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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바이칼 기행
일시:2011년 7월 2일 토요일~7일 목요일
여행지: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리스트비얀카, 바이칼, 알혼섬
2011년 7월 2일 토요일 인천 공항 출발
* 인천 공항 출발
오후 8시 35분 대한항공 KE 983항공이다. 요즘 장맛비가 내리더니 어제부터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조금 일찍 공항에 갔다. 정시에 이륙했다. 지상은 안개가 자욱한데 비행기는 힘차게 차오른다. 기장의 안내방송이 나온다. 목적지인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공항의 현재 온도는 25도이며, 시차는 없어서 우리나라와 동일한 시각이라고 알려준다. 시베리아 바이칼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어서 기대되는 여정이다.
2011년 7월 3일 일요일 이르쿠츠크 공항 도착, 리스트비얀카 바이칼 유람선
* 이르쿠츠크 공항 도착
기내식으로 석식을 마치고 조금 눈을 붙이려 하니 도착했다. 비행시간이 4시간 소요되는 곳이라서 빨리 날아왔다. 이르쿠츠크 도시의 불빛 야경이 보이고 곧 착륙했다. 정시인 밤 12시 50분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입국수속 시간이 길다. 컴퓨터 시스템 발달 미비로 상당히 지연된다. 현지 온도는 17도, 포근하다. 수색견까지 끌고 나와서 검색한다. 1시간이 지나서야 입국 수속을 마쳤다. 아담한 공항이다. 45인승 대형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여행인원은 26명이다.
러시아는 한 템포 느려야 편안한 여정인 곳이다. 올수록 아름다운 여행지라고 소개한다. 현지 가이드는 한국의 교환학생 청년이다. 지하에 매설시설이 없어 수도 시설이 미비한 곳이란다. 바이칼 주변에는 지진이 1년에 2천번 정도 일어나서 지하의 시설을 설치할 수 없단다. 25분 정도 달려서 숲속 욜로츠카 통나무집의 숙소에 왔다. 내일 아침은 7시 모닝콜, 8시 조식, 9시 출발이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문화의 보물창고로 여기는 곳이다. 시베리아는 아직도 신비한 곳으로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현대인들의 문화와 전통과 습관에 전혀 물들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 여행지다. 내일 첫 일정은 이르쿠츠크에서 동남쪽으로 70Km 거리의 리스트비얀카로 간다. 향기로운 러시아의 전통 가옥 통나무집에서 여정을 풀고 가슴 설레이며 고운 잠자리에 들었다.
* 욜로츠카 통나무집
어젯밤 4시경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났다. 그래도 온통 나무로 지은 집이어서인지 기분이 상쾌하다. 커튼을 열고 밖을 보니 똑같은 통나무집 숙소가 있고 주변에는 온통 식물이 자라고 있다. 아주 큰 나무들도 많다. 숲길을 따라 아침식사 식당으로 갔다. 아침 식사는 유럽식으로 빵과 햄, 치즈, 그리고 통밀밥이다. 이곳은 음식이 정량제라서 갖다주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양이 넉넉하여 먹고 남는다.
나무들이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길이다. 특이한 것은 나무들이 쪽쪽 위로만 뻗어 자란는 모습이다. 수종도 소나무와 자작나무뿐이다. 우리의 숙소도 전부 나무로 지었다. 계단도, 복도도, 실내도 모두 나무다. 2층집인데 우리 부부의 방은 2층 12호다. 개인이 운영하는 숲속 숙박 시설인데 상당히 넓고 아주 낭만적인 숙소다.
* 딸찌 박물관
한국의 민속촌인 곳이다. 앙가라강 수력발전을 위한 댐 건설로 인해 수몰위기에 있던 유물과 목조 건물들을 옮겨 놓은 옥외 민속 마을로써 짧은 시베리아 역사에서도 다양하게 혼재해 있는 복합적인 건축양식과 주거문화를 한자리에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에 있는 목조건축물과 민속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1980년 5월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이르쿠츠크에서 리스트비안카로 가는 도중에 있는 박물관으로 딸찌(탈치)란 '봄'이란 뜻이다. 오래된 목조건축의 견본들을 시베리아의 여러 곳에서 가져와 전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망가진 카페, 전통적인 토산물 등을 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러시아의 겨울은 길어서 8~9개월이다. 여름은 7월, 8월, 9월로 3개월뿐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겨울에만 일을 한다. 여름에는 여행 다니고 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이르쿠츠크의 숲속 통나무집에 와서 1주일씩 쉬고 가곤 한다. 여기서 딸찌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박물관 가는 길의 도로변에 나무가 많다. 타이가 숲에는 나무가 더욱 울창한데 눈사태로 기울어진 나무도 있다. 숲은 자작나무와 적송이 대부분이다. 북극 백야로 일조량이 길어서 나무가 모두 직선으로 자란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은 세계 2차대전 후 미국 아이젠하우어 대통령과 러시아가 협약하여 만든 도로다. 이르쿠츠크는 한국의 포항 정도인 도시다. 과거에는 어업도시였다. 러시아에서의 국가 위상은 일본, 한국, 중국 순이란다. 러시아말로‘ 감사하다’는 ‘스스바씨바’란다. 가도 가도 숲 물결이 대단하다. 넓고 장엄하다.
딸찌 박물관에 들어서니 숲은 여전히 울창하게 외인을 반긴다. 숲속에 토프와 예멘키 두 족속이 살던 집이 있다. 자작나무 껍질로 지은 집으로 이곳 명칭으로는 춤이다. 집주변에는 아담한 목장도 꾸며 놓고, 어부시절의 고기잡이 도구도 전시해 두었다. 그들의 전통 생활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자작나무에 붙은 차가 버섯도 보았다. 자작나무에 상처가 나면 병원이 침투해서 효모를 생성하여 생기는 것으로 효능이 좋은 버섯이다. 사람이 죽으면 올려놓았던 나무 기둥의 무덤도 있고, 숲속 물을 끌어들여 만든 물레방아집도 있다.
러시아 소수민족인 브랴트족의 전통가옥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브랴트족의 전통 가옥은 위에 창문이 있고 아래에는 반드시 구멍을 내어놨다. 그것은 아래의 구멍으로 시베리아의 겨울 찬 공기가 나가게 하기 위해서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목조로 지어져 있다. 꼭대기에 십자가가 2개인데 하나는 천국, 하나는 지옥을 가르친다. 건물마다 생활풍습을 그대로 재현해 두었다. 학교, 옷감 짜는 도구, 나무 미끄럼틀, 낙타 목장, 야외공연장 등 볼거리가 많다. 또한 외세 침입을 감시하는 높은 망대도 있고 나무 울타리의 성벽도 있다. 샤머니즘의 종교의 유적도 있다. 모두가 나무로 꾸며져 있다. 한참을 걷다보니 앙가라 강물이 파랗게 보인다. 강변에서 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싱그러운 숲길을 따라 박물관을 떠나왔다.
* 샤먼 바위
원래는 5, 6층 건물 높이의 바위인데 앙가라강 댐 건설 이후 수위가 높아져서 지금은 윗부분 조금만 보인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리스트비얀카 지역의 바이칼호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는 강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아주 큰 바위였으나 현재는 거의 물속에 가라앉아 낮게 솟아 있다. 500~600년 전에 홀혼섬에 정착한 브랴트족이 신성시하여 이곳을 찾아와 소원을 빌고 제사를 지냈다. 바위 주위의 물은 결코 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며 바이칼호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다. 이곳이 바이칼 호수의 종점이며, 앙가라강의 시작점이다. 앙가라강은 336개의 강 중 유일하게 바이칼 호수의 물이 나가는 강이다. 나머지 335개의 강은 강물이 바이칼 호수로 유입된다. 이곳 전설로는 335명의 아들과 1명의 딸로 여긴다. 브라야트 종교는 저 샤먼 바위에 죄인을 묶어놓고 다음날 없어지면 무죄, 죽었으면 유죄로 여겼다. 잘 보이지도 않는 물속 바위지만 깊은 뜻이 담긴 명소다.
* 바이칼 호수 생태학 박물관
리스트비얀카에 위치한 바이칼 생태학 박물관에서는 바이칼 호수의 생태를 전시한 박물관으로 바이칼에 서식하는 민물 어종과 기타 여러 가지 바이칼에 대한 자료를 전시한 곳이다. 바이칼호는 타타르어로 '풍부한 호수'라는 의미로 담수호로는 세계 최대의 크기와 세계최고의 수심이다. 약 3000만년 정도의 오래된 역사를 가진 세계제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여기는 호수다. 수량은 바이칼 호수의 물과 북아메리카 5대호의 물의 양이 맞먹을 정도로 방대하다. 지구의 담수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장대한 스케일의 호수다. 바이칼 호수의 청정 이유로는 암석이 많고, 수심이 깊고, 광천수가 솟고, 물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원자조류 갑각류가 서식해서란다. 박물관에서 주목해 볼만한 것들은 바이칼의 명물인 오믈과 바이칼 민물에 사는 재롱둥이 물개다.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니 고등어와 비슷한 오믈이라는 물고기를 비롯한 연어 등 여러 종류의 바이칼 물고기가 전시되어 있고 러시아 상징인 독수리와 물개 박제가 있다. 2004년 개관한 수족관에는 2마리의 물개, 이곳 이름으로 네르파가 실제로 살아서 물속을 헤엄쳐 돌아다닌다. 바다에만 사는 물개가 민물인 바이칼 담수호에 와서 사는 것이다. 그외 바다에서 보는 듯한 어류가 많다. 바이칼의 온도는 수심 200m에서도 영상 2~3도의 냉온이다. 상하 순환이 느려서 그렇다. 여름에도 저온으로 물에는 못 들어가고 썬텐만 즐긴다. 바이칼에 대하여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나왔다.
* 리스트비얀카의 마을 풍경
리스트비얀카는 바이칼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강이 시작되는 도시다. 가장 가까이에서 바이칼을 볼 수 있다. 이곳 리스트비얀카에서 바이칼 유람선을 탄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65km 떨어져 있으며 앙가라 강과 바이칼 호수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작은 호반 마을이다. 전형적인 러시아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근처에 역사유적도 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바이칼 호수변 마을에 내려 식당까지 걸어서 올라가며 둘러본 풍경은 옛 향수를 자아내는 낭만이다. 집 근처의 감자밭을 가꾸는 농촌 여인이 보이고, 소박한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기도 한다. 마을 끝에는 바이칼 호수도 보인다. 집은 모두 나무로 지었다. 겉면에 색을 칠한 것도 속은 나무다. 청명한 시베리아의 하늘 아래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다.
리스트비얀카(이르쿠츠크 남동쪽 68km)는 바이칼 호반을 끼고 있는 마을 중에서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작은 어촌이다. 이르쿠츠크에서 리스트비얀카로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차로 달리면 주체할 수 없이 황홀경을 자아내는 앙가라 강변의 이 마을로 접어든다.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리스트비얀카는 그 자체로 담소한 매력을 품고 있다. 앙가라 강 한가운데 솟아 있는 샤먼 바위, 일광욕을 즐기는 시베리아의 여피족들, 그리고 훈제 '오물(바이칼에서만 잡히는 생선)'을 한 손에 들고 맥주를 들이켜는 사람들이 자아내는 리스트비얀카의 여름 풍경, 리스트비얀카의 석양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 분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마련이다.
* 니콜라이 교회
성 니콜라이를 기리기 위한 성전이다. 리스트비얀카에 있는 목조 교회다. 이곳 교회에 들어 갈 때는 여자는 괜찮은데 남자는 반드시 모자를 벗어야 한다. 성당 내부는 상당히 엄숙하다. 성인에게서 광채가 나는 장면을 그려놓았다. 예수에서도 머리 주변에 금색 광채부분이 넓다.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외경만 담아왔다. 외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 체르스키 전망대 리프트 탑승
바이칼 호수를 조망하기 위해 오르는 곳이다. 전망대까지는 걸어서도 오르지만 우리는 올리갈 때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올 때만 걸어서 내려왔다. 리프트는 완만한 산능선을 천천히 오른다. 아래는 야생화가 곱게 지천으로 피어 있다. 소나무 숲이 양 옆으로 울창하다. 두 사람씩 탑승하여 시베리아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정을 올랐다.
* 체르스키 전망대 산정
산 정상에 오르니 온통 나무가 짙푸르게 산을 덮고 있다. 수종은 역시 소나무와 자작나무다. 하늘 높이 올라와 있어 리프트 타던 곳이 저 아래로 아득하다. 많은 리프트가 줄줄이 오르내리고 있다. 리프트를 운행하는 큰 기계도 쉼없이 돌아간다. 여기서는 바이칼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산길을 따라 바이칼이 잘 보이는 곳으로 조금 걸어서 내려간다. 가는 도중 산길에서 브랴트족의 종교인 샤먼을 보았다. 한국의 성황당 같은 개념이다. 나무에 울긋불긋 천과 비닐 조각 등을 매어 놓았다. 이색 풍경이다.
