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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02
씬1. 여인숙 간판 (밤)
(싸구려 불빛의 여인숙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매달려 있다)
씬2. 동, 방안
(여럿이 모여 자는 널찍한 방안... 한쪽에서 미주모와 인형을 꼭 껴안은 미주, 아기가 자고 있다. 미주모, 식은땀을 흐리며...
유경옥이 벌떡 일어서서)
경옥 : 이놈의 방구석은 불을 넌 거야 만 거야? (방바닥을 만져보며) 어름장이 따루 없네...
미주모 : ... (작은 신음소리)
(경옥, 미주모를 마땅치 않게 보다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본다. 잠시 상념에 잠겨 보다가...)
경옥 : (혼잣말) 우리 정연이, 이제 많이 컸겠네... (한숨) 부잣집에서 잘 먹고 잘살면 됐지 뭐... (사진을 품속에 넣는데)
(이때, 미주모의 머리맡에 있는 손가방에 시선이 간다.
주변을 살피는 경옥...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손가방을 가져오는데...)
씬3. 역, 대합실 안 (그 밤)
(노숙자 몇 명만 보이는 썰렁한 대합실 안이다. 강모가 긴 의자에 등을 보인 채로 돌아누워 있고...
정연, 신문지로 무릎을 덮은 채 맞은편에 앉아있다. 추운지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강모를 흘겨보다가...
정연, 빨간 지갑을 꺼내들더니 사진 한 장을 꺼내 보는데... 경옥의 것과 같은 사진...
엄마 쪽이 오려지고 없는 반쪽 사진에 아기를 안은 경옥의 손만 나와 있다.
정연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입모양으로만 엄마... 부르며 울먹이는데...)
강모 : (돌아누운 채) 니가 찾는 사람이 누군데?
정연 : (얼른 눈가를 훔치고 사진을 지갑에 넣으며, 새침) 넌 알거 없어.
강모 : ... (관심 없다) 나도 알구 싶지 않어.
정연 : 근처에 잠 잘 데 좀 찾아 봐.
강모 : 니 발로 나가서 찾아 봐.
정연 : (신경질) 여기서 자다간 얼어 죽어..!
강모 : ...
정연 : 나 춥다구..!
강모 : 나두 추워.
정연 : (한숨 쉬고 보다가) 백 원 줄게.
강모 : ...
정연 : (짜증) 니 방값도 내주면 될 거 아냐.
강모 : (돌아본다)
씬4. 여인숙 앞
(강모가 앞서서 가고 있고, 정연이 한걸음 뒤에서 쫓아오고 있다.
강모, 여인숙 앞에서 걸음을 멈추면 정연이 빤히 간판을 보다가...)
정연 : 나보고 이런데서 자라고?
강모 : 그럼 대합실에서 자든가.
정연 : (내키지 않는다) 여기... 이불은 깨끗해?
강모 : 신문지보단 날거야. (들어가면)
정연 : ... (한숨)
씬5. 여인숙 안, 세면실
(공동으로 쓰는 황량한 세면실이다. 경옥이 바깥을 잠시 살피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어본다)
경옥 : 이게 웬 횡제야? 제법 쏠쏠하네? (좋아서)
씬6. 동, 방안
(정연, 잠시 머뭇거리다가 경옥이 빠져나간 자리에 눕는다.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하다.
옆에 누운 미주모의 이불을 조금 끌어다가 덮는데.. 이때, 경옥이 들어서서 다가오고...)
경옥 : 얘, 거기 내 자리야, 비켜.
정연 : ... (일어서면)
경옥 : 몸뚱이루 방바닥 덥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얼른 누우며) 어휴, 날씨 우라지게 춥네.
(정연, 한쪽으로 밀려나서 벽에 등을 대고 앉는다. 이때, 미주모가 일어나 앉는다. 옷가지로 미주와 아기를 덮어주며...
정연, 그 모습을 부러운 듯이 보는데... 미주모, 정연과 시선이 마주치자...)
미주모 : 얘, 거기 문지방이라 추워... (자리를 만들어주며) 이리루 와서 자.
경옥 : 좁은데 어디루 껴들라구 그래요? 댁이 빠지든가.
정연 : (새침) 전 괜찮아요.
미주모 : ... (안타깝게) 거기 바람 들어올 텐데...
씬7. 다른 방
(남자들 여럿이 붙어 자는 방.. 강모,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는데..)
강모 : (누운 채, 눈물 고이며) 형... 무사 한 거지? 아무 일 없는 거지? 형...
씬8. 철로 변, 도로 (새벽)
(미군 지프차가 다가오고 있다. 도로에 쓰러져 있는 성모... 지프차가 성모 앞에서 멈춰 서더니 미군 두 명이 차에서 내린다.
별이 한 개 박힌 햄튼 준장과 대위계급의 마이클이다. 햄튼, 성모를 살피면, 머리며 얼굴이며 피딱지가 앉아있고...)
CPT Michael : Sir! He’s still alive. (아직 살아있습니다.)
BG Hampton : Get him up and back to the Post. Let’s get him treated. (일단 사령부로 데려가서 치료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미군들이 성모를 급히 차에 싣는다. 성모, 정신을 잃은 채...)
씬9. 미 8군 사령부 전경
(정문 위병소에서 미군 헌병들이 지키고 있다. 그 위로...)
군의관 : (E) 정신이 드니?
씬10. 동, 의무실 안
(막 깨어난 성모... 한국인 군의관과 햄튼과 마이클이 지켜보고 있고... 햄튼, 한국말을 능숙하게 할 줄 안다)
군의관 :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걸, 이분들이 데려왔어.
성모 : ... (햄튼을 본다)
BG Hampton : ... (물끄러미)
성모 : 여기가.. 어디에요?
군의관 : 여긴, 미팔군 사령부 안이야.
성모 : 그럼... 여기가 서울인가요?
군의관 : ... (고개 끄덕이며... 햄튼에게) Sir, he doesn’t have any serious external injuries except for some bruises.
(타박상 외에는 다른 외상이 없습니다.)
BG Hampton : What’s you name?
성모 : ... (잠시, 생각하는 듯)
군의관 : 이름... 니 이름 몰라?
성모 : 몰라요...
군의관 : 몰라?
성모 : 아무것도 생각이 안나요. 이름이 뭔지, 집이 어딘지... 가족들이 누군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요.
군의관 : Sir, he suffered a head trauma which may have affected his memory....! (잠시 보다가, 햄튼에게)
(머리에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BG Hampton : You mean he’s got amnesia!? (기억상실증이란 말인가?)
군의관 : Possibly. (그런 것 같습니다.)
BG Hampton : I want you to keep an eye on him until he recovers his memory.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부대 안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해 줘.)
군의관 : Yes, sir. (알겠습니다.)
BG Hampton : ... (마이클과 함께 밖으로 나가면)
군의관 : 너, 운이 아주 좋아. 이 사령부 안에서 가장 마음씨 좋은 미군을 만났어. (밖으로 나간다)
성모 : ... (잠시, 밖을 살피고는 긴 한숨, 혼잣말) 강모야... 미주야... 엄마...
씬11. 여인숙, 방 안 (오전)
(사람들이 빠져나가 한산한 방안...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미주모와 미주... 정연이 외투를 뒤집어 쓴 채 잠들어 있고..
경옥이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입술에 립스틱을 칠하고 있다)
경옥 : (입술을 오물거리며) 오늘은 재수 좋은 일이 있을래나, 화장 빨이 잘 받네?
(경옥, 막 거울을 가방 안에 챙기는데 정연이 덮고 있는 외투 주머니에서 비쭉 나온 빨간 지갑을 본다.
슬쩍 미주네 쪽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지갑을 빼내는 경옥...
이때, 방문이 확 열리며 강모가 들어오면 경옥, 깜짝 놀라며 얼른 지갑을 가방에 넣는다. 미주모와 정연들이 다 깨어나고...)
