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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괴로움이 소멸한가? 모든 명색이 소멸한가?
6根, 12처, 18계, 7識界
[질문] 6根, 12처, 18계, 7識界 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요?
번호 : 1021 글쓴이 : slashmoon
경전을 보다보면, 안이비설신의 감각기능들을 6根, 12처, 18계, 7識界 등으로 표현하는 것
을 보았습니다. 그냥 한자 그대로, 빨리어 뜻 그대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넘어갔었는데요.
'근'은 말그대로 감각기능, '계'는 감각세계 우리가 인지하는 세계, '처'와 '계'는 비슷하
게 보면 되나요?
부처님께서 여러가지로 표현으로 감각세계를 설하신 중요한 의도가 있을 듯 합니다.
전에 이런 비슷한 질문이 있었던 것같기도 하여 검색해 보았으나 못찾겠습니다. 아시는 분
이 계시면 펌글로 답변 달아주셔도 고맙겠습니다.
따스한 봄햇살과 함께 좋은 하루 되십시요.
[답변]-초불
Re:6根, 12처, 18계, 7識界 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나요?
번호 : 1029 글쓴이 : 초불
조회 : 357 스크랩 : 1 날짜 : 2006.03.27 18:51
질문 감사합니다. 제가 이리 저리 다닐 일이 많아서 며칠을 접속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답글이 늦습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법우님의 질문에 대한 아래에 올라온 몇 가지 글을 읽어보았는데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부처님께서 경에서 인드리야(근, 기능)와 다뚜(계, 요소)와 아야따나(처, 장소)를 정확하게 구분하여 정의하신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의 몇몇 한국 학자들은 자기식의 이상한 주장을 늘어놓기도 하는데 초기경 이해의 부동의 준거가 되는 주석서(특히 청정도론)와 아비담마에서는 이를 정확하게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석서와 아비담마의 정의를 통해서 이 셋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이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연살이님이 좋은 글을 올려주셨네요.
간략하게 요약하여 이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안의비설신의의 여섯 가지는 어떤 문맥에서는 인드리야(근, 기능)라는 술어로 나타나고 어떤 문맥에서는 아야따나(처, 장소)라는 술어로도 나타나고 어떤 문맥에서는 다뚜(계, 요소)라는 술어로도 나타납니다. 인드리야와 아야따나와 다뚜는 다른 문맥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우선 질문해주신 논의의 대상인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마노)의 여섯 가지에만 국한하여 보면 이 셋이 지칭하는 것은 꼭 같습니다. 즉 안근은 안처이고 동시에 안계가 되고 ... 의근은 의처이고 의계입니다. 그러면 왜 같은 것을 두고 다른 명칭을 사용하느냐?
그 작용이나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홍길동이라는 사람을 상황이나 역할이나 작용 등에 따라서 아버지라고도 부르고 홍과장이라고도 부르고 남편이라고도 부르고 학부형이라고도 부르고 서울시민이라고도 부르고 한국사람이라고도 보르는 등과 같습니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처한 상황과 역할 등에 의해서 그 명칭일 달라질 뿐이지 이런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그 당체는 동일합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홍길동이라 부르고 홍과장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홍길동과 홍과장은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우스운 말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같이 눈(아비담마에서는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눈의 감성이라고 합니다)의 역할이나 작용 등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눈의 기능(안근)이라 부르기도 하고 눈의 장소(감각장소, 안처/안입)라고도 부르고 눈의 요소(안계)라고도 부르고 눈의 문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아비담마에서는 이런 눈을 객관화시키기 위해서 눈의 감성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드리야를 중국에서는 근으로 옮겼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기능이라 옮깁니다. 눈에는 형상을 보는 눈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기능과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보는 기능은 귀 코 혀 몸 등에는 절대로 없는 눈만의 고유한 기능이고 형상은 반드시 이러한 눈을 통해서만 인지가 됩니다. 그래서 눈은 형상이라는 대상을 지배하는 능력을 가진 지배자(인드라)입니다. 지배자라는 의미를 살려서 인드리야(지배하는 것, 고유한 능력, 고유한 기능)라는 술어를 사용한다고 주석서들은 한결같이 설명합니다.
같이하여 귀는 소리를 듣는 고유의 기능이 있습니다. 귀 말고는 그 어느 것도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코 혀 몸도 마찬가지로 각각 냄새 맛 촉감을 감지하는 고유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인드리야라는 술어로 표현합니다. 이런 이유로 즉 각각의 기관에 고유한 기능이라는 의미에서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기능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눈이 보는 작용을 할 때 보는 작용과 관계된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눈을 장소로 하여 일어납니다. 그래서 눈은 장소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눈은 마음(알음알이, 식)과 마음부수들이 대상을 즉 형상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눈을 눈의 장소(짝쿠 아야따나)라 부릅니다.
그리고 눈은 형상을 본다는 고유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을 강조할 때는 눈의 요소(짝쿠 다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눈은 마음과 마음부수들이 대상을 만나는 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눈을 눈의 문(짝쿠 드와라)이라고 합니다.
아비담마에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역할과 작용을 하는 눈은 형상에 민감한(sensitive) 특징을 가진 물질로 되어 있다고 해서 눈의 감성(짝쿠 빠사다)이라는 술어로 부릅니다.
그리고 이런 용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은 아비담마 길라잡이 7장과 청정도론에서 상세하게 나타납니다. 소설이나 수필 읽듯이 읽으면 곤란하고 충분히 사유하고 음미하면서 읽어야합니다.
이처럼 같은 것을 그 역할이나 작용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는 것이지 눈의 기능이 따로 있고 눈의 장소가 따로 있고 눈의 요소가 따로 있고 눈의 문이 따로 있고 눈의 감성이 따로 있는 것이 절대로 결코 아닙니다. 소설을 쓰면 곤란합니다. 홍길동과 홍과장과 홍아무개의 아버지는 그 명칭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고 우기면 어처구니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남북의 모든 아비담마에서 꼭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름이 다르다고 하여 자기 식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들이대면서 소설을 쓰고 더군다나 남을 혼란스럽게 하면 참 고재고재입니다.