* 체르스키 전망대에서 본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바위에 앉아 바이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바라보기조차 두려울 만큼 넓고 크고 아득한 호수다. 어찌 저 물이 호수일까, 바다라 하여도 범상치 않은 풍경이다. 산 절벽 아래 아찔한 호수는 러시아 시베리아의 웅대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전망대 난간에도 샤먼의 성황당 같은 형상이다. 천 조각과 비닐 조각들을 칭칭 매어 놓았다. 러시아 젊은이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조망 후 걸어서 산길을 하산했다. 완만하고 숲속 공기가 상큼하여서 산책으로 걷기에 좋았다.
* 바이칼 유람선
리스트비얀카에서 바이칼 유람선을 승선했다. 1층에는 선실이 있고 2층에는 갑판이 있다. 2층에 올라가서 테이블에 앉았다. 수변 도시 풍경도 보고 바이칼 풍경도 보았다. 어느 해변처럼 높은 호텔 건물이 아름답고 호숫가에는 배들이 많다.
배가 출발하자 바이칼 호수에서만 서식하는 담수어인 민물고기 오물 훈제구이와 보드카 술을 주었다. 드넓은 바이칼 호수를 보며 한층 낭만을 더하여 준다. 오믈은 고등어 내음으로 맛이 있다. 비닐 장갑을 끼고 발라서 보드카를 마시며 먹었다. 바이칼의 물고기를 먹은 것이다. 이색 체험이다.
바이칼 호수는 장엄하다. 한가득인 물이 그렇고, 끝없는 수평선이 그렇다.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놀라운 비경이다. 나의 남편인 유기섭 수필가는 ‘바다 아닌 바다’라고 글제를 정하여 나도 동감하며 웃었다. 시퍼런 물이 배 바로 아래에서 출렁인다. 바다도 아닌데 파도가 심하여 유람선이 기우뚱거린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차츰 리듬을 타니 우리나라의 놀이터에서 바이칼 놀이 기구를 타는 것처럼 즐거웠다. 한참을 유람하고는 다시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 바이칼 호숫가 풍경
러시아는 여름에는 백야로 해가 떠 있는 시간은 길지만 겨울이 길어 절대적으로 햇볕이 부족한 나라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햇빛이 나오는 곳이면 옷을 벗고 살갗을 소독한다. 지금 바이칼 호숫가에도 수영복 차림, 혹은 웃옷을 벗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더러는 자동차 사이의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긴 모래사장이며, 사람들 모습이 우리나라의 해수욕장 같은 풍경이다. 큰 배도 들어온다. 망망한 호수 바이칼은 정말 여러 가지로 놀라운 비경을 선사한다.
* 리스트비얀카 노천시장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바이칼 호수변의 시장이다. 이곳 지명이 리스트비얀카다. 리스트비안카 선착장 주변 광장은 호수의 특산물인 물고기 오믈을 훈제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솔 향 가득한 연기 속에 훈제 오믈을 파는 좌판을 펼치고 각종 기념품을 파는 잡화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 지역 특산물인 보라색 옥돌과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한 다양한 소품들이 눈길을 끈다. 주로 기념품을 판다. 노천시장에서는 러시아인들이 장난을 치거나 말을 걸어도 놀라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 러시아인들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하는 생활습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곳 도로에 한국 자동차가 많다.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45인승 대형 버스도 한국의 현대차량이다. 기아 등 여러 차들이 러시아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대중교통 버스에는 한글 글씨를 그대로 달고 다닌다. 그것도 하나의 장식처럼 보여진다. 노천시장에서 주로 나무와 돌, 털 장식품 등을 보며 시베리아의 문화를 잠시 접했다.
* 앙가라 강변 공원
숙소로 가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한 곳이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수영복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 있기도 하고 우렁찬 음악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식당에서 현지 특식으로 연어와 감자 요리를 먹고 강변을 산책했다.
나무로 만든 길이 강물과 숲과 함께 아름답다. 크진 않지만 하늘 향해 곧게 뻗은 나무들이 시베리아의 숲속 향기를 전해준다. 강가 정자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파티를 즐긴다. 나를 보고는 무어라 말을 건네며 흥겨운 표정이다. 러시아인들은 외롭게 살아서 누군가 외인을 만나면 저렇게 말을 걸고 흥겨워 한다. 자칫 시비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 시각으로는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일지라도 훈훈한 정이 흐르는 정경이다. 나도 손을 흔들며 흥겨운 걸음으로 그들 곁을 지나왔다.
음식점 건물은 모스크바에서 본 클레믈린궁을 닮았다.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 적송이 하늘로 솟구치는 숲이 건물을 빛내준다. 공원의 야외공연장에서는 악기연주와 함께 노래, 춤으로 젊음을 발산하고 있다. 앙가라 강변의 공원은 드넓은 숲속 한자락 품고 앉아 여러 가지 고운 풍경을 선사한다.
* 시베리아 숲속 도로
우리의 숙소는 깊은 숲속에 있어서, 또한 그곳 욜로츠카 통나무집에서 3박을 하여 자주 다니던 도로다. 나오면서, 들어가면서 본 시베리아의 숲속 도로는 끝없는 나무가 울창하게 줄지어 서 있다. 그것도 소나무 종류와 자작나무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 리기다 소나무라고 하는 나무도 많다.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던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이 아닌가. 그 숲을 눈앞에서 본다는 것은 큰 감동이다. 연약한 나무는 더러 눈사태로 휘어지거나 꺾이어 있기도 하다. 총총한 숲에서 서로 햇볕을 더 받기 위해 위로만 자라다가 생존경쟁에서 넘어진 모습이다. 시베리아의 숲은 어느 곳에서나 우람하고 울창하다. 내일은 7시 모닝콜, 8시 조식, 9시 출발이다. 내일은 바이칼 호수 안에 있는, 한국의 외딴 섬과 같은 알혼섬에 간다. 짙푸른 숲속 도로를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2011년 7월 4일 월요일 우스찌아르다, 알혼섬
* 앙가라 강변 산책
욜로츠카 통나무집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앙가라강에 갔다. 숲이 끝나는 곳에 강에서 강을 만났다. 이곳은 욜로츠카에 온 사람들의 산책코스다. 아침 일출과 함께 깨어나는 강이 비경이다. 이미 유람선 배가 들어와 있고 주변을 러시아의 길조인 까마귀가 날아다닌다. 강물이 참으로 맑고 푸르다. 강변의 자작나무 숲과 물가에서 촉촉이 눈뜨는 풀들이 시베리아의 향기를 전해준다. 나무로 만든 미끄럼틀도 숲속에서 우람하게 서 있다. 앙가라강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 곳곳에 통나무집이 있다. 울창한 숲과 함께 진풍경이다.
* 이르쿠츠크 시가지
알혼섬에 가는 길에 지나가며 본 풍경이다. 이르쿠츠크는 그리 큰 도시는 아니다. 바이칼 호수 남단에 있는 인구 60만명 정도의 아담한 도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역사적 명소가 많고 그리 작지도 않은 의미 깊은 도시로 여기는 곳이다. 외곽에 들어설 때는 브리야트족의 전통 가옥이 보이더니 시내로 진입하자 층이 높은 현대식 아파트도 보인다. 주유소도 있고 자동차도 많다. 오늘은 그냥 지나가지만 내일 알혼섬에서 돌아와 이곳 이르쿠츠크를 자세히 여행할 것이다.
* 도로의 소떼들
시가지를 벗어나 농촌 마을에 접어들자 차가 다니는 도로에 많은 소떼가 걸어가고 있다. 말을 탄 목부가 안전한 곳으로 몰려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큰 젖소들의 행진이 장관이다. 차와 사람과 동물이 도로를 공유하고 있다. 정겨운 풍경이다.
* 시베리아의 여름 초원
우랄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러시아 땅이 시베리아다. 긴 겨울에는 눈으로 뒤덮여 있을 땅이 지금은 7월 여름이라서 시베리아 평원은 지금 초원이다. 풀들이 새파랗게 자라고 있다. 목장의 나무 울타리가 이곳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집 주변에 큰 목장이 있다. 가끔은 초원 사이로 물이 흐른다. 가축의 식수로 요긴한 물이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은 여전히 브랴트 전통가옥이 대부분이다. 저 드넓은 초원에서 사는 가축들은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베리아의 여름 초원은 그렇게 고요 속에 깃든 평화의 영토였다.
* 우스찌아르다 성황당
브랴트족의 종교는 샤머니즘이다. 한국의 무당과 같은 개념이다. 브랴트족은 러시아의 소수민족이다. 러시아에서 소수민족이라고 하면 인구 10만명 이하의 인구로 형성된 민족들이 사는 곳을 말하며, 러시아에는 70여종의 소수민족이 산다. 러시아의 전통 목조마을로 이루어진 브리야트 민족마을은 소수민족이 사는 브리야트 자치 공화국이다. 러시아의 고유의 전통가옥의 양식과 생활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관광 명소다.
우스찌아르다는 브랴트 자치구다. 이 마을이 샤먼의 기를 가장 많이 받은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 성황당을 세운 것이다.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에서 보았던 성황당과 유사하다. 도로변에 기둥을 세우고 천을 매달아 놓고 있다. 입구의 안내 간판에는 이곳은 우스찌아르다 자치구 가운데 가장 기(氣)가 센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하늘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왔다. 주민들이 경의를 표하는 곳이니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각자의 종교나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우리처럼 경의 표해 주기 바란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오가는 차량들도 길을 멈추고 고수레를 하는 등 무사여행을 기원한다. 브랴트족은 말을 상당히 좋아한다. 언젠가 마을 타고 구원의 용사가 올 거라는 믿음으로 산다. 기둥에는 말을 매어 두도록 홈을 파 놓았다. 맨 위의 뾰족한 모양은 말을 탄 용사를 상징하고 항상 그 꼭대기 자리는 그 분의 말을 매어두는 곳으로 비워둔다. 딸찌 민속박물관에서 보았던 그런 기둥이 많이 있다.
버스가 주차한 곳의 나무에도 성황당처럼 천 조각을 많이 매어 두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동전이 많이 떨어져 있다. 러시아 사람들은 성황당에 돈을 던지면 행운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이 그 동전을 주웠는데 반드시 어딘가에 던져주란다. 그 동전을 주우면 불행이 찾아온단다. 나는 동전 두 개를 주웠는데 알혼섬에 가서 던지자고 마음 먹었다. 시베리아 평원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길게 뻗어 있다.
* 시베리아 대평원
시베리아 대평원을 가로지르며 버스가 줄기차게 달린다.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 선착장까지는 7시간 정도 소요된다. 도로상황이 안 좋으면 더 걸리기도 한다. 아득한 평원이 전개된다. 소떼도 많고, 목장과 초원이 시베리아 대평원을 장식한다. 이곳 시베리아 스텝지역은 버려진 땅이다. 누구나 그냥 말뚝만 박으면 자기 땅이란다. 달리다 보니 정말 막대기를 길게 꽂아 놓았다. 거기까지 자기가 사용할 목장인 셈이다. 나무 군락으로 경계선을 지어 놓기도 한다. 여기는 땅을 줍는 곳, 시베리아다. 막막하고 아득한 대평원을 보며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시상을 외쳤다.
가자, 내 조국으로
내 가슴에 품고 가마
널 데려다 곱게 다듬어주마
차가운 시베리아 땅에서 자라
나의 심장이 뜨겁게 느껴지면
차가운 나의 머리에 이고 가마
너른 평원 한 도막만이라도 날 따라 가자
서럽도록 좁은 나의 조국 땅에 널 이식하고 싶다.
풀을 기르지도 않는데 풀씨가 번져 목초지로 변한 것이다. 간간이 마을이 보이기도 한다. 집 앞에는 나무 울타리의 목장이 있다. 더러 초지를 뒤집어 까만 땅이 보이는데 그것은 밀을 심기 위해서란다. 광활한 땅 시베리아 평원에는 산도 없다. 자작나무나 소나무 숲이 더러 보인다. 눈사태로 꺾어진 자작나무도 있다. 나무가 어느 곳에서는 잘 자라기도 하지만 못 자라는 곳은 삭막하다. 그것은 나무를 자르거나 기르지 않아서가 아니고 건조하거나 지반이 약해서다. 산이 없고 ‘~언덕’, 즉 무슨 언덕이라 칭한다. 바람이 많고 기후 변화가 심하다.
