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I Love Soccer (축구동영상) 원문보기 글쓴이: The Joker
난 요즈음 신작영화를 보고 별다섯을 주지 않는다.
근래 영화들의 질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내 감수성이 떨어져서 일 것이다. 청소년 시절 용돈을 아껴가며 보았던 영화들은 영화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내 뇌속에 쪽쪽 빨려들어가는 기분인데, 나이가 들자 그런 느낌이 없다.
감성이라기 보다는 분석의 느낌으로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면서 큰 감동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배트맨의 조커가 다시 돌아 온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비디오로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던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다.) 팀버튼의 <배트맨>을 보고 몇 일 동안 전율에 사로잡힌 적이 있다.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세트와 화면구성. 어둠 속에서 악을 징계하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독특함, 그리고 잭 니콜슨이 보여 준 광기어린 조커의 연기.
얼마 후 <배트맨 리턴즈>가 개봉했고, 이 영화를 영화관에 보고 나서 또 다시 배트맨의 세계에 푹 빠져 버렸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후 배트맨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배트맨 포에버> , <배트맨과 로빈>을 모두 극장에서 보았지만 지금 머릿 속에 두 영화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단, 한장면도.
이렇게 감동은 서서히 사그러져 갔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가 개봉했을 때, 아무런 기대 없이 어쩔 수 없는 배트맨 팬이니깐 봐 줘야지 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그런데 놀란이 해석한 배트맨의 세계는 전작들과 전혀 다른 느낌이었고 특히 배트맨은 가장 진짜 배트맨 다운 모습이었다. 꽤 수작으로 기분 좋게 보았지만 그래도 마음 속 한 구석에는 갈증이 느껴졌다.
내가 원한 것은 예전 같은 감동이다. 걸작을 원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또 배트맨을 만든다길래 또 우려먹으려고 하는 구나, 라고 생각했다. 특히 이번에는 내가 숭배했던 악당 <조커>를 다시 출현시킨다는 소식에
"어떻게 잭 니콜슨의 조커가 있는데 또 다른 조커를 만들 수 있겠어!"
궁시렁 거렸다.
그런데 단 한장의 스틸 사진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리얼한 모습의 조커를 보고 전율이 느껴졌다. 이 사진만으로도 광기가 귀기가 나에게 전달 되었다. 특히 연기를 맡은 히스 레저는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신뢰감이 있는 배우이다. 난 이 영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1년이 넘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여러 소식이 들려왔다. 영화가 명작이라는 소식과 히스 레저의 자살 같은 안타까운 소식도, 마침내 영화는 개봉되었고 그 영화를 보면서 이미 내 마음은 별다섯을 주고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주변에서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연인들의 달콤한 대화, 아이의 시끄러운 소리, 남자들의 거친 목소리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동안도 간간히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또, 가끔은 헛웃음을 (우리나라 관객들은 너무 웃음에 집착한다. 진지한 것을 싫어해서인지 계속 웃을 수 있는 장면을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는 아주 심각한 영화에도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어 준다.) 터트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10여 분 이 지나자 영화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사람들은 모두 숙연한 자세로 이 영화를 집중해서 보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당신의 무의식을,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 보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불편한 영화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 매력을 이해하고자 난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이용해서 내용을 분석해 보겠다.
자, 당신 앞에는 세장의 카드가 있다.
조커
배트맨
투페이스
다른 카드가 있을꺼라고? 아니 없다. 당신은 필연적으로 이 세장의 카드를 써야한다. 그리고 이 카드들을 조합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이 카드를 쓰는가 하는 일이 바로 당신의 성격과 삶을 좌우한다.
이 세 장의 카드는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왔다.
그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이름은 프로이트에게서 나왔다.
바로 "자아, 초자아, 이드" 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당신의 동질감과 혐오감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구조 때문이다. 인류 보편의 심리 구조가 이 세 명에 캐릭터에 녹아있고, 이 세명은 원초적인 세계 속에서 서로 경쟁한다.
자, 그럼 이 세명의 캐릭터를 각각 분석해 보자.
1. 조커 (이드)
조커는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이드(ID)>이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It" 즉, 인간의 몸 속에 있는 타자. 본능적으로 프로그램된 기계이다.