그리고 12연기의 설명은 아주 신중해야합니다. 주석서들에서는 12연기의 일어남에 초점을 맞추어서 설명하고 있지 12연기의 멸에 대해서는 어느 곳에서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12고리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든 한 고리가 풀리면 사슬이 끊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무명이 멸하면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애취유가 차례로 멸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며 참으로 우습고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12개의 고리를 멸해버리면 그 순간에 죽어버리게 되는 우스운 결과가 도출됩니다. 무명이 멸해서 식이 멸해버리면 죽어버립니다. 명색 육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촉이 멸해버리면 무정물과 같아져버리고 수가 멸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무명이 멸하면 육입은 멸하지만 육근은 멸하지 않는다는 말도 참으로 소설 중의 소설이 되고 맙니다. 12연기를 조금만 진지하게 사유해도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도 14-5년전에 빠알리를 처음 배워 우쭐 댈 때 이런 소리를 많이 하고 다닌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금강경 역해에서도 아야따나를 인드리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핵심이라고 떠들었는데 참 부끄럽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참 진땀이 납니다. 아직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버젓이 책으로나 말로나 글로 하고 다니는 분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합니다. 근과 처와 계는 그 역할이나 작용에 따라서 다른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직계제자들에서 비롯된 아비담마와 주석서의 한결같은 입장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말을 아낍니다. 부디 근/처/계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아비담마 길라잡이 7장과 청정도론 15/16장 등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래도 잘 감이 잡히지 않으시면 유장하게 오랜 시간을 두고 사유하고 음미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근거 없이 자기식의 이해나 논리로 잘 못 주장하는 것에 현혹되지 마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초기경을 이해하는 준거로 2600여년을 정설로 인정된 주석서와 아비담마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서 다른 주장을 하는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접해야지 전통적인 정설에는 완전히 무지하면서 현대 한 두 학자들의 주장을 초기경을 이해하는 나침반으로 삼는다면 위험천만이라고 봅니다. 물론 어떻게 보느냐는 보는 전적으로 보는 사람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초기불전연구원 까페이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상좌부 주석서와 아비담마를 초기경을 이해하는 노둣돌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전에도 여러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저는 아비담마를 만나기 전에는 대한민국의 그 어느 누구보다도 “초기경은 아비담마나 주석서를 통해서 보면 안된다.”고 입에 침을 튀기며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아비담마나 주석서 없이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초기경을 봐야한다는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건방지게 큰소리치고 다닌 것을 생각하면 참 부끄럽기 한량이 없습니다. 결국은 나의 안목이나 견해가 아비담마와 주석서를 남긴 옛 아라한 스님들보다 뛰어나다는 말인데 ...
참 생각해보면 겨우 중학교 영어책을 읽고 이해하는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진 자가 섹스피어의 원작을 영어사전 없이 정확하게 음미해야한다고 헛소리하는 것이나 중1학년 도덕책을 읽은 중학생이 부셀의 현상학을 철학개론서 등의 도움 없이 이해해야한다고 우기는 참으로 귀에 꽃을 꽃은 동막골의 여자(강소정?)와 같은 미친 소리를 해댄 것이라 생각되어 부끄럽고 창피하기 그지없습니다.
적다가 보니 신변잡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초불 까페의 방장아닙니까? 제가 왜 이런 강한 주장을 하고 있는지 법우님들께서 깊이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아비담마 길라잡이와 청정도론을 몇 번씩 정독해주실 것을 거듭 당부 드리면서 글을 줄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각묵 합장
[반론]- A님
A [12고리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든 한 고리가 풀리면 사슬이 끊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무명이 멸하면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애취유가 차례로 멸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며 참으로 우습고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12개의 고리를 멸해버리면 그 순간에 죽어버리게 되는 우스운 결과가 도출됩니다. 무명이 멸해서 식이 멸해버리면 죽어버립니다. 명색 육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촉이 멸해버리면 무정물과 같아져버리고 수가 멸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각묵스님의 이러한글을 읽고 땀이 납니다. 각묵스님이 이러한 견해의 바뀜이 언제 였는지는 모르나 이렇게 질문을 받고야 답하는 것이 첫째 이유요.[12개의 고리를 멸해버리면 그 순간에 죽어버리게 되는 우스운 결과가 도출됩니다.] 라는 견해가 어떻게 가능한지 하는것이 들째이유입니다. 또한 마노와 찌따와 위냐냐도 차이가 없는것으로 보게 된것인지.... 이제 스님의 말한마디는 스님만의 것이 아니기에,이렇게 멀라서 글올립니다....() 03/30
[반론]-초불 A님 오랫만이네요. 그런데 올리신 댓글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지가 않네요. 12연기에 대한 제 가 올린 답글의 요지는 12연기의 발생구조는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에서 상세하게 설하지만 12연기의 소멸구조에 대해서는 아느 곳에서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북방아비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2개의 고리 가운데 어느 하나가 끊어지면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대가 스님들이 설명하지 않는 것은 설명하지 않은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자기식의 이상한 견해로 잘못이해하면 크게 망가진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만일 문자 그대로 무명이 멸하여 식이 멸해버린다고 한다면 무명이 멸하는 식이 멸해버린 것이기 때문에 무명이 멸하는 순간 죽어버리고 마는 꼴이 되고 만다, 그리고 무명이 멸하여 육입이 멸하면 정신-물질이 없어져 죽어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는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설명을 한 것인데 A님이 이상하게 곡해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주석서에서 12연기 각지의 소멸을 언급하지 않으면 않는 대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사유하고 음미해서 그 견해를 따라야지 그렇지 않고 무명이 멸하면 행과 식과 명색과 육입이 소멸한다. 그러나 육근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식의 근거없는 잘못된 소리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 제 글의 요지였습니다.