시베리아 대평원을 달리는 긴 시간 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잠을 청하다가, 버스 기사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침묵을 깨고, 잠을 깨고 이르쿠츠크의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온 한국 청년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영하 40도일 때 폐가 먼저 얼더란다. 이르쿠츠크는 해발 500~600m의 고지대 도시다. 지금 가는 이 길도 고지대다. 고지대에서는 사람들의 몸이 살찐다. 이르쿠츠크는 중국인들이 거의 상권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인을 보면 야유하기도 하고 싫어한단다. 공항에서도 가이드에게 시비를 걸더란다. ‘너 어디서 왔니?’ ‘한국~’ 하니 ‘아~’하고 가더란다. 러시아인들은 한국의 남자와 한국의 여자를 좋아한다. 집 앞 3m 거리의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여권을 안 가지고 나가면 경찰에게 잡힌단다. 이르쿠츠크의 인구가 60여만 명인데 6명 중에 1명은 학생이란다. 학교가 많아서다. 대학교만도 50~60개다. 대졸이면 군대에 안 가도 된다. 대졸 안 하면 군대에 가는데 군대 가면 연금이 나온다. 유학생들에게는 강제로 병원에 가서 에이즈 검사를 받도록 한단다. 학생이 많아서 마약자도 많단다. 러시아에서 남자는 일을 잘 안 한단다. 술 먹고 노는 남자가 많단다. 여자가 주로 관광업에 종사하며 일 한단다. 그래서 집시도 많고 빈부 차도 크다. 부호도 많다. 러시아는 중간이 없단다. 상과 하만 존재한단다. 빈부 편차가 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지구촌의 현상이 아닐까 싶다. 오늘 안 하면 내일 해도 된다는 식의 자유스런 시민들이다. 유럽 같지 않은 유럽이다.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란다. 젊은 도시란다. 올해는 이르쿠츠크 건설 350년의 해로 볼거리가 많단다. 이르쿠츠크가 푸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세운 5개년 계획이 있는데 바이칼호를 개발하고 원유를 생산한다는 등이었는데 중동의 싼 원유 값으로 인해 실패했단다. 푸틴의 오른팔 격인 메드베데프 현대통령도 이르쿠츠크에 왔단다. 향후에는 다시 푸틴이 지배할 것으로 본단다. 러시아인들은 푸틴을 좋아 한단다. 러시아 경제를 발전 시켜서다. 러시아 종교는 러시아 정교를 국교로 하지만 브랴트족의 샤머니즘을 비롯하여 불교, 기독교 등 현재는 다양하다. 그러나 속내는 러시아 정교보다 공산당을 믿으라는 식의, 러시아가 법이라는 식의 국가란다.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았는데 1회만 깔아서 거칠어 차가 덜컹거린다. 알혼섬 가까이에 가면 비포장 도로여서 더욱 흔들릴 거란다. 알혼섬은 발전을 거부하여 도로 외 여러 가지가 더욱 심하게 낙후되어 있단다. 시베리아 대평원은 눈이 저리도록 차창을 스쳐 지나가고 버스는 쉼 없이 알혼섬을 향해 질주한다.
* 시베리아 평원의 소금 호수
도로 양편에 호수가 있는데 소금기가 있는 호수란다. 정말 물가에 하얗게 소금기가 보인다. 어찌하여 육지의 호수에서 염분이 발생하는지 신기하다. 주위에는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이 지역은 건조한 땅이어서 풀도 잘 자리지 않는다. 산 모양의 구릉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건조한 살점을 드러내고 있다. 소금 호수는 그런 시베리아 평원의 명물이다.
* 바얀다이 옐라치 휴게소
시베리아 대평원을 달리다가 옐라치 마을로 버스가 들어왔다. 휴게소에서 중식을 하기 위해서다. 아침에 이르쿠츠크에서 고려인 식당의 할머니가 싸 준 한식 도시락으로 먹는다. 휴게소 안에서 국을 주문하여 식탁에 앉아 먹었다. 김치, 고사리나물 등 음식이 우리 입맛에 잘 맞아 맛있게 먹었다. 알혼섬에 가까울수록 건조한 땅이다. 휴게소 주변도 삭막하다. 메마른 땅에 민들레가 노랗게 피어 눈길을 끈다. 한국의 민들레와 동일하여 참 반갑다. 풀이 거칠고 단단하다. 여기서부터 알혼섬 가는 선착장까지는 비포장도로이며 4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예정이다. 간간이 시베리아 평원을 달리는 차들이 휴게소로 들어오거나 그냥 지나쳐 질주한다. 우리도 다시 버스에 올라 알혼섬을 향해 달린다.
* 알혼섬 선착장으로 가는 비포장도로
건조한 땅의 언덕 구릉을 무너뜨려 건설한 도로다. 알혼섬 주민들이 만들었다. 포장을 거부하여 그대로 둔 도로다. 구릉을 따라 지름길을 내어 달리는 자동차도 있다. 아주 많이 흔들린다. 우리의 버스 기사는 이 버스가 힘들게 장만한 개인소유의 차여서 아주 조심스럽게 운행한다. 한국의 중고 현대차량으로 1천 2백만원 주고 샀는데, 젊은 기사인 이 남자는 러시아에서는 빨리 꿈을 이뤄 성공한 편이란다. 시속 10~20Km로 완전 저속으로 몰고 간다. 거친 자갈길을 사람의 빠른 걸음 수준으로 그렇게 한 동안 가자 멀리 바이칼 호수가 보인다. 오붓한 마을도 보인다. 겨울에는 꼭 저곳 마을 선착장에서만 알혼섬에 들어가는 배를 탄단다. 이제 곧 우리가 타고 들어갈 배의 선착장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 사휴르따 선착장
알혼섬에 가는 연락선을 타는 선착장이다. 바이칼, 바다 같은 호변이다. 시베리아 들녘을 걸어도 보고, 바이칼 호수의 물을 만져도 보고, 기념품 가게를 돌아보며 바지선을 기다렸다. 선착장의 모든 시설이 나무로 되어 있다. 나무가 삭으면 또 다시 나무로 건설하는 이 나라의 공법이다. 그리도 나무가 올곧게 많이 자라고 있으니 온통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로 기념품을 만들고, 곳곳에서 나무 향기 그윽한 나라다. 대부분 자작나무를 사용한다. 파란 하늘과 한가득 물이 들어찬 바이칼 호수가 시베리아의 여정을 빛내고 있다.
* 알혼섬으로 가는 연락선 승선
사휴르따 선착장에서도 바이칼 호수 저 건너의 알혼섬이 보인다. 가까운 거리다. 연락선 또는 바지선으로 부르는 이 배에는 자동차도 같이 승선한다. 평평한 바닥의 배에 사람과 차가 함께 줄지어 서 있다. 배의 후미에는 큰 판이 내려져 승선하도록 도움을 주고는 출발할 때는 그 판을 올려 세운다. 배는 서서히 알혼섬을 향해 나아간다.
바이칼,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바다란 뜻의 ‘나모’라고 불리기도 한단다. 바람이 심히 불고 탱탱한 푸른 물이 완전 바다와 흡사하다. 암벽이 심하여 바이칼호가 청정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호수의 곳곳 절벽에서 암벽이 보인다. 배는 10분 정도 달려 알혼섬에 도착했다.
* 알혼섬 도착
사휴르따 선착장에서 보이던 알혼섬에 연락선이 도착했다. 암벽이 많아 청정하다는 바이칼은 알혼섬 선착장에 진입할 무렵 증명이라도 하듯 우람한 절벽에서 암벽을 전시하고 있었다. 흙이나 모래가 아닌 그런 암벽이 바이칼 호수를 깨끗하고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붓한 곳에 선착장이 있다. 꼭 바다를 건너온 느낌이다. 물을 맛보면 짤 것 같은 장엄 바다 풍경을 건너 왔다. 이 호숫길은 겨울이면 얼어 육지와 이어진다. 1~2주면 얼어 얼음 위로 차가 다딘다. 트럭도 운행 가능하다. 얼음 두께가 기본이50m다. 신비로운 바이칼 호수다. 배의 후미 높고 넓은 쇠판이 내려지고 사람들은 그 판을 따라 내린다. 몇 채 되지 않는 알혼섬 선착장 건물이 외인을 반긴다.
* 알혼섬 풍경
알혼섬 선착장에서 버스를 탔다. 육지에서 타던 버스는 오지 않고 이곳 알혼섬에서 운행하는 전용버스를 탔다. 알혼섬은 육지 차량은 들어오지 못한다. 세계대전 때 환자와 물자를 실어 나르던 군수용를 개조한 차량으로 높고 바퀴가 얇다. 우리 일행, 가이드 2명 포함하여 28명은 3대에 나누어 탔다. 버스는 알혼섬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많이 흔들리고 덜컹거린다. 뒤에서 따라오는 버스를 보니 뽀얀 먼지를 한가득씩 내뿜는다. 정부에서 아스팔트로 포장해 준다고 해도 거부하는 비포장도로다. 브랴트족의 옛 풍습을 유지하려는 이곳 민족의 생활자세가 배인 하나의 풍경이다.
알혼섬(Olkhon Island)은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큰 섬이다. 바이칼 호수에는 26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는데, 알혼섬은 그중에 가장 크다. 바이칼 호수가 시베리아의 푸른 심장이라면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이르쿠츠크에서는 300 km 떨어져 있다. 알혼은 '나무가 드문', '나무가 조금 있는', '작은 숲' 또는 '메마른' 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섬 알혼은 지리학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며 수많은 전설이 깃든 바이칼의 성스로운 중심지다. 17세기 바이칼을 탐험하던 러시아인이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딛은 후, 지리학적,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기암괴석들, 넓은 호변, 호수와 산, 하늘과 맞닿은 바이칼, 이런 모습들의 바이칼의 정수를 대변하고 설명해 주는 섬이다.
알혼섬은 우리 민족의 발원과 유력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어느 학자의 말도 있고, 섬 곳곳에서 보이는 샤머니즘의 흔적도 신비감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알혼섬은 대제국을 호령하던 징키스칸이 묻혀 있다는 전설도 있고, 또는 징기스칸이 탄생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탄생과 같은 맥락의 전설이다. 과거 몽골제국의 역사에도 등장했고, 같은 몽골족의 일원이었던 브랴트 족의 기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알혼섬은 일조량이 세계에서 1위인 땅이다. 그래서 알혼섬은 ‘메마르고 황폐한 곳에 태양이 비추는 땅’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연평균 강수량이 240mm로 1년에 2~3회만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축복인 땅이다. 면적은 한국의 섬 거제도 2배 크기로 길이 72km, 폭 15 km다. 알혼섬은 중앙 아시아의 대초원지대인 스텝 지방(Steppe), 시베리아와 북미 등지의 침엽수림대 타이가(taiga forest), 섬 중심의 매마른 사막지역 등 3개의 두드러지는 기후대를 보이는 독특한 지역이다. 섬내에는 1,500명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고기잡이와 가축을 기르며 살고 있다. 남자는 고기잡이를 하고 여자는 여행객의 식사를 준비한다.
차창 밖의 풍경이 상당히 건조하다. 차가 달리면서 날리는 먼지도 많아 창문을 꼭 닫고 간다. 산이 없는 알혼섬의 높고 낮은 언덕 구릉은 갈색 살점만 보인다. 들녘도 그렇다. 풀은 물기 있는 호수변에만 있다. 지반이 약해서 나무가 자라지 못하여 알혼섬에는 숲도 없고, 산도 없다. 오직 들판만 있을 뿐이다. 조금 높은 땅을 언덕이라 부른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본 섬은 이름처럼 나무가 거의 없는 스텝이 이어지다가 섬 중간에 가서야 모래사장이나 소나무 숲을 좀 볼 수 있었다. 푸른 스텝이 덮힌 그리 높지 않은 언덕과 구릉지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섬의 모습은 고독이 서린 포근함과 차분함을 느끼게 해준다.
* 알혼섬 한호이 호수
한참을 달려서 만난 호수다. 바이칼 호수에서 모래가 밀려와 경계선을 지으며 생성된 호수라서 바로 곁에는 바이칼 호수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수와 바이칼을 조망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호수변까지 내려갔다. 호수 주변에는 소와 양 등 가축이 많이 모여 풀을 뜯고 있다. 어김없이 물줄기를 찾아 가축을 기르고 있는 목축 풍경이다. 또한 브랴트족의 민가도 보이고 여행온 러시아인들도 보인다. 바이칼 호수는 여름에도 섭씨 4도의 냉온으로 못 들어가기 때문에 이곳 한호이 호수에 들어가서 물을 즐기며 일광욕을 하는 것이다. 웃통을 벗은 사람들이 활보하기도 한다.
이곳 호수는 알혼섬의 주요 관광지다. 한호이 호수에서 모래사장만 건너가면 바이칼 호수를 만난다. 바이칼 호수의 물을 만져보고, 던져보고, 바다 같은 먼 수평선을 응시하고, 기막힌 환상이다. 어쩌다 갇힌 물은 섬 속의 호수가 되어 또 하나의 명소가 되고, 그 사이 모래밭에는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질긴 생명력의 풀이 빳빳하게 고개 들고 있다. 두 호수에 손을 넣어보니 확연히 수온이 차이 난다. 한호이 호수가 훨씬 따뜻하다. 많은 양떼들이 호수의 낭만을 더해주며 이색 풍경을 선사한다.
* 후지르 마을 도착
알혼섬 남쪽에 있는 마을 후지르, 즉 우리가 유숙할 숙소가 있는 곳이다. 한호이 호수에서 건조한 들녘을 달려서 다다랐다. 브랴트족의 전통가옥이 보인다. 집 앞에 울타리를 쳐서 목장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아 목축업을 하는 시골 정경이다. 조금 더 가니 알혼섬의 가장 큰 명소인 불한 바위가 보인다. 바이칼 호수변에 두 개의 바위가 우람하게 서 있다. 인터넷에서 보았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건조한 들판에 커다란 소나무도 몇 그루 서 있다. 바이칼 호수와 함께 고운 풍경이다.
