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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간은 운봉읍에 있는 서림공원에서 출발하였다
둘레길 2구간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서 100여m 걸어가면 서림공원이다
서림공원에는 두 기의 석장승과 당산나무가 있다.
석장승에는 방어대장군(防禦大將軍),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란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곁에 있던 동네 주민이 두 장승의 차이점을 찾아보라는데...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분의 말을 듣고 살펴보았더니 방어대장군의 장승에는 귀가 없었다 ㅠㅠ
서림공원에 일찍부터 나와계시던 운봉성당의 오주환 요셉 신부님과 만나서 출발의 결의를 다졌다
지리산 서북쪽에 자리 잡은 운봉은 높이 450~650m 고원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여간해선 한여름에도 기온이 30도를 넘지 않으며,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등 다른 지방과 현격한 기온 차이를 보인다.
또 풍부한 수원과 기후의 영향으로 전북에서 제일 먼저 추수하는 지역이다
서림공원을 출발해서 람천 제방을 따라 신기마을숲을 지나간다.
이 마을숲은 풍수와 역사, 생태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었다
1748년 산줄기가 끊어져 지맥이 약하다는 지관의 말에 따라 폭 5m, 길이 53m, 높이 7m로 토성을 복원하고, 느티나무를 심었다.
그 느티나무들이 지금은 거목이 되어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황산대첩비 옆에 있는 마을이 비전마을에 당도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황산대첩비와 전각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마을이 비(碑) 앞에 있다 하여 마을 이름이 비전(碑前)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관리가 황산대첩비를 지날 때면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는 이곳에서 말을 내려 걸어와 비 앞에 절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조선말 동편제의 가왕(歌王)으로 불리던 송홍록과 송만갑이 태어난 곳이다
또한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 곳으로 동편제의 고향으로 국악의 성지가 있는 곳으로 명창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동편제는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쪽 지역, 즉 남원, 운봉, 구례, 순창, 흥덕에서 불리어진 판소리를 말한다.
서편제가 슬픈 가락(계면조) 표현이 많다면, 동편제는 씩씩한 가락(우조)이 특징이다.
안으로 들어섰더니 텁텁한 홍보가 가락이 흐르고 있었으며, 이제 막 피어난 신록이 눈부시게 빛났다
송홍록 생가의 건너편에 우리 민족의 영욕의 역사가 서려있는 황산대첩비와 비각이 있다
이곳은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가 수많은 왜구를 물리친 곳이자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명분을 준 마을이다.
사적 제104호로 지정된 황산대첩비는 조선 선조 10년(1577) 세워졌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파괴되었다.
지금의 비석은 안타깝게도 1957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는 파비각(破碑閣)이다.
황산대첩비는 조선 선조 때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때 부서진 비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 파비각(破碑閣)이다.
글씨도 알아볼 수 없도록 뭉개져 있었고, 비석은 세 토막으로 부서져 있었다
무자비한 일본인들의 만행을 생각해 보니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할 수 없었다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황산대첩비 탁본은 파괴되기 전의 것으로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비전마을에서 람천 뚝방길을 따라 걷는 길은 양쪽에 벚나무가 우거져 있어 매우 시원하였다
람천(藍川)은 지리산 정령치와 세걸산에서 시작돼 운봉읍과 인월면, 산내면에 걸쳐 흐르는 길이 19.8km의 청정 하천이다.
말 그대로 쪽빛처럼 맑은 람천은 함양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전북 동부 산간인 무주 진안 장수의 물은 대부분 섬진강이나 금강으로 흐르지만 람천의 물은 경상도 쪽으로 흐른다
군화동마을을 지나 큰길을 건너 반대쪽에 있는 대덕리조트 앞으로 길이 나있다
대덕리조트는 규모가 상당히 커 보이는데 영업을 중단했는지 빗장이 굳게 닫혀 있다
리조트의 앞마당을 지나서 시원한 그늘이 반겨주는 숲길로 들어가 걷기 시작한다
대덕리조트 앞쪽으로 나있는 임도로 들어서면 옥계저수지의 시원한 물이 반겨준다
옥계저수지는 아랫쪽에 있는 군화동마을과 비전마을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주고 있다
저수지의 물이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아 올해의 농사는 풍년이 들 것 같다
저수지 주변의 야산에는 산양삼을 심었다며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숲길은 넓게 닦여진 임도라서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 2구간 절반은 람천 제방길을 들판을 바라보며 걸었다면 남은 절반은 숲길을 걷는 것이다.
