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폭풍의 화가 변시지 탄생 100주년
제주일보
승인 2026.07.20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어느덧 변시지 화백이 영면한 지 13년이 흘렀다. 화백은 1926년생으로 올해가 2026년이니 탄생 100주년이 된다. 이 세상을 떠난 사람에 대한 기억은 마치 바람에 불려 가듯 시간과 함께 저편으로 쓸려가 버린다. 떠난 사람에 대한 회고의 기회마저 없다면 그에 대한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지금 서귀포 기당미술관에서는 《변시지 탄생 100주년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기획전에는 변시지 화백의 미공개 작품 23점을 포함해 모두 60점과 관련 자료들이 공개되고 있다. 전시는 화백의 화업(畫業)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일본, 서울, 제주의 시간적 흐름을 따라 구성됐다. 전시를 보는 내내 화백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작품 위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서귀포 천지연 로즈마린 카페에서 화백의 예술론을 듣는 시간은 어느 시간보다도 소중했다.
1931년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떠난 화백은 청년 시절 나이프로 두꺼운 질감을 살려 풍경화 작업을 했다. 또 여러 가지 악기 연주자 모습과 앉아 있는 여인 등 주로 인물화를 그렸다. 1957년 일본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해서는 당시 부상하던 추상화도 그리고, 비원의 한 정자 다락에 이젤을 보관하며 새롭게 사실적 풍경을 그렸다. 그러다 1975년 화백은 돌연 제주 귀향길에 올랐다. 환영하듯 제주는 황톳빛으로 화백을 맞이했고, 그 또한 제주도를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풍경 안에 섬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이때 화백은 ‘제주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2010년 로즈마린 카페에서 만난 화백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제주도는 지옥과 천국이 공존한다. 태풍 부는 날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환경 극복의 쾌락이 있다. 제주도의 역사는 바람의 역사다. 초가가 다 날아갈 정도다. 제주 사람에게는 바람을 극복하려는 정신이 있었다. 나는 그런 정신을 작품에 넣고자 했다. 그러나 아직도 제주 그리기가 힘들다. 바람이 없는 그림은 고독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날 새벽 창문을 열었는데 화단에 내리쬐는 햇볕을 보고 ‘이것이 바로 천국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아직 그리지 못했다. 예술세계는 깊고 무한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알아냈다는 것은 한강의 모래알과 같다.”
“85세부터 어떤 틀도 제거하고 사람, 떠나가는 배, 새 등 그림의 요소들도 하나씩 빼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림에서 그런 요소들을 빼더라도 많은 것이 있는 것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는 고민을 한다. 점점 시각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곧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화백은 사물을 닮게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과 변형을 통해서 자기만의 창작을 보여주는 것을 예술적 가치로 여겼다. 화백은 생전에 화업이라는 말을 자주 거론했다. 화가가 되려면 그림은 본업이 돼야 한다는 의미에서였고, 그래야 작업을 계속 해내고 일가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화백은 일생을 화가로서 치열하게 살았고 우리에게 ‘제주화’라는 불세출의 아름다운 유산을 남겼다. 또한 화가로서 단연 누구나 부러워할 예술의 독창성을 획득했다. 그는 폭풍의 화가로서 바람 미학의 창시자이다.
오늘 《변시지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보는 동안 문득 ‘변시지, 자네는 제주에서 성공했네’라고 칭찬하던 송혜수·김흥수 화백의 말이 바람처럼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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