유목민의 생활을 방영하는 TV에서나 보았던 이동식 막사집도 보인다. 나무로 짓고 있는 현장도 보인다. 여기는 정말 이색 체험을 하는 땅임을 실감나게 한다. 일반 집들도 모두 목조다. 후지르 마을 중심지에 들어서자 아이를 비롯한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도 역시 집과 울타리 모두 나무로 되어 있다. 후지르 마을은 2005년도에야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온 낙후된 마을이다. 바이칼 호수가 곁에 있어 물이 풍부한데도 그 물을 끌어다 쓸 시설을 설치하자 않아 수도나 펌프도 없다. 마을 공동으로 쓰는 물을 길어다가 수도처럼 장치한 통에 물을 넣어 사용한다. 브랴트족은 스스로 발전을 거부하며 옛 전통을 중요하게 지키려는 면도 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러시아의 낭만이 깃든 외딴 섬, 아담한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 후지르 마을 통나무집
오늘 밤 우리가 유숙할 호텔인 셈이다. 바이칼 호수가 눈앞에 보이는 위치에 있다. 호수변에는 울창한 나무숲이 있고 통나무집 앞에는 모래와 초지, 그리고 노란 들꽃이 피어 있다.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정경이 참으로 목가적이다. 소설에서나 보이는 환상의 낭만이다. 바이칼 호수를 감싸는 시베리아 육지 쪽 커다란 줄기의 산자락이 비경이다. 구름은 바로 산 위에 내려와 드리워져 있다. 하늘과 맞닿은 산, 구름이다. 바이칼 호수 곁에 후지르 마을이 큰 둥지로 형성되어 있다. 언덕을 타고 집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통나무집은 2층인데 말 그대로 모두 나무로 지어졌다.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계단부터 실내 계단, 복도, 방의 벽면 등 모두 나무로 지어졌다. 우리 부부의 방은 2층 12호다. 저녁식사를 하는 식당도 온통 나무판으로 짜여져 있다. 금년 3월 제주도 가파도에 갔을 때 이런 통나무집에서 유숙하며 행복해 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어쩌다 만나는 이런 통나무집이 이곳은 누구에게나 맞이하는 생활의 일상구조라는 점에서 같은 지구 아래 다른 체계의 삶을 보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시베리아 여행의 큰 소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 알혼섬 불한 바위
어쩌면 이곳 알혼섬에 오는 것은 이 불한 바위를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르쿠츠크에서 적어도 5시간 이상의 차량 이동 시간을 투자해서 올만한 가치가 있는 불한 바위다. 물론 오면서 시베리아 대평원도 보고, 알혼섬의 독특한 지형과 기후, 생활 모습도 보니 더욱 흐뭇한 여정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후 8시에 통나무집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 오후 8시면 어두워지는 시간인데 이곳은 백야로 오후 11시나 되어야 어두워진다. 아직도 해가 지지 않고 있다.
후지르 마을 언덕을 넘어 30분 정도 바이칼 호수변으로 걸어갔다. 마을 언덕에 올라보니 바이칼 호수가 비경이다. 석양에 물들어가는 바이칼은 더욱 진풍경을 그려 명화로 선사한다. 언덕 아래에는 커다란 불한 바위가 바이칼 호수를 붙들고 있다. 불한 바위를 향해서 가다보니 언덕 정상에 샤먼의 성황당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천 조각을 매어 두었다. 나는 올 때 우스찌아르다 성황당 근처에서 주웠던 러시아 동전을 이곳에 던졌다. 2개였는데 남편 하나, 나 하나, 나누어 정성껏 이들의 풍습대로 성황당에 놓은 것이다.
언덕을 내려가서 바이칼 호숫가에 우람하게 서 있는 불한 바위를 만났다. 언덕 아래 절벽을 바라보며 알혼섬과 이어져 있다. 위에서 보면 두 개의 바위가 이어져 있는데 원래는 하나의 바위였으며 중간에 굴이 있었는데 지진으로 무너져서 저런 모습을 형성한 것이다. 바위는 참으로 웅장하다. 바이칼을 닮았는가. 결코 범상치 않은 풍광이 시리도록 가슴을 흔든다.
거칠고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 보았다. 바위 바로 앞에 다다른 것이다. 해변처럼 바이칼 수변에는 조약돌이 있고, 위에서 볼 때 꼭 악어와 같던 물체가 자세히 보니 죽은 나무 도막이다. 소나무에도 돌 위에도 샤먼 종교의 흔적인 천 조각을 매달아 두었다. 하늘 높이 솟구친 바위가 장엄하다. 이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기는 단군설화처럼 코린 브리야트 민족의 탄생신화가 서려있는 바위이며, 후지르 마을 앞에 위치하고 있다. 브리야트족에게 매우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자주 제사를 지낸다. 징기스칸 탄생설화가 얽힌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 민족의 시원지다. 이곳 시베리아에는 우리 조상인 고려인들도 많다. 그래서일까. 더러는 우리와 닮은 피부색과 얼굴 형상으로 꼭 동족과 같은 느낌의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몽고인들이 주로 사는 것 같다. 아시아에서도 중요한 성소로 꼽히는 불한 바위다.
해는 서서히 석양을 드리우고 이제 바위에서 떠나려고 언덕을 오르는데 커다란 야생 들개 세 마리가 땅을 파고 있다. 그 속에서 사는 개들이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무서워서 빨리 올라왔다. 언덕 위에 오니 그 중 흰색 빛의 개 한 마리가 언덕에 벌써 올라와 사람들을 바라본다. 야생이어서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 하늘의 구름이 검은 색으로 어둠을 물들인다. 다시 언덕 구릉을 넘어 통나무집 숙소로 왔다.
* 모닥불 감자구이 파티
통나무집 마당에는 고기를 구어 먹을 수 있는 시설도 있고, 감자를 구워 먹는 시설도 있다.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 감자를 구워 먹으며 흥겨운 파티 시간을 갖었다. 러시아에는 감자가 많다. 둥글게 나무 벤치를 꾸며 놓고 그 중앙에 자작나무를 태워 불을 지펴 감자를 굽는 것이다. 은박지에 하나씩 싸서 장작불 속에 넣었다. 백야로 늦게 찾아오는 어둠을 기다려 오후 11시부터 시작했다. 바이칼 호수와 웅장한 산자락이 어슴푸레 보인다. 바이칼 호수 곁에서 감자구이 파티라니, 정말 뜨거운 낭만의 추억을 엮고 있다. 감자가 익는대로 꺼내서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아주 맛이 있는 감자구이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남을 것이라던 감자 한 무더기를 다 구워 먹었다. 하늘에는 별이 보이고, 알혼섬에서의 고운 밤 풍경 속에 행복한 여정이다.
2011년 7월 5일 화요일 알혼섬 출발, 이르쿠츠크 명소 탐방
* 알혼섬 후지르 마을 산책
아침 일찍 일어나서 후지르 마을을 산책했다. 숙소 정원에는 지난 밤 우리가 구워 먹던 감자 몇 알이 남아 있다. 통나무집을 나서 마을로 가려는데 이웃집 개가 짖으며 따라오는데, 그 울음이 경계라기보다는 외인을 만나 반가운 울음이다. 고독한 땅에서 사는 이곳 시베리아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까지도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것이다. 어제도 통나무집 숙소에서 기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가 도착하자 다리를 감싸 안으며 반가워 하더니 2층 12호인 우리 방까지 들어와 침대에 발을 얹고는 안아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알고 보니 각 방마다 다 돌아다니며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지금 내 앞에서 나의 손짓 부름을 받고 쫓아오는 개도 정감이 가는 정경이다.
후지르 마을은 그래도 알혼섬에서는 큰 도시다. 시가지가 제법 크다. 큰 집도 작은 집도 모두 나무로 지었다는 것에서 여늬 도시와는 구별되지만 도로로 나 있고 잘 형성된 섬 마을 시가지다. 바이칼 호수는 여전히 찬연한 빛으로 아침을 맞는다. 바이칼호의 구름은 낮게 내려 앉는다더니 오늘 아침도 구름이 낮게 내려와 산자락을 타고 길게 드리워 있다. 언제 보아도 여전히 비경이다. 잔잔한 풀이 깔린 평지 길을 따라, 노랗게 핀 들꽃 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왔다.
* 후지르 마을 출발
하루를 유숙하고 후지르 마을을 떠난다. 알혼섬을 일주하려면 이틀은 자야 하는데 우리는 알혼섬의 남쪽만을 일주 하는 여정이어서 오늘 떠난다. 조식으로 까샤라는 러시아 전통 음식을 먹었다. 달콤한 우유로 비빈 밥이 나왔다. 러시아 음식 가운데 3가지를 손으로 먹는단다. 야채, 꼬지, 오믈인데 꼬지는 만두 종류고 오믈은 바이칼 유람선에서 먹은 훈제 물고기다. 꼬지는 오늘 중식 때 먹는단다. 오전 9시 40분에 알혼섬 전용 미니버스 3대가 와서 어제처럼 우리를 나누어 태우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시가지인데도 소가 거리를 활보한다. 아쉬움으로 후지르 마을 시가지를 벗어나 힘차게 달린다.
* 알혼섬 선착장 가는 길
어제 오던 그 길을 따라 간다. 비포장도로의 먼지도 낭만으로 여기며 덜컹거리는 소음과 흔들림도 유녀의 시골 버스 추억이라고 여기며 모두들 흥겹게 이야기하며 가고 있다. 여전히 메마른 들녘은 아무런 식물 재배를 못한 채 나뒹굴고 있다. 나의 조국에 저런 땅이 있다면 다 일구어 농작물을 재배할 텐데, 건조한 기후의 탓으로 버려진 땅이 서러운 부러움으로 가슴에 맺힌다. 바이칼 호수는 바로 곁에서 물을 한가득 품고 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장면이다. 황폐한 언덕을 넘고, 황막한 들길을 1시간 정도 달려 선착장에 도착했다.
* 알혼섬 선착장 주변 풍경
벌써 육지로 가는 배는 두 척이 들어와 있다. 바이칼 호협을 왕래하는 바지선이다. 한 척은 아주 크고 한 척은 조금 작다. 승선 인원에 따라 운항하는데 오늘 아침은 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 작은 연락선이 출항한단다. 배시간이 30분 정도 여유 있어서 선착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알혼섬의 동일한 풍경이지만 목전에서 보는 정경은 더욱 건조함이 극심했다. 모두 산 모양의 마른 언덕, 마른 들녘이다. 뽀얀 신작로가 현대의 감각만 빼면 상당히 아름답다. 나는 유년의 눈을 띄우는 풍경들에 대하여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거의 사라져가는 아스라한 옛 정취를 먼 땅 시베리아 알혼섬에서 아련히 보듬고 있다. 이곳 특산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도 있다. 알혼섬에서 한 대뿐인 유일한 시내버스가 선착장 앞에 정차하여 이곳 주민들을 내려 놓는다.
바이칼 호수는 바다처럼 이곳 선착장에서도 호변을 만들어 어느 바다 해변을 연상케 한다. 모래사장과 일렁이는 파도가 그렇고, 짙푸른 물빛이 그렇고, 수없이 많은 물의 양이 그렇다. 언제 또 이곳에 오겠는가. 세계여행을 또 나선다해도 이제는 다른 여행지를 찾아 떠나겠지. 나는 마음껏 눈으로 가슴으로 알혼섬의 마지막 비경을 담았다.
* 사휴르따 선착장으로 가는 연락선
바이칼 호수 안의 알혼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락선은 차도 태우고, 사람도 태우고 사휴르따 육지의 선착장을 향해 서서히 출항한다. 아까 보았던 알혼섬의 시내버스도 승선했다. 조그만 알혼섬의 선착장이 점점 멀어지고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로 깊이 배가 진입하자 바람이 한가득 밀려온다. 바람도 싣고 가라고 배의 품에, 사람의 품에 안겨오는 듯하다. 누가 이 비경 앞에서 지금 호수를 건너간다 믿어질까. 이론으로 바이칼 호수를 건너가고 있는데 체감으로는 모두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 태평양 바다 어느 마디를 건너가는 환상이다.
* 사휴르따 선착장 하선
어제 이곳에서 바지선을 타고 알혼섬에 들어갔다가 알혼섬 여행을 마치고 오늘 다시 돌아왔다. 이르쿠츠크에서부터 우리를 태우고 왔던 대형 버스가 미리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바이칼 호수가 바로 곁에 있는데 이제 이곳을 떠나 이르쿠츠크로 이동한다. 시베리아 벌판을 또 장시간을 달려야 한다. 조금은 힘들겠지만 광활한 대평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힘찬 여정이다.
* 이르쿠츠크로 가는 길
사휴르따 선착장에서 어제 왔던 그 길을 따라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간다. 비포장도로 주행부터 시작이다. 시속 10Km의 저속운행이다. 걸어가는 수준으로 차창 밖의 풍경을 아주 자세히 볼 수 있다. 건조하고 메마른 버려진 시베리아의 땅이 전개된다. 산도 아닌 언덕의 구릉이 까칠하다. 더러는 습지도 있어 파란 풀을 뜯는 소떼들도 보인다. 길가에 말을 매어놓고 쉬는 남자도 있다. 바로 아래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의 주인인 듯하다. 눈이 저리도록 보는 마른 들녘, 황막한 구릉, 저 멀리 보이는 깊은 산자락, 그러다가 간간이 키 작은 나무의 숲 등이 차창에 연속으로 새겨진다. 2시간을 달린 후오전 11시 30분경 포장도로에 진입했다. 소금 호수도 지나가고 버스는 빠른 속도로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린다.