이점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에서 무명연행 행연식 등의 설명을 바르게 읽으면 행멸즉식멸 등의 의미가 바르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아비담마 길라잡이 8장의 행연식 부분을 정확하게 읽으면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런 것이지 무명이 멸하면 모든 식이 멸하고 모든 명색이 멸하고 모든 육입이 멸한다고 해버리면 큰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저는 지적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연설명을 하여도 제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신다면 나무님이 이해하는 무명멸즉행멸 행멸즉식멸 식멸즉명색멸 명색멸즉육입멸의 의미를 적어주시면 겸허한 마음으로 배우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12연기에 대한 설명을 이전과 다르게 하지 않습니다. A님이 자기식으로 저를 규정지은 뒤 그것을 가지고 저를 평가하사는듯합니다. ... 심/의/식에 대해서도 단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르다고 하는 것은 성숙되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저도 아비담마를 알기전에는 심의식을 구분해야한다고 했던 사람입니다만 아직도 A님이 이런 것에 빠져 있어서 의외입니다. 그리고 아비담마나 주석서에서는 심/의/식을 결코 꼭 같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의/식은 대상을 안다는 것으로는 같은 것으로 인정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모순에 봉착합니다. 물론 마음들이 생멸하면서 흘러가는 과정에서 이들 특히 의와 식의 역할은 현저히 다릅니다. 이들의 차이점을 아비담마에서는 세밀하게 분석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길라잡이 3장과 4장참조) 의(마노)는 기능 혹은 장소로 나타나는 것이 다르다고 초보적인 말을 하겠지요. 그러나 마노는 물질이 아니고 정신인 이상 대상을 아는 것이 마음이라는 마음 혹은 알음알이와 같은 정의를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노는 마음부수가 되고 맙니다. 조금만 음미를 해보아도 심/의/식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는 같은 의미임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런 것을 두고 심의식이 다르다고 한다면 어떻게 다른지 여기에 대해서도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서 부디 아비담마 공부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 다음에 비판해도 늦지 않습니다. 물론 받아들이고 안받아들이고는 A님의 자유입니다. ... 03/31
[반론]-A님 저도 12연기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다만 [무명이 멸하면 모든 식이 멸하고 모든 명색이 멸하고 모든 육입이 멸한다]라고 경전에 나옵니다. 이것을 큰 모순으로 생각할수도 있고 당연한것으로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무명이 멸하여 육입이 멸하면 정신-물질이 없어져 죽어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큰 모순이됩니다.
그런데 경전에는 분명히 [무명이 멸하여 행-식-명색...이 멸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해결의 요점은 12지가 각각 멸한다는 것이 [인간]의 죽음이라고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육입,명색을 오온과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만약 촉이 멸한다는 말이 깨달으면 아무촉이 없다는 말이라면 [성인도 첫번째 화살을 맞는다고 한 말씀은]거짓이 됩니다.
저는 12연기의 어떤 각지이든 무명을 넣어서 설명합니다. 무명을 바탕으로한 행,무명을 바탕으로한 식, 무명을 바탕으로한 명색, 무명을 바탕으로한 육입.....이렇게 보는 까닭에 부처님이 용어를 분명히 나누어 쓰셧다는 것에 저는 동의 합니다. 쌍윳따의 [6근을 성취한다]는 법문도 [전식득지]로 이해합니다. 즉 번뇌가 보리가 되는것이 수행이라면 12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육체의 생사로 생각할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붓다는 12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통해 유무에 빠지지 말라고 ..바른견해를 가지라고 가르치고 계시지 어디에도 [인간]의 죽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지금 인도는 무지 덥습니다.헉헉..() 03/31
"[12연기의 각지는 오온에 배대해서 사유해서는 안되고, 오취온에 배대해서 사유해야 한다.] 그런데 오취온은 오온을 떠나 따로 있는 것입니까? 오취온은 범부 중생의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즉 전도몽상하는 주체의 문제이지, 오온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12연기가 전도몽상하는 주체의 문제입니다. 00:11 그래서 12연기를 [고의 발생과 소멸의 구조]라고 말하는것입니다....() 00:12
[반론]-초불
A님의 댓글을 읽고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A님의 글을 읽고 솔직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뜬금없이 저의 글에 대해서 사리에 맞지 않는 이상한 글을, 그것도 제 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하고 무뢰하게 달고 나서 다시 자기식으로 잘못 이해한 댓글을 다니 제가 한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먼저 선배로서 충고하고 싶은 것은 댓글을 달려면 남의 글을 바르게 읽어야합니다. 남이 하는 말을 자기식으로 잘못 읽고 나서 자기가 잘못이해한 주장만을 늘어놓는지 참 어이가 없습니다.
첫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야말로 12연기는 육체의 생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2연기는 고의 발생구조와 고의 소멸구조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명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육입이 멸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완전히 다 멸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A님 스스로가 무명이 멸하면 육체가 멸해버린다고 단정 짓는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저는 지적합니다. 경에 나타나는 육입은 분명히 안이비설신의라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입니다. 안이비설신은 분명히 물질이고 의의 감각장소는 정신입니다. A님이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초기경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초기경을 원어로 읽어도 제가 더 많이 읽었을 것입니다.
육입을 마음이 만들어낸 환이나 요술적인 무엇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초기경에서 결코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명이 멸하면 식은 완전히 멸하지만 식이 완전히 멸하고 전식득지가 되어서 지혜가 생긴다고 돌려 말하는 것은 유식의 입장에서도 아주 잘 못된 주장입니다. 전식득지해도 식은 생멸을 거듭 합니다!!(아래에서 다시 거론하겠습니다.) A님은 12연기 각지의 멸을 육체의 죽음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하고 저더러 12연기를 죽음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얼토당토 않는 매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무명이 멸하면 모든 식도 멸하고 모든 육처도 멸한다고 하여 12연기를 육체의 죽음으로 해석하는 큰 모순에 빠져있습니다. 다시 자신의 입각처를 되돌아보실 것을 권합니다.
둘째, 12연기의 정형구 어디에도 무명이 멸하면 “모든” 식이 멸하고 “모든” 감각장소가 멸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A님이 초기불교를 자의적으로 자기 편리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혹 제가 과문하여 모를 수도 있으니 무명이 멸하면 모든 식이 멸하고 모든 육입이 멸한다고 나타나는 정확한 출처를 알려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만일에 모든 식이나 모든 육입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정형구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A님이 자신의 말을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모든”을 넣어서 정형구를 제멋대로 조작하고 해석하였다면 이것은 참으로 잘못된 태도입니다.
셋째, 12연기의 정형구 어디에도 무명이 모든 각지에 하나하나 다 적용되어 나타나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A님이 완전히 소설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청정도론에서도 무명과 갈애는 윤회의 뿌리라고 설명은하고 있지만 모든 각지에다 무명을 적용시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오히려 무명과 행과 애와 취와 유는 다섯 가지 인(因)이고 식/명색/육입/촉/수는 다섯 가지 과가 된다(생노사는 식부터 수까지와 동일시함)고 양중인과로 설명하는 청정도론의 설명을 음미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이것이 A님의 거칠고 어이없는 이해보다는 천배 만배 더욱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남북방 아비담마에서 공히 양중인과로 이해하는 것을 정설로 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초기 삼장에 달통했고 아비담마에 달통한 옛 대가 스님들이 남북방의 구분없이 이구동성으로 양중인과를 정설로 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근거없는 주장에 스스로가 계박되지말고 어렵더라도 정설을 철저히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히려 과보인 식명색육입촉수 즉 생노사우비고뇌의 원인이 되는 무명행애취유 가운데 하나를 멸해서 괴로움을 소멸하는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연기의 순관에 배대하는 고집과 연기의 역관에 배대하는 멸도의 사성제의 가르침과 맞아떨어지는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청정도론의 설명에 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엄청 많지만 자판 두드리기가 싫고 귀한 말일수록 아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만 줄입니다.