강모 : (다가가서) 엄마... 그 놈들이 어젯밤에 우리 찾으러 왔어.
미주모 : ..! (놀라서) 니 형은? 형은 어떻게 됐어? 그놈들한테 붙잡혔니?
강모 : 아니... (시무룩) 그 놈들만 왔어.
미주모 : ... (걱정스럽게) 도망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강모 : 그 놈들이 이 근처를 뒤진다고 했어. 기차 타긴 힘들 것 같아...
미주모 : 버스터미널도 마찬가질 거다. 당분간, 여기서 숨어 지내는 게 나을 거야.
강모 : 돈은..? 여기 여관비 비싼데...
미주모 : 걱정 마. 며칠 묵을 돈은 있어.
(미주모, 가방을 뒤지는데 돈이 없다. 허겁지겁 뒤지는데..)
강모 : 왜 그래, 엄마?
미주모 : 이상하네..? 틀림없이 여기다 두었는데... (뒤지는데)
(경옥, 슬그머니 밖으로 나간다)
씬12. 여인숙, 앞
(정연과 강모가 마주서 있다)
강모 : 삼천 원...
정연 : 이천 원.
강모 : ... 좋아, 그 대신 천 원만 미리 줘. 오늘 거 방값내야 되니까.
정연 : 안돼, 돈은 우리 엄마 찾고 나서 줄게.
강모 : ... 치사하게... 니가 찾는 사람이 니네 엄마냐?
정연 : (새침하게 메모지 한 장을 꺼낸다) 그 집 주소야. 찾아갈 수 있지?
강모 : ... (들여다보다가) 잠깐만 기다려. 울 엄마한테 얘기하고 올게. (여인숙 안으로 들어간다)
(정연, 무심코 주머니를 뒤지는데 동전 몇 개만 나오고 지갑이 없다)
정연 : 내 지갑..?
씬13. 동, 방안
(강모와 미주모가 얘기중인데 정연이 급히 들어서서 방바닥을 살핀다)
미주모 : 왜? 너도 뭐 잃어버렸니?
정연 : 예? 아, 아니에요. 뭐, 뭐해. 얼른 가.
강모 : (미주모에게) 방값은 저녁 때 준다구 얘기했으니깐 걱정 안 해도 돼, 엄마.
미주모 : 그 놈들 눈에 안 뜨이게 조심해서 다녀와.
정연 : ... (마음 무겁게)
미주모 : (한숨) 우리 이렇게 만든 그 놈들.. 천벌을 받을 거다. 두고 봐.
씬14. 국회의원 사무실
(명패에 ‘국회의원 오병탁’ 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빈 사무실 안에서 혼자 앉아 있는 조필연...
비서쯤의 여직원이 들어서더니..)
여비서 : 의원님, 지금 청와대에 계셔서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필연 : 상관없어요. 기다리겠습니다.
여비서 : 실례하지만, 어디서 오셨는지...
필연 : 이미 의원님께 연락 드렸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여비서 : (나간다)
필연 : ... (주변을 둘러보며) 청와대라...
씬15. 청와대 안, 회의실
(오병탁과 서울시 도시국장 한명석, 중앙정보부장만이 은밀히 회동중이다)
오병탁 : 그게 무슨 소리요? 남서울 개발 사업에 차질이 생기다니?
박부장 : 우리가 차명으로 사놓은 강남땅 말입니다... 그 명단이 유출됐소.
병탁 : ..! (놀라서, 한명석을 보며) 대체 어떤 놈들이 그걸 빼갔다는 거야?
명석 : 아무래도 미 대사관 쪽이나 미팔군 첩보부 소행 같습니다.
병탁 : 미국? 그 놈들이 왜?
박부장 : 뻔한 거 아니겠소? 다음 대선을 방해해서, 각하의 장기 집권을 막으려는 수작이지.
병탁 : ..!! (더욱 놀라며) 우리가 강남땅을 사들인 거, 각하께서도 모르시는 일입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여기 아무도 무사할 사람 없어요.
박부장 : 그러길래, 왜 애초부터 일을 이 지경까지 벌리느냔 말이오.
병탁 : 그게 우리가 잘살자고 한 일이오? 정치자금을 확보해서, 각하를 도와드리자는 충심에서 시작된 거 아닙니까..!
박부장 : 아무튼 이번 일, 오의원이 책임지시오.
병탁 : 이보시오, 박부장..! 기밀을 누설 시킨 건 정보기관 책임 아니오? 그걸 나보고 책임지라니?
박부장 : 남서울 개발, 총 책임자가 오의원 아닙니까..!
병탁 : 어허, 이 사람이..!!
명석 :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어떡하든, 차명계좌 명단이 세상에 공개되는 걸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병탁 : 아이구 머리야... 언론사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미국 놈들 주둥아릴 무슨 수로 막느냔 말야.
명석 :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박부장 : ..!!
병탁 : (급하게) 방법이 있어?
명석 : 협상을 하려면, 거기에 걸 맞는 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본다, 눈빛) 우리도 미국 쪽 기밀을 빼돌리는 겁니다.
박부장 : 그래서? 저들의 입을 막는 조건으로, 기밀을 맞바꾸자?
명석 : 바로 그겁니다.
병탁 : 그럴 수만 있다면 오죽 좋겠냐만... 대체 무슨 기밀을 어떻게 빼돌리자는 거야?
명석 : 제 미국인 친구 중에, 월남전 종군기자가 있습니다.
병탁 : 근데?
명석 : 이번 월남전에 관한 일급기밀 문서가 작성되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병탁 : 일급기밀 문서?
명석 : 예. 그 문서 작성자의 최측근이... 지금 우리나라 미팔군 사령부 안에 있습니다.
병탁 : 그 내용이 대체 뭔데?
명석 :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기밀이 세상에 알려지면 미국 정부가 큰 혼란에 빠질 만큼 강력한 것이라고 합니다.
박부장 : 월남전에 관한 거라면, 우리 중정에서도 첩보를 입수한 적이 있지.
병탁 : ..? (보면)
박부장 : 병사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소문으로만 퍼져있는 거라 그 이상은 캐내지 못했소.
명석 : 어찌 됐든, 우리가 그 기밀을 알아낼 수 있다면... 저들을 압박해서 입을 막을 수가 있을 겁니다.
병탁 : 미팔군 안에 있는 일급기밀이라... (생각하는 눈빛)
씬16. 요정집, 밀실
(횟감과 정종이 놓여 있고, 오병탁과 조필연이 독대를 하고 있는 자리... 조필연 옆에 검은 가방이 놓여 있고...
오병탁, 심기가 복잡한 듯 술을 한잔 급하게 마신다. 조필연이 얼른 술을 따라주려고 술병에 손을 뻗는데..)
병탁 : (퉁명스럽게) 됐어. (자작하며) 날 볼라구 일부러 서울까지 온 거야?
필연 : 선배님께 긴히 부탁을 드릴게 있습니다.
병탁 : 가뜩이나 골치 아파 죽겠는데.. 반갑지 않게 무슨 부탁?
필연 : 아시다시피, 이번에, 국방부에서 인사발표가 났습니다.
병탁 : (더 듣고 싶지도 않다) 먼 길 왔으니까 술이나 한잔 해.
필연 : 도와주십시오. 선배님이시라면, 저 하나쯤은 충분히 끌어주실 수 있질 않습니까?
병탁 : 여긴 내가 살게. (술을 마신다)
(조필연, 가방을 상 위에 올려놓는다)
병탁 : 뭐야?
필연 : 열어보십시오.
(오병탁, 가방을 열면 현찰 지폐로 가득 차 있다. 오병탁, 내심 놀라면서도 표정 변화 없이...)
병탁 : 나보고, 이 돈 받고 매관매직이라도 하라구?
필연 : 적습니까?
병탁 : 대체 날 어떻게 보구..! 가지고 가. 나, 돈 벌자구 나랏일 하는 사람이 아냐.