* 시베리아 도로변 잠시 휴식
이르쿠츠크에 가까워질수록 촉촉한 들녘이다. 나무도 점점 짙푸른 숲을 이루고 산 아래 길가에는 소떼도 많이 모여 있다. 차를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 마음대로 다니며 풀을 뜯는다. 바라보는 사람의 눈도 평화롭다. 울창한 숲속 시베리아 도로변에서 버스를 주차하고 잠시 휴식했다. 다행히 차도에는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깊은 나무숲의 공기를 심호흡하며 거닐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름다운 휴식이었다.
* 시베리아 대평원의 휴게소
시베리아 벌판의 숲은 자작나무가 대부분이다. 리기다 소나무와 적송도 있지만 은빛 자작나무가 도로변에 줄지어 서 있다. 그 자작나무들의 무더기에서 더러는 시베리아의 차가운 겨울 눈더미에 못 이겨 꺾어지거나 쓰러진 나무도 있다. 생존경쟁에서 저 나무도 다시는 일어서기 어려울 텐데, 안타깝다. 제독의 여인, 러시아 영화를 비디오로 보며 왔다. 이르쿠츠크에서 있는 꼴착제독 동상의 실제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다. 세계2차대전 때의 꼴착 해군 장교와 여인과의 사랑이 어찌보면 바람둥이 같지만 아름답게 그려진 영화다.
시베리아 대평원의 휴게소에서 내려 현지 전통특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브랴트족의 전통 식당이다. 식탁 의자가 뾰족한 것이 그들의 샤먼 상징이란다. 음식은 밥, 야채, 닭고기국, 꼬지, 돼지고기, 보드카다. 만두 종류의 꼬지를 이곳 사람들의 식습관을 따라 손으로 먹었다. 만두 속에 배인 고기국물을 흐르지 않게 하려면 손으로 먹어야만 했다. 러시아 술 보드카로 건배까지 하며 상큼한 중식이었다.
휴게소 주변은 광활한 시베리아 대평원이다. 아득한 벌판이다. 소떼들이 풀을 뜯는 모습, 들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민가 마을 등 정겨운 풍경이다. 주유소도 있고, 이동식 초원의 막사도 있다. 언제 또 밟아 보겠는가 싶어 시베리아 초원에도 들어가 보고, 아득하게 뻗은 도로변에도 나가보고 흐뭇한 시간이었다.
* 시베리아 평원을 흐르는 물줄기
아득한 시베리아 평원에 가끔씩 물줄기가 흐르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이면 어김없이 새파란 풀들이 도란도란 속삭이듯 동일한 키로 모여 자란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반드시 목장이 있다. 물줄기를 따라 식물이 자라고, 식물을 따라 가축이 자라는 생활상이다. 어쩌다 검은 흙을 파 헤쳐 놓은 땅도 보인다. 밀을 재배하려거나 목초지를 다시 조성하려는 듯하다. 파란 들녘에 나무로 경계선을 지어 놓은 것도 시베리아 대평원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르쿠츠크에 점점 가까이 이르자 알혼섬에서, 또 사휴르따 선착장 주변의 육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촉촉한 시베리아 평원이다. 여기서 이르쿠츠크까지는 40분 소요다.
* 비 내리는 이르쿠츠크 시가지
이르쿠츠크는 러시아의 파리다. 바이칼의 관문이며 태양이다. 비록 5개년 계획으로 세웠던 바이칼 상품화, 앙가라강 개발 등이 뜻대로 되진 않지만 러시아의 주요 역할을 하는 도시다. 하늘에 구름이 많더니 이르쿠츠크 시내에 다다르자 비가 온다. 거세게 오는 시베리아의 비는 버스의 창문에도 줄줄이 큰 자국을 내며 소리쳐 부딪힌다. 바깥 시가지가 빗물방울 사이로 촉촉이 전개된다. 저녁 무렵이라서 퇴근하는 차량도 많고 지상 전철도 보인다. 전철 선로가 차도에 깔려 있고 그 도로에 자동차와 전철이 함께 통행한다. 내일은 5시 30분 기상, 6시 조식, 7시 출발이다. 환바이칼 기차가 이르쿠츠크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서다. 오늘은 남은 시간 동안 이르쿠츠크의 명소를 둘러본다.
* 데카브리스트 박물관(발콘스키의 집)
프랑스는 1812년 러시아와 맺은 우호 동맹을 파기하고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 러시아는 60만여 명의 프랑스군을 몰아내기 위해 모스크바의 자작나무 건물에 불을 질러 1814년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프랑스까지 진격했다. 그때는 모스크바에서 프랑스까지 철도가 놓였다. 프랑스까지 쫓으며 몰고 간 러시아의 젊은 혁명가들은 프랑스에서 몇 년간 머물면서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민주주의에 대하여 알게 된다. 자국의 전 근대적인 봉건제도의 부패와는 다른 면을 본 것이다. 그래서 본국 러시아 모스크바로 돌아와 자신들과 함께 싸운 농민과 가난한 자들의 계급 상승을 위해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혁명을 꿈꾸었다. 이것이 12월 데카브리스트 대반란이다. 그때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러시아 말로 12월이 데카브리다. 그러나 1825년 12월 14일 제정 러시아 시절의 최대의 반란이었던 12월 혁명이 실패로 미수에 그친 것이다. 후일 이것이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젊은 장교에게는 아름답고 영리한 아내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남편이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지 않자 사랑하는 남편을 찾아 모스크바로 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찾아 온 것이다. 젊은 장교 부인들이 러시아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이곳으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오직 남편을 찾아 11명의 여인들이 왔다. 발콘스키는 데카브리트 혁명 주역 중 한 사람이고 그때 이르쿠츠크로 유배된 사람이다. 발콘스키의 아내 예카체리나도 왔다. 발콘스키는 귀족의 아들이다. 이 집은 생시 그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둔 박물관이다. 이렇게 혁명단원들이 시베리아로 추방당했고, 유배된 사람이 120여명이다. 이때 이르쿠츠크에 정착한 데카브리스트들이 많으며 이들 중 일부가 형을 마치고 살아남아 이르쿠츠크를 수준 높은 교육도시로 만들어 지금의 이르쿠츠크가 만들어졌다.
그들의 거주지 중 발콘스키의 생가인 이 집은 제까브리스트들이 제1차 사면을 받았던 1838년, 이르쿠츠크 근교에 위치한 우를릭 마을에 건축했던 건물로 1864년 제 2차 사면을 받으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재조립한 나무주택이다. 데카브리스트였던 발콘스키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이다. 1985년 12월 10일, 11년 간의 재건축 공사를 마친 후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으로 개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은 여러 군데 있으나 가장 화려하고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 이곳 발콘스키의 생가다. 발콘스키의 집을 기념관으로 개관하여 고난의 역사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그 당시 푸쉬킨과 톨스토이도 있었다. 푸쉬킨도 데카브리스트들의 친구였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안드레이 발콘스키는 실제인물인 데카브리스트의 지도자였던 세르게이 발콘스키가 모델이라는 말도 있다. 세르게이 발콘스키는 톨스토이의 숙부인데, 어떤 방법으로는 그의 삶을 그려주고 싶어 했다.
박물관 2층 벽면에는 그날의 일들을 그림으로 그려서 벽에 전시해 두었다. 모든 방과 이어져 있다는 하얀 타일의 벽난로도 있다. 방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의 11명 아내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발콘스키의 아내 예카체리나가 첫 번째로 걸려 있다. 환한 창가에서 독서를 하던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화재로 많이 타 버렸지만 남은 책들도 있다. 음악을 좋아했던 안주인 마리야 여사나 문학을 좋아했던 발콘스키의 영향으로 이 집에서는 음악회나 시 낭송, 가면 무도회 같은 공연이 쉬지 않고 열렸다. 이르쿠츠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문화센터로서의 역할이 컸다. 당시의 유품으로 세계에서 단 2대뿐이라는, 1792년에 제작한 포르테 피아노가 독특한 모양으로 주인을 기다리듯 높은 목으로 솟구쳐 있다. 그날의 프랑스 신문이 큰 더미로 묶여 펼쳐 있고, 발콘스키의 젊은 장교시절 복장의 사진이 화사하다. 문화 행사를 하던 넓은 방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덩그러니 자리를 보존하고 있어 시선을 끈다. 그 당시 활동하던 푸시킨이 고뇌의 자태로 구석진 벽면에 조촐하게 서 있다. 바깥에는 학교였던 건물과 꽃정원 등이 아픔이 잠재우고 고운 빛을 발한다. 쇠고랑을 차고 젊은 시절 유배되었던 발콘스키, 그는 90세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흔적이 배인 개인 소유의 집에서 아픈 상처와 한편으로는 그 당시의 화려했던 높은 문화를 느낄 수 있다.
* 이르쿠츠크의 건물들
유럽의 파리라는 도시가 어찌 보면 허름하고 소박하다. 가끔씩 유럽형 육중한 건물도 보이지만 아시아의 현대적 거물도 보인다. 층수는 대부분 낮다. 높이 솟은 러시아 정교 교회, 수도원 건물이 도시의 꽃처럼 곱다. 건물에 쓰여 있는 상호들이 영어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뒤집어진 알파벳이 있다. 그래서 읽을 수도 없고 그 뜻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문화의 보고다. 시베리아의 웅장한 자연 속의 이르쿠츠크는 현대인들의 문화와 전통과 습관에 전혀 물들지 않은 모습이다. 앙가라강은 한강처럼 이르쿠츠크의 도심을 감싸 안은 채 넓은 품사위로 흐른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 즈나멘스키 수도원
하얀 건물에 초록색 돔 지붕, 그리고 금색 첨탑이 예술적인 조형미를 갖추
고 아름답다. 앙가라강이 흘러드는 우샤코프 강변에 1762년 여자 수녀에 의해 생긴 이 수도원에는 데카브리스트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단에 발콘스키의 부인 무덤도 있고, 예카체리나가 아들과 함께 묻힌 가족 합장묘도 있다. 러시아 정교를 최초로 이르쿠츠크에 설립한 자의 묘도 꽃 화단에 있다. 알레스카를 처음 발견하여 러시아에 편입 시킨 러시아의 콜럼버스라 불리는 항해사 제리포프의 묘도 크고 높게 서 있다.
러시아 정교는 금색을 좋아해서 창문에 금색을 도색한다. 또한 러시아 정교는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데 여기 수도원의 외벽에도 그림이 있다. 한 바퀴 돌아 실내로 들어갔는데 남자는 반드시 모자를 벗어야 하고 수도원 내에서는 엄숙해야 되어서 조용히 둘러보고 나왔다.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는 꼴착 제독 동상이 우람하게 서 있다. 꼴착을 앙가라강에서 총살했는데 그 시체를 수녀들이 건져다가 수도원에 놓았고 현재도 수도원 안에 그 시체를 보존하고 있다. 꼴착 동상과 즈멘나스키 수도원이 함께 한 포근한 시선으로 담겨진다.
* 꼴착 제독 동상
꼴착 제독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내전인, 10월 혁명시 볼셰비키 혁명군에게 대항하며 황실을 보호하려던 백군 총사령관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제정 러시아 전쟁영웅이기도 하다. 혁명군 적군에게 밀려 이르쿠츠크까지 오게 되고 그는 체포되어 바로 총살당하여 강에 버려졌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의 수녀가 그것을 보고 건져다 놓은 장소가 바로 지금 꼴착 제독 동상이 서 있는 이곳이다. 이 동상은 그가 이르쿠츠크에서 체포되어 처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 세운 것이다.
꼴착은 생시의 그 당시에는 바람둥이로 알려지기도 했고 역사적 평가가 낮았는데 현재는 우리나라의 안중근격으로 추앙한다. 단순히 해군장교가 아닌 조국애를 맹세했다는 점에서 재평가 되고 있다. 제독의 여인, 영화 실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었는데 그의 사랑과 용맹은 남아서 뭇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다. 동상 앞의 화환은 생생한 모습으로 그를 조명하고 나무 사이로 보이는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그를 포근히 보듬고 있다.
* 이르쿠츠크의 창문이 낮은 집
이르쿠츠크의 도심 어느 블록에는 창문이 낮은 집이 있다. 그것은 이곳에 지진이 잦아 땅은 솟고, 집은 내려앉아서 그렇다. 아담한 목조의 집이 도로변에서 낮게 내려앉은 예쁜 창문을 달고 서 있다. 저런 집은 잘 보존해야 하며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한단다. 외형으로는 고운 자태인데 바라보는 외인의 눈에는 애처롭다.
