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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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브리엘 페르레티(Gabriel Ferretti)
축일 11월 12일
가브리엘 페르레티는 18세 때에 프란치스코
수도자가 되어, 15년 동안을 안코나에서
선교사로 활동 하였다. 그는 이 동안에
수많은 기적과 높은 성덕으로 유명하였으며,
고향에 있는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성모 칠락에 큰 신심을 가지고 있었고,
칠락의 로사리오 기도를 전파함으로써
성모님께 대한 독특한 신심을 바쳤다.
1753년에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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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닐로(Nilus)
축일 11월 12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지방장관직을
맡고 있던 성 닐루스(또는 닐로)가 갑자기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의
제자가 되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두 자녀를 둔 기혼자였으나, 그의 아들
테오둘루스와 함께 시나이 산의 수도자가 되었는데,
아내도 세속을 떠났다고 한다.
아랍인들이 수도원을 공격했을 때, 테오둘루스가
잡혀가자 그 자신이 직접 아들을 구하러 간 것은
그 당시에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그 후 부자는
둘 다 사제로 서품되었다. 성 닐루스는 특히
신학적인 저술과 수덕신비 신학 등의 저자로
명성을 날렸고, 수많은 편지들을 남겼는데,
그는 흔히 ‘현자’로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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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디다코(Didacus)
축일 11월 12일
에스파냐의 세비야 근교에서 태어난
성 디다쿠스(또는 디다코)는 한때 은수자로
고적한 삶을 살다가 작은 형제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는 칸나리 섬으로 파견되어
그곳의 수도원 문지기 수사로 일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뛰어난 사랑으로
큰일을 이룩하여 성덕이 탁월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배우지 못한 그가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된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 번의 임기를 채우고 그만두었다.
그는 여생을 에스파냐의 각 수도원을 다니며
하찮은 일을 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그의
높은 성덕은 프란치스코회뿐만 아니라
온 교회를 비추었다. 디에고(Diego)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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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레부인(Lebuin)
축일 11월 12일
잉글랜드(England) 사람인 성 레부인은
리펀(Ripon)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되었다가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그는 구령사업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으로 754년경에는 남부 독일
지방을 순회하였다. 그러나 색슨인들의
만행으로 교회는 불탔고,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진 적도 있었다.
한번은 색슨인들이 연중행사로 모이는 집회 중에
그는 사제복장을 하고 성경을 들고 용감하게
나타나서, “여러분은 모두 내 말을 들으시오!
하느님은 내 입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하고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는 곧 중단되었으나,
그의 용기에 감명을 받고 개종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으나
그들의 족장이 그의 용감성을 찬양하면서,
레부인을 곧 그들의 신이 보낸 사자로 받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한동안 조심하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네덜란드 중앙부인 데벤테르로 가서
죽을 때까지 선교사로서 일하다가 선종하였다.
리아프윈(Liafwine)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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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루포(Rufus)
축일 11월 12일
성 루푸스(또는 루포)는 프랑스 아비뇽의
초대주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의 실존 여부는 확실하지만 그에 대한 전기는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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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비노(Livinus)
축일 11월 12일
성 리비누스(또는 리비노)는 스코틀랜드계의
부친과 아일랜드계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고,
캔터베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에
의하여 세례를 받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후일 그는 주교가 되었지만 플랑드르(Flandre)
지방 선교를 위해 동료들을 이끌고 아일랜드를
떠났다. 그들은 겐트(Gent)에 본부를 두고
브라반트(Brabant)의 이방인들에게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어느 부인이
그를 환대하는 척하면서 유인하였으므로
그는 이방인들의 손에 무참한 죽임을 당하였다.