필연 : 선배님께 드리는 돈이 아닙니다. 국가에 바치는 돈입니다.
병탁 : ..!
필연 :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막대한 돈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강남을 개발하려는 이유도 다 정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병탁 : 어허, 이사람..! (좌중을 의식하며) 입조심 해.
필연 : 이 돈을 각하께 바치겠습니다. 제발, 이 한 몸, 국가를 위해서 살신성인할 기회를 주십시오.
병탁 : ... (잠시 돈을 보다가 가방을 닫는다) 자네 말대로 우린 돈이 필요해.
그렇다고 출처도 모르는 돈을 손에 집히는 대로 거둘 수는 없어.
필연 : 하늘에 맹세코... 절대 뒤탈이 날 돈이 아닙니다.
병탁 : (본다) 원하는 게 뭐야?
필연 : 중앙정보부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병탁 : 난 입으로만 충정을 떠드는 사람을 믿지 않아.
필연 : 제가 어떡해야 믿으시겠습니까?
병탁 : (잠시 살피듯 보다가 벌떡 일어선다) 일어나, 나하구 갈 데가 있어.
필연 : ...?
씬17. 중앙정보부, 부장실 안
(병탁과 필연이 와 있다. 박부장이 매서운 시선으로 필연을 살피고 있고...)
병탁 : 어때요, 박부장... 내가 보기엔 이번 임무를 맡기는데 적격인 거 같은데...
박부장 : 우선, 자네를 미팔군에 보직을 내주겠네. 그곳에서 자네가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어.
중앙정보부는 그 일이 성공한 다음에 들어오게 될 것이야.
필연 : 임무를 말씀해 주십시오.
박부장 : 미팔군 첩보단에 햄튼 준장이란 자가 있어. 월남전에 관한 기밀문서를 가지고 있을 거야. 그 문서를 빼내 와.
필연 : ... (눈빛 번뜩이며)
씬18. 다방 안
(고재춘이 공중전화로 전화중이다. 군무원 1, 2가 테이블에 앉아 있고...)
재춘 : (힐끔 군무원들 쪽을 보며) 지금 만났습니다. 예... 우릴 목격한 놈은 열차에서 떨어져서 죽었고,
지금 남은 가족들을 찾고 있습니다. 철수 시킬까요?
씬19. 요정집, 밀실 안
(술상이 차려져 있고 조필연이 전화통을 앞에 놓고 수화기를 든 채...)
재춘 : (F) 어차피 목격자는 죽고 없으니...
필연 : 공연히 불씨를 남겨둬서 화근을 만들 필요가 없어. 끝까지 추적해.
재춘 : (F) 알겠습니다.
(조필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술을 한잔 털어 놓고는 잠시 생각하는 눈빛..)
씬20. 달동네, 구멍가게 앞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는 강모와 정연... 강모의 손에 주소를 적은 메모지가 들려있고...)
정연 : 도대체 이 동네를 몇 바퀴나 도는 거야?
강모 : (주소지와 문패를 확인하며)
정연 : (확 잡아채며) 솔직히 말해 봐. 너, 이 동네 잘 모르지?
강모 : 내 입으로 여기 산다고 말한 적 없어.
정연 : 너 사기두 치니?
강모 : ... (무시한 채)
(한 노인이 총채로 구멍가게의 물건들의 먼지를 털고 있다)
강모 : 말씀 좀 묻겠는데요. 여기, 산 18번지가 어디에요.
노인 : 18번지면.. 저 맨 윗집인데.. 시방 누굴 찾는디?
정연 : (얼른 나서며) 울 엄마요.
노인 : 니 엄마? (살피듯 보며) 거기 문간방 댁이 니네 엄마여?
정연 : 예, 거기 산댔어요.
노인 : (다시 먼지를 털며) 가봤자 없을 거여. 내뺀 지 며칠 됐어.
정연 : ..!! 내빼다니요? 울엄마가 왜 도망을 쳐요?
노인 : 좋은 일허구, 내뺐겠어? 내 뺄 만 허니까 내뺐겠지.
정연 : (급하게 노인이 가리켜준 쪽으로 간다)
강모 : 고맙습니다. (급하게 정연을 따라가려는데)
노인 : 혹시 말여... 주인여자가 뭐 묻거든 엄마니 뭐니 그런 말 하지 말어. 괜히 싸대기 맞어.
강모 : 예? 예... (급히 따라간다)
씬21. 어느 문간방 / 마당
(정연이 방문을 확 열면 아무도 없는 빈방이다.
정연, 들어서서 방안을 둘러본다. 급하게 도망이라도 친 듯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있는 조잡한 세간들...
정연, 망연하게... 강모가 말없이 문간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주인여자가 다가오고...)
여자 : 그 여편네한테 돈 받으러 다닐 나이는 아닌 것 같구... 혹시... (턱짓으로) 딸이여?
강모 : 예?
여자 : 서울로 보낸 딸내미가 하나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강모 :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여기 이집에 그 아줌마 살구 있는지 알아보라구 그래서...
여자 : 나처럼 돈 떼인 사람 또 있었구먼. 그 여편네, 인간도 아녀. 허구헌날 남자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여서
동네 뒤숭숭하게 만들더니... 집집마다 돈을 꿔갖고 줄행랑을 쳐버렸어.
정연 : ..! (돌아본다)
여자 : 술집서 작부질 한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디... (마당 쪽으로 사라진다)
정연 : ... (망연하게 있는데)
(이때, 벽에 걸려있는 철지난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있고, ‘내딸 생일’ 이라는 글씨가 적혀있다.
정연, 눈물이 고여 온다.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 하나를 집어 드는 정연...
채취를 맡는 듯하더니 옷가지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강모, 조용히 방문을 닫아주면...)
정연 : (눈물 흥건한 채) 엄마... 어디 갔어, 엄마... 엄마... (운다)
씬22. 다방 안
(실내에 비치된 공중전화로 어디론가 전화중인 경옥... 한쪽 테이블에 서울서 올라온 고재춘과 군무원 1, 2가 앉아 있고...)
경옥 : 숙식제공은 기본이지. 근데, 언니.. 거기 장사는 잘 돼? 알았어. 대신 손님들 팁은 내 몫이야? 어, 내일쯤 갈게.
(수화기 놓고) 콧구멍만한 가게 갖구 유세는.....
(경옥, 자리에 앉는다. 바로 뒷자리에 군무원들이 있고..)
군무원1 : 갓난 애기까지 들춰 업고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경옥 : ..! (커피를 마시려다가)
군무원2 : 버스 터미널과 기차역에서 지키고 있으니 곧 나타날 겁니다.
경옥 : (힐끔 돌아보고는) 혹시... 애 셋 딸린 여자 찾아요?
재춘 : ..! (본다)
경옥 : 갓난아기 하나에다가 계집아이하구 사내아이... 맞아요?
(고재춘과 군무원들이 급히 다가와 자리에 앉는다)
재춘 : 어디서 봤소?
경옥 : 누가 쫓아온다구 어쩌구 하더니... 맞네...
군무원1 : 지금 우리 급하니깐... 어디서 봤는지 말해 봐요.
경옥 : 아저씨들... 내가, 서울을 가야하는데 여비가 좀 없거든?
(군무원1이 얼른 지갑에서 오백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놓는다)
경옥 : 겨우 오백 원짜리네? 서울 가면 길을 몰라서 택시두 타야 되는데..
재춘 :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놓는다)
경옥 : (좋아서 얼른 돈부터 챙기고) 역전 골목에 여인숙 있죠? 어젯밤에 거기서 나하구 같이 묵었어요.
(고재춘과 군무원들 급하게 뛰어 나간다. 경옥, 흡족하게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정연에게서 훔친 빨간 지갑을 꺼내든다)
경옥 : 지갑도 비싼 거네? (열어본다. 지폐뭉치가 가득하고.. 놀라며) 이게.. 다 얼마야?
