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외출 중
진해경찰서 충무지구대
경위 박종득
해를 닮고 싶은 해바라기가 종일토록 해만 바라보고 도는 모습이 민생을 위해 쫓아다니는 경찰관의 모습과 닮아있다.
나는 지난 2월에 현재 근무 중인 진해경찰서 충무지구대 순찰1팀으로 근무 명령을 받았다. 1983년 해양경찰을 거쳐 경남지방경찰청에서 2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경찰업무를 지원하는 정보통신 분야에 근무하다, 외근근무는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기만 했다. ‘주주주 야비야비야비’직원들 사이에 무슨 주술처럼 말하던 근무형태, 생전 처음 접해보는 근무환경은 나의 삶뿐만 아니라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기 시작했다. 밤 근무를 하고 난 뒤 낮에 잠을 자는 게 습관화 되지 않아 적응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신고 출동 무전을 받고 현장으로 가는 짧은 시간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찬다. 익숙하지 않은 법을 어떻게 의율 할 것인지 현장의 상태와 위해요소는 없는지 갖가지의 상황을 그리며 3분 이내 도착을 되뇌며 달려간다.
발령 받은 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주말, 낮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진해시 태백동 소재 성광교회 후문 쪽에 길 잃은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도착보고를 하고 순찰차에서 내려 보니 대략 80-90세 가량 아주 작은 체구의 할머니였다. 물기 빠지고 빛바래어 바람에 휘청거리는 늦가을 풀처럼 버석거릴 것 같은 모습에 훗날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이름과 사는 곳 등 간단한 것을 물었으나 말이 없으셨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순찰차가 도착하자 불안감으로 어쩔 줄 모르시는 것 같아 우선 순찰차를 저만치 보내고 근무모도 벗고 나니 그제야 안도하시는 모습을 보였다. 신고자로부터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것 같고 저기 아래 골목에서 올라 오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인상착의 등을 상세하게 무전으로 보고 했다. 145센티미터 정도의 키, 백발의 짧은 머리, 회색긴팔 꽃무늬 셔츠,
검정줄무늬 몸빼, 흰 양말에 플라스틱 슬리퍼…… 삭정이 같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음을 안정시킨 뒤 할머니의 집과 보호자를 찾아 주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총동원했다.
“할머니 어느 쪽에서 오셨습니까?”
신고자가 알려준 골목길을 향하는데 꼭 손을 잡은 할머니는 그림자처럼 따라 걸었다. 골목길이 끝나니 철길이 나타났다. 어느 쪽에서 오셨는지 물으니 눈만 빤히 바라보셔서 오른쪽 방향은 집이 없는 곳이고, 왼쪽은 철길 따라 다닥다닥 집들이 늘어서 있어 나도 모르게 왼쪽 길을 선택 했다. 할머니가 과연 이 자갈 깔린 철길을 오실 수 있었을까. 잡고 가는 할머니 손을 살펴보니 궂은일을 한 흔적이 화석처럼 박혀 있었다. 젊은 시절 이 정도의 철길은 쌩하니 바람처럼 다녔으리라. ‘시간은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구나’라는 생각이 따가운 햇볕을 비껴 지나간다. 철길을 따라 걷다가 철길 옆 텃밭에서 일을 하시는 할머니께
“ 할머니 혹시 이 할머니 어디 사시는지 아십니까?”라고 물으니
“중앙 시장에서 두어 번 본 것 같은데……”
그 때 길 건너 문 앞에 서 계시던 다른 할머니 한분이
“아 - 그 할매 경화 시장에 자주 보이던 할매아이가”라고 하신다.
참 난감했다. 현재 장소에서 중앙시장과 경화시장은 각각 반대 방향에 있으니 말이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혹 보호자가 찾으면 경찰이 모시고 갔다고 112로 신고 좀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가는 동안, 지구대에서는 경찰서, 인근 지구대, 시내 각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 등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20여분이 흘렀고 할머니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못 찾는 건 아닐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지구대로 모시고 갈 것을 잘 못했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동네를 헤집고 다니다 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할머니 젊었을 때 차암 이뻤것다. 내말이 맞제 할매?”
