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에 대해서는 아혜모호님의 견해에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그녀가 대단한 여왕이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덕일의 여인열전에서는 선덕여왕을 천하제패를 꿈꾼 최초의 여제라는
최고의 칭송을 하더군요.
선덕여왕의 지기3사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새로운 신라를 만들려는 노력을 한 범상치 않는 임금임에는 분명합니다.
신라사에서 갖는 한가지 의문을 여기서 약간 말해보고자 합니다.
분명 삼국사기 기록을 검토해보면 선덕여왕, 진덕여왕 때에 신라는 매우 큰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수 많은 성들을 백제와 고구려에게 빼앗겼고, 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면서 신라가 지금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내용들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그렇다면 선덕여왕, 진덕여왕은 정치를 잘못 한 것이냐? 그런데 그렇게 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신라는 이런 위기 상황을 뚫고 백제의 공세를 막아내며, 고구려를 견제하여 마침내는 삼국 가운데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특히 신라의 경제력에 많은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선덕여왕때에 황룡사를 비롯한 많은 절들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대외적으로 그렇게 수세에 몰렸으면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또 군비는 어떻게 마련했고, 거대한 절들은 무슨 능력으로 만들었는지 자못 의문이 생깁니다.
이때 의문의 해결 열쇠는
거꾸로 신라의 위기가 과장되었을 경우와 후대 남성 사가들에 의해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의 업적이 축소되었을 가능성 입니다.
삼국사기에 김부식의 사론을 보면
"신라는 여자를 세워 왕위에 있게 하였으니 진실로 난세의 일이며, 이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아니한 것은 다행하다 할 것이다."
고 했습니다. 신라 망국의 원흉을 진성여왕의 음란함으로 돌리는 것 역시 후대 유학자들의 편견의 결과 입니다. 이제는 이런 왜곡된 시각을 좀 거두어들이고 냉정히 전후좌우 상황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선덕여왕은 새로운 신진세력을 육성하여 이들을 통해 새로운 신라의 기운을 북돋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신라의 큰 장점이 되어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