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숨긴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숨길수록 오히려 깊어지고 심해집니다. 어떻게든 드러내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픕니다. 그러나 숨어서 아픈 것보다는 드러내서 함께 아파하며 치유하는 것이 빠릅니다. 소위 고통의 공유로 아픔을 반분하는 것입니다. 사실 육신의 상처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더 오래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몸의 상처는 치유되어 가는 과정이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확인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아가는지 나았는지 확인이 어렵습니다. 전과 달리 충격을 덜 받게 된다면 나아가는 징후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상대방의 상처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연애는 사람을 들뜨게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살맛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루하루가 신나고 새롭고 행복합니다. 마치 양극의 전기가 만나 불꽃을 일으키는 것과도 같습니다. 세상이 변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이 달라지기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어제 본 것과 다른 세상입니다. 만나는 사람들까지 달라 보입니다. 전혀 자기 주관적인 현상인데 그렇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잠잠했던 세상이 활기차게 움직입니다. 사실 세상은 여전히 그렇게 굴러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감정에 꽃을 피우는 사람들이 시간 속에 색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역사란 것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시간 속에 그리는 그림입니다. 연애는 개인들의 역사이지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랑을 설명할 수 있다면 사랑 때문에 아파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설명할 수 없으니 아프다, 그 말 아니겠습니까? 사실 사랑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당하는 환경도 다르고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서로가 부딪치는 사건도 다릅니다. 무엇보다 그때그때의 감정이 다릅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나름 각자 자기 느낌을 개념화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잘 아는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입니다. 수긍은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입니다.
'케이'와 '크림'은 사춘기 시절 홀로 되어 자기 삶을 꾸리게 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크림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됩니다. 케이는 암으로 아비를 여의고 본인도 암으로 생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삽니다. 곧 따라올 그 불행을 이기지 못하여 엄마도 아들의 곁을 떠납니다.(사실 이 부분이 저 개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 아닐까 싶은데 말입니다) 그렇게 홀로된 두 소년소녀가 만납니다. 그리고 긴 세월 동거합니다. 세상에서 기댈 곳 없는 천애고아들이 서로를 품어주기로 하는 것이지요. 티격태격 알콩달콩 드러나지 않고 속 깊은 사랑이 익어갑니다. 사랑인 줄 모르고 시작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익어가니 사랑이겠지요.
문제는 케이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만 알고 있습니다. 크림은 모릅니다. 알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우깁니다. 유일한 가족(?)이기에 이 불행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주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면 조용히 물러설 생각입니다. 크림은 또 생각이 다릅니다. 이 남자 분명히 자기를 사랑하는데 왜 고백하지 않는 거지? 결혼할 나이도 되었고 결혼해서 이렇게 같이 살면 되잖아. 그런데 왜 진전이 없는 거야? 그래서 조언을 받습니다. 상대방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작전을 짜고 실행에 옮깁니다. 과연 괜찮은 남자를 만납니다. 그런데 약혼녀가 있습니다. 거 참!!
알고 보니 진지한 사이는 아닙니다. 그래서 케이가 중간에 개입하여 둘 사이를 떼놓습니다. 그리고 크림을 붙여줍니다. 아주 적극적으로. 드디어 결혼까지 약속합니다. 결혼화보도 찍습니다. 그곳에 케이가 동행해줍니다. 기념으로 두 사람이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턱시도를 입은 케이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크림이 환하게 웃습니다. 크림은 이대로 결혼하면 오죽 좋을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케이는 돌아 나와 홀로 흐느낍니다. 그래, 이렇게 우리 함께 살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몸은 끝을 향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해줄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깁니다. 새로 네가 기댈 곳이 생겼으니 다행이지.
결국은 케이가 중환자임을 크림이 알게 됩니다. 그러나 탓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우리 함께 하였고 여전히 함께 하면 되잖아. 크림은 결혼 예물을 모두 신랑에게 반환하고 케이 곁을 지킵니다. 두 사람의 아픈 사랑 이야기지만 파혼한 또 다른 한 쌍의 아픔은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서로의 양지와 그림자일 뿐입니다. 영화 '모어 댄 블루'를 보았습니다. 대만 영화입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