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특강 (2026.7.12) 말씀/ 전도서 12:13
사람의 본분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기록한 책입니다(1:1). 솔로몬이 젊었을 때 아가서를 기록했고, 잠언을 장년기에 기록했다면, 전도서는 왕으로서 화려하게 삶을 산 후 황혼기에 기록한 책입니다. 이 전도서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헛되다'는 말로 40번이나 나옵니다. 전반부를 보면 마치 전도서는 히브리인의 허무사상(Nihilism)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란 단어 역시 40번, '지혜'란 단어가 50번이나 나옵니다. 전도서는 헛되다는 허무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서의 주고자 하는 교훈은 마지막 12장에 나옵니다. 1절을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1)."고 하고, 13절을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합니다.(전 12:13 ). 이 말씀은 전도서 전체를 관통하는 결론이자, 인생의 허무함을 이겨내는 유일한 답으로 제시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분(本分)’ 이라는 것은 히브리어 원어로 '콜 하아담(Kol Ha-adam)'. 직역하면 "인간의 모든 것(The whole of man)" 이라는 뜻입니다. 단지 직무나 의무 같은 '일부의 책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작과 끝, 전부이며, 모든 사람이 행할 의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빠진 인간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와 같다는 선언입니다. 헛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실체라는 것입니다. 전도서의 저자(솔로몬)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세상의 부귀영화, 지식, 쾌락, 수고가 모두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되다. 안개 같다고 탄식했습니다. 인간이 해 아래에서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남겨도 결국 죽음과 시간 앞에서 허무해질 수밖에 없는데, 저자가 마지막에 찾은 돌파구가 바로 이 '본분'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할 때 비로소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도서 저자가 청년의 때에 이 본분을 강조하여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생에 있어서 이 때만큼 중요한 시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청년의 때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청년의 때를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행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지어질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훗날에 인생의 허무를 말하는 것은 청년의 때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왕상 11:3절을 보면 그는 젊었을 때 여색에 빠져 후비가 700명, 빈장이 3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어떻게 하면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면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쾌락을 누릴까 궁구하였고(전 2:3), 또 무엇이든지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전 2:10). 그렇게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헛되이 인생을 살다가 결국 죽음에 임박한 노년기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잘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인생의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 그러나 이런 청년의 때를 잘 보낸 사람들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죠지 휫트필드는 21세에 전도를 시작하여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었고, 찰스 스펄젼은 17세 때에 회심하여 27세 때에 말씀의 종으로 명성을 날렸고, 디엘 무디는 21세 때에 누구보다도 전도를 가장 많이 했고, 리빙스턴은 23세 때에 아프리카를 탐험했으며, 존 칼빈은 27세 때에 기독교강요를 저술하여 출판했고, 마르틴 루터는 27세 때에 종교개혁을 시작했고, 요나단 에드워드는 23세 때에 퓨리탄 제 2세대로 언덕 위의 도시를 세우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예수님 역시 30대에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저도 대학 청년 시절 75년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어느새 50년입니다. 평생을 대학생들과 함께 생할하다 보니 언제나 마음은 청춘입니다. 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들 셋을 데리고 청계에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이가 70이 넘었습니다. 흰머리가 나고, 이도 인플란트를 비롯하여 새로 해 넣은 것이 더 많습니다. 전에 없던 잔잔한 병들도 생깁니다. 아직 책을 읽는데 지장이 없지만 눈도 침침하고 아주 작은 글씨는 잘 안 보입니다. 항아리가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50년이 금방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지 않았으면 저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역시”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8)."고 고백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결국이 무엇입니까? 다음 5절을 보면 조문객들이 거리에 왕래한다고 하고, 6절은 ‘은줄이 풀리고 금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진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결국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흙입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어떻게 살았는가?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전도자는 영혼이 주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합니다(1).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몸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죽은 후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리고 믿는 자이든 믿지 않는 자이든, 원든 원하지 않든 결산을 하게 됩니다. 한번 멈추어 서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 서도 부끄럽지 않은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냥 흘려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9절부터 보면 전도자가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고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잘 박힌 못과 같은 스승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단지 솔로몬 노년이 되어 청년들에게 주는 피상적인 충고가 아니라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려보고 깨달은 바를 전하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한 목자 되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9-11). 따라서 오늘 메시지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도 안 되는, 명령이라기보다는 너무나 간절한 호소로 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사람의 본분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본훼퍼가 이야기한 <값싼 은혜>에만 치우쳐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절름발이 삶을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탐심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울도 디모데 후서에서 말세에 현상으로 사람들이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고,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조급하며 자고 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을 부인한다고 하였습니다(딤후 3:3).