뇌신경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감정을 지배하는 변연계나, 원초적 욕구를 좌우하는 시상, 시상하부, 뇌간, 뇌하수체 등의 기관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 본능을 말한다.
프로이트의 놀라운 통찰력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본능이라고 부르는 것이 두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을 발견한 점에 있다.
즉, 인간의 본능은 생존 본능인 <에로스>와 파괴 본능인 <타나토스>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개체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갈구하는 에로스는 일상적으로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니 이해하기 쉽다. (오늘 아침 길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하고 마음이 후끈 달아 올랐는가? 바로 그것이 에로스이다.)
하지만 파괴 본능인 타나토스는 비일상적인 때에 나타난다. 비상 상황에서 뇌의 모든 스위치는 꺼지고 오직 타나토스만이 작동한다. 위기상황에서 미친듯이 날뛰는 아드레날린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 폭팔적인 힘은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고 때로는 자신을 파괴로 몰아간다.
왜 인간에게 죽음의 본능이 있는 것일까?
생존의 본능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죽음의 본능이 인류 전체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가끔씩 나는 소름끼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인류 역사상 모든 큰 전쟁이 벌어졌을 때에는 인간의 개체수가 증가했었고, 특히 남성의 개체수가 증가했다. 어쩌면 인간은 어떤 이념이나 이득을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 개체수를 통제하기 위해서 인간의 <타나토스>가 작동해서 미쳐 날뛰는 것일 수도 있다.
참고로 현재 전세계적으로 남성의 개체수는 많이 늘어난 상태이다. 특히 중국은 남초 현상이 아주 심하다.
섬뜩하지 않는가?
조커는 바로 이 <타나토스>의 화신이다.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부정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성으로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 돈을 원하는 것도, 예쁜 여자를 원하는 것도, 권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계속 미쳐 날뛰고 세상이 파괴되고 모든 법이 무너지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속의 히스레저는 그런 조커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충동적이며, 쾌락적이지만 그 끝은 무서운 허무로 회귀하는 파괴의 제왕. 모든 쾌락은 죽음으로 향하고 있으며, 인간은 태어나자 마자 죽음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현실세계를 부인하고 그 이면의 본능이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묘사와 아주 흡사하다. 자아는 언제나 본능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본능의 힘은 언제나 자신의 욕망의 해소를 멈추지 않는다. 이드는 여러가지로 변형되어 현실에 침투한다. 꿈, 말실수, 환상 등으로......
이드인 조커는 투페이스와 배트맨과 관계를 맺는다.
일단 자아인 투페이스와는 타협한다. 던트 검사가 화상을 입고 투페이스의 모습이 되었을 때 조커는 찾아온다. 그리고 분노하는 투페이스에게 자신은 단지 욕망일 뿐이고 당신이 불행해진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교묘하게 속인다. 이런 모습은 인간의 내부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예컨데, 당신이 증오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그를 본능적으로 싫어하고, 그 감정은 그를 파괴하고 싶다는 <타나토스>로 치닫는다. 하지만 문명인인 우리는 그런 본능을 숨겨야 한다. 당신은 본능을 억압하지만 그 억압된 본능은 일단 자신을 숨긴체 당신의 무의식속에 들어가서 교묘하게 당신을 조종한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예를 들면, "합리화"를 들 수 있다.
당신은 그를 미워하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싫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유를 붙인다.
나는 그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그의 말투를 봐! 무례하잖아.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어. 그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어. 그래서 나는 그의 그런 말투를 싫어하는거야. 내가 꼭 그 사람을 미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지 그의 말투가 짜증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또한 조커는 자신이 밝혔듯이 배트맨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초자아인 배트맨은 조커를 통제하고, 이드인 조커는 배트맨에 의해서 동기를 부여 받는다.
왜냐하면 이 둘은 서로 동일한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뿌리가 무엇인지는 배트맨을 말할 때 자세히 설명하겠다.
2. 투페이스 (자아)
투페이스는 자아의 이중성을 표현한 아주 적절한 이름이다.
자아는 현실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 그리고 뇌신경학적으로는 인간의 신피질, 전두엽과 관련있다.