* 스파스카야 교회
키로프 광장 근처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다. 시베리아를 정벌하려 온 초기 카자흐인들에 의해 1706년~1710년에 건축된 가장 오래된 석조 건물로 전해진다. 교회의 바깥 부분의 벽도 그림으로 장식되었다는데 내가 갔을 때는 공사 중으로 하얀 천을 둘러쳐 놓았다. 그러나 건축의 조형미는 즈나멘스키 수도원처럼 상장히 아름다웠다. 동 시베리아에서 유일한 형태의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그림은 브랴트인들이 세례 받는 장면, 이르쿠츠크 최초의 주교 노켄띠야 쿨치쯔코바가 임명되는 과정, 가운데는 예수의 세례 받는 장면이란다.
스파스카야 교회는 구 소련 시대 때는 영화 기구를 수리하는 장소로 쓰였으며, 1982년 이후에는 이르쿠츠쿠의 민속 문화를 교육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더 이상 이 교회에서는 예배를 보지 않으며 시베리아의 동물들과 수공예품들이 전시된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시베리아 소수 민족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건너편에는 이르쿠츠크 주정부청사가 있다. 그 사이 큰 도로가 있는데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산책로다.
* 시베리아 유일의 림스끼 성당
시베리아에 유일의 폴란드 카톨릭 교회다. 유럽에서 쫓겨나 이르쿠츠크로 유배 온 폴란드인들이 세운 성당이다. 작지만 붉은 색 성당 건물이 나무 사이에서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원래 이 자리에 목조 성당이 있었는데 이르쿠츠크 대화재 때 다 타버렸다. 그 후 이르쿠츠크로 유형된 유럽의 카톨릭 신자들이 모여 헌금으로 석조 성당을 지었다. 1987년에 성당의 건물을 수리한 후에 성당 안에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했다. 성당은 오르간 홀이 되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특별히 주문해서 독일에서 가져왔다. 지금은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회가 자주 있으며 신부님이 미사를 보고 있다.
이 건물은 100년 전에 지었는데도 지금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림스끼 성당은 이르쿠츠크에 단 하나뿐인 카톨릭 성당이다. 푸른 나무로 붉은 첨탑이 아름답다. 작고 아담한 성당이 예술적인 면모로 유럽의 향수를 머금고 있다.
* 이르쿠츠크 주정부청사
이르쿠츠크는 동 시베리아의 중심에서 산업과 무역교역으로 급속하게 성장한 도시다. 주정부청사는 중심 대로변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원래는 이 일대가 모두 카잔 교회 자리였단다. 그래서일까. 정문 곁에는 카잔 교회의 마리아 잔상이 남아 있다. 금색 돔 지붕의 십자가 첨탑 작은 건물 안에 마리아상이 있다. 정원의 꽃 화단이 매우 아름답다.
이르쿠츠크는 430년의 역사적 도시로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곳인데 주정부청사도 그것을 대변하듯 회색 석조 건물이 탄탄해 보인다. 또한 이 도시에는 문화유적이 많이 있는데, 러시아의 큰 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많다. 시베리아에서는 예니세이스크와 함께 역사적인 도시다. 세계 문화유산 지정협회에서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로 인정했다.
뒤편에는 세계2차 대전 승전을 기리는 승리 기념광장이, 앞편에는 키로프 광장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뒤로 앙가라강과 이어져 있어 아름다운 정경이다. 주정부청사 주변에는 한국의 삼성전자 건물이 크게 서 있다. 낯선 이국의 풍경만 보다가 내 조국의 낯익은 문구에 매우 반가웠다. 시베리아에서 높은 한국의 위상이 휘날리고 있다. 이곳은 중심지여서 건물도 웅장한 것들이 많고 바로 앞 대로에는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 카잔 교회의 잔상 마리아상
상실과 위험 속에서 고난 받던 어려운 시절에 이르쿠츠크에 교회을 세울 것을 신에게 맹세했던 사람이 있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그 맹세는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고 그 염원은 이루어졌다. 1875년 4월 17일 거대한 카잔 교회가 이르쿠츠크의 큰 상인이었던 금광채굴업자의 거금으로 세워졌다. 이르쿠츠크 건축가가 설계했고 러시아 비잔틴 형식의 장식으로 마무리해서 완공했다. 시베리아뿐만 아니라 전 러시아에서도 손꼽히는 장엄하고 훌륭한 교회 건축물이었다.
카잔 교회는 5천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었고 높이는 60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다. 상트페테르부르그의 이삭 성당이 8천명을 수용하고 모스크바의 큰 성당이 73m인 것에 비하면 상당한 크기였음을 알 수 있다. 카잔 교회는 이르쿠츠크의 건축물 중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였으며 특히 거대함과 섬세함과 풍부한 장식에 있어서 아름다운 교회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의 공산당이 신도를 몰아내고 교회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1932년 교회는 철거되었고 건물 잔해는 현재 주정부청사 바로 앞에 있는 키로프 광장을 메우는데 사용했다. 그 결과 키로프 광장은 거의 1m가 더 높아졌고 많은 시민들의 발길에 짓밟혔다.
카잔 교회가 있던 그 자리에는 지금의 주정부청사가 세워져 있다. 주정부청사의 정문 곁 한적한 곳에 황금색 돔 지붕의 하얀 작은 건물이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하늘 향해 목을 늘이고, 조촐한 교회 건물 속에는 그날의 카잔 교회 잔상 마리아상이 들어앉아 있다. 현대식 주정부청사 건물과는 겉도는 느낌의 건물인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카잔 교회의 거룩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명소다.
* 영원의 불꽃 베츠늬이 아곤
주정부청사 뒷면 벽에는 세계대전 전몰자 명단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그 바로 앞 열린 공간은 역시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광장이 길게 자리하고 있다. 그 광장 중앙에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은 불꽃, 영원의 불꽃, 베츠늬이 아곤이 있다. 비가 와도 꺼지지 않는 추모 불꽃이다. 희생 없이 이루어진 국가가 어디 있던가. 스러져간 군인들의 영혼 앞에서 소슬한 슬픔이 감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죽어간 이름 보를 용사를 기리는 영원의 불은 1년 내내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힌다. 이 순간에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무명용사들의 영혼을 달래는 영원의 불꽃은 활활 용감한 숨결을 내뿜는다.
* 앙가라강과 이르쿠츠크 강이 만나는 곳
바이칼호에서 유일하게 흘러나오는 강이 앙가라강이다. 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 청명한 물줄기가 이르쿠츠크에 와서 이르쿠츠크강과 합류하는 지점이 도심에 있다. 두 강이 한 지점에서 만난 광폭의 강물이 이르쿠츠크 도시를 가르며 비경을 자아낸다. 강변에는 한창 건설 중인 장비와 인부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1960년 앙가라강가에 석축을 쌓고 대대적으로 정비하여 강변 산책로를 조성했다.
이곳은 시민들의 휴식처이면서 이르쿠츠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외국인도 즐겨 찾는 명소다. 앙가라강을 순회하는 유람선도 운항한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강변 쪽으로, 즉 주정부청사가 있는 곳이 중심지다. 저 건너도 푸른 나무 사이로 아름다운 도시 풍경이다. 두 강이 만나면서 큰 폭으로 비경을 선사한다.
* 타일 장식의 러시아 정교회
앙가라 강변에 타일로 지은 러시아 정교회 건물이 동화 속 궁전처럼 곱다. 이곳의 명칭으로는 바가이 블레니야 사보르다. 1693년 목조 건물로 지었으나 1716년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1718년 석조로 재건축했다. 건물 외부는 처음으로 기하학적인 문양과 동식물의 모양을 타일을 이용하여 조각하는 장식 기법으로, 약 300가지 색상의 타일로 꽃과 전설 속의 이야기들을 꾸몄다. 그 당시의 타일 제작 기술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시베리아에서 타일 장식을 한 건축물은 이곳 외 2개의 건축물이 더 있을 뿐이다. 고대 러시아와 바로크 형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으로 미술 사학자들은 시베리아 바로크 양식이라고 부른다.
이 교회는 이르쿠츠크의 시민들에게는 아주 의미 깊은 곳이다. 역사적인 고비 때마다 여기서 모임을 갖고 중요한 성명을 발표할 때는 항상 이 교회 앞 광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1934년 역사의 흐름에 따라 교회는 문을 닫았고 대신 빵 공장, 기숙사, 소금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이 교회는 몇 년에 걸쳐서 재건축 중이며 이르쿠츠크에서는 신도수가 비교적 많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교회다. 앙가라강과 함께 외형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 키로프 광장
주정부청사 앞의 큰 대로 건너편에 위치한 매우 아름다운 광장이다. 맨 끝의 주황색 건물은 석탄공사인 그 또한 한껏 고운 정경을 더해 준다. 한국의 삼성건물도 근처에 우람하게 있다. 주변에는 아름다운 교회와 카페, 정원이 있어 결혼한 신랑 신부들이 와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광장에서 앙가라강을 바라보고 서면, 정면에는 건물이 주정부청사가, 오른쪽 대각선으로는 붉은 건물의 로마 카톨릭 성당이 있다. 주정부청사 뒤편으로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이르쿠츠크 시민 기념비가 있다. 주변을 다 돌아보고 여기에 왔다.
이르쿠츠크의 중앙공원으로 산책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밤낮 없이 모여드는 곳이다. 광장 중앙에 가꾼 꽃 화단이 절경이다. 오스트리아 쉔브른 궁전의 뒤 뜨락 꽃정원을 연상케 한다. 꽃정원 끝의 분수까지도 유사하다. 양쪽으로는 이르쿠츠크의 역사적 건물 사진 자료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러시아어는 전혀 판독하지 못하여 그냥 지나치며 꽃향기 그윽한 길을 따라 분수까지 걸어서 되돌아 왔다. 지친 여정을 상큼하게 어루만져주는 환희다.
* 쌈지 공원
이르쿠츠크 도심의 앙가라강변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공원의 노동자 광장에는 알렉산더 3세 동상이 커다랗게 서 있다. 주변에는 도로가 있어 차들이 분주히 왕래한다. 경찰차도 도로를 지키고 있다. 공원 바로 곁에는 강이 있고 나무가 어우러져 있어 시민들이 찾기에 아주 좋은 휴식공간이다.
* 알렉산드르 3세 동상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철도를 건설한 사람이다. 쌈지 공원의 노동자 광장에 있는 이 입상은 시베리아 철도 건설을 기념하기 위해 1908년에 세워졌다. 1897년 시베리아 철도는 이르쿠츠크까지 부분 개통되었고 철도 개통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 곳 블라디보스톡, 이르쿠츠크, 페테르부르그에서 세워지게 되었다. 이르쿠츠크는 모스크바에서는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되어 있고, 앙가라 강과 바이칼 호수를 잇는 정기 여객선이 있어 러시아의 극동지역과 우랄 지역,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동부의 교통 요충지이다.
당시 황제 알렉산드르 3세의 입상이 세워졌으나 혁명 때 철거 되었고 1960년 이르쿠츠크의 오랜 명물인 오벨리스크가 세워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2003년 10월 그 오벨리스크를 치우고 원래 알렉산드르 3세의 입상을 복원시켰다. 입상의 높이는 4.95m, 동상의 총 높이는 13.45m로 상당히 크다. 그는 지금도 블라디보스톡을 응시하고 있다. 동상 아래에는 러시아 상징의 문장인 쌍두 독수리가 조각되어 있다. 모두가 아주 크고 우람한 형상이다. 뒤편에는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뮤라비요프 아무르스키가 있다. 길 건너에는 동시베리아 총독관저였지만 현재는 이르쿠츠크 국립대 법과대학 도서관으로 바뀐 미색 건물도 있다. 그 맞은편에는 황토색의 향토박물관 건물이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다. 향토학은 러시아에서는 유명한 학문이다. 앙가라강은 곁에서 교교히 흐르고 알렉산드르 3세는 도도한 면모로 러시아의 굵은 맥을 보여주며 이르쿠츠크 도심을 붙들고 있다.
* 유노스지
쌈지 공원의 광장에서 앙가라 강쪽으로 가서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젊은이들의 휴식처 유스노지가 있다. 젊은이들을 위해 세운 건물이다. 유스노지는 러시아 말로 젊음이란 뜻이다. 초봄부터 늦여름까지 야외 무도회장이 열리고 젊은이들의 열기로 가득 찬 곳이다. 건물 앞 물 속에서 분수가 간간이 솟구치며 비경을 자아낸다.
* 이르쿠츠크 경찰차
나라마다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다르다. 홍콩에 갔을 때는 존경받는 직종이었는데 이곳 이르쿠츠크에서는 경찰을 낮춰서 표현한다. 심할 땐 저속한 동물에 비유하기도 한단다. 그 이유로는 아주 작은 교통법규 위반에도 심한 지적을 하기 때문이란다. 안전 벨트 안 맺다고 잡고, 앞 유리 두께 기준에 안 맞는다고 잡는다는 것이다. 범파가 낡았다고 시비 걸어 돈 달라고 학생 붙잡고 지각하는 사례도 있었단다. 어쩌면 경찰의 의무를 충실히 하는 것 아닐까 싶은데 이곳 사람들의 시각으로는 좀 힘든 상황인가보다. 쌈지 공원 알렉산드로 3세 동상 앞의 도로변에 주차한 경찰차가 시선을 끈다.