잠시 봄 분위기를 느끼며 걷는데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내리막길 끝에 흥부골 자연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남원시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오토캠핑장과 숙박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요셉신부님께서 흥부골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신자의 집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자매님께서 부랴부랴 준비해주신 아로니아, 오미자, 느릅나무 엑기스를 마셨다
정원에 온갖 종류의 야생화를 정성스럽게 가꾸어 놓아서 숲속의 화원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흥부골자연휴양림을 떠나 다시 시원한 숲길로 들어섰다
물길을 건너기 전에 아담한 무인쉼터가 나타났다
냉장고에는 음료수, 막걸리, 생수 등 걷기에 필요한 물품이 들어 있었다
비록 쉼터에 사람은 없지만 돈이 남았으면 남았지 한번도 모자란 적이 없다고 말한다
화전(花田)엘 가면
노랗고 파란 꽃그늘 아래 누워
지독히도 달콤한 암내 맡으며
능청스레 꽃싸움할 수 있겠지요?
당신은 새벽별보다 찬란하게 웃고
나는 밤새 문신(文身) 그려 넣으며
환장할
노래를 부를 테지요................................................... 김요일 <꽃싸움> 부분
운봉에서 박씨가 처음 입주하여 살았는데 마을 형국이 반월형이라 월평(月坪)이라 불렀다.
2010년 7월 15일 월평마을을 ‘달오름마을’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달과 지리산의 청정한 기운이 함께 올라가는 곳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듯... 민박집을 알리는 많은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달오름마을은 동쪽 팔랑치를 마주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고 한다
마을 분위기는 매우 깔끔하고 정겨워 보였는데 아름다운 벽화가 더욱 운치있었다
신산회 부총무인 최 글라라 자매님이 벽화 앞에 서는 순간 새로운 벽화가 창조되었다
달오름마을의 모정에서 점심식사를 하려 했으나 송홧가루가 널려 있어서 다시 나왔다
신부님께서 인월공소로 가자고 인도하셔서 인월읍내를 가로질러 갔다
인월공소에는 길손들을 위한 근사한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다
수녀님께서도 서글서글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편안하게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신부님은 미리 가져다놓은 승용차로 운봉으로 가시고, 우리는 둘레길을 이어갔다
인월면은 예로부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서울, 남원, 함양 등지에서 접근이 쉽다.
2구간 종점에 서자 3구간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둘레길의 끝은 곧 시작을 의미한다. 이것은 삶과 맞닿아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처음부터 지리산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찾고 이어 마을공동체를 재생시키고자 했다
지리산 마루금 산행을 밑으로 내려보자는 뜻으로 출발했다.
고려 우왕 6년, 이성계 장군이 왜구 토벌군과 싸움에서 날이 어두워지자 기도로 밝은달을 끌어올려 황산 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어,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인월(引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왜장은 아지발도였는데 두꺼운 갑옷을 입어 섣불리 죽일 수 없었다고 한다.
생각 끝에 아지발도의 투구에 화살을 쏘았고 이에 놀란 아지발도가 ‘악!’하고 입을 벌린 사이 이성계가 그 목구멍에 화살을 쏴 죽였다.
그때 아지발도의 피가 흘러 붉게 물이든 피바위가 지금도 저 아래 남아있다
많은 사람이 밝은 화안(花顔)과 부드러운 성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더 많은 사람이 이 봄에 봄꽃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먼저 꽃 피우기는 어려워도 일찍 핀 한 송이의 꽃은 다른 꽃의 개화를 연속적으로 부른다.
그리하여 산빛 전체를 바꾸어 꽃 천지인 춘심에 이르고 싶은 생각이다
우리의 토종식물들의 이름은 더러 민망한 것도 꽤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로 큰개불알풀이다.
