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천사들
면목동 뚝방 아래 초라한 집에는 항상 150명 가량의 남녀가 모여 살고 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일 것이다.
살인자, 상습절도범, 사기꾼, 폭력범, 소매치기등
삶의 대부분을 감옥에 드나든 인생들이다.
세월은 그들도 늙게 했다. 그들은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심지어
감옥으로부터도 버려졌다. 교도소에서도 송장 치우게 될 정도면 가석방시켜
사회에 내던져버렸다. 그들이 모여드는 곳이 뚝방 아래 '담안 자활원’이었다.
영동가구점을 하는 이경희씨는 15년 전 면목동 그 뚝방 아래 주택 한 채를
샀다. 그리고 그 집에 버려진 전과자들을 불러모아 밥과 잠자리를 주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감옥을 드나든 사람들의 상당수는 맹수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극도의 이기주의와 보호본능이었다. 여차하면 날카로운 이빨을
으르렁거리거나 독을 뿜는 동물적 속성을 닮았다.
따지고 보면 강도나 절도범같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없다. 자기의 용돈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 같은 이기주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윤리의 밖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도둑질이 삶의 방법이고 주먹이 무기였다.
가구점 주인 이경희씨는 그 중 한 사람을 목사가 되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버려진 사람들을 보살피도록 했다.
가구를 판 돈들이 그들의 쌀과 반찬값으로 사용됐다. 세상은 묘했다.
매스컴은 고아원이나 양로원, 그리고 장애자들에 대해서는 관대해도 범죄자에 대해서는
역시 얼음같이 찼다. 시청자들이 혐오감을 느낀다고 방송국도 등을 돌렸다.
좋은 향기도 주위에 전해진다. 이경희씨의 마음의 촛불이 전과자 출신의 훌륭한 성자 한 사람을 탄생시켰다.
폭력전과로 오랫동안 청송교도소생활을 했던 임석근씨가 헌신적인 목사로 탄생했다.
이번에는 임석근씨가 교회나 간증집회를 찾아가 어두웠던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면서 약간의 돈을 받았다.
그걸로 그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의 반찬값도 보태고 김장배추도 샀다.
그러나 사실 그곳의 식구들 사이는 좋은 일보다는 배신이 더 많이 일어났다.
우연히 알게 된 이경희씨와 임석근씨의 부탁으로 난 10여 년 그 단체의 고문변호사 노릇을 해왔다.
일이 있어 그 자활원으로 갈 때면 문앞에서 벌써 불쾌해질 때도 있었다.
험악한 인상의 사나이가 팔짱을 낀 채 도끼눈을 치뜨고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의 눈은 우리들이 그들을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착복하지 않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였다.
사실 그들에게 밥을 먹이고 재워주는 돈은 개인의 주머니에서 소리없이 나가는 돈들이었다.
한 번은 거기서 생활하던 한 남자의 절도 변호를 맡았다.
나와 임석근씨는 범행지인 원주를 오르내리며 구명운동을 폈다.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재판정에서 그의 구제를 부탁했었다. 그 재판은 항소심까지 계속됐다.
여기서 내가 변호를 하는 데는 원칙이 있었다.
그곳의 대장격인 임석근 목사가 공짜변호를 하라면 하고 10만 원을 받으라면 받고 백만 원을 받으라면 받았다.
의사도 약간의 치료비를 받아야 환자 회복에 효과가 난다고 했다.
택시기사도 미터요금은 노동의 댓가로 받아야 했다.
감옥에서 사회로 옮겨주는 변호사도 최소한의 품삯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몇 달 후 나는 변협 조사위원회에 소환을 당했다. 그가 엉터리 변호를 했다고 나를 진정 한 것이다.
나는 답변서를 써내고 해명을 했다. 나를 진정했던 그는,
“이렇게 다시 감옥에 들어와 앉았으니 변호사에게 트집잡아 돌려받은 돈으로 영치금이라도
할 라고 그랬수다”라고 나중에는 대답했다.
그 단체를 운영하는 이경희씨와 임석근씨가 겪는 배신은 일상이었다.
가구점에 와서 돈을 뜯어 가는 사람도 있고 가족과 자고 있는데 강도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지금도 굳건히 그들을 돌보고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는 범죄자들과 수시로 어울렸다. 멸시받는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함께 식사도 했다.
“어떻게 저런 부류와 어울릴 수 있단 말이요?” 지식인층인 바리새인들이 빈정거렸다.
그걸 눈치챈 예수는 이런 비유를 얘기했다.
“만일 너희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없어졌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그냥 두고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그러다가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돌아와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할 것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한 죄인을 잘났다고 교만을 떠는
아흔 아홉 명의 잘난 사람보다 더 기뻐한다.”(마태복음 18장 10절에서14절, 누가복음15장 3절에서 7절)
이경희씨는 진정으로 잃어버린 양을 대신 찾아나서는 목자였다.
관할경찰서장이나 구청장은 장소만 옮겨준다면 어떤 지원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사정을 한다.
주민들의 최고로 혐오하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나도 말이죠 젊었을 때는 무척 방황했어요. 인간은 자기가 나락에
떨어져 봐야 그런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어요. 난 이 일이 좋아요.”
그는 변함없이 남들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진짜 천사들은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가장 피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하는 사람들 같다.
(엄상익 변호사의 원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