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보면서도 하나님의 눈치는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그것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인해 밤 잠을 설치지 않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두려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존경을 뜻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며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한다는 것은 내 삶의 맨 앞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공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생각과 삶의 맨 앞자리에 옵니다. 그래서 삶이란 어찌 보면 사랑의 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맨 앞자리에 모시고,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삶, 그렇게 살아가시나요? 그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사에 하나님이 살아계셔 나를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모든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살면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손해보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내 욕심대로 살면 헛된 인생 청년의 날 후딱 지나가 버리고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잘 되고, 악인은 잘 되지도 장수하지도 못하며 그 날이 그림자와 같다고 단언합니다. 우리는 당장만 봐서는 안 됩니다. 일의 결과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반드시 잘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갑부였지만 병을 앓다가 죽은 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죽기 전에 아직 젊은이들에게 남긴 잠언같은 편지글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편지를 읽는 아직은 건강한 그대들에게!)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한번 살아보세요! 돈과 권력이 있다 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진 못해도 사소한 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 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세요. 3천원 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주고, 3천만원 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주고, 5억 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주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 바로, 건강한 몸이요!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고요. 건강할 때 있는 돈을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차를 몰아줄 기사는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사람도 역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 겁니다.(말년에 아프다보니 건강을 제일 먼저 이야기합니다 ),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 뿐인 생명 이라오 !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런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고.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 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게 되겠지요. 내가 한 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직위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여! 너무 촉망히 살지 들 말고. 후반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여!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만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보세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 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힘 없는 나는 이젠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 ! 다음은 디엘 무디의 유언적인 글입니다. 근대의 위대한 전도사로 불리는 디엘 무디(D. L. Moody)는 1899년 12월 22일, 숨을 거두기 직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마지막 말과 유언적인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는 순간에 영광스러운 천국을 바라보며 아들 윌(Will)에게 다음과 같은 위대한 고백을 남겼습니다. "대지가 물러가고 있구나. 내 눈앞에 하늘이 열려 있어." 아들 윌이 "아버님, 꿈을 꾸고 계신 거예요"라고 말하자, 무디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니다, 윌. 이것은 꿈이 아니란다. 정말 황홀하구나! 진정 아름다워! 만약 이것이 죽음이라면, 죽음은 정말 아늑한 것이로구나. 여기에는 아무런 고통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날은 내가 면류관을 쓰는 날이다!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날이 드디어 왔구나!" 무디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언젠가 당신들은 신문에서 '노스필드의 디엘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절대 믿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살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있을 것입니다. 단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을 뿐입니다. 흙으로 지어진 이 낡은 육신을 벗어버리고, 죄가 만질 수 없고 죄로 오염될 수 없는 불멸의 몸, 주님을 닮은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병철 회장의 유언과 디엘 무디의 유언은 모두 감동을 주지만 확실히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한 사람은 죽음 앞에서 후회스러운 마음으로 유언을 했고, 한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다가 승리자가 되어 더욱 확신있게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유언적 메시지를 디모데에게 남겼습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 관제처럼 쏟아붓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무디나 바울은 전혀 후회가 없습니다. 열심히 하나님 앞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달려갈 길을 마치고 내 앞에 기다리는 것은 찬란한 하나님 나라, 영광의 면류관! 얼마나 자랑스러운 삶입니까! 이들이 남기는 유언은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결국을 맞이하고 싶습니까? 우리가 헛되고 헛딘 세상을 어떻게 살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마지막 날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그가 쓴 의의 면류관은 우리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장막이 있는 동안이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백년을 살아보니 저자 기형석 교수는 인생의 가장 전성기를 60대로 보았습니다. 60-75가 가장 황금기 청년의 때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모든 일의 결국을 미리 알았으니 남은 청년의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 사도 바울처럼 D.L 무디처럼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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