넷째, 12연기의 “발생구조”는 청정도론 등에서 철저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 적지만, 주석서에서는 12연기의 “소멸구조”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책(아마 아비달마 불교인 듯 지금 책이 없어서 정확히 참조 못함)에서 그 이유를 12연기의 한 고리만을 끊으면 해탈이 성취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봤는데 정확한 출처를 찾지 못해서 더 강조하지는 않겠습니다. 상응부 느낌 상응과 특히 장부 범망경에서는 12연기 가운데서 수연애에 주목합니다. 느낌이 갈애로 바뀌는 구조를 이해해서 고성제의 원인인 갈애(집성제)를 끊을 것을 강조하고 있지 해탈/열반의 실현을 설명하는 연기의 역관을 무명부터 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 전반에 적용시켜 특히 과보로 나타난 것인 식/명색/육입/촉/수에 적용시켜 이해하려는 것은 참으로 도가 지나친 해석이라 보입니다.
아비담마를 제대로 이하하면 이것은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데 이상하게 아비담마라면 알레르기부터 먼저 일으키는 사람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에는 조금도 귀기울이려하지 않고 무조건 경에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 라고 했으니 무명이 멸하면 “모든” 행이 멸하고 “모든” 식이 멸하고 등등으로 어처구니없게 자기 식의 근거없는 말을 하니 안타까울뿐입니다. 아니 자기만 잘 못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소리를 마치 굉장한 학설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서 남들을 혼란하게 하니 두려운 일입니다.(꼭 A님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잘못된 이해보다는 연기의 소멸구조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 주석서의 태도를 먼저 바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거듭 밝히지만 청정도론에 나타나는 연기의 발생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면 소멸구조까지 바르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이미 A님이 이상한 댓글을 달 때 짐작했지만 A님은 전식득지라는 유식의 견해를 빌어와서 12연기를 해석하려 하시는데 유식의 입장에서도 전식득지해도 식은 있습니다. 다만 아뢰야식이라는 이름대신에 청정식(圓鏡智俱第八淨識 혹은 如來第八淨識 등)으로 불린다고 성유식론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한 전식득지 된다고 해서 식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식이 없어지면 죽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상식중의 상식이지요. 그러므로 무명이 멸하면 식이 소멸한다, 게다가 A님의 주장처럼 모든 식이 소멸한다고 주장하면 무명이 멸하면 식이 다 소멸되어 죽어버린다는 말이 되어 엄청난 모순에 빠진다고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청정도론의 행연식의 설명에서 정확하게 그 단초를 밝히고 있습니다. 부디 이 부분을 참조해서 스스로 터득하십시오. 값싸게 지금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이미 그 단초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명이 멸하면 모든 식이 소멸해버린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나무님의 일방통행적인 주장입니다. 식은 멸하고 전식득지가 된다고 말하고 싶겠지요. 이미 밝혔지만 유식에서는 전식득지가 되어도 식은 매찰나 일어나고 멸한다고 말합니다. 섯부른 자기식의 잘 못된 유식의 이해로
초기경의 12연기를 잘 못이해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A님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인도에 유학가지 않았습니다. 학문적으로 정확하게 (초기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학가셨습니다. 아직 빠알리어도 제대로 이해못하셨을 것이고 학문하는 기본태도도 완전히 섭렵하지 않으셨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엉터리 소리를 하신다면 심히 걱정됩니다. 중노릇으로나 세속나이로나 선배가 되는 저의 걱정을 제대로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섯째, 그리고 연기를 심도깊게 설명하고 있는 장부 대연기경에서는 육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명색과 육입이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명과 행도 나타나지 않고요. 그래서 9지 연기가 되고 대전기경에서는 무명과 행이 나타나지 않는 10지 연기가 되고 더군다나 장부의 첫 번째 경이요 불교 만대의 정견을 밝히는 범망경에서는 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를 설하는 8지연기로 경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것만 봐도 모든 연기의 가르침은 무명을 토대로 한다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외 다른 6지연기와 8지연기의 설명이 초기경에 나타나는데 이런 것을 봐도 청정도론과 구사론 등의 주석서의 설명처럼 무명과 행이 포함되는 12지 연기는 먼저 삼세양중인과의 측면에서 이해해야하고 무명과 행이 포함되지 않는 연기는 지금여기 혹은 금생에서의 연기로 이해해야할 것입니다.(물론 삼세도 주석서는 다양하게 설명합니다) 이것이 아비담마의 정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설을 부정하려면 수긍이 갈만한 논거를 제시해야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찰나연기나 연박연기나 원속연기의 측면은 이미 구사론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도깊은 정통 견해를 무시하고 아무 근거없는 섯부른 자기식 이해는 위험천만이라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거듭 밝히지만 저는 12연기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무지하게 많은 사람입니다만 그럴 수록 말을 아낍니다. ...
일곱째, 마지막으로 거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부처님께서 직접 대연기경에서 연기의 이치는 참으로 심오한 가르침이라 강조하셨고 모든 주석가들이 한결같이 어렵고 심오하다고 호소하고 있는 연기의 가르침을 아무런 근거 없이 자기식으로 이해해서 그것을 남에게까지 드러내는 것은 신중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어렵더라도 연기의 이해는 청정도론이나 구사론 등의 주석서의 견해를 먼저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화한 뒤에 자기식의 이해를 드러내어야지 전통적인 견해에는
전혀 백지상태이면서도 경의 구문을 잘못 해석해가면서까지 자기식으로 곡해해서 남에게 드러내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정도론이나 구사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유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비담마가 필수입니다. 어렵다고 해서 무시해버리면 그야말로 무지와 무명의 극치가 아닐까요. 하기사 무명이 있기 때문에 엉터리 댓글을 올리는 강한 의도(행)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 물론 연기를 어떻게 보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나무님의 자유입니다만 자유는 근거와 객관성을 바탕으로 해야지 그렇지 않은 자유는 만용이 되기 십상이고 자기가 무지한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 외에는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특정 연구원의 홈페이지에 와서 그곳에서 밝히는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들어낼 때는 더욱더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고 봅니다. A님이 처음에 올린 댓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십시오. 어디 그것이 상식이 있는 사람 글입니까? 그리고 두번째 댓글을 보십시오. 12연기 정형구를 완전히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무님은 스스로가 12연기에 확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당연하지요.