우리는 이성을 가진 존재이다. 이 이성을 통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사실 이 이성이란 텅비어 있다. 본능의 욕구가 없으면 이성은 맹목적일 뿐이다. 목적은 본능이 부여하고, 이성은 이를 현실에 맞게 계획하고 실행한다.
고담시의 유력한 검사인 하비 던트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범죄 소탕을 위해서 용감하게 앞장서고,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시민들과 경찰들을 설득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초자아인 배트맨은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더이상 배트맨은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현재의 우리와 닮아있다. 과학이 발달한 현재, 인류는 초자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쫓아내야할 악습이나 미신으로 본다. 이성인 과학은 초자아인 종교를 완전히 추방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초자아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아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결국 본능에 휩쓸리기 때문이다.
가장 깨끗한 (순수이성적인) 하비 던트는 점점 현실의 더러움에 파괴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는 범인을 납치해서 총으로 위협하고, 고문을 한다. 그의 마음 속에는 조커와 마찬가지로 파괴의 본능이 있다. 그 파괴의 본능이 범죄집단을 향했다는 점은 다르지만 파괴 본능은 파괴본능이다. 결국 자아는 이중성의 길을 선택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자아는 본능을 합리화하여 변형시킨다.
이런 이중성은 때로는 날 것 그대로의 본능 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영화에서 상대의 유람선을 폭파시켜야 하는 상황에 빠지자. 범죄자들은 본능대로 울부짓고, 싸움을 벌이지만 일반 시민들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자고 투표를 한다. 그리고 합리적으로 상대방을 학살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고 과학으로 얻은 힘은 인간의 타나토스를 더 흉폭하게 만든다.
이것이 자아의 이중성이다.
3. 배트맨 (초자아)
사실 프로이트의 이론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장 의심했던 부분이 바로 초자아이다.
모든 과학적인 이론은 물리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럼 과연 초자아의 물리적 토대가 있는가?
뇌신경학적으로 자아는 신피질, 이드는 변연계 및 원시뇌와 관계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면 초자아는 신피질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원시뇌에 있는가?
한동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나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과학적이지 않고 현학적인 관념에 불가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다른 분야의 학문을 공부하면서 발견하였다.
그것은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였다.
현대 물리학자들 중의 일부는 <인류학적 원리>라는 것을 믿는다. 이 인류학적 원리란 이 우주가 이 인류의 탄생을 예측했고, 인류가 발생하도록 세팅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이 우주는 우주 자체를 관측할 지성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한데 그 지성이 탄생하도록 이 우주가 진화되었고, 인류가 바로 그 지성체라는 주장이다.
난 이 인류학적 원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쩌면 우리 인류가 걸어온 과정은 더 나은 지성체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DNA에는 우리가 지성체로 성장하도록 이미 세팅이 끝나있는 상태가 아닌가?
이 세팅을 나는 <초자아>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어째서 본능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이토록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는가?
어차피 원하는 일은 섹스와 쾌락과 죽음인데, 그냥 원시적인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이 본능은 또한 인간의 현실원리로 충족가능하다. 그런데 왜 인간은 언제나 고뇌하는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가?
나의 가설은 이렇다.
인간의 DNA는 인간이 본능에만 충실하며 살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은 계속 지성의 발달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인간의 특성이 바로 초자아이다.
프로이트는 초자아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학습된 것이라고 하였으나, 내 생각에는 보다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원시적인 부족 사회에서도 초자아는 발견된다. 그리고 초자아는 여러가지 형태로 다양한 문명이나, 문화에서 발견한다.
내가 설명하는 초자아는 프로이트의 초자아라기 보다는 융의 "자기"와 더 흡사하다. (난 융의 페르소나는 자아에, 그림자는 이드에, 자기는 초자아에 대입해서 생각한다.)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고 목적과 목표를 부여한다.
배트맨은 이 초자아가 응집된 모습이다.