(경옥, 허겁지겁 돈을 세는데 사진 한 장이 나온다. 경옥, 뭔가 싶어서 들여다보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과 똑같은 사진이다.
얼어붙은 듯이 멍해지는 경옥... 황급히 자신의 가방을 뒤져 사진을 꺼낸 본다)
경옥 : (눈물 고인 채) 정연아...
씬23. 여인숙 방안
(뛰어드는 고재춘들.. 방 안이 텅 비어있다. 주인여자가 급히 따라 들어서며)
주인여자 : 당신들 뭐예요?
군무원1 : 여기, 애 셋 데리고 온 여자 어딨어요?
주인여자 : 애 셋이고 뭐구 당장 나가요.
씬24. 세면장
(미주모가 아기를 업은 채 미주의 얼굴을 세수시키고 있다. 이때, 밖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
주인여자 : (E) 글쎄, 모른다니깐..! 당장 돈 내고 투숙하든가, 나가던가..!
(미주모,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일어서서 밖을 내다보는데... 복도에서 실랑이 중인 고재춘과 군무원들, 주인여자가 보이고...
화들짝 놀라는 미주모... 이때, 등에 업은 아기가 칭얼대며 울기 시작한다. 당황하는 그때... 미주가 아기 입에 손을 대고 막는다)
씬25. 동, 밖 복도 / 세면장 안
군무원 :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주인여자 : 귀에 말뚝을 박았나. 모른다니깐. 얼른 나가요, 얼른..!
(이때,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짧게 들리고...
고재춘,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재춘이 소리가 나는 세면장 쪽으로 간다.
세면장 안... 미주가 아기 입을 막고 있고.. 미주모, 잔뜩 긴장한 채, 문고리를 잡은 채...
그 밖 복도... 고재춘, 천천히 다가와 세면장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경옥이 급히 들어서며...)
경옥 : 얼른 나가봐요...!!
고재춘 : ..! (본다)
경옥 : 좀 아까 다방 앞에서 지나가는 거 봤어요.
(고재춘들, 뛰어 나간다. 이때,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씬26. 세면장
(아기가 울어 제끼고 있다. 미주모, 안절부절... 이때, 문이 확 열리면 화들짝 놀라는데 경옥이다)
경옥 : 안심해요. 왔다 갔으니까 여긴 다시 안 올 거예요.
미주모 : ... (길게 한숨)
경옥 : 저기... 아침에 같이 있던 여자애.. 어디 갔는지 알아요?
미주모 : ...? 누굴 찾는다며... 우리 아들하구 같이 갔는데...
경옥 : ... (생각)
미주모 : 근데... 왜요?
경옥 : 아, 아니에요.
씬27. 달동네 계단
(정연이 망연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강모가 그 옆에서 눈치를 살피다가...)
강모 : 배 안고프니?
정연 : ...
강모 : 저 아래, 풀빵장수 있던데.. 내가 사올까?
정연 : ...
강모 : (짜증) 그럼 얼른 가든가. 울 엄마 기다려.
정연 : 너 혼자 가.
강모 : (보다가) 그럼.. 내 돈 줘. 이천 원.
정연 : 울 엄마 못 찾았잖아.
강모 : 그럼 반 만이라두 줘. 차비두 없단 말야.
정연 : ...
강모 : 야, 내 말 안 들려? 돈 달라구..!
정연 : (작게) 없어...
강모 : 어? 뭐가 없어?
정연 : 나, 돈 없다구..! 지갑 도둑맞았단 말야.
강모 : ..! (놀라서) 그럼 내 돈은?
정연 : ... 어휴, 씨... (고개를 묻고)
강모 : 야..!
정연 : (울먹) 아빠...
씬28. 강남 개발 현장
(황량한 벌판에 불도저가 흙더미를 밀고 있다. 여기저기 공사 표지판이 보이고... 흙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
작업복 차림에 안전모를 쓴 황태섭이 조필연을 안내하며 현장 여기저기를 손짓하며 소개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조필연... 현장 반장들이 뒤를 따르며 수행하고 있고...)
씬29. 현장 사무실 안
(컨테이너로 지은 가건물 안에 조필연과 황태섭이 단 둘이 차를 마시며 앉아 있다. 황태섭, 얼굴에 수심이 있는...)
필연 : 직접 와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 공사 규모가 훨씬 대단하군요. (차 한 모금 마시고) 공사대금은 다 해결 됐죠?
태섭 : 예... 덕분에 고비를 잘 넘겼습니다.
필연 : 헌데... (의심스러운 듯) 무슨 일로 얼굴에 그렇게 수심이 가득해요?
태섭 : 집안에 우환이 좀 있어서...
필연 : 그래요? 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도...
태섭 : 아닙니다. 공사 끝나는 대로, 이번에 도와주신 그 돈... 갚아드려야죠.
필연 : ..! (싸늘해진다) 그거, 황사장 몫이니 갚을 필요 없어요.
태섭 : 아닙니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필연 : 이것 봐요, 황사장. 나한테 한 맹세를 벌써 잊었소? 개가 되어서라도 내게 충성을 다하겠다던 그 말...
태섭 : ... (굳어진 채)
필연 : 내가 하지 말라는 건, 안하면 돼요. 알겠소?
태섭 : ...
필연 : 앞으로 우리, 자주 보게 될 겁니다. 미팔군 내, 한국군 지원단으로 발령이 났어요.
태섭 : 승진을 하신 겁니까?
필연 : 소령이니까 그런 셈이지... 부대 근처에, 내 가족들이 살만한 집 한 채 좀 구해 봐요.
태섭 : (내키지 않게) 예.. 그러죠.
(이때, 주영국이 들어선다)
태섭 : (마음 급하게) 어, 왔어? 경찰서에선 뭐래?
영국 : 아직 소식을 모른다고 하네.
태섭 : ... (한숨) 아무래도, 내가 직접 다녀와야겠어. (조필연에게) 죄송합니다. 오늘 급히 대전엘 내려갈 일이 있어서...
필연 : 대전에요?
태섭 : 예.. 사실은 딸아이가 집을 나가서...
필연 : (부드럽게) 마침 대전에 내 부관이 가 있어요. 연락을 해 놓을 테니, 도움 받을 일 있으면 받아요.
태섭 : 괜찮습니다.
필연 : 난 괜찮지 않아요. 황사장 가족 일이면, 내 가족 일이기도 하지. 우리.. 이제부터 한 가족이잖소.
태섭 : ... (마땅치 않다)
씬30. 대전역 근처 골목길 (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강모와 정연이 터덕터덕 걸어오고 있다. 강모가 몇 발자국 앞서 있고...
정연,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만두가게 진열장으로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만두들을 보고 있다)
강모 : 빨리와, 이 기집애야.
정연 : ... (털썩 주저앉는다)
강모 : (다가오고) 울 엄마 기다린단 말야.
정연 : (신경질) 너나 가...! 다리 아파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어.
강모 : ... (보다가) 얼어 죽든 굶어죽든, 난 몰라. (썩, 가버린다)
정연 : ... (고개를 다리사이에 처박고)
(강모, 가다가 뒤돌아보면 정연이 고개를 처박은 채.. 잠시 갈등하다가 씩씩대며 다가온다)
강모 :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지갑 잃어버렸으면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정연 : 울 엄마... 만날 줄 알았단 말야.
강모 : ... (본다)
정연 : ... (눈물 그렁한 채)
강모 : (보다가 등을 보이며 앉는다) 업혀.
정연 : ...? (보면)
강모 : 너, 돈두 없구, 아는 사람도 없다며..! 얼른 업혀, 이 기집애야.
정연 : 필요 없어. 저리 가.
강모 : 나두 배고프고 다리 아퍼. 얼른..!
정연 : ... (본다, 마음의 동요)
강모 : 셋 셀 동안 안 업히면 그냥 간다. 하나... 둘...
(정연이 강모의 등에 업힌다. 강모, 낑낑대며 일어서서 걷기 시작한다)
강모 : 잘난 척 할 때부터 알아봤어. 너 때문에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이야.