만일 확신이 없다면 주석서를 존중하는 저의 글에 희안한 댓글은 달지 않아야지요. 이상한 댓글을 다는 것은 스스로가 경우도 없고 무지하고 천박하다고 초불까페에 와서 밝히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A님도 까페를 운영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을 가지고 그 까페에서 불교를 설명하시는지 참으로 궁금하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논의가 어느 정도일지는 가히 짐작이 갑니다. 부디 남의 글을 공박하시려면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하시기 바랍니다.
적다가 보니 장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뿌나도 많이 바뀌었겠지요. 부디 문제의식을 더욱 심화시키셔서 보람있는 유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잘 챙기시고 공부에 많은 진전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제 글이 기분 나빴다면, A님이 제가 강사로 있는 학림출신이고 게다가 제가 공부했던 뿌나로 유학을 가셨으니, A님을 아끼고 바른 문제의식으로 공부하시기를 바라는 선배의 조언으로 들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침 공양후에 이 글을 적은 뒤에 이것을 올릴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 나무님의 기분은 상하겠지만 나무님의 공부에 조금의 도움은 될 것이라 믿고 용기를 내어서 올립니다. 청안하십시오.
각묵 합장
[반론]-A [그런데 무명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육입이 멸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완전히 다 멸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A님 스스로가 무명이 멸하면 육체가 멸해버린다고 단정 짓는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저는 지적합니다.]...무명이 멸해서 육입이 멸하는 것이 왜 육체가 멸해버린다고 단정짓는 말이됩니까? [연기를 심도깊게 설명하고 있는 장부 대연기경에서는 육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명색과 육입이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이미 명색과 육입이 같은 내용이라고 밝히셨기에 명색의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경전을 인용합니다. [사물에서 즐거움을 보는 자에게 명색이 나타난다. 사물에서 해로움을 보는 자에게 명색이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을 생각하고 도모하고 잠재시키면 이것이 의식을 일으키는 바탕이 된다. 의식이 지속되고 성장하면 명색이 생겨난다.] -샹윳따니까야 2권 인연품- 이처럼 명색은 나타나고 사라진다고 경전에서 말합니다. 여기에 명색(육입)이 멸하는 것을 죽음이라고 볼 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스님은 육입은 분명히 안이비설신의라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이고, 또 물질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시니까 식, 명색, 육입, 등이 멸하는 것이 육체가 멸해버린다는 뜻으로 자꾸 몰고갑니다. [12연기의 한 고리만을 끊으면 해탈이 성취된다.]라고 하는 말이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고 식이 멸하고....생노병사가 멸하고...라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같은 말 아닙니까?
[살아있는 한 전식득지 된다고 해서 식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식이 없어지면 죽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상식중의 상식이지요.] 여시서 식이 없어진다는 말은 중생의 식이 없어진다는 말이요, 성인의 식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무명에의해서 행에의해서 생긴식 말입니다. 죽음하고 아무상관없는.. 제가 스님과 같은 공부경력이 없기에 물론, 잘못 아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께서 위에서 사용한 저속한 단어들은 스님에 대한 깊은 실망을 갖게 합니다. () 2006/04/02
[모든]이란 용어에 걸리셨나본데...12연기의 역관에서 사용되는 말이기에 모든이 들어가도 상관이 없습니다. 번뇌를 멸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번뇌가 소멸되는 것이기에...이것을 다시 반열반으로 해석하는 것은 역기의 순관 역관을 벗어난 것이며..결국은 명색등에 대한이해가 다른것 때문이겠지요. 13:23
[반론] - 초불
다시 달아 주신 A님의 댓글을 읽고 ...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로 답변을 올리기에는 장문이 될 듯하여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새로운 글로 답변을 적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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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명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육입이 멸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완전히 다 멸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A님 스스로가 무명이 멸하면 육체가 멸해버린다고 단정 짓는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저는 지적합니다.]...무명이 멸해서 육입이 멸하는 것이 왜 육체가 멸해버린다고 단정짓는 말이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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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타깝네요. 아직도 제 말의 뜻을 이해를 못하셨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육입은 안이비설신과 의입니다. 이것은 우리 존재의 육체와 정신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명이 멸하면 육입이 멸한다 그것도 모든 육입이 멸한다고 모든 곳에서 무명을 넣어서 문자대로 해석하면 무명이 멸하는 순간에 죽어버리는 꼴이 된다는 말입니다.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나무님이 주장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봐야하는가? 그 단초는 청정도론 17장 행연식 식연명색 명색연 육입에서 바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은 자의적으로 12연기를 잘못 해석하지 말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전통적인 견해를 먼저 바르게 이해하시라는 간곡한 조언입니다. 그리고 12연기 각지는 주석서에서 설명하듯이 먼저 무명연행과 행연식 ... 등을 독립적으로 분명히 이해해야하고 같은 방법으로 무명멸즉 행멸과 행멸즉식멸과 식멸즉명색멸과 명색멸즉육입멸로 이해해야지 나무님처럼 무명이 멸하면 모든 행이 멸하고 모든 식이 멸하고 모든 명색이 멸하고 모든 육입이 멸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시면 큰 모순에 봉착한다고 적은 글을 가지고 자꾸 이상하게 글을 올리시니 황당합니다.
A님은 자꾸만 육입을 자기식으로 엉뚱하게 이하하고 고집하시니 제 말을 전혀 이해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초기경에서 말하는 육입은 결코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환이 아닌니다. 설사 환이라 한다하더라도 나무님식으로 모든 육입이 멸해버리면 (환인) 존재가 멸해서 (환인) 육체가 멸해버리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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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심도 깊게 설명하고 있는 장부 대연기경에서는 육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명색과 육입이 같은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이미 명색과 육입이 같은 내용이라고 밝히셨기에 명색의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경전을 인용합니다.