굳은 표정이 차츰 사라지더니 수줍은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이름과 가족들이 있는지, 손녀 손자도 있는지 날이 참 따시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누가 봐도 어머니와 아들관계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또 한번 콧잔등이 찡해져 왔다. 순간 할머니는 아련한 기억 저 너머의 낱말이 허공에 맴을 돈 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되물으니 ‘ 황00 ’라고 30대 후반의 딸을 찾는다. 즉시 지구대에 무전 연락하여 조회를 하였으나 진해와 경남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답이 왔다. 한낮의 열기로 이미 기운은 빠져 있었지만 한 가닥의 희망이 있었기에 지치는 줄도 모르고 맴을 돌았는데……
할머니의 기억이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30분 쯤 걸었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며
“내 집에 갈란다”
고 또록또록하게 말씀을 하신다. 집에 가야 한다며 손을 놓으란다.
“저게가 우리 집이다.”
“ 인자 내가 갈 줄 알것다”
나보고 그냥 가란다. 외출했던 기억이 돌아온 것이다. 모시다 드린다고 했으나 한사코 손놓고 혼자 가시겠단다.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 집 나간 것을 딸이 알모 난리가 날끼다”고 하시며 제발 그냥 가 달란다. 이름을 물으니 입을 다물고 말을 하시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몇 발짝 떨어져 따라 걷는데 자꾸 그냥 가란다.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한길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고. 횡단보도 건너가 집이라는 할머니를 횡단보도만 건너 드리겠다고 이야기 하는 모습을 길 건너편에서 몇 시간째 애타게 엄마를 찾아다니던 딸이 본 것이다. 할머니를 안심 시키고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 딸에게 할머니를 인계하니.
“ 왜 나가지 말라고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또 나갔노”
호되게 할머니를 나무라는 딸의 눈이 젖어 있었다. 딸에게는 할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해서 그냥(?) 안전하게 건너 드리려고 할머니랑 함께 서 있었다고 이야기 하니 굳었던 할머니의 얼굴이 그제 사 안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딸이 가게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모자라는 잠을 자는 사이 할머니는 햇빛을 따라 먼 길가는 연습을 하러 나오셨나보다.
형광등 불빛처럼 깜빡거리는 기억.
마음이 안정되면 치매로 외출 했던 기억도 돌아오는 가 보다.
이청준 선생의 <할머니는 봄을 세는 술래란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깜박이는 저 길이 할머니만의 길이 아닐 터인데……
아직은 모두에게 남의 길이며 낯선 길이다.
멀리 하늘이 나를 본다.
수필 쓰시는 선생님 글좀 맹글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의무방어전처럼 꼭 내라 카는데 답답해서 올려 놨습니다....
9월 28일날 제출할 건데 그 사이 많이 좀 수정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가락방 모임은 맨날 근무날이 되서 참석 못해 죄송합니다...
첫댓글 코끝이 찡하니 갑자기 시골 엄마 생각에 목이 잠깁니다 선배님의 성품과 참 잘 맞는 직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 감히 해 보았습니다
너무 감동적입니다. 고치고 말고가 없습니다. 꾸밈없이 쓰신 글이라 더 감동적입니다. 고치지 마세요. 그냥으로도 명작입니다. 초림 님은 시만 잘 쓰시는 게 아니고 산문에도 아주 능하십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동 억시기 먹고 갑니다.
가슴 찡하게 닿으면 좋은글 아닌가요^^*
글 속에 진실과 현장감 살가운 사람 냄새 풍기니 고치면 시체되고 말 것이다. 산 채로 보내는 게 좋겠다. 수필로 개업하면 어떨꼬?
감동 감동! 수고 많소.기왕 올 바에는 나 있을 때 좀 오지... '낡은 형광등 처럼 깜박거리는 기억 정도로' 수정하면 될 듯
좋네요. 좋은 내용 못지않게 정확한 표현(어법 문법 통사 등)이 되어야 전달력은 물론 울림도 따라올 것이 아닌가 하는 내 생각. 여정이 지적한 것을 참고했으면 해요. 시제관계의 지적은 적절하네요./갖가지 상황을 그리며 ..도착을 되뇌며/이 표현에서 ..도착이란 말에 쫓기듯 달려간다/로 변화를 주면 어떨까?/낮근무를 주간 근무로 하면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을까?/후문 쪽에를 후문 근처에는 어떨까/삭정이 같은으로 시작되는 문장 호흡이 길어선가 연결이 부자연스어워 두 문장으로 나눴으면/풀처럼 버석거릴 것 같았다. 살갗은 건조하여 물기를 찾아보기 어렵고 여린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서리가을 풀처럼 빛이 바랜../몸빼는 '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