정연 : 그래두... 내가 등에 업혀주니깐 덜 춥잖아.
강모 : 뭐? 그걸 말이라구 해?
정연 : 배 고프니깐 그만 떠들어.
강모 : 계집애가 무겁긴 왜 이렇게 무거워? (낑낑대며 가는데)
(그 일각... 경옥이 정연과 강모를 지켜보고 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오며)
씬31. 여인숙 안
(축 늘어진 채 들어서는 강모와 정연... 카운터에 주인 여자가 있고..)
강모 : (눈치 보며) 저, 아줌마... 오늘 방값... 내일 드리면 안돼요?
주인여자 : 방값? 다 냈는데?
강모 : 예? 울 엄마가 돈이 없을텐데...?
주인여자 : 니네 엄마 말구, 어떤 여자가 다 내구 갔어.
강모 : 누가요?
주인여자 : 누구라고 얼굴에 주민등록증 붙이고 다니니? 얼른 들어가 봐.
강모 : ... (정연을 본다)
정연 : ... (시무룩)
강모 : 오늘, 제 꺼 대신 얘가 잘 게요. (정연에게) 들어가.
정연 : 그럼, 넌?
강모 : 교대루 자던가. (주인에게) 그래두 돼죠? 한 시간씩..!
주인여자 : 그 여자가 니꺼두 냈어.
정연 : 제꺼두요?
미주모 : (E) 강모야..
강모 : ...? (보면)
미주모 : ... (식은땀을 흘리며 벽을 짚고 비틀대며 나온다)
강모 : 엄마, 또 아퍼?
미주모 : 밤 되니깐... 몸살이 또 도지나보네...
강모 : 약은..? 약 남았어?
미주모 : 그보다도... 얼른 미주 찾아 봐... 아까부터 안보여...
강모 : ..!!
씬32. 대합실 안
(급히 들어서는 강모와 정연... 주변을 살피는데 한쪽 구석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강모와 정연이 급히 가보면, 인형을 업은 미주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멋들어지게 춤과 노래를 하고 있다.
‘노란 셔츠의 사나이’을 부르며...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미주 앞에 놓인 털모자에 동전을 던져준다)
사내1 : 너 아주 잘한다... 이미자 노래두 할 줄 아냐?
미주 : (신 나서) 그럼요.
사내 2 : 이번에두 잘하면 오십 원 줄게.
미주 : 정말요? (흠흠, 목청을 다듬더니) 보기만하여도 울렁 생각만하여도 울렁 수줍은 열아홉 살 움트는 첫사랑을 몰라주세요...
(미주,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데 강모가 얼굴이 굳어진 채, 썩 앞으로 나온다)
미주 : (노래를 부르다가, 반가운 마음에) 오빠..!
강모 : 너, 일루 와..! (손을 잡아끈다)
미주 : (얼른 동전이 든 털모자를 챙기고)
씬33. 인근 골목
(강모가 미주의 손을 우악스럽게 잡아끌고 온다)
미주 : 오빠... 손 아퍼... 이거 놔... 오빠아..!
강모 : (팽기치듯 손 놓고) 누가 너보구 구걸하랬어? 니가 거지새끼야? 어?
미주 :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다구?
강모 : 이 기집애가..! (알밤을 먹인다)
미주 : 왜 때려..!
강모 : 너, 한번만 더 동냥질 하면, 그땐 가만 안 둬.
미주 : 그럼, 엄마 아픈데 어뜩해..!
강모 : ..!
미주 : (울먹) 약두 다 떨어지구... 엄마,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어. 젖두 안 나와서 애기두 굶었단 말야. 난 뭐, 좋은 줄 알아?
나두 챙피해서 싫어... 그치만... 엄마까지 죽으면 어떡해. 오빠가 책임질 거야? 엄마... 앙... (울음을 터뜨린다)
강모 : ... (눈물을 참으려고 이를 악무는데)
미주 : 나, 엄마 죽는 거, 싫단 말야... 앙... (운다)
강모 : (미주를 끌어안는다, 눈물 고이고) 이제부턴... 동냥을 해두 내가 할 거야...
아버지도 없고 형이 없으니깐... 내가 다 할 거야... 그러니깐... 다신 그러지 마.
미주 : 오빠아... (끌어안고 운다)
강모 : ... (눈물 흘리는데)
(먼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정연... 눈시울이 붉다)
강모 : 춥다. 들어가자.
미주 : (털모자를 내놓으며) 이거 우리 만두 사가자. 엄마, 만두 좋아하잖아.
강모 : .. (미소) 그래..
(강모와 미주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저만치서 오는 검은 그림자들... 가로등을 사이에 두고 점점 밝아지는데...
강모, 굳어진 채 걸음을 멈춘다. 고재춘과 군무원들이다. 군무원 1이 강모를 알아보고...)
군무원1 : 어? 저 놈..!
재춘 : ..!! 잡아..!
(강모, 미주의 손을 잡고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한다. 미주의 손에 들린 털모자에서 동전들이 와르르 떨어지며 바닥에 흩어진다.
미주 손을 잡은 채 죽어라고 도망치는 강모... 그 뒤를 쫓는 고재춘들...!!)
씬34. 성당 앞
(성모 마리아 상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화려하다. 몇몇 사람들이 성모상 앞의 헌금함에 돈을 넣고 기도를 하고 있고...
급히 도망쳐 오는 강모와 미주... 주변을 살피고는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잠시 뒤, 그 앞까지 쫓아오는 고재춘과 군무원들... 주변을 살피다가...)
재춘 : 각자 흩어져..!!
(고재춘과 군무원들, 사방으로 흩어지며 강모들을 찾는데...)
씬35. 동, 성당 안
(강모와 미주가 조심스럽게 나타나며 주변을 바깥을 살피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미주, 헌금함에 돈을 놓으며 마리아상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듯 보다가...
헝겊 인형을 헌금함에 놓으려다 다시 끌어안는다. 그런 미주를 물끄러미 보는 강모)
씬36. 인근 골목
(정연이 가로등 밑에 흩어져있는 동전들을 줍고 있다. 이때, 정연을 지켜보던 경옥이 나서서 같이 동전 주워주는데...
정연, 다 줍고 일어서면 경옥이 다가와 손을 내민다)
정연 : (잠시 경옥을 빤히 보다가) 고맙습니다. (손을 내미는데)
(경옥, 동전을 올려놓은 손으로 정연의 손을 잡는다. 정연, 이상해서 보면... 슬그머니 손을 놓는 경옥...
정연, 인사를 꾸뻑하고 돌아서서 간다. 경옥, 뭔가 말을 할 듯이... 그러나 차마 말을 못하고 안타깝게 보다가...)
경옥 : 내 딸, 참 이쁘게도 컸네...
씬37. 성당 앞 골목
(조심스럽게 밖을 살피는 강모와 미주... 이때, 정연이 만두봉지를 들고 급히 지나간다)
강모 : (낮게) 야...! 야..!
(정연, 두리번거리다가 강모를 본다. 급히 주변을 살피고 다가온다)
정연 : 아무도 없어. 나와...
강모 : ... (미주 손을 잡고 나온다)
미주 : 언니, 그거 뭐야?
정연 : 만두...
강모 : 너, 돈 없다며?
정연 : 아까 니들이 땅에 흘린 거 주웠어.
미주 : 정말?
강모 : 얼른 가자, 엄마 배고프겠다.
씬38. 여인숙, 방 안
(들어서는 강모와 정연, 미주... 미주모가 보이지 않는다)
미주 : 엄마, 없네?
강모 : ..!! (뭔가 불길해서)
씬39. 전당포 안
(아기를 업은 미주모가 손수건에 싼 한 금붙이들을 꺼내 놓는다. 주인사내가 돋보기를 들이대며 금붙이들을 살피며...)
