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36
1936년, 올림픽 경기 마지막 날 베를린 스타디움으로 작달막한 동양선수가 달려 들어왔다. 그 주자(走者)의 이름은 손기정. 그러나 그날의 우승자는 한국인 손기정이 아닌 일본인 대표선수 기테이․손으로 기록되었다. 마라톤 우승자 기념비에 잠시 손기정으로 수정이 된 적도 있었지만 일본의 항의로 재수정 된 이후, 우리나라는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가 없었다. 물론 해방과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보스턴 마라톤등 유명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들이 나왔지만 한국전쟁이 터지고 한국의 체육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올림픽의 꽃이라는 마라톤 우승자는 나오지 않았다. Again 1936! 이것은 모든 한국 마라토너들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기대를 할 만한 유망주가 나왔지만, 모두 기대에 못 미쳤고 마라톤 금메달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1992년, 에스파냐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을 한국과 일본의 마라토너가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국의 마라토너 황영조는 숙적 일본의 선수를 제치고 결승점을 1위로 통과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일제시대 한국인의 한이 되었던 ‘Again 1936’는 무려 56년을 기다려서 이루어졌다.
Again 1966
2002년 6월 18일, 대전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이탈리아의 월드컵 8강전에서 붉은 악마는 'Again 1966'라는 카드섹션을 선보였다. 그것은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일어난 쇼킹한 경기를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 당시 세계는 냉전 중이었고 한반도는 둘로 갈려있었다. 비록 대한민국의 적이었지만 외국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Korean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1966년 런던 월드컵에 나갔고 예선을 통과하여 그 당시에도 축구강국이었던 이탈리아와 만났다. 북한은 소련에 지고 칠레와 겨우 비긴 상태라 그 누구도 이탈리아를 꺾으리라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전반 41분 박두익의 골이 터졌고, 북한은 그 점수를 지켜 1대0으로 승리하였다. 비록 북한이 다음 경기에서 포르투갈에게 패하면서 북한돌풍은 끝이 났지만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Korean’이라는 단어를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
당시의 이탈리아 선수들에게는 악몽이었을 이 사건에도 관계없이 이탈리아가 축구강국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고 깜짝 돌풍을 일으킨 북한에게나 한국에게나 월드컵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갔다. 월드컵 8강은 고사하고 1986년에야 겨우 월드컵 티켓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에 천신만고 끝에 출전을 했어도 한국축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세계축구와의 수준차를 실감하고 예선 탈락하는 것뿐이었다. 아니, 그때마다 속된 말로 ‘드림팀’을 이끌고 나갔지만 그들은 한국에서의 드림팀이었을 뿐, 예선탈락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였다. 16강은커녕 월드컵에서의 첫 승리도 한국에게는 요원했다. 1990년 이탈리아와 경기를 할 때 Again 1966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이탈리아는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는 한국이 언감생심 바라 볼 수도 없는 ‘구름위의 나라’였다. 그렇지만 한국/일본에서 월드컵이 열린 2002년, 한국팀은 예선에서 첫 승을 거뜬히 일구어내고 유럽팀 둘을, 그것도 하나는 세계적인 강호(포르투갈)를 꺾고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1990년에 완패의 수치를 안겨주었던 이탈리아를 만났다. 이탈리아는 한국정도는 쉽게 이기고 갈 것이라며 오히려 8강전의 상대가 누가 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카드 섹션을 본 까닭인가? 0대1로 이탈리아가 앞서던 경기는 1대1일이 되었고, 결국 2대1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다. ‘Again 1966’는 36년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Again 2002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심판덕을 보았느니,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보았느니 하며 약간의 뒷말이 있었지만(그러면 1966년의 잉글랜드나 1998년의 프랑스도 의심을 받아야한다), 그래도 결과는 결과였다. 숙원이었던 1승과 16강을 넘어, 일거에 준결승까지 가고 4위를 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2002년 월드컵 대표들의 활약을 기억하며, 이번 2006년에 'Again 2002'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2002년 월드컵 직후 심한 부담감으로 인하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잘 준비하고 간 것 같았다.
기대가 지나쳤던 것일까? 아니면 때가 아니었던 것일까? 토고를 2대1로 꺾고 아직도 축구강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프랑스를 상대로 ‘죽을힘을 다해’싸워서 1대1 무승부를 이루었다. 이 정도라고 성과라고 할만하건만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스위스전을 놓치면서 대한민국 월드컵 대표팀의 16강행은 좌절되었다. ‘Again 2002'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자 붉은 악마들에게, 그리고 월드컵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결코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Again 2002’는 단지 완결형이 아닌 진행형으로 바뀐 것 뿐이다. 월드컵 선수들이 잘 싸우기는 하였지만, 다소의 문제점이 노출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제점을 잘 고치고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전술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4년 후의 찬란한 영광을 기대할 수 있다.
'Again 1936'는 56년을 기다려 이루어졌다. 'Again 1966'는 36년을 기다려 이루어졌다. ‘Again 2002’가 4년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기죽을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한다. ‘Again 2002’의 꿈은 결코, 절대로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 붉은 악마와 대표팀이 ‘진인사(盡人事)’의 노력을 기울일 때, 4년에 이루어지지 못한 ‘Again 2002'의 꿈은 2010년에 다시 이루어질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첫댓글 많을 걸 느끼게 하는 글이네요.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