이르쿠츠크에는 고려인이 많다. 중국에서 조선족이라 부르듯이 시베리아에서는 우리 동포를 고려인으로 부르는 것이다. 알혼섬에 갈 때 도시락을 싸 주었던 고려인 할머니가 내일 환바이칼 열차 탑승에서도 점심 도시락을 싸 준단다. 조국의 손맛을 잊지 않고 맛깔스럽게 한식 음식을 만들어 주신단다. 내일은 5시 30분 기상, 6시 조식, 7시 출발이다. 모든 짐을 챙겨서 숙소를 출발한다. 이르쿠츠크역에서 8시 환바이칼 기차를 탑승한다. 여권은 그 동안 숙소에 맡겨뒀었는데 가이드가 받아서 공항에서 나누어 준단다. 이르쿠츠크시내의 여행을 마무리하며 욜로츠카 통나무집 숙소로 돌아왔다.
2011년 7월 6일 수요일 환바이칼 열차 탑승
* 시베리아 욜로츠카 통나무집 출발
오늘은 욜로츠카 통나무집을 떠난다. 환바이칼 열차를 탑승한 후에 곧바로 이르쿠츠크 공항으로 간다. 7시 출발이라서 일찍 일어나 서둘러 짐을 챙겼다. 온통 나무로 지은 집의 방안이 무공해로 원시의 향수에 젖는 기쁨을 주었는데, 창밖의 푸른 나무들이 커튼만 열면 한가득 가슴팍에 안겨왔는데 이제 작별이다. 팁을 놓았는데도 가져가지 않는 욜로츠카 통나무집의 순수한 숨결이 시베리아의 영롱한 회억으로 남으리라.
비가 온다. 버스가 대형으로 집 가까이 접근하지 못해 약간 걸어서 갔다. 언제 걸어 보겠는가. 이 비오는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길을... 송글송글 솟구치는 소나무 숲길을... 행복한 걸음으로 욜로츠카 통나무집을 출발했다.
* 이르쿠츠크 전철역 환승 선로
버스가 이르쿠츠크 기차역을 향해 갈 때, 역 가까이에서 잠시 동안 도로가 막혀 머물렀다. 비가 많이 내려서 정체되는 것 같다. 도심의 거리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과 전철이 다니는 선로가 함께 놓여 있다. 마침 전철역이 도로변 지상에 있어서 전철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는데 전철에서 기관사가 나와 차도 바닥에서 철선을 조작하여 선로를 바꾼다. 기관사가 나이 든 여자다. 좌회전 하던 전철이 지나가면 뒤따라온 전철이 직진 선로로 바꾸어 놓고 지나가곤 한다. 두 선로가 만나는 곳에 홈을 파 놓아 쇠고리로 내리고 올리는 조작을 하면 좌회전과 직진 가능한 선로로 바뀌는 것이다. 잦은 지진으로 지하에 건설하지 못하는 지상 전철의 불편한 한 단면을 본 것이다.
또 한 가지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버스에 한국 글씨를 많이 달고 다닌다. 입시학원, 부산 공항, 한국의 도시 시내 행선지 등 세밀히도 새겨진 내 조국의 언어가 정겹게 도심을 흐른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들어온 중고 버스를 그대로 운행해서란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어를 판독하지 못하니 그것을 하나의 장식처럼 멋스럽게 버스의 창문에, 외부에 새겨진 채로 차를 몰고 다닌다.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도심을 활보하는 한글이 타국의 영토에서 나에게로 가슴 훈훈하게 안겨온다.
* 이르쿠츠크 기차역
버스 창문 밖으로 비 내리는 이르쿠츠크의 아침 시가지 풍경을 보며 오전 7시 30분에 도착했다. 이르쿠츠크의 기차역은 도로변에 있고 건물이 아담하고 예쁘다. 8시 기차를 탑승하기 위해 부지런히 역 안으로 들어갔다. 플랫홈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3번 레일로 들어올 거란다. 여기서 슬류지얀카역까지는 철로가 좋아서 빠른 운행으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슬류지얀카에서 뽀르트역까지의 구간은 환바이칼 코스로 시속 20Km의 저속 운행이 이루어진다. 푸른 색과 흰색의 열차가 들어온다. 환바이칼호 여정의 순조로운 첫출발이다.
* 환바이칼호 열차 탑승
환바이칼 열차는 이르쿠츠크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 내륙 들녘을 거슬러 바이칼호 최남단 마을인 슬류지얀카역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바이칼 호수를 아주 가까이 접하며 달려 앙가라 강변의 뽀르트 바이칼역까지 매주 2회만 왕복하는 관광열차다. 우리나라의 기차처럼 지정호차의 지정좌석에 앉아야 한다. 우리 일행은 모두 1호차이며 우리부부는 29, 30번 좌석이다. 기차는 강을 따라 달린다. 점점 이르쿠츠크에서 멀어진다. 시골로 접어드니 울창한 숲과 러시아의 목조 건물 집들이 보인다. 동화 속을 더듬는 듯한 아름다운 풍경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구간에서 슬루지얀카 역까지는 철도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빠른 속도로 달려 약 2시간 소요된다. 슬류지얀카역에 잠시 경유하며 정차한 후 바이칼 호수변을 따라 저속으로 달려 올라가는 여정이다. 슬류지얀카-앙가솔까-뽀르트 바이칼역까지 바이칼 호수 구간은 황금으로 만든 연결쇠(Golden Buckle), '구 철도길' 이라고도 불리는 철도를 슬류지얀카에서 뽀르트 바이칼까지 80km 밖에 안 되는 길을 시속 20km 정도로 천천히 가는데 아무런 장애 없이 잘 달릴 때 약 7시간 소요된다. 오늘은 비가 와서 환바이칼 열차의 승차 시간은 총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시간이 무슨 문제일까. 내 생애 꼭 딛고 싶었던 영토 시베리아 평원을 가로지르며, 간간이 내려 그 땅을 밟으며, 그리고 그토록 갈망하던 바이칼호를 곁에서 보는데, 그 물을 만져도 볼 텐데, 이 최고의 환희 앞에서 열차의 긴 승차 시간은 오히려 행복이 아닐까. 마주 보는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시베리아 들녘을 달릴 때, 산모퉁이 너머로 바이칼 호수가 보인다. 바이칼 호수는 안개비를 헤집고 광활한 품사위를 드러내고 있다.
* 바이칼호의 최남단 슬류지얀카 마을
바이칼 호수가 보이고, 호수변에는 마을이 곱게 수를 놓는다. 이곳은 바이칼 호수의 최남단 슬류지얀카 마을이다. 호변을 따라 형성된 마을도 있고, 안쪽으로 들어앉은 마을도 있다. 기차는 슬류지얀카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바이칼 호수 쪽으로 달린다. 감자를 비롯한 여러 가지 농사를 짓고 있다. 바닷가 마을 같은 착각이 든다. 여기는 정녕 바이칼 호숫가로 민물이 넘실거리는 수변 마을이다.
* 슬류지얀카 기차역
역사 건물이 아름다운 역이다. 슬류지얀은 대리석이란 뜻이다. 대리석으로 지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근처에 대리석을 캐내는 산이 있다. 하루에 4~5Cm 밖에 못 캐낸다. 1m 캐는데 1천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꽤 비싼 비용이다. 슬류지얀카 기차역은 1년에 3만 5천명 드나드는 역이다. 대리석 건물은 초록색 지붕과 함께 참으로 아름답다. 역 안에 들어가 보니 조용한 시골 기차역 향수가 서려 있다.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낭만이 먼저 파고들어 행복한 걸음으로 기차역을 떠나 다시 환바이칼 열차에 탑승했다.
* 바이칼 호수의 최남단 풍경
기차는 슬류지얀카역을 출발하여 바이칼 호수에 아주 가까이 달린다. 창밖으로 바이칼 호수가 드넓게 전개된다. 여기는 바이칼 호수의 최남단 수변이다. 시베리아의 여름, 키 작은 파란 풀들이 잔치하듯 일어서 출렁이고, 길을 따라 마을 사람이 자전거로 달리고, 물결은 바다의 파도처럼 하얗게 밀려온다. 낮은 지역으로 넘쳐 들어온 물이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 호수변의 푸른 초지에는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자리한 수변 마을에는 감자가 자라고 있다. 시베리아의 검은 흙을 아주 근접한 거리에서 본다. 비닐을 치지 않은 농사가 천연의 향수다. 운무 서린 호수, 구름 드리운 하늘, 모두 장엄한 바이칼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기차는 바이칼 호수의 최남단을 돌아 위쪽으로 올라간다. 바다의 어느 항구 같은 풍경이다.
* 철교가 아름다운 앙가솔까 마을
철교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비가 내린다. 나는 비옷을 입고, 남편은 우산을 쓰고 기차에서 내렸다. 아치형 다리와 아름다운 조형의 철교가 나란히 있다. 그 다리를 걸어도 보고, 다리 아래 바이칼 호수로 흘러드는 물도 보았다. 철교 끝에는 굴도 있다. 청색과 하얀 색으로 된 시원한 모양의 기차는 승객을 내려놓고 긴 몸체로 서 있다. 호숫가에는 어촌 민가가 몇 채 있고 작은 배가 놓여 있다. 마을입구에는 화가가 이 지역의 자연을 그려 그림을 전시한 래리호 갤러리 미술관도 있다. 산자락 아래, 바이칼 호수를 눈앞에 둔 아담한 마을이다.
* 끼르깨리 강물이 유입되는 곳
환바이칼 열차는 가끔씩 기관사 마음대로 멈추곤 한다. 예정되지 않은 곳에서도 정차하여 승객에게 기쁨을 준다. 이곳도 일정에는 없는 순서인데 갑자기 안내 방송과 함께 약간의 시간 동안 나가서 구경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끼르깨리 강물이 바이칼 호수로 유입되는 곳이다. 작은 강이지만 바이칼호를 구성하는 물줄기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강물이다. 아치형 다리 아래로 흘러들고 있다.
* 바이칼 호수변의 관광시설
비가 계속 내린다. 기차의 창문을 심히도 두드리며 점점이 빗물을 그려놓는다. 이것도 아름다운 정경이라고, 비 내리는 바이칼을 언제 또 보겠냐고, 그리 생각하며 한시도 호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산을 돌아가기도 하고, 호수 가까이 지나가기도 하고, 환바이칼 열차는 아주 서서히 달리며 곳곳의 비경을 선사한다. 바이칼 호수변에 관광시설도 보인다. 잘 지어놓은 목조 건물과 바이칼 호수를 조망하는 시설도 보인다. 이 기차가 지나가는 행선은 바이칼 호수의 최근단 철로여서 마을은 자주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간혹 수변의 건물이나 설치물이 보일 때는 사막에서 나무를 만나듯 반갑다.
* 끼르깨리강과 터널
조금 전에는 끼르깨리 강물이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것을 보았는데 이곳에서는 끼르깨르 강물이 낙차하는 것을 보여준다. 터널을 따라 내려온 물이 시멘트 수로를 따라 힘차게 내려온다. 곁에는 터널도 있다. 또 정자도 있다. 이곳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철로를 건설할 때 지휘하던 곳이기도 하다. 바이칼 호수가 야생화 가득 핀 언덕 아래 절경으로 전개된다. 망망한 호수는 바다 같은 환상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망망대해라고 일컫는다. 망망대호, 라고 하면 잘못 지어진 이름일까. 위험하다는 표식으로 철선을 쳐둔 절벽, 그 아슬한 바위에 걸터앉아 바이칼 호수와 하나로 잠시나마 숨결을 잇는다.
* 바이칼 호수변 감자 밭
시베리아에는 감자가 많이 생산된다. 음식에서도 감자 요리가 많이 나온다. 고구마는 없단다. 바이칼 호수변에 감자 밭이 아름답다. 시커먼 흙에 튼튼한 줄기로 자라고 있다. 한국보다는 계절이 추워서 아직 잎사귀가 어린 편이다. 한국은 지금 하지 감자를 수확하는 시기다. 내 조국의 감자 잎과 모양새가 비슷하여서 나는 저것이 감자임을 바로 알았다. 또한 저 식물은 시베리아 곳곳에서 많이 보아왔다. 기차가 서서히 달리므로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묻고 싶었다. 저녁이면 고독한 바이칼 호수와 도란거리며 벗이 되겠구나. 바이칼 호수는 네게 고마워서 싱싱한 숨결의 수분을 날려 주겠구나. 참으로 고운 정경이다.
* 아름다운 경관의 고립된 빨라빈늬 마을
고립되고 경관이 아름다운 바이칼 호변 마을이다. 1시간 20분 동안 정차한다. 오후 3시 20분~4시 40분까지 개인 휴식이다. 사실은 이곳에서 중식을 하는데 도착 시간이 좀 늦어져서 점심식사는 이미 마친 상태다. 정오 무렵 한식 도시락으로 기차가 달릴 때 기차 안의 테이블에서 맛있게 먹었다. 빨라빈늬 마을은 바이칼 호수에서 아주 가까이 자리하고 있는데 마을 앞에 또 하나의 작은 호수가 있다. 배도 매어 있다. 목조의 건물들이 푸른 산자락 아래 자리하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시베리아 고전의 향수를 자아낸다. 마을에 들어가서 돌아보니 작은 식당도 있고 가게도 있고 학교인 듯한 건물도 있다. 마을 건너편 바이칼 호숫가에도 내려가 보았다. 기차는 바이칼 호숫가에 길게 서 있고 바이칼 호수는 파도치며 해변을 만들고 있다. 하얗게 밀려오는 물결이 호수변에서 부서지는 모양은 바닷가를 연출한다. 그리운 먼 동경의 시베리아 물들이 한가득 고여 하늘 향해 출렁인다. 달이 이끄는 만유인력의 법칙도 아닐 텐데 정녕 누구의 입김으로 저리 살아 숨 쉬는 걸까. 수많은 상념이 교차할 때, 둔덕에는 야생화가 시베리아의 낭만을 선사하고 있었다. 빨라빈늬 마을은 고립되었어도 철도 너머 바이칼 호수가 잘 지켜주고 있다.