사내 : 이건 도금이구.. (다른 목걸이를 집어 들며) 이거 하나 쓸 만한데 돈은 별루 안 되겠네요.
미주모 : 오천원두... 안되겠어요?
사내 : 오천원? 예끼 여보쇼. 이것들 다 도로 갖구 가쇼.
미주모 : 그럼 단돈 얼마라도...
사내 : ... (미주모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본다) 그 반지 좀 빼 봐요.
미주모 : 이, 이거요? (머뭇거리다가 뺀다)
사내 : (건네받고, 돋보기로 살피며) 이거 맡기면.. 까짓 거 내, 인심 써서 삼 천원 주리다.
미주모 : ... (아쉽다. 잠시 반지를 보는데)
- 인서트 (1부, 27씬)
(이씨, 미주모의 손을 잡더니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끼워준다)
이씨 : 조금만 참아. 압구정동에 땅값만 뛰면 방 세 칸짜린 충분히 얻을 수 있어.
그땐 우리, 돼지 갈비두 실컷 먹구, 애들 대학두 보내구, 멋지게 살자.
- 전당포 안...
(미주모, 눈물이 고이는데...)
사내 : 맡기기 싫으면 가지고 가요.
미주모 : 돈 주세요.
사내 : ... (장부에 뭔가를 적는데)
미주모 : ... (침울하게) 여기, 서울로 가는 차편 좀 구할 수 있어요?
사내 : (적으며) 터미널 가면 발에 차이는 게 서울 가는 버스요.
미주모 : 버스나 기차 말구요.
사내 : ... (본다)
미주모 : ... (고개 떨구면)
사내 : (다시 적으며) 요 앞 목재소에서, 매일 아침마다 목재 싣고 서울로 가니까 거기다가 말해 봐요.
미주모 : ....
씬40. 여인숙, 방안
(여자들 몇 명이 잠들어 있고... 미주가 만두를 품에 안고 정연과 나란히 벽에 기대 앉아 있다)
정연 : 엄마꺼 남기구, 우리 그 만두 먹을래?
미주 : (얼른 품어 안으며) 안돼. 엄마하구 같이 먹어야 돼.
정연 : ...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배고프고)
미주 : ... (침을 삼키고 잠시 만두봉지 안을 들여다보다가) 그럼... 우리 딱 한 개만 먹을까?
정연 : 그래, 딱 한 개씩만 먹자.
(미주, 망설이다가 만두 하나를 꺼내서 정연에게 건넨다. 정연, 맛나게 만두를 베어 먹기 시작한다.
미주, 자기 것도 하나 꺼내서 먹으려다가 또다시 망설인다)
정연 : 얼른 먹어 봐. 아직 다 안 식었어.
미주 : ... (확 베어 물려다가 다시 멈짓)
정연 : 괜찮아, 먹어보래두. (오물오물 먹는데)
(미주, 먹을까 말까 망설인다. 침을 삼키더니 만두를 도로 봉지 안에 넣는다)
정연 : 안 먹어?
미주 : 응... (시무룩) 엄마 오면 같이 먹을 거야.
정연 : ... (먹다가 멈춘다, 잠시 미주를 보는데)
미주 : ... (먹고 싶은 것을 꾸욱 참으며)
정연 : 넌 좋겠다.
미주 : 왜?
정연 :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미주 : 언니는 엄마 없어?
정연 : ... (눈물이 고인다. 남은 만두를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씬41. 동, 복도
(강모가 쭈그려 앉아 있는데 미주모가 아기를 업은 채 들어선다)
강모 : 엄마..! 어디 갔다 왔어? 걱정했잖아.
미주모 : (다가오고) 미주는?
강모 : 방에...
미주모 : (돈이 든 봉투를 건넨다) 이 돈, 강모 니가 갖고 있어.
강모 : 돈.. 어디서 났어?
미주모 : ... (대답대신) 내일 우리 서울로 갈 거야.
강모 : 뭐 타구?
미주모 : 트럭타구... 역 앞에서 출발할 거니까 오늘 일찍 자.
강모 : 약은...? 엄마 약 먹었어?
미주모 : ... (본다)
강모 : 잠깐 기다려. 내가 얼른 가서 약 사올게. (나가려는데)
미주모 : ..! (덥석 껴안는다)
강모 : 엄마...
미주모 : (안은 채) 이제 아프지두 않을 거야. 약속할게. 서울만 가면, 이 엄마가 다신 니들, 이런 고생 안 시킬게.
강모 : ... (껴안은 채)
씬42. 대전 경찰서 앞 (그 밤)
(‘대전 경찰서’ 입간판이 매달려 있다)
씬43. 동, 경찰서 안
(황태섭이 반장쯤의 사내가 얘기중이다. 고재춘과 주영국이 뒤 쪽에 있고..)
태섭 : 황정연이라구... (사진을 건네며) 이 아입니다.
반장 : (사진을 건성으로 보고는) 알았습니다. 내일 아침에 찾아볼게요.
태섭 : 오늘밤에 어디서 노숙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좀 찾아 주세요.
반장 : 곧 통금입니다. 여기 숙직 인원도 별루 없구요.
태섭 : (발끈) 그럼? 애가 길바닥에서 얼어 죽든 말든 상관 안합니까? 무슨 경찰이 이래?
영국 : ... (만류하며) 황사장...
반장 : 당신 지금 어디서 행패야?
태섭 : 행패라니? 남은 애가 없어져서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데,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게 경찰이야?
반장 : (다른 경찰들에게) 이 사람들, 내보내.
경찰들 : (다가오려는데)
재춘 : 잠깐..! (앞에 나선다, 신분증을 건네면)
반장 : 뭐요, 이게? (신분증 보고는, 공손) 보안대에서 나오셨습니까?
재춘 : 좀 번거롭겠지만, 지금 당장 아이를 찾아 주십시오.
반장 : 아, 예... 그러겠습니다. (경찰에게) 순찰차 운행준비 해.
경찰 : 예, 반장님.
씬44. 여인숙, 방안
(평소보다 손님이 적게 들어 있어서 빈자리가 듬성듬성 한 방안... 정연이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아기가 시끄럽게 울고 있고....
미주모가 식은땀을 흘리며 연신 달래보지만 그칠 기미가 없다. 미주, 그 옆에서 잠든 채...)
미주모 : 아가.. 젖 줄까? 어? 아가.. (얼러보지만)
여자1 : 어휴 시끄러서 잠을 못자겠네.
여자2 : 좀 데리구 나간든가 어뜩해 좀 해 봐요.
여자3 : 여인숙 방 전세 낸 것두 아니구, 너무하네, 증말...
미주모 : 미안합니다. 아가... 아가, 뚝...
(이때, 강모가 들어선다)
강모 : 엄마, 아기 내가 데려갈게.
미주모 : 그 방두 마찬가지야. 어서 가서 자.
강모 : (아기를 안으며) 내가 재울 테니깐... 엄만 그냥 자.
미주모 : 괜찮대두.
미주 : (잠에서 깨어나며) 엄마... 나, 오줌 마려.
강모 : 혼자 갔다 와.
미주 : 싫어, 여기 변소 무섭단 말야.
강모 : .. (보다가) 미주, 오줌 뉘구, 나하구 같이 잘게, 엄마. (미주에게) 얼른 나와.
(강모, 아기를 안은 채 미주를 데리고 나간다. 미주모, 보는데...
정연, 억지로 눈을 감아보는데...)
씬45. 여관 앞 (그 밤)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비닐우산을 쓰고 있는 경옥, 추위에 오돌 오돌 떨고 있다가 뭔가 작심한 듯 우산 접고 여관으로 들어가고...)
씬46. 동 안, 카운터
주인여자 : (졸다가) 어서 오세.. (하다가 경옥을 알아보고) 또 왔수?
경옥 : (돈을 내며) 방 너무 춥드라... 오늘 연탄 좀 아끼지 말고 때요.
주인여자 : 오늘따라 손님두 없어서 죽겠구만... 연탄 값이 얼만데.
