덕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런데 어찌 어의께서 이런 곳까지..."
"임금님께서 보내셨느니라.
메밀묵 얻어먹은 형님이라고 말하면
알아들을 거라 하셨느니라."
그제야 덕수는 메밀묵 형님이 이 나라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의의 치료를 받은 어머니는 병세가 완연히 좋아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집 안에서 장작을 패던 덕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눈앞에 용포를 입은 성종 임금님이 떡하고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우 있는가? 내 메밀묵 3그릇 값을 갚으러 왔네."
"아이구 형님! 아니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덕수는 성종으로부터 후한 상을 내려받아 평생 넉넉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원이 깨끗하고 후덕하면 그 인생 흐름도 깨끗하고 복을 받는 법입니다. 그러나 근원이 흐리고 탁하면 그 흐름도
흐리고 탁해집니다.
사물의 모든 것은 근본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유인정(留人情)이면 후래(後來)에 호상견(好相見)이니라." 모든 일에 인자하고 따뜻한 정을 남겨두면 뒷날 서로 좋은 낯으로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