조커와의 관계도 서로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커나 배트맨이나 모두 인류의 진화를 위한 매커니즘에서 탄생하였다. 이드는 인간의 성욕과 파괴욕으로 인류의 생물학적인 번식을 조종한다. 초자아는 인류가 <완전한 지성체>가 되기 위한 과정을 유도하고 이드가 인류의 위협이 되는 상황을 방지한다.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사상들과 종교들은 바로 인류의 이런 매커니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기하게도, 인간들이 최악의 상황에 닥칠 때 어떤 숭고한 인물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아우슈비츠 같은 집단 수용소와 학살에 장소에는 꼭 몇 명씩 헌신적이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보면서 생존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헌신적인 사람들을 따르지는 못했지만 헌신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쓰레기가 아니야, 라는 감정을 가지고 더욱 자신의 생존에 몰두했다.
배트맨의 자기절제, 도덕심, 윤리
이 모든 것은 초자아의 현현이다.
하지만 과연 언제나 배트맨은 옳은가?
마치 배트맨이 절대선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배트맨은 조커와 마찬가지인 괴물이다.
영화에서 배트맨은 목적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다. 고담시의 모든 사람들의 전화를 감청하고, 법이라는 테두리를 뛰어넘어 행동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배트맨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숨기고 끝내 공포의 이름으로 남게된다.
초자아는 현실 원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끝없는 통제와 억압 속에 우리를 몰아넣는다.
이 초자아의 가장 무서운 모습은 <배트맨 비긴즈> 이미 설명되어 있다. 배트맨이 무술을 배운 비밀 조직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타락했을 때 그 문명을 파괴하는 일을 했다고 하였다. 그들은 대상조차 가리지 않고, 철저한 파괴를 원한다. 그것은 철저한 독재이다.
어쩌면, 인류학적 원리의 마지막은 인간이 아닐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어쩌면 다음 존재를 위한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고 결국 인간은 멸종하고, 초자아는 다른 존재를 대리인으로 세우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다.
초자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드가 필요하다.
배트맨과 조커는 사실 한 몸이고, 투페이스는 이 둘에게서 태어난 자식과도 같다.
자, 여기 세 장의 카드가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조커인가?
투페이스인가?
아니면 배트맨인가?
관심있는 심리학 이론을 <다크나이트>에 적용. 옛날 옛적 데이터를 최신식 기계에 대입한듯 하지만 논리정연하고 잘짜여진 리뷰.
|
첫댓글 근데 말이죠..... 타나토스가 작동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걸맞는 죽음이란 무엇일지.....
재밌네요ㅎ
저만 엑박?
쩌네요
타나토스는 사실 죽음(파괴)에 대한 욕망이라기보다는,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는게 좋을것 같아요..만약 타나토스가 없다면,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자살자가 생겨나겠죠..사람이 살고 싶어서 사는게 아니라,죽는게 두려워서 마지못해 살게 만드는 본능이죠..타나토스는 분명 에로스의 반대적인 개념인 것은 맞지만,사실 이 글에선 어느정도는 그런 극단적인 이분법에 의해 다소 끼워맞춘 감이 없지 않네요..타나토스를 '파괴와 혼란에 대한 욕구'까지 확대시킬수 있을지는....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전 좀 아닌것 같아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원하는 죽음을 위한 그 외의 두려움에 대한 생존 본능 아닌가요? 써놓고 보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맞긴하네요...
제 아무리 죽음이라도 그것을 원하는 순간에,그것은 더 이상 타나토스가 아니라 에로스입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결합된,인간본능의 근원적인 에너지가 바로프로이드 심리학의 핵심인 '리비도'구요..한마디로 리비도는 생존에 대한 욕구입니다..살고 싶은 본능인 에로스와 죽는것에 대한 두려움인 타나토스의 결합..이것을 프로이드는 지독히 성적인 차원에서 풀어나가게 되죠..사실 이드와 에고,슈퍼에고는 그 자체로 의이를 가진다기보다는,리비도의 작용 범위 혹은 발전 과정이라고 보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리비도가 이성에 의해 통제안되고 그냥 분출되는것이 이드의 단계..사회적 인정이나 인간 관계,즉 사회화에 의해 통제되어 절제되는것이 에고의 단계..그리고 보다 높은 인격적,정신적 가치에 의해 통제되는 단계가 슈퍼에고.
그런데 글을 읽으려다 보니 그림이 필수적일것 같은데 다 엑박이라서 읽다가 포기. 다시한번 사진이 뜨면 읽겠습니다!!
원문 블로그에 가니 사진이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