[사물에서 즐거움을 보는 자에게 명색이 나타난다. 사물에서 해로움을 보는 자에게 명색이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을 생각하고 도모하고 잠재시키면 이것이 의식을 일으키는 바탕이 된다. 의식이 지속되고 성장하면 명색이 생겨난다.] -샹윳따니까야 2권 인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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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 문맥을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한 부분만을 똑 따와서 자기 주장의 논거로 삼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입니다. 게다가 주석서를 통한 전통적인 해석을 무시하면 더 큰 혼란이 옵니다. 몇 가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A님이 [무엇을 생각하고 도모하고 잠재시키면 이것이 의식을 일으키는 바탕이 된다. 의식이 지속되고 성장하면 명색이 생겨난다.]라고 인용하신 상응부 경에는 무명과 행이 나타나지 않는 10지연기입니다. 복주서에서는 여기서 식과 명색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고 설멍하고 이 문맥에서 식은 업을 짓는 식(kammavin$n$aan*a)이고 명색은 이러한 식을 원인으로 생겨나는 과보로 나타난 명색(vipaaka-naamaruupa)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한 식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이 문맥에 나타나는 식은 반드시 업을 짓는 식으로 이해해야합니다. 생각과 도모를 하면 업을 짓는 식이 일어나고 업을 짓는 식이 일어나면 그 과보로 나타난 명색이 일어납니다. 생각과 도모를 일으키지 않으면 업을 짓는 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업을 짓는 식을 조건으로 한 명색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얼마나 분명한 해석입니까? 이렇게 경이 설해진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지 나무님처럼 자기 멋대로 “모든”을 붙여서 정형구를 이해해버리면 참으로 잘 못된 태도입니다. 이 하나의 보기이면 A님의 연기각지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잘 못되었으며 게다가 경문을 자기식으로 편집하여 소설을 만들어서 이해하는지 충분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사물에서 즐거움을 보는 자에게 명색이 나타난다. 사물에서 해로움을 보는 자에게 명색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상응부의 경문도 문맥을 봐야합니다. 본 경이 나타나는 앞뒤의 문맥을 보면 이 앞의 경에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법들에서 달콤함(assaada)을 보는 자(사물에서 즐거움을 보는 자)에게 갈애가 생겨난다. ... 취..유..생..노사...”라고 하여 5지연기(대상인 법까지 넣으면 6지연기)를 설하고 있습니다.
본경에 대해서 주석서와 복주서는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설명이 없다는 것은 청정도론과 아비담마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뜻이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본경의 바로 앞 경에서는 “속박의 대상이 되는 법들에서 달콤함(assaada)을 보는 자(사물에서 즐거움을 보는 자)에게 명색이 나타난다. ... 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라고 하여 9지연기(대상까지 넣으면 10지)를 설하고 있습니다. 이 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범부는 (몸과 말과 마노의) 세 가지 문을 통해서 업을 증장시키기 때문에 뒤에 계속해서 윤회를 하게 된다.
puthujjanassa tiihi dvaarehi kammam* aayuuhato aparaaparam* vat*t*appavatti)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첫째에서 설명한대로 업을 짓는 식을 조건으로 하여 과보로 나타난 명색으로 이해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서 명색이 나타난다의 나타난다는 avakkanti인데 장부의 두 경과 중부의 두 경에서는 gabbha-avakkanti로 나타나는데 ‘태(gabbha)에 들어감(avakkanti)’으로 직역할 수 있고 저는 그래서 입태(入胎)라고 옮깁니다. 오히려 이 의미에서 보자면 업을 지음으로 해서 다시태어나는 것 즉 과보로 나타난 명색을 받는 것이라 보는 것이 아주 설득력이 있으며
이것은 A3:61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PTS 사전은 avakanti를 <entry, appearance, coming down into, opportunity for rebirth S II.66 (naamaruupassa); III.46 (paNcannam* indriyaanam*); Pug 13 (= okkanti nibbatti paatubhaavo PugA 184); Kvu 142 (naamaruupassa); Miln 123 (gabbhassa).>라고 그 출처를 밝히면서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보듯이 A님이 언급하신 상응부의 본경의 avakanti를 opportunity for rebirth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명색이 일어난다는 것은 업(을 짓는 식)의 과보로 명색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지 모든 명색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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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명색은 나타나고 사라진다고 경전에서 말합니다. 여기에 명색(육입)이 멸하는 것을 죽음이라고 볼 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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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여기 뿐만 아니라 다른 경들에도 나타납니다. 거듭 밝히지만 A님 주장처럼 식이 멸하여 모든 명색이 멸한다고 자기식의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뜻하는 꼴이 됩니다. 식멸즉명색멸은 그 문맥이 있습니다. 문맥도 모르고 식이 멸하면 모든 명색이 멸한다고 주장하면 안됩니다. 제가 간곡히 부탁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A님은 계속 전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댓글만을 다시니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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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육입은 분명히 안이비설신의라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이고, 또 물질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시니까 식, 명색, 육입, 등이 멸하는 것이 육체가 멸해버린다는 뜻으로 자꾸 몰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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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님은 참으로 강한 연민심을 일으키게 하는 분입니다. 왜 명색의 색과 육입의 5입이 물질이 아니라고 하는지 저로서는 참으로 황당합니다. 근거를 대 보십시오. 어디에 색과 5입이 물질이 아니라고 한 곳이 있습니까? 유식에서조차 이것은 분명한 물질입니다. 유식에서는 이러한 물질이 식전변에의한 사현이라고 설명할 뿐이지 색과 5입이 물질이 아니라고 한 경우는 불교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 저속하고 심한 말이 되겠지만 제가 볼 때 나무님은 꼭 무엇에 쓰인 사람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러한 해괴망측한 말을 계속해서 늘어놓는 A님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부디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적반하장으로 저의 말이 잘못되었다고 하기 전에 A님의 해괴망측함부터 부디 살펴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육입의 안이비설신은 물질이고 의는 마음입니다. 분명히 하십시오. 그리고 12연기에서 식/명색/육입/촉/수는 과보로 나타난 것이라고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는 분명히 밝힙니다. 제가 이렇게 분명하게 이해의 단초를 드리는데도 계속해서 육입의 5입이 물질이 아니라는 자기식의 삿된 견해를 우기시니 참으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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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의 한 고리만을 끊으면 해탈이 성취된다.]라고 하는 말이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고 식이 멸하고....생노병사가 멸하고...라는 말과 무엇이 다릅니까? 같은 말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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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돌리지 마십시오. 스님은 무명이 멸하면 식과 명색과 육입 ....이 모두 멸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스님의 주장대로라면 무명이 멸하면 모든 식과 명색과 육입이 소멸하여 죽어버리는 꼴이 되고 만다고 억지를 쓰는 꼴이 되니 스님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저는 특정 식이 멸한다고 모든 명색이 멸하고 모든 육입이 멸한다고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거듭거듭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석서는 12연기 각지의 소멸에 대해서는 주석을 달지 않는다고 강조하여 스님식으로 잘 못이해하지 마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와서 무엇이 다르냐고 하니 황당합니다. 