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언 형제(Coen brothers)의 영화 ‘바톤 핑크(Barton Fink)(1991년)’에서 주인공 바톤 핑크는 영화 제작자가 요청한 영화 시나리오를 쓰지 못해 초조해하는 가운데 호텔 방에서 모기에게 시달린다. 동아일보DB
며칠 전까지 사람을 괴롭히던 모기가 찬 바람 불자 종적이 묘연하다. 정약용은 호랑이가 포효해도 잠들 수 있지만 앵앵대는 모깃소리에는 간담이 내려앉는다고 읊은 바 있다(‘憎蚊: 증문: 미운 모기’). 1905년 무렵 김윤식(金允植·1835∼1922)은 가을 모기를 두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漢詩 映畵로 읊다] ‘가을 모기를 사절하여 보내다(謝遣秋蟁·사견추문)’
汝生極微薄(여생극미부)
너의 생애 지극히 보잘것없어
於物無足比(여물무족비)
만물 중에 견줄 만한 것도 없네
幸際今秋熱(행제금추열)
요행히 이번 가을 더위를 만나
乘時久弄嘴(승시구롱취)
그때를 타서 주둥이 오래 놀렸지
寅緣昏夜入(인연혼야입)
어두운 밤을 틈타 들어오고
晝出亦無恥(야출역무치)
낮에도 나타나니 부끄럼도 없구나
一夕凉風動(일석량풍동)
하룻저녁 찬바람 일면
旛然失其恃(번연실기시)
팔랑대며 뻐기던 맘 잃게 되리
哀鳴聲咽住(애명성열주)
슬피 오열하며 머물다
遑遑靡所止(황황미소지)
황황히 갈 곳도 없고
仰看天宇高(앙간천우고)
높은 하늘 올려다보며
無路施舊技(무로시구지)
옛 솜씨도 써먹을 길 없네
覩此還可憐(도차환가린)
이런 꼴 보면 도리어 가련하니
彷徨繞前戺(방황요전사)
빙빙 문지도리 앞을 돌기만 한다
向來噆人膚(향래인참부)
예전엔 사람 피부 물어뜯고
流毒遍瘡痏(류독편창유)
독을 흘려 두루 부스럼 만들었지
豈盡由汝性(기진유여성)
어찌 다 너의 성질 탓이랴
乃時勢所使(내시세소사)
시절이 그렇게 시킨 것이리라
于今惡已稔(우금악이임)
지금은 죄가 많이 쌓였으니
雖悔亦晩矣(수회역만의)
후회해도 또한 늦어버렸구나
上帝好生德(상제호생덕)
상제께선 살리는 덕 좋아하시지만
或望貸一死(혹망대일사)
간혹 한번 죽음을 베푸시길 바라네
好去藏草根(호거장초근)
잘 가서 풀뿌리에 묻히고
莫向華堂裏(막향화당리)
화려한 집 안으로 향하진 마라
華堂非汝所(화당비여소)
화려한 집은 네가 있을 곳 아니니
不畏十手指(불외십수지)
열 손가락 두렵지도 않으냐
―「운양집(雲養集) 제6권, 시 동둔고」 김윤식(金允植·1835∼1922)
하룻저녁 찬바람에, 의지하던 바를 잃고 갈 곳 없이 우는 모기는 처량하다. 시인은 모기의 악행이 본성 때문이 아니라 시절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 연민하면서도, 악이 이미 무르익었으니 뉘우쳐도 늦었다고 말한다. 이 무렵 시인은 고달픈 유배 생활 중이었다. 특히 모기에 많이 시달렸던지 비슷한 시기에 지은 다른 글에서도 이익만을 좇는 세태에 대한 성찰의 매개체로 삼은 바 있다(‘苦蚊說·고문설: 고약한 모기 이야기’).
✺Barton Fink 예고편:
https://youtu.be/kzBhNeQGwC0?si=i8jA5oAjJYZbSeoW
코언 형제(Coen brothers)의 영화 ‘바톤 핑크(Barton Fink)’(1991년)에도 모기가 여러 차례 나온다. 영화는 주인공 바톤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가 강요한 레슬링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느낀 창작의 고통과, 끔찍한 살인 사건에 휘말리며 초현실적 이미지 속에서 심리적으로 붕괴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호텔 방에서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바톤 주변을 맴도는 모기는 그 자신의 심리적 강박처럼 보인다. 바톤은 보통 사람을 위한 희곡을 쓰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옆방 찰리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모기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함부로 남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탐관오리의 상징이거나 참소를 일삼는 간신들을 경계하는 비유였다(聚蚊成雷·취문성뢰: 모기가 모여서 울 때는 그 소리가 뇌성 같다는 말. 모기 소리를 뭇소인의 참언에 비유한 말). 하지만 이 시의 모기는 척결해야 할 악인이라기보다 시류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도 읽힌다.
영화에서 예술적 이상을 꿈꿨던 바톤이 할리우드의 돈을 좇아 변절한 것처럼, 세태를 경계했던 시인도 훗날 일제에 부역하며 자신의 절조를 지키지 못했다. 모기의 악행을 두고 한 ‘시절이 시킨 탓’이란 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3·1운동 무렵 다시 입장을 바꿔 일본 정부에 독립을 청원했다. 뭇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는 모기에 대한 힐난이 자신의 삶에도 아프게 적용됐던 것일까.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漢詩를 映畵로 읊다(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6년 10월 29일(목)〉, Daum∙Naver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