그의 유해는 겐트(Gent)의 성 베드로(Petrus)
성당 곁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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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카르(Machar)
축일 11월 12일
애버딘 교구는 지금도 성 마카르의 축일을
지내지만 그에 대한 전기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성 콜룸바(Columba)와 함께 스코틀랜드를
선교했던 아일랜드계 선교사이며 물 지방을
주로 담당하였다. 그리고 픽트인들에게
가기 전에 주교로 승품 받았으므로,
지금의 애버딘셔(Aberdeenshire)
교구를 일으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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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이네리오 (RAINERIUS)
축일 : 11월 12일
성 라이네리오는 아레쪼 출신으로
마리아니 가문의 후손이다. 그는 세속생활을
포기한 후 프란치스칸이 되었고, 아레쪼의
성 베네딕또와 일행이 되어 성 프란치스꼬의
명을 받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사부
성 프란치스꼬로부터 존경받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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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Benedict)
성 요한(Joannes),
성 마태오(Matthaeus),
성 이사악(Isaac),
성 크리스티누스(Christinus)
축일 11월 12일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켈푸르트(Querfurt)의 성 보니파티우스
(Bonifatius, 6월 19일)의 친구인데
라벤나(Ravenna) 수도원에서 성 로무알두스
(Romualdus)의 지도를 받으며 크게 성장하였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 3세가 포모제
(Pomorze, 또는 포메라니아)의 슬라브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성 아달베르투스
(Adalbertus, 4월 23일)에게 요청했을 때,
성 베네딕투스와 다른 수도자들이 그를 따라 나섰다.
우선 그들은 볼레슬라우스(Boleslaus)
공작의 궁에서 슬라브어를 배우고,
그니에즈노(Gniezno) 교외 카지미에르스에 거처를
정하고 활동하던 중 성 베네딕투스와 그의 동료인
성 요한(Joannes), 성 마태오(Matthaeus),
성 이사악(Isaac), 성 크리스티누스(Christinus)
모두 이교인 강도들의 침략으로 살해되었다.
그들은 순교자로서 널리 알려졌는데, 비록
그들이 폴란드인은 아니지만 지금도 폴란드에서는
‘다섯 명의 폴란드 수도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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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축일 11월 12일
헝가리의 첫 번째 대주교였던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아마도 보헤미아(Bohemia) 출신의
크로아티아 사람이거나 아니면 체코 사람이라고
보고 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라들라였는데,
브레브노에서 수도자가 되면서부터
아나스타시우스(혹은 아스트릭 혹은 아스테리쿠스)로
개명하였다. 그는 마자르인(Magyars, 헝가리인)을
상대로 선교 사업을 수행하였으며, 997년 게자(Geza)
공작 아내의 도움을 받았고, 게자가 헝가리에 세운
최초의 수도원인 판논할마(Pannonhalma)의
성 마르티누스 수도원의 첫 번째 원장이 되었다.
스테파누스(Stephanus)가 그의 부친 게자 공작을
승계할 때 아나스타시우스는 교계를 설정하고,
마자르인들에 대한 복음화 사업을 일신하였으며
이 일에 일생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는 또 헝가리인 성당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며
칼록사의 주교직도 겸한 듯 보인다.
교황 실베스테르 2세(Silvester II)를 방문하러
로마(Rome)에도 갔는데, 아마도 스테파누스를
헝가리의 왕으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이
그 주요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 일이 성공하여
아나스타시우스를 통하여 교황이 보낸 왕관으로
오토 3세가 등극함으로써, 헝가리의 교회는
왕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크게 성장하였다.
아스테릭(Asterik)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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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렐리오(Aurelius)
성 푸블리우스(Publius)
축일 11월 12일
성 아우렐리우스(또는 아우렐리오)와
성 푸블리우스(Publius)는 주교로서
몬타누스파(Montanism)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그들은 비록 북아프리카에서 순교했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마도 소아시아 지방에서
순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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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밀리아노 쿠쿨라토(Aemilian Cucullatus)
축일 11월 12일
에스파냐 나바라(Navarra)의 라 리오자(La Rioja)에서
목동생활을 하던 성 에밀리아누스 쿠쿨라투스
(Aemilianus Cucullatus, 또는 에밀리아노 쿠쿨라토)는
20세 되던 해에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부르고스(Burgos) 근방의 산에 마련한
은둔소에서 거의 40여 년 동안을 살았는데,
타라조나(Tarazona)의 주교의 요청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잠시
베르세오(Berceo)에서 교구사제로 활동하였으나,
그의 지나친 자선활동 때문에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되자 몇 명의 제자들과 함께
은수생활을 재개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가 주로 머물던 산 속의 은둔소는 후일
라 코갈라(La Cogalla)의 베네딕토 수도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에스파냐에서 그는
산 밀란 데 라 고골라(San Milan de la Gogolla)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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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사팟(Josaphat)
축일 11월 12일
요한 쿤체빅(Joannes Kuncevyc)은 당시
폴란드 관구였던 현 우크라이나의 볼린(Volyn)
관구에 속한 볼로디미르(Volodymyr)라는
작은 마을에서 1584년에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 부모의 가업을 잇기 위해 상업을 배우러
빌나(Vilna)의 포포빅(Popovyc)이라는 사람의
도제로 보내졌다. 그러나 수도생활에 큰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주인의 딸과 결혼하면 사업을
물려주겠다는 제의를 거부하고, 1604년 빌나에 있는
바실리우스회의 삼위일체 수도원에 입회하여
요사팟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성 요사팟은 1609년에 비잔틴 전례에 따라
사제로 서품되었고, 그 즉시 설교로 유명해진 한편
우크라이나 교회와 로마간의 일치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함께 입회했던 그의 친구 룻스키는 삼위일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으나 그는 폴란드에
새 수도원을 세우라는 명을 받고 파견되었다.