글에는 문맥이 있습니다. 스님이 스스로 스님이 말하신 문맥을 부정해버리니 제가 황당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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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 전식득지 된다고 해서 식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식이 없어지면 죽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상식중의 상식이지요.] 여시서 식이 없어진다는 말은 중생의 식이 없어진다는 말이요, 성인의 식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무명에의해서 행에의해서 생긴식 말입니다. 죽음하고 아무상관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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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모든 식이 멸하고 모든 명색이 멸하고”라고 모든을 엄청나게 강조하신 스님의 댓글을 스님 스스로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명에 의해서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여 식이 멸한다는 것은 분명히 한정적으로 이해해야합니다. 행이 멸한다고 해서 모든 식이 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명색 모든 육입 모든 촉 모든 수가 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스님 스스로가 이렇게 적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든 식/명색/육입/촉/수가 멸한다면 그것은 죽음을 뜻하는 말이 되고 만다는 저의 말도 그 취지가 분명히 드러난다고 봅니다. 무명이 멸한다고 해서 행이 멸한다고 해서 모든 식/명색/육입/촉/수가 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분명히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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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님과 같은 공부경력이 없기에 물론, 잘못 아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께서 위에서 사용한 저속한 단어들은 스님에 대한 깊은 실망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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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글에서 분명히 밝혔지만 저는 윗글을 올리지 않으려고 하였고 올리면서도 몇 번을 망설이며 나름대로 고심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기회에 이역만리로 초기불교와 빠알리를 공부하러 가신 귀중한 스님에게 선배로서 “부디 정확하게 경문을 이해하고 주석서와 아비담마의 전통을 철저하게 섭렵하시라.”고 강하게 조언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판단하였기에 A님이 표현하신 대로 “저속한 단어들”을 사용하여 글을 적었습니다.
제가 일부러 이러한 단어들을 선택한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사용한 단어가 저속한 단어라면 나무님이 올리신 글의 내용은 참으로 한심한 수준이라는 사실을 이런 저속한 단어를 사용하여 밝히고 싶었습니다. 제가 선택한 단어가 저속한 단어이듯 나무님이 쓰신 내용은 참으로 한심하며 불교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크게 호도할 수 있는 저속한 내용입니다. 나무님이 제글을 읽고 깊은 실망감을 가졌듯이 저도 A님의 글을 읽고 깊은 실망감을 느꼈고 그래서 강한 자극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여 심한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음부터 초불까페에 와서 댓글을 다실 때는 부디 신중하게 정중한 어법으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고 스님 공부에 방해가 된다면 제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디 용서를 구합니다. 반면 스님께 조금의 자극이라도 되었다면 제가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스님 글에 답글을 올리는 이 일이 그래도 조금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공양하고 밖에 나가야하기 때문에 빨리 적은 글이라 글이 거칩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반론] -xx보살
xx보살 두분 스님의 갑론을박이 정면대치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두분 중의 한분은 분명 심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나무님은 육입과 명색이 몸과 마음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지고 계시고, 각묵스님은 어떤 경우에도 육입과 명색은 몸(물질)과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각묵스님의 주장은 역사와 전통면에서 가장 권위있는 남방불교(아비담마)의 논거이기 때문에 가장 신빙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붓다께서 말씀하시길 역사와 전통과 권위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진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경전해석에 따른 개인적인 견해라 하더라도 그것이 진리일 수 있는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진리가 진리일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은, 첫째 보편타당성이 있어야 되고, 둘째 합리적이어야 되며, 셋째 설명을 듣게 되면 남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바로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다면 그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제가 볼때에는 각묵스님도 나무님도 모두 다시한번 고찰해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육입과 명색이 몸(물질)과 마음이 아니라는 A님의 견해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청정도론의 견해를 따르면 육입과 명색이 몸과 마음이기 때문에, 결국 일체고의 원인이 몸과 마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심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 누구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되고맙니다. 그것은 곧 아라한들과 붓다께서도 괴로움을 소멸하지 못했다는 것이 되며, 결국 불교는 죽은 다음에야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그럼 열반이라는 말을 다른 의미로 재해셕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점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미완의 쟁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방 학자들도 육입과 명색을 몸과 마음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더 깊고 정밀한 연구를 해봐야 되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전통과 권위를 앞세워 우겨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뭔가 남들이 선뜻 수긍하지 못한다면 그 주장에 하자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현명한 선택입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육입과 명색에 관한 분명하고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워낙에 각묵스님께서 개인적인 견해들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시니, 이 카페에서는 도저히 밝힐 수가 없습니다. 모쪼록 더 깊은 고찰과 연구가 있어서, 명쾌한 결론이 도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모두 건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13:15
불광사에서 댓글 답니다. xx보살님도 근거없는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을 하시는군요. 명색이 정신과 물질이라는 것은 결코 남방불교의 견해가 아닙니다. 남방불교만이 이렇게 설명한다는 것은 참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매도에 불과합니다. 모든 북방불교에서도 이렇게 설명합니다.
xx님이 명색이 정신과 물질 이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분명한 근거를 밝혀주세요. 보편타당, 합리적, 공감 운운하시면서 아무른 근거가 없는 자신의 주장을 하시면 곤란하지요. 육입과 명색에 관한 삼무보살님의 분명하고 확실한 견해를 부디 밝혀주시기 바랍니다.(대충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삼무보살님도 모든을 넣어서 모든 식과 모든 명색과 모든
육입과 모든 촉이 멸한다고 생각하시니 스스로가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초겨경에 일체란 12처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일체란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이고 이 가운데 안이비설신과 색성향미촉과 법의 일부분은 물질이고 의와 법의 일부분은 정신입니다. 처 혹은 입을 이렇게 보는 것은 모든 06.04.05 07:55
불교에서 한결같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남방불교만이 이렇게 본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스스로가 보편성을 결여하는 심한 오류에 빠진 것이라는 것을 백일하에 드러낸 것에 불과합니다. 육입이 안이비설신의라는 정신-물질이 아니라면 촉은 도대체 어디서 일어납니까? 관념속에서 일어납니까? ...
