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월일 |
세계사 |
유럽사회주의역사 |
한국사 |
1870 |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
|
|
1871 |
파리코뮌 수립 |
신미양요 | |
1875 |
프랑스 제3공화정 성립 |
독일 사회주의 노동당 결성 고타 강령 채택 |
|
1876 |
벨, 전화기 발명 |
강화도 조약 | |
1878 |
|
베를린회의 독일, 반사회주의 취체법 제정 |
|
1883 |
|
마르크스 사망 |
|
1884 |
청ㆍ프랑스전쟁 발발 |
영국, 페이비언 협회 결성 |
갑신정변 |
1885 |
|
블랑키, <사회비평> 저술 |
거문도 사건 |
1889 |
|
파리 제2인터내셔널 창립 |
|
1894 |
청ㆍ일전쟁 |
동학농민운동 |
|
1895 |
을미사변 | ||
1905 |
|
러시아 피의 일요일 사건 |
을사조약 |
1914 |
제1차 세계대전(~1918) 발발 |
|
제4장 중요한 세력으로서의 사회주의 1870-1914
1절 18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의 확산
201026023
윤리교육과 장현호
1. 학습목표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되는 양상을 알아보고 마르크스주의가 국가별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알아본다.
2. 중요한 세력으로서의 사회주의
1850~60년대의 자본주의의 고도의 발전 뒤에 1873년부터 1890년대 초에 이르는 당시의 소위 ‘대불황’이 이어졌다. 이 불황은 농업과 중공업에 타격을 주었고 성장률의 둔화를 초래하였다. 당시의 기준에 의하면 별로 신경 쓸 만한 둔화는 아니었지만 기고만장하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큰 타격을 주었고 폭력적인 파리코뮌의 돌발보다 부르주아의 안정을 더 크게 흔들었다. 이 시기에 이른바 `제 2의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하층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하고 존재를 과시했다. 이런 환경은 사회주의가 중요한 세력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3. 마르크스주의의 확산
노동계급정당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그의 `과학적인`분석과 자본주의를 사회주의가 나타나기 위한 불가피한 준비단계로 설명한 점, 산업노동자들을 규율있는 계급의식 정당으로 결집시키려는 노력이 큰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밖에 머물고 있었고 사회주의 정당내의 저명한 지도자들도 소수의 숙련 노동자와 좌파의 부르주아 지식인들이었다. 1880년대에 이르러 마르크스의 이론을 대중화하여 노동자들에게 보다 더 용이하게 수용될 수 있는 특별한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반뒤링론』으로 알려진 엥겔스의 출간물이다. 강력한 노동운동을 통한 개혁 자본주의를 지지한 경제학자 뒤링의 이론을 논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책이다. 이 책은 1880년대에 이르러 노동자들을 위해 번역되었는데 뒤링과의 논박보다는 마르크스의 이론들을 좀 더 확실하고 교훈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일반적 독자들은 마르크스의 대부분의 저작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4. 독일
▸독일 사회민주당(SPD): 아이제낫흐 지지자들과 라살 지지자들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마르크스주의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여겨진 정당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민주당이 결성되면서 채택한 고타강령은 마르크스가 격렬히 비판하였는데 그 강령의 그것에 라살적 요소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사회주의 취체법: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단결하고 급속한 발전의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하자 비스마르크는 그들에 대해 일련의 공격을 개시하였는데 1878년의 ‘반사회주의 취체법’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입법은 독일에서의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합법적으로 허용된 중요한 영역은 의회 선거였지만 의회 활동도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그 반사회주의 취체법이 폐지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것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였고 1880년대 초의 일시적 좌절 이후, 선거에서 연승을 거두었다.