경옥 : 연탄 값 주면 되잖아요. (천 원짜리 두 장을 건넨다)
주인여자 : (좋아서) 이렇게나 많이?
경옥 : 불문 확 열어서 절절 끓게 만들지 않으면 아예 불을 싸질러 버릴 테니깐 그런 줄 아세요. (들어간다)
주인여자 : 저, 저... 말하는 싸가지 하구는... (천 원짜리 집어 들고, 좋아서) 어휴, 이거면 연탄이 대체 몇 장이야?
씬47. 동 방 안
(모두들 잠이 든 방안... 조심스럽게 들어서는 경옥... 잠이 든 정연 옆으로 간다.
지갑을 꺼내서 정연이 덥고 있는 외투 주머니에 넣어주고는 잠시 물끄러미 보다가... 막 돌아 나오려는데...)
정연 : ... (잠꼬대) 엄마... 가지 마, 엄마... 가지마...
(경옥, 잠시 망설이다 겉옷을 벗고 정연 옆에 눕는 경옥... 정연, 경옥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그런 정연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지려는데... 정연, 끄응 소리를 내며 돌아눕는다. 얼른 손을 떼는 경옥...
잠시, 정연의 뒷모습을 보다가 뒤에서 살며시 안아본다. 그 체취와 체온을 느끼고 싶은 듯이 정연의 등에 가만히 얼굴을 대는데...)
경옥 : (E, 마음의 소리) 오늘만... 오늘만 니 옆에서 자구 다신 널 찾지 않을게... 정연아, 넌 나처럼 못난 사람 되면 절대 안 돼.
그러니까... (눈물이 고여 오기 시작한다) 다신 나 찾지두 말구... 보고 싶어 하지두 말구... 그냥 세상에 없다구 생각 해.
이 엄만, 너한테 아무것도 해 줄 게 없어.
정연 : ... (잠이 든 채)
경옥 : (오열하듯, 마음의 소리) 잘못했어. 정연아... 나 용서하지 마... 정연아... 내 이쁜 딸아... (안고 숨죽여 흐느낀다)
씬48. 여인숙, 부엌
(아궁이를 열어 연탄집개로 연탄을 넣는 주인여자... 검은 연기가 풀풀 난다)
주인여자 : (콜록거리며) 굴뚝 청소를 해야 할래나... 아궁이가 왜 이렇게 시원찮어?
씬49. 강모네 집 방안 (강모의 꿈)
(잠이 든 강모의 얼굴에서...)
미주모 (E) : 강모야... 이강모.... 얼른 일어나...
(강모, 부스스 잠에서 깨면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가득하다.
그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며 미주모가 환하게 웃으며 강모를 깨운다.
강모, 눈이 부신 듯 찌푸리고 보면, 곱게 화장한 미주모가 화사한 옷차림에 멋들어진 모자까지 쓰고 강모를 보고 있다)
강모 : (눈을 비비며) 엄마...
미주모 :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 지금이 몇신데.
강모 : 엄마... 어디 가?
미주모 : (좋아서 환하게 웃으며) 응, 니 아빠 만나러.
강모 : 아빠?
미주모 : 아빠가 엄마한테 오늘 데이트 신청했다?
강모 : 데이트?
미주모 : 오늘 아빠하구, 영화두 보구 맛있는 것두 사먹구 실컷 놀 거야.
강모 : 우리만 남기구 엄마 아빠만 가는 거야?
미주모 : (귀엽다고, 흘겨보며) 언제까지 어린애 시늉 할 건데? 니가 미주 밥두 챙겨 먹이구, 집 청소두 하구 그래야지.
강모 : 언제 올 건데?
미주모 : ... (미소 지으며 보다가) 강모야... 이 엄만, 세상에서 강모 널 제일 믿어. 우리 강모는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강모 : ...
미주모 : 엄마가 늘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 절대 기죽지 말구, 씩씩하게 살아야 돼. 엄마하구 약속할 수 있지?
강모 : (이상해서) 엄마..?
미주모 : 동생들 잘 돌보구... 무슨 일이 있어두 절대 울지 말구... 알았지? 엄만 너만 믿구 간다?
강모 : ...? 엄마..!
(미주모, 햇살 속으로 점점 사라진다. 강모, 엄마..! 를 애타게 부르며...)
씬50. 여인숙, 남자 방
(강모, 엄마..! 부르다가 잠에서 깨어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강모... 진땀이 흥건하다.
미주와 갓난아기가 잠들어 있고.. 몇 몇 사내들이 자고 있는 방안...
강모, 기분이 이상한 듯 밖으로 나가는데...)
씬51. 동, 여자 방
(카메라가 갈라진 벽 틈새를 훑고 주욱 훑고 지나간다. 미주모가 잔기침을 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그 옆으로 정연과 경옥, 다른 여자들이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 연탄가스가 새는 중이다.
경옥, 의식이 조금 있는 듯 겨우 눈을 뜨며 정연을 흔들어 깨운다)
경옥 : 정연아... 일어나.... 정연아... 어서... 어서 일어나...
(비몽사몽, 눈을 뜨고 몸을 뒤척이는 정연... 기침을 하며 엉금엉금 문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한다.
경옥,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의식을 잃고... 그 옆자리.. 죽은 듯이 누워있는 미주모...)
씬52. 동 밖, 복도
(걸어오는 강모... 잠시 여자 방에서 들어갈까 망설이다가... 도로 걸어 나오려는데 문이 열리며 정연이 기어 나온다.
강모, 정연을 보고 놀라는데, 정연, 그대로 엎드린 채 의식을 잃고... 강모, 방으로 뛰어들며)
씬53. 동 방안
강모 : (뛰어들며) 엄마..! 엄마..!!
씬54. 여인숙 골목 (그 밤)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 겨울비...
경광들을 번뜩이며 서 있는 경찰차들과 엠블런스들이 골목을 메우고 있고... 남자 방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고...
소방대원들의 들것에 실려 나오는 시신들... 정연과 경옥에 이어서 미주모가 들것에 실려 나온다.
한쪽에 있던 강모가 울부짖으며 달려드는데 경찰들이 잡아 말린다. 그 뒤에서 미주가 엉엉 울고 있고... 발악하듯 울부짖는 강모...
미주모가 엠블런스에 실리고... 그 모든 풍경 속에 소리가 없다. 오직 비에 젖은 화면으로만...)
씬55. 골목 저편
(황태섭이 다가오고 있다. 엠블런스가 요란한 사이렌소리를 울리며 황태섭들 쪽으로 다가온다.
황태섭, 비켜서면 경찰차와 함께 지나가는 엠블런스... 그 뒤를 쫓다가 넘어져서 울부짖는 강모가 보인다)
강모 : 엄마..!! 엄마..!!
(황태섭, 뭔 일인가 보는데 주영국이 골목 쪽에서 다가온다)
태섭 : 무슨 일이야?
영국 : 연탄가스 사고야.
태섭 : ...? (여인숙 간판을 본다)
씬56. 여인숙 방 안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미는 황태섭... 아무도 없는 방안...
문을 닫으려는데 방구석에 외투 하나가 떨어져 있다.
황태섭, 얼른 들어가서 옷을 들고 보더니 주머니를 뒤지는데 빨간 지갑이 나온다)
태섭 : 이게 뭐야? 이게 왜 여깄어? 이런 젠장..!! (울상으로 뛰어나간다)
씬57. 병원 안, 복도
(들것에 실린 환자들이 응급실로 향하고 있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동분서주 분주한 분위기...
아기를 업은 강모가 미주 손을 잡고 들어선다. 강모,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는데...)
미주 : 엄마다..! 엄마...!
(이동침대에 실려서 지나가는 미주모의 모습... 미주가, 엄마아..! 부르며 달려가려는데 강모가 급히 손으로 막는다.
응급실 문 앞에 서성이고 있는 고재춘과 군무원들....