꽃은 무리지어 피어나는데 크기가 작아서 눈에 쉽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씨앗의 모양이 희한하게도 개의 불알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밖에 민망한 꽃이름으로는 애기똥풀, 노루오줌풀, 소경불알,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등이 있다
듣기 민망한 꽃이름을 바꾸자는 이들도 있지만 조상들의 얼이 담겨있는 이름들이기에...나는 반대다
인월을 출발해 조금 걷다 보면 재미난 벽화가 그려진 집들이 있는 중군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지리산 북부로 향하는 관문이자 길목이다
전투 군단 편성에 있어 전군(前軍), 중군(中軍), 후군(後軍)이 있고 따로이 선봉부대가 있는 것이니,
임진왜란 때 이곳 마을에 중군(中軍)이 주둔한 연유로 인해 마을 이름을 중군리(中軍里) 또는 중군동(中軍洞이)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중군정(中軍亭)이란 정자가 우뚝 서 있었는데 마을과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중군마을은 본업인 농사 외에도 잣과 송이 채취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마을의 벽에는 벽화가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주민들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칫 지루하고 힘들어질 법도 한데 이런 벽화들은 길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불어넣어주었다
중군마을을 벗어나면 지루하고 힘든 오름길이 이어진다
그늘도 없는 데다가 팍팍한 시멘트길이라 더 힘들게 느껴진다
지리산 둘레길은 볼거리가 많은 화려한 길이 아니다.
만약 거창한 것을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다.
오르막의 끝 부분에 있는 황매암 앞에서 길은 아늑한 숲길로 이어진다
이 길은 TV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서 강호동과 은지원도 다녀갔던 길이다.
소박한 민초들의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오월의 숲에는 춘심(春心)이 짙게 배어있었다
숲길은 황매암의 담장 옆을 돌아서 올라간다
황매암(黃梅庵)은 주변에 노란 매화가 많이 피어 붙여진 이름이다
출가한 지 50년째 선수행 중인 일장스님이 2004년에 창건한 호젓하면서도 깔끔한 암자이다
우리의 발길은 황매암을 지나칠 수 밖에 없었지만 절집의 정갈한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황매암을 지나 숲길을 한참 걸으면 수성대(守城臺)에 이른다.
수성대 계곡의 물은 현재 인근의 중군마을과 장항마을의 식수원으로 음용될 만큼 맑고 깨끗한 물이다.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 수성대는 과거 전란 때 외성을 수비한대서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의 지형이 적이 드나드는 모습을 세심히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에는 무인쉼터가 마련되어 있었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서 한참을 쉬어갔다
수성대에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내리다를 반복하며 배너미재에 올라선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는 고개다
배너미재는 운봉의 배마을(주촌리), 배를 묶어두었다는 고리봉과 함께 지리산 깊은 산속에 있는 배와 관계된 지명이다.
배너미재를 넘으면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이며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천왕봉을 배경으로 우뚝 서있다.
산내면 장항마을을 지키는 400년 수령의 당산 소나무다.
장항마을의 당산 소나무는 수령이 400년으로 높이가 18m, 둘레가 28m로 나무 가지들이 아래로 뻗어 있다.
매년 음력 1월 2일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바라며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장항마을은 산세의 지형이 노루의 목과 같은 형국이라 하여 노루 장(障)자를 써 ‘장항’이라 했다
오늘의 트레킹이 끝나는 장항마을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 그늘은 쉼터로 안성마춤이었다
이곳에서 남은 간식을 나누어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 귀로에 올랐다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는 느티나무 밑동에서 위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아프리카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바오밥나무가 연상되었다
하늘로 뻗어오른 가지는 하늘을 떠받치는 형국이고, 밑동에 뚫려있는 구멍은 영혼의 통로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고 행운을 불러 들였으리라
첫댓글 참 훌륭한 산행기군요.
산행기를 읽으면서 총무님의 노고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군요.
고마워요.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산행기로 복습까지 하고나면 시험봐도 될것 같네요 ㅎ
항상 감사드리고
또 새로운길 준비해보겠습니다
간만에 따라나선 동행에서 신산회의 여정은 저의 삶의 원천이자
에너지를 얻는 힘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산행기까지 음미하면 그 에너지는 최고봉에 다다르죠~~ㅎ
배넘이재 의 뜻~ 궁금증도 해소되었구요~
멋진 기행문~ 감사합니다.
신산회가 둘레길 트레킹으로 인해 부활~~ 하였네요~
지리산 둘레길의 역사적 고찰과 구간구간 전설적이이고, 현실적인 지역의 의미를 잘 설명해주셔서,
무슨 역사소설을 읽는듯한 시대를 초월한 산행기에 큰 감명과 공부를 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계속되는 21탄 지리산둘레길 산행 역사기가 기록될수 있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그날의 감흥이 되 살아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