5. 프랑스
프랑스에서의 마르크스주의적 운동의 전개는 약간 대조적이었다. 그들이 활동해야 했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은 독일인의 환경과는 상당히 달랐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민주적 급진주의자들의 입장과 비교적 정확하게 구별했다. 19세기 후반의 프랑스는 사회주의자들의 분파적 대립에 기인한 심한 혼란을 경험했고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1875년 이후에 누린 확고하고 지속적인 결속을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다양한 성향과 통합에 대한 끈질긴 저항은 19세기의 프랑스의 특이한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 의해 보다 강화되었다. 프랑스의 산업도 점진적으로 성장했지만 전반적인 경제 성장률은 독일, 미국, 러시아에 뒤져 프랑스는 그처럼 급격한 경제적, 사회적 구조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이런 다양한 구조적 요소들은 독일에 비해 프랑스에서 사회주의가 약 10분의 1규모로 덜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6.영국
영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대단히 취약했으며, 프랑스에서보다도 더 취약했다. 영국의 상황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국가적 조건에 의해 얼마나 크게 좌우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은 영국 경제가 공장 노동자를 가진 유럽에서 가장 발전적이었으며 프랑스나 독일보다도 더 심하게 불황의 참화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가 가장 취약하기보다 가장 강력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들은 ‘신급진주의’라는 이름 아래 균등한 기회를 개방하고 산업사회의 특성인 처리하기 어려운 부정의를 치유하는데 국가의 큰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상을 수용하고 전개해나갔다. 자본주의에 대한 다른 비판자들도 사회주의적 관심사들을 보다 명백히 강조함으로써 민주적 급진적 사상을 뛰어 넘어갔다. 그 시기의 죠오지는 ‘단일세’를 통해 지대에 의해 ‘부당한’ 재산을 얻는 일을 없앨 것을 요구하여 사유재산의 신성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수의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주의적 방향으로 생각하게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든, 마르크스주의자나 급진주의자든, 혹은 단순한 노동자든, 어떤 좌파의 중요 집단도 ‘자유당’에 도전하지 않았다. 19세기말 모든 계층의 영국인들은 그들 국가의 기존의 제도들을 인정하고 심지어 중히 여겼으며, 나아가 기존의 자유당과 보수당이 다른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의 해결은 물론 자본주의에 요구되는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정치적 기구들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와 그것과 관계있는 지속적 혁신의 불가피성에 대한 신념은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보다 영국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영국은 내적 안정에 관심이 많았으며, 사회주의 정당의 당원을 충원하는 일을 쉽게 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긴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경향은 어렵게 얻은 자신들의 노동조합에 긍지를 가졌고 영국 노동자들의 물질적 조건이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해 개선되었다고 확고히 믿은 영국 노동자들에게 외면당했다.
7. 결론
19세기말에 일어난 대공황으로 자본주의는 탄탄했던 기반은 흔들리고 사회주의가 새로운 핵심 사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사회주의 침체기 시절 마르크스의 끊임없는 노력 때문에 일어난 결과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그가 생각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의 사상은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점차 그들 나름대로 자의적 해석을 하지 시작하였고 마르크스주의적 정당이라고 알려진 정당들도 그의 사상과 어긋나는 요소를 강령에 포함시켰다. 결국, 그는 죽음을 맞이할 때 엥겔스에게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이러한 자의적 해석 때문에 새로운 사상가에 의해 끊임없이 보완되고 발전하면서 사회주의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었다.
수행평가 문제
다음 중 마르크스주의의 확산에 대해 잘못 말하고 있는 사람은?
윤석: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마르크스 이론을 대중화하는데 기여했다.
동영: 독일에서 비스마르크는 ‘반사회주의 취체법 ’ 으로 사회민주주의적 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관: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을 마르크스주의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계급 정당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매료되었다.
세진: 프랑스는 특이한 경제적, 사회적 구조에 의해 노동자들이 중앙집권화 되고 규율 있는 대중적 정당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어떤 이론을 수용할 가능성은 적었다.
현호: 영국에서는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나 급진주의자, 혹은 단순한 노동자,
어떤 좌파의 중요 집단을 막론하고 ‘자유당’에 도전했다.
제 4 장 1절 18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의 확산.pptx
제 4장 1절 18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의 확산.hwp
|
첫댓글 1880년대에는 사회주의가 크게 확산되었는데, 유럽의 경제 대불황과 신대륙에서 값싼 농산물 수입된 탓에 자본주의에 관한 신뢰도가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과학적인 마르크스주의가 대중화되었고, 이에 따라 독일과 프랑스, 영국은 각국의 상황에 맞게 마르크스주의를 적용하였다. 1880년대 이후 각국은 경제적 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세 나라는 모두 정치적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 시기 사회주의는 아직 국제적으로 통합된 사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각 국가에서 마르크스 이론이 적극적 형태로 수용되었던 만큼, 사회주의는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었다.
대불황의 시기가 도래하며 사람들이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사회주의적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개인주의가 낳은 문제점을 타파하기 위해 각국의 지도자들이 사회주의에 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강대국 세 나라 중에 가장 사회주의가 힘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이었습니다. 독일에 정당으로 독일사회민주당이 창당되었는데 이것은 사회주의가 주변인 기질에서 벗어나서 중심세력의 목적으로 편입되었다는 유럽의 사상적인 흐름을 증명해 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이러한 적극적인 사회주의 도입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러시아에서는 더 나아가 사회주의 혁명에까지 이르도록 하게 한 유럽의 사회주의의 중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이 절에서 가장 핵심이 됐던 인물은 엥겔스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엥겔스는 이 저술을 통해 사회주의의 엔진, 즉 노동자를 굴러가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물론 대공황이라는 시대 상황도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배경이 되긴 하였지만 그것만으로 노동계급의 의식을 형성시키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엥겔스의 저술은 노동자들을 깨우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자각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주체가 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게 됩니다.
