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복음 22:43-44) 순간 죽음의 공포가 예수를 짓누른다. 감람산만 넘어가면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유대광야가 펼쳐진다. 그러나 주님은 감람산 기슭에서 걸음을 멈추셨다
감람산 정상에서부터 기념교회들을 방문하며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기념교회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 들르면 세 번 놀라게 되는데, 첫째는 우리가 상상했던 겟세마네 동산의 모습과 달라서 놀라고, 다음은 이곳을 지키고 있는 감람나무 때문에 놀라며, 세 번째는 예수님 때문에 놀란다.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곳을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말 성경이 ‘동산’이란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요18:1). 그래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생각할 때 언제나 조그마한 동산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본래 신약성경은 감람나무가 많은 산(감람산), 감람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는 곳(겟세마네), 감람나무가 많은 숲(감람나무 숲)이라고 말했지 동산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동산이라고 번역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곳에 가보면, 동산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감람나무들이 있는 산기슭일 뿐이다.
겟세마네 기념교회 정원에 있는 감람 나무
철문을 지나 담장 안으로 들어서면, 수령이 꽤 오래돼 보이는 감람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곳에 있는 나무의 수령에 대하여 안내하는 사람마다, 책자마다 2000년 혹은 1700년으로 서로 다르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정확한 나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싶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감람나무 아래에서 기도하셨다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감동은 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예수님이 이곳 어디에서, 또는 이 지역에 있었던 감람나무 아래에서 기도하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우리 눈앞에 서 있는 이 나무들은 아니다. 요세프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주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유실수를 잘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지금 고목이 되어버린 감람나무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하셨던 모습을 지켜본 그 나무의 후손들이라고 볼 수는 있겠다.
겟세마네 기념교회 내부
감람나무 숲을 바라보며 담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기념교회가 서 있다. 주후 385년경, 이곳에 순례 왔던 이게리아(Egeria)가 ‘우아한 교회’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최초의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614년 페르시아군과 8세기에 있었던 지진으로 이 교회는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았다. 이후 십자군들은 이곳에 다시 기념교회를 지었으나 이도 역시 얼마 가지 못해 파괴되어 버렸고, 1924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교회가 다시 완성되게 된 것이다.
이 교회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겟세마네라고 불리는 장소에 세워졌다 해서 ‘겟세마네 기념교회’로 불린다. 여러 나라에서 모금한 헌금으로 지어졌다 해서 ‘만국교회(Church of all Nation)’라고도 불리며, 예수님께서 슬픔과 고뇌 가운데 기도하신 곳이라 해서 ‘슬픔의 교회’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이 교회의 내부는 어둡고 창문마저 어두운 색깔의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졌다. 교회 정면에는 이 장소의 의미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강단 앞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나지막한 조명에 의지해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는 주님의 고난을 상징이라도 하듯 쇠로 만든 가시 면류관이 둘려 있고, 그 모서리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있다.
기념교회 내부에는 한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침묵만이 흐르는 곳이다. 오로지 예수님만 생각하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모습만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오로지 그때, 이곳에 있었던 진실만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날 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안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셨다(눅22:10). 식사를 마치고 감람산을 향해 제자들에 앞서 걸어가신다. 기드론 골짜기를 오르다 보면, 압살롬의 무덤을 비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달빛에 어렴풋이 비치는 무덤을 보는 순간, 성안에서 검과 몽치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살기가 스쳐 지나간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예수를 짓누른다. 압살롬을 피해 다윗이 눈물을 흘리며 넘었던 이 감람산만 넘는다면,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유대광야가 펼쳐진다. 이제 이 고개만 넘으면 죽음의 공포로부터 피할 기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감람산 기슭에서 걸음을 멈추셨다(막14:26, 32). 그리고 제자들로부터 몇 발짝 떨어져 기도하기 시작하신다. 주님은 그때의 심정을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을 지경이라’고 고백하셨다(막14:34). 누가는 ‘예수님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었다’고 증언한다(눅22:44).
겟세마네 기념교회 내부에 있는 예수님이 기도하셨다고 전해지는 바위
마태는 감람나무 숲속에서 벌어진 그 밤의 사건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마26:37-45)”
감람산만 넘으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무엇이 주님의 발길을 이곳에 멈추고 기도하게 만드셨을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목적에 이끌리는 삶’이 아니었겠는가? 명예나, 권력이었다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감람산을 넘지 않았겠는가?
겟세마네
마지막 식사 후 주님이 제자들과 기도하신 곳(마26:36-42, 막14:32-42, 눅22:39-46)
예수님이 잡히신 장소(마26:47-56, 막14:43-50, 눅22:47-53, 요18:3-12)
기드론 골짜기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브람이 소돔 왕과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남(창14:17-18)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도망함(삼하15:23)
압살롬이 예루살렘의 왕의 골짜기에 자기를 위해서 비석을 세움(삼하18:18)
유다의 아사 왕은 우상을 섬기던 어머니를 폐하고 우상들을 불사름(왕상15:13)
유다의 요시아 왕은 성전의 모든 우상들을 기드론 밭에서 불사름(왕하23:4-12)
이게리아(Egeria)
이게리아는 주후 4세기 초 스페인에 살았던 경건한 여자 성도였다.
그녀는 381~384년경에 평생소원이던 성지순례를 했으며 그 경험을 자세한 기록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