강모, 얼른 미주 손을 잡아끌고 몸을 숨기며 본다.
그 일각, 고재춘이 의사와 뭔가를 이야기 하더니 얼굴을 확인한다)
의사 : 맞습니까?
고재춘 : ... (군무원1을 보면)
군무원1 : .. (고개를 끄덕이고)
고재춘 : 우리가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사 : 다행이군요.
(의사가 흰 천으로 미주모의 얼굴을 천천히 덮는다. 일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강모의 표정이 강렬해진다.)
강모 : 엄마.. (눈물 고인다)
미주 : (뛰어 나가려는데)
강모 : ..! (잡는다)
미주 : 놔..! 엄마.. 엄마...!!
강모 : (눈물 쓱 훔쳐내며, 미주 손을 잡아끌고, 독하게) 얼른 여기서 나가.
미주 : 놔... 엄마 볼 거야.
강모 : 빨리 나오래니깐..! (잡아끌고 나온다)
(이때, 맞은 편 문이 열리며 황태섭과 주영국이 급히 뛰어온다.
강모, 황태섭과 지나치며 미주 손을 잡아끌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씬58. 어느 골목
(비가 그쳐있다. 아기를 등에 업은 강모가 미주 손을 잡아끌고 오는 중이다)
미주 : 왜 이래..! 엄마 볼 거란 말야..! 엄마 보게 해줘..!
강모 : (어깨를 잡고, 모질게) 오빠 말 잘 들어. 엄마... (말하려다가)
미주 : ... (눈물 그렁한 채 본다)
강모 : 엄마... 돌아가셨어.. 죽었다구..! 그러니깐 이제 그만 찾아.
미주 : 거짓말...
강모 : 진짜야, 이 멍청아..! 엄마, 이제 세상에 없어, 알아?
미주 : 아냐..! 엄마 안 죽었어. 오빤 거짓말쟁이야..! (뛰어간다)
강모 : 미주야..! 야, 이미주..!! (쫓아가는데)
씬59. 모퉁이 성당 앞
(강모가 미주를 부르며 막 길 모퉁이를 접어드는데... 성당 앞 성모 마리아... 그 앞에 헌금함이 놓여 있고...
미주가 물끄러미 성모마리아를 바라보다가 통 안에 자신의 헝겊인형을 내려놓는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고...
물끄러미 미주를 보는 강모...)
미주 : 하나님... 제가 제일 아끼는 인형 드릴게요. 그러니까 울 엄마 다시 살아나게 해주세요.
엄마 말 잘 듣구, 오빠 말 두 잘 듣구... 밤에 양치하구 자구.... 주일마다 매일 매일 교회 나갈 게요.
하나님... 제발, 울 엄마 좀 다시 살아나게 해주세요, 네? 하나님...
(강모, 다가와서 미주를 일으켜 세운다)
강모 : 너, 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어..! 엄마, 죽었다니깐? 죽었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나, 이 바보, 천치야..!
미주 : 오빠가 더 바보야..! 죽었으니까... 다시 살려 달라구 기도해야지..!
강모 : 뭐?
미주 : 엄마가 그랬단 말야... 하나님은 뭐든 다 들어주신다구...
(무릎 꿇고 기도한다) 하나님... 울 엄마.. 제발 울 엄마 살려주세요. 네? 하나님..
강모 : ... (물끄러미 십자가를 본다, 눈물 고여 오고)
미주 : 엄마... (기도하며 우는데)
강모 : 왜 데려갔어요? 아부지두 모자라서... 울 엄마까지 왜 데려갔어요? 살려내요... 불쌍한 울 엄마, 살려내라구요..!
우리한테, 도로 보내 달라구요..!! (무릎 꿇고 엉엉 운다)
미주 : (울면서) 오빠아...
강모 : (울부짖는다) 왜 데려갔냐구요..! 울 엄마 다시 살려 내란 말예요..!!
미주 : (강모를 껴안으며, 울음) 오빠아...
강모 : 엄마... 엄마...!! (엉엉 우는데)
(성모 마리아상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두 아이의 모습이 길게...)
씬60. 병원 응급실
(흰 천을 덮은 시신들이 누워 있는 응급실 안...
정연이 침대에 누워 있고, 그 옆에 황태섭이 정연의 손을 잡고 있다. 주영국이 지켜보고 있고...
서서히 눈을 뜨는 정연...)
태섭 : 정연아? 정신이 드니? 어?
정연 : 아빠...
태섭 : 그래, 아빠다... 아빠가 왔으니까,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주영국에게) 얼른 엠블란스 섭외해서 서울로 이송할 준비 좀 해 줘.
영국 : 알겠네. (나간다)
정연 : 꿈속에서... 누가 날 막 깨웠어요... 내 이름을 부르면서... 어서 일어나라고....
태섭 : (속상해서) 그러기에 왜 함부로 집을 나가. 여기가 어디라구...
정연 : ...
태섭 : 니 엄만...? 만나봤니?
정연 : ... (고개를 가로젓는다)
태섭 : ... (한숨) 너,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어?
정연 : ... (고개 끄덕인다, 눈물 고이고)
태섭 : 너, 다 나으면... 아빠가 니 엄마 만나게 해줄게.
정연 : 정말요..?
태섭 : 그래... 대신, 얼른 나아야 돼.
(이때, 건너편 침대 쪽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들을 체크하며....)
의사 : 이 사람, 가족은?
간호사 : 아직 없습니다.
(이때, 황태섭의 시선에 들어오는 경옥의 얼굴... 황태섭, 표정이 굳어지며 천천히 다가온다. 놀란 듯이 경옥을 보는데...)
의사 : 아는 사람입니까?
태섭 : 주, 죽었습니까?
의사 :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태섭 : .... (멍해져서 정연 쪽을 돌아본다)
정연 : ... (표정 없이 황태섭 쪽을 보고 있다)
씬61. 병원 밖, 일각
(황태섭이 소주병을 든 채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태섭 : (두 눈이 벌개진 채) 천하에 몹쓸 년... 지지리 복두 없으면 명줄이라 두 길던가...
죽을 데가 없어서 지 에미 보고 싶어서 안달 난 딸년 앞에서 죽어? 에이, 미련하고 고약한 년.. (술을 벌컥벌컥 마신다)
아니, 어차피 죽을 거면, 지 딸년, 실컷 안아보고 죽던가...
엄마 소리 한번 듣구 싶어서... 무덤 속에서 어떻게 눈을 감을려구... 에라이, 우라질 년 같으니... (훌쩍거린다)
(이때, 주영국이 다가온다. 황태섭, 눈물을 훔쳐내고 일어서면..)
영국 : 엠블런스, 곧 출발하네.
태섭 : 수고스럽겠지만, 자네 부산에 좀 내려갔다 와.
영국 : 부산엔, 왜?
태섭 : 친구가 죽었는데, 그 집 식구들이 어떻게 됐는지 한번 알아 봐. (메모지 건네며) 여기, 그 집 주소야.
영국 : (받는다)
태섭 : 혹시, 그 집 가족들 만나면, 나한테 지체 없이 연락해 줘.
씬62. 응급실 안
(의식을 잃었던 경옥이 기침을 터뜨린다. 간호사가 그 모습을 보고...)
간호사 : 여기 좀 와보세요?
의사 : (급히 다가가서 살핀다) 얼른 맥박 체크하고, 체온 유지시켜.
경옥 : (신음하듯) 정연아.. 저, 정연아..
씬63. 미팔군, 영내 (아침)
(경운기에 성모와 카투사 병이 잔밥이 가득 든 드럼통을 싣기 위해 들어 올리고 있다.
이때, 지프차 한대가 와서 선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면 소령 계급장의 조필연이 타고 있다)
필연 : 여기 한국군 지원단이 어딘가?
카투사 : 안쪽으로 쭉 들어가시면 맨 끝 건물입니다.
(천천히 출발하는 지프차. 이때, 막 드럼통을 실은 성모, 뒤돌아보는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