심신을 가지고 잇는 이상 그 누구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셨는데 이 또한 모든 육입이라고 모든 촉이라고 모든 수라고 잘 못해석하시는 삼무보살님이 스스로 오류에 빠져서 계박된 것일 뿐입니다. 청정도론을 말씀하셨는데 청정도론의 17장을 제대로 읽으셨다면 이런 글을 적을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무조건 전통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초기불교 남북아비담마 유식 등 불교의 주류에서 한결같이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초기불교와 남북아비담마의 문맥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대의 극소수의 사람들의 견해를 어찌 인정한단말입니까? 부디 육입에 관한 xx보살님의 분명한 견해를 올려주세요.
서울법회를 마치고 내려가서 읽고 님의 고견을 듣고 배우겠습니다. 물론 비판할 부분은 철저하게 비판하겠습니다. 요청드리고 싶은 것은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적어주십시오. 거듭밝히지만 명색과 육입을 정신-물질로 보는 것은 결코 남방 상좌부만의 견해가 아닙니다. 이점 분명히 하십시오
님의 댓글을 읽고 미적분은 (어렵기 때문에) 엉터리 가르침이라고 우겨대는 국민학생이 연상되는 것이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할말은 많지만 먼저 xx보살님의 고견을 듣고 제 견해를 밝히는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좋은 법담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반론]xx보살
xx보살
글을 올리기 전에 우선, '육입이나 명색이 정신과 물질이다'.라는 견해를, 남방불교만의 견해라고 제가 말했다면 그점은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 견해가 가장 많은 학자들이 지지하는 견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님, 불교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의심과 문제제기는 매우 중요한 수행심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우선 불교의 목적에 해당하는, 괴로움의 소멸에 있어서 괴로움도, 정신적인 큰 괴로움들만을 뜻하고, 연기법의 각지는 모두가 상대적인 개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탐 진 치에서 발생한, 갈애와 집착이라는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지독하고 큰 괴로움들. 바로 그런 괴로움들이 사성제의 통달로써 소멸시킬 수 있는 괴로움들인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처님도 배고픔이나 추위 더위 등 기본적인 괴로움들은 해결 못하고, 질병이나 사고 등에서 발생하게 되는 괴로움들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주치의 지바카가 있었음만 봐도 그렇습니다. 고로 모든 괴로움은 어불성설
그런데 정신적인 고통들은, 사성제를 통달하고 진리를 깨치게 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학설처럼 육입과 명색을 정신과 물질 또는 몸과 마음이라고 해석하면, 최소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생존해 있는 이상에는, 정신적인 괴로움들도 해결할 수 없다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입니.
왜냐하면 괴로움의 원인이 곧 육입이고 육입의 원인이 명색이기 때문입니다. 오해없이 잘 생각해보십시오. 괴로움의 원인이 정신과 물질 또는 몸과 마음이라는 것은 분명 모순입니다. 물론 저는 근거 경전이 있지만, 어차피 스님과 제가 같은 경전을 놓고도 해석을 다르게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스님은 또 소설 정도로
치부해버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거 경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제 의구심과 문제점 만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스님께서 앞에서 잠깐 언급하신 촉에 관해 말씀드리면, 저는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관념과 함께 촉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즉 눈과 모습 식에서, 식은 관념적으로 대상을 아는 마음이라고 보는
입장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눈으로 수박을 보았을 때, 눈과 수박과 식(달고 시원하며 둥글고 줄무늬가 있는 과일이라고 아는 마음), 이 셋(三事)이 충족(화합)되면 그것을 저는 촉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눈이 없으면 수박을 볼 수 없고, 수박이 없어도 수박을 볼 수 없으며, 식이 없으면 수박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수박을 관념적으로 파악하는 심리현상을 저는 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수박을 꼭 관념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관념적으로 알지 않는, 여실히 아는 마음과 식은 구별해서 설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정도만 피력하겠습니다. 만약 스님이 고정관념 없이 이글을 읽으신다면, 아마 새로운 명상 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마침내 어떤 새로운 결과, 새로운 견해를 스스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스님과 저의 견해 차이가 매우 큽니다. 하지만 저는 제 견해를 반드시 옳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문제를 제기하는 정도로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디 안녕하시길 비옵니다.
쓰고 보니 좀 미흡한 곳이 있습니다. 가령 괴로움의 원인이 갈애라고 해도 맞고, 집착이라고 해도 맞고, 수라고 해도 맞고, 촉이나 육입 명색이라고 해도 맞고, 또 식이나 행이라 해도 맞고, 무명이라고 해도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움의 원인을 소급해서 단지, 육입과 명색이라고 말한 것임을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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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야말로 12연기는 육체의 생사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12연기는 고의 발생구조와 고의 소멸구조를 밝히고 있습니다. ]는 초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육입을 마음이 만들어낸 환이나 요술적인 무엇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초기경에서 결코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육입의 안이비설신은 물질이고 의는 마음입니다.] 라고 다시 언급 합니다.
의문)12연기를 마음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하는데 육입이 감각기관, 물질이란 것이 타당한가요?
12연기의 환멸문은 무명이 멸하면 행-식-명색 줄줄이 멸하는 것이 아니라 무명즉행멸, 행즉멸식... 이렇게 견해를 피시는데 줄줄이 멸하든 하나씩 멸하든 멸하긴 멸하는군요.
아묻튼 명색즉멸 육입은 '사실' 이라는 말로 보이는데 감각기관이 멸하는 것 이상하게 보입니다.
하여 12연기를 고의 발생, 소멸 구조로 식의 문제로 보면서 육입을 감각기관으로 피력하는 것은 센스가 안된다고 저는 보아집니다.12연기를 식의 문제로 보면 육입도 식의 문제가 되어야 타당합니다.

한자와 팔리어와 영문으로 된 '색'의 뜻은 한가지인데 청정도론에서만 다르게 말하는군요. 청정도론이었는지, 아니면 어느 한 분의 의견인지 모르겠지만 노랑님께서 올려주신 이교수님의 답변으로 색의 의미가 정말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질문을 여쭐때 그저 단어뜻만 물었지요. 그런데 아비달마주석가 해석이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말씀해 주신 걸보니 이미 그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아신듯 합니다.아비담마에서 그렇게 사용한다는 이야기시겠지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