* 바이칼 호수
빨라반늬 마을에서 바이칼 호수를 가장 가까이, 그리고 가장 긴 시간 동안 바라보았다.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다. 해변 같은 수변을 걸어보고, 물을 만져 보고, 거대한 호수를 감싸고도는 운무를 감상하고, 네가 정녕 호수냐고 물어도 보고, 바다에 대한 향수로 애련한 환상에 젖었다. 시베리아를 가보라야, 바이칼을 가보아야 그 막막한 광원에서 인생의 소중함을, 나에 대한 존재가치를 깨닫는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나는 이미 시베리아 평원은 지나왔고 지금 눈앞에는 바이칼이 전개되고 있으니 생의 깊은 진리를 아름답게 깨달은 체험이다.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 남동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다. '풍요로운 호수'라는 의미를 지닌 바이칼 호수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며 가장 많은 담수량을 자랑하는 호수다. 호수의 길이가 640km, 폭은 가장 넓은 곳이 80km, 가장 좁은 곳이 27km이고, 초승달 모양으로 러시아의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길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도상에서도 분명히 드러내는 아주 큰 영역이다.
호수 주위에는 336개의 하천이 흘러들지만 호수에서 나가는 강으로는 오직 앙가라 강이 유일하다.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담수호다. 수심이 세계에서 가장 깊으며,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1,637m다. 물이 투명해 동전을 은쟁반에 담아 40m 깊이에 놓았는데 그 반사하는 빛이 보였다는 것이다. 수심 40m의 동전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깨끗함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담수량인데 세계민물의 20%, 세계 식수의 80%를 차지하는 천혜의 호수다. 전 세계 인구가 40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천연 광천수의 저장고다. 기막힌 사실이다. 지구 곳곳에서 물 부족으로 힘들어 하는데 바이칼 호수는 전 세계 인구의 식수로 40년을 사용할 만큼의 물을 저장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큰 자산인가. 정녕 바이칼은 바이칼이라는 감탄을 연발케 한다.
바이칼 호수는 2500만년~3000만년 된 나이만큼 태고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샤머니즘 사상을 잉태한 원천인 호수이기도 하다. 호수 안에는 징기스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의 알혼섬을 비롯해 크고 작은 26개의 섬들이 있다. 호수에는 2600여 종류의 많은 동식물이 살고 있는데 그 중 80%는 이곳 바이칼에서만 자생한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호수다. 네르파라는 담수호 물개가 서식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다에만 사는 동물인 물개가 이 호수에 약 10여만 마리 살고 있다. 아무리 바다 같은 호수라 해도 분명 여기는 민물인데 어찌 바다에서 호흡하며 사는 물개가 민물을 마시며 사는지 신기한 일이다.
바이칼은 냉호수로 수심 200m부터 연중 수온이 영상 4도를 유지하여 여름에도 물이 차갑다. 11월이 되면 얼기 시작하여 12월 말부터는 완전히 얼어 고요한 얼음판이 된다. 그때는 얼음의 두께가 80cm~120cm나 되어 호수 위에 교통 표지판이 세워지고 화물 트럭이 호수 위로 지나가는 등 이 지역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로가 되고 있다. 저 찬연한 호수가 겨울이 되면 숙명 같은 고독을 내려놓고 단단한 등짝을 사람에게 내밀어 허락하는 것이다. 시베리아의 도도한 평원과 바이칼 호수의 단단한 집념이 만나는 겨울, 그 하얀 설경을 그려보며 그때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뼈 속까지 시린 영하 40도 혹한의 일기가 나를 받아주지 않음을 나는 잘 안다. 소설 같은 환상을 목전에 그려보며, 오늘 저 바이칼 호수를 본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여서 생애 최고의 순간이다.
* 환바이칼 열차 내경
환바이칼 열차는 여름에는 6량 정도의 칸을 달고 훈행하고 여울에는 2칸 정도를 달고 운행한다. 지금은 여름이라서 객차가 많다. 우리는 1호차다. 1호차의 내부는 우리나라의 KTX 열차 수준으로 훌륭하다. 발 앞의 간격도, 통로도 넓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다. 화장실도 있고, 객실 뒤편에서는 승무원이 계속 물을 끓여서 제공한다. 무료로 제공되는 그 물로 커피, 컵라면 등을 먹을 수 있다. 우리 부부도 그 물로 한국에서 가져간 커피와 컵라면을 먹었다. 마주하여 동승한 앞좌석 부부와 정답게 이야기하며 먹었다.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는 기차다. 하지만 객차마다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어떤 칸은 딱딱한 의자만 한쪽 방향으로 놓여 있고, 어떤 칸은 마주 보지만 테이블이 없다. 현지 주민의 이동은 시설이 좀 불편한 칸에 승차하고 바이칼 여행자들은 좋은 시설의 칸에 승차한 것 같았다. 이 기차는 요금도 상당히 비싸다. 그리 먼 길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바이칼을 타고 달린다. 시베리아의 차가운 열차는 결코 아니다.
* 아치형 구조의 터널과 옹벽
열차가 운행되는 동안 많은 터널을 지난다. 이곳에서는 내려서 터널과 산비탈에 조성된 옹벽을 관찰해 보았다. 터널도, 옹벽도 모두 아치형이다. 터널은 아치형으로 조성되는 것이 당연한데 옹벽은 특이한 구조다. 이곳 철도를 건설할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옹벽을 조성해도 산에서 토사가 내려와 연구 끝에 이런 공법으로 건설했단다. 유럽식으로 이탈리아 사람이 설계한 것이란다. 산 위에서 흙이 내리 누르는 힘을 분산시키는 효과란다. 단단함이 돋보이는 구조물이다.
* 환바이칼 열차의 머리 상단
열차가 멈추어 섰을 때, 환바이칼 열차는 얌전히도 머리의 상단을 승객에게 내어준다. 사다리 계단을 타고 열차의 머리 부분에 오름을 허락한다. 기막힌 환상이다. 바이칼 호수의 전경을 감상하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기차의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보는 기쁨은 가슴 훈훈한 선물이다.
* 굴속 도보 슈미하 마을
옹벽과 터널 구조가 특이한 마을이다. 아치형 터널을 한 동안 걸었다. 캄캄한 굴 속을 조심스럽게 걸어 나왔다. 정말 아주 가까이 바이칼 호수변에 노인 철도가 대단하다. 아득한 호수와 함께 수평을 이루고 있다. 호수의 수평선은 점 하나 없는 바이칼 무원의 선을 그려내고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슈미하 마을이 보인다. 시베리아의 전통적인 마을 풍경이다. 몇 채 안 되는 집들 사이로 감자 밭이 풍요롭다. 아버지처럼 큰 품으로 보듬는 산과 어머니처럼 품어 안는 바이칼 호수가 있어 슈미하 마을은 외롭지 않으리라.
우리가 걸어서 터널을 지나오는 동안 뒤에서 기다렸던 기차가 슈미하 마을로 들어온다. 비가 내리는 슈미하 마을의 간이역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기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모두 승차하고 승무원이 기차의 문을 닫으려할 때, 마을의 검은 개 한 마리가 달려와 바라본다. 고독한 영토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려 반가웠다가 떠나는 순간 아쉬움으로 붙들려는 서글픈 배웅이다. 나는 승무원에게 잠시만 있다가 문을 닫으라고 부탁하고는, 잘 있으라고 손을 저어 안녕을 고했다. 잊을 수 없는 강아지의 눈망울이 슈미하 마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 바이칼 호수의 유람선
뽀르트 바이칼 기차역에 가까워질 때 바이칼 호수의 유람선이 멀리 보였다. 비가 내려서 창문에 빗줄기가 그어져 선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저 멀리 바이칼 호수에 커다란 배가 떠 있다. 호수변에는 선착장도 있다. 시리도록 청청한 물이, 저리도록 드넓은 물이 시야 가득 고인다. 처음부터 예견된 물이었기에 놀랄 것도 없지만 진종일 끈질기게 시선을 집중시킨 물이 마지막까지도 하얀 유람선을 등장시켜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한다.
* 뽀르트 바이칼역 도착
환바이칼 열차의 종착역이다. 오후 7시 30분경 도착했다. 이르쿠츠크역에서 오전 8시에 출발했으니 거의 12시간만에 도착한 것이다. 오늘 진종일 12시간 동안 달리며 시베리아 들녘도 보고, 바이칼 호수의 전경도 본 것이다. 슬류지얀카역에서는 오전 10시 30분경 출발했으니 그것으로 따져도 거의 10시간을 바이칼 호수와 상면한 것이다. 여러 가지로 놀라운 비경을 선사한 그 긴 바이칼 호수의 여정을 접고 기차에서 내렸다. 뽀르트 바이칼 기차역은 목조 건물로 아담하고 예쁘다. 여전히 배가 내리는 바이칼 호수다. 러시아 사람들과 섞이어 걸으며, 우리는 앙가라 강을 건너가는 연락선을 타기 위해 부두로 갔다.
* 앙가라강 연락선
뽀르트 바이칼 기차역에 내려서 조금 걸어가니 벌써 앙가라강을 건너갈 연락선이 들어와 있다. 부지런히 승선했다.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간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바람이 불어 차가움을 느끼게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그냥 배의 출입문 입구에 서서 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강을 보며 문 입구에 서서 갔다. 잠시 후 앙가라강을 다 건너서 하선했다. 다리를 건너가자 우리의 버스가 반가이 맞아준다. 부두를 떠나 5분 거리의 석식 식당으로 이동했다.
* 운무 서린 시베리아
오늘 저녁 식사로 모두 마무리 되는 시베리아, 바이칼 여정이다. 고급 식당에서 시베리아 특식 메뉴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돼지고기, 샐러드, 빵, 커피, 차 등 아주 깔끔하고 정갈한 식단이다. 러시아 젊은 여인들이 테이블 주변을 돌며 계속 음식을 제공해 준다. 아름다운 기억만 가지고 가라고, 언제나 세계 여행 마지막 날의 식사는 그렇게 훌륭하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먹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밖에 나오니 산자락에 운무가 가득 서려 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바이칼 호수처럼 이것이 깊은 시베리아라고 말하듯, 우람한 산도 그리 외치는 것 같다. 안내 지도가 걸려 있는데 러시아어를 모르니 판독은 안 되지만 바이칼호 주변을 나타낸 것이다. 모든 것이 아쉬운 순간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담아가고 싶은 여정이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떠나야 할 시간이다. 점점 날을 어두워진다. 공항 가는 길에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큰 마트에도 잠시 들렀다. 수박을 한통에 얼마의 값이 매겨지는 것이 아니고 그램당 얼마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캄캄한 거리를 달려 공항으로 갔다.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내일 새벽 3시 비행기다.
2011년 7월 7일 목요일 이르쿠츠크 출발, 인천 도착
* 이르쿠츠크 공항 출발
한국과는 온도 차이가 약간 있어서 옷을 다시 조정해서 입어야 한다. 시베리아에서는 약간 서늘했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더운 여름이다. 그러나 비행기가 새벽에 출발하기 때문에 기내에서는 포근한 못을 입어야 한다. 각자 가방을 정리했다. 아담한 이르쿠츠크 공항이다. 검색대를 거쳐서 탑승 게이트 앞으로 갔다. 여행 내내 함께 동행했던 노부부와 남은 간식거리를 모두 꺼내 맛있게 먹었다. 대한항공 KE 984 항공이다. 버스가 와서 실어다가 비행기 앞에 내려주었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르쿠츠크 공항을 이륙했다. 꼭 가보고 싶었던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였는데 5박 6일간의 보람된 여정을 마치고 나의 조국으로 돌아간다.
* 인천 공항 도착
캄캄한 밤하늘을 힘차게 날아 나의 조국에 도착했다. 약 4시간 소요되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 6시 30분이다. 분주히 하루가 열리고 있다. 무덥다. 서늘했던 이르쿠츠크와는 온도차이가 크다. 비가 오진 않지만 장마철이라 하늘이 투명하지 않다. 그래도 아름다운 내 나라다. 인천 공항 시설도 좋고, 산과 바다, 들녘 모두 아름답다. 언제나 보드라운 땅, 자랑스런 땅이다.
시베리아에 대하여, 바이칼에 대하여 이제는 좀 더 가까이 다가선 내 가슴이다. 시로, 문학기행 자취록으로 완성하여 내 개인 소장 자료로 저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릴 것이다. 이것이 시인의 사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 기행은 그래서 나에게는 큰 의미이며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세계로,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