1617년 그는 러시아 비텝스크(Vitebsk)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가 그 이듬해에
폴로츠크(Polotsk)의 대주교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그는 혼란하던 교구를 바로잡기 시작하였다.
로마와의 반목, 기혼 사제, 느슨한 규칙,
폐허화된 성당 등을 고치기 위하여 시노드(Synod)를
소집하여 교회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즈음에 뜻을 달리하던 일단의 주교들이
요사팟은 실제로 라틴 전례의 사제이며,
로마 가톨릭은 러시아 민중에게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대립주교를 내세웠다.
그래서 극도의 혼란상에 빠졌지만 그는 온갖
위험을 극복하며 비텝스크로 사목방문을 가던 중에
새로운 정교회를 주장하는 분리파에 의하여
살해되어 다비나 강에 수장되었다.
그는 첫 번째 동방 교회 성인으로서
‘일치의 사도’라 불리며, 1643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67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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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델라 파체(John della Pace)
축일 11월 12일
1856년 교황 비오 9세(Pius IX)는
프란치스코 회원인 요한(Joannes)의 축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 피사(Pisa)에 있는
프라타첼리 델라 페니텐차 수도원을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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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쿠니베르토(Cunibert)
축일 11월 12일
독일 쾰른의 성 쿠니베르투스
(Cunibertus, 또는 쿠니베르토) 성당은 원래
성 클레멘스(Clemens)에게 봉헌하려고
쿠니베르투스 성인이 세웠다.
성 쿠니베르투스는 의심할 바 없이 위대하고
거룩한 고위 성직자이지만 그의 생애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 625년경에 쾰른 주교좌에
오른 그는 흔히 대주교라고 불릴 만큼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궁중의 고문 역할을
비롯하여 수차례의 시노드(Synod)를 주관했으며,
프리슬란트(Friesland) 사람들의 복음화에
주력했던 인물이다. 만년에 그는 궁중을 떠나
처음의 교구로 돌아가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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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쿠미아노(Cumian)
축일 11월 12일
아일랜드 웨스트 먼스터(West Munster)의
피아크나 왕의 아들인 성 쿠미아누스
(Cumianus, 또는 쿠미아노)는 클론페트의
학교를 맡고 있던 은수자가 되었고,
후일 자신이 설립한 킬쿰민 수도원의 원장으로
활약하였다. 특히 그는 학덕이 뛰어났으며
켈트(Celtic) 전례의 강력한 옹호자이던
이오나(Iona) 수도원의 원장에게 격렬히
반대하면서 로마 전례를 주장하였다.
그의 글 가운데 부활절 서한이 남아 있는데,
그는 여기에 아름다운 찬미가를 기술하였다.
그는 흔히 ‘훌륭한’이란 뜻을 지닌 포타(Fota)
또는 파다(Fada)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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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테르노(Paternus)
축일 11월 12일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태생의
성 파테르누스(또는 파테르노)는
아브랑슈(Avranches) 교구에서 처음으로
수도승이 되었다가 후에 상스(Sens) 교구로
옮겼다. 그는 그들의 생활을 쇄신하라는
꾸중을 들은 악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