* 안윤석 : 1) 물론 대공황이라는 시기적인 특정도 있었습니다. ->> * 비문입니다.
* 수정하였습니다.
* 안윤석 : 2) 이 절에서 가장 핵심이 됐던 인물은 엥겔스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은 사회주의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엥겔스의 저술은 이 사회주의의 엔진을 굴러가게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공황이라는 시기적인 특징도 사회주의가 확산하게된 배경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계급의 인식까지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저술은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을 깨우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였고 이는 나중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연합하여 한 세력을 형성한다는 것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 같은 말이 반복되지 않도록 문장을 전체적으로 다듬으세요.
*수정하였습니다.
* 안윤석 : 2) 물론 대공황이라는 시기적인 특징도 사회주의가 확산하게된 배경을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계급의 인식까지 바꾸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대공황이라는 시대 상황도 사회주의가 확산되는 배경이 되긴 하였지만 그것만으로 노동계급의 의식을 형성시키기에 충분하지는 않았습니다. 3) 그의 저술은 그런 점에서 ->> 그런 의미에서 엥겔스의 저술은
수정하였습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였지만, 대공황을 맞이해 자본주에 대한 문제가 드러나면서 사회주의에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마르크스주의가 한몫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사회에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사회주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에 확산이 됩니다. 하지만 같은 사회주의라 하더라도 나라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사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비록 나라마다 사회주의의 모습이 같진 않았지만, 그 내면을 보게 된다면 사회주의의 본질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나중에 하나의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화, 세계화하게 되는데 여기
여기에는 엥겔스의 [반 뒤링론]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소 극소수의 농민들에게만 수용되었던 사회주의는 엥겔스의 [반뒤링론] 덕분에 다수 농민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제 사회주의는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세력이 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박소연 : 1) 엥겔스의 [반뒤링론]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엥겔스의 [반뒤링론]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수정하였습니다.
1870년과 1914년 사이에 사회주의는 서양사상의 중요한 세력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대불황'으로 인해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관세나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시장경제 동향을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관심을 부활시켰습니다. 사회주의 사상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에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제 사회주의 사상은 단순한 세력이 아닌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850-60년대 자본주의 고도의 발전 뒤에는 유럽의 대불황이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당시 민중들은 다시 한 번 사회주의에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맞추어 이전 시대보다 노동자들의 교육활동이 증대되면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은 경제적 상황에 반비례하여 증대되었습니다. 이에 각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자국에서 사회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이 나오고, 프랑스에서는 말롱이 통합사회주의를 제창하는 등, 각국에서 자국의 상황에 맞게 사회주의를 도입했습니다.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도에 따라 사회주의가 새롭게 자리 잡는 상황을 비롯해 확산의 속도가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역사적 상황이 큰 부분을 차지하며 새로운 이념에 대한 발전 방향도 다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사회주의는 영국, 프랑스, 독일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가 죽은 후에 사회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엥겔스의 '반뒤링론'같이 그의 뒤를 이은 사상들이 보완을 거쳐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같은 사회주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라마다 서로 다른 형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게 되면서 사회주의가 얼마나 큰 세력으로 성장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1880년대 자본주의의 신뢰도는 대불황과 신대륙의 값싼 농산물 수입 때문에 하락한다. 이는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타격을 가한다. 이러한 환경은 사회주의의 확산을 도왔고, 사회주의 사상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나라에 정치, 경제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아직 사회주의가 국제적으로 통합된 사상은 아니었으나, 각 국가에서 마르크스 이론이 적극적 형태로 수용되었다는 것에 있어서 의의가 있다.
4장의 제목이 중요한 세력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가 각국마다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대부분의 노동계급 정당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매료되었는데 그 까닭은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를 사회주의의 출현을 위한 불가피한 준비 단계로 보고 자본주의 발전에 대해서 매우 '과학적인' 분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두루뭉술한 공상적 사상에 그친 것이 아닌 확실한 논증을 통해 과학적인 결론을 제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든지 철저한 계획을 통해 주장하는 것이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870-1914년의 사회주의는 '중요한 세력으로서의 사회주의'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는 사회 내부의 문제들이 마르크스의 사상과 만나서 사회주의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가 주목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의 사회주의 발전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독일은 사회주의의 모범적 모델이었고 프랑스에서는 사회주의가 대립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널리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같은 사상이라도 여러 다른 요인들에 의해 다르게 수용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김이슬 : 1) 살펴 볼 수 있었는데 ->
수정했습니다.
집계일시 : 2013년 4월 23일 오후 10시 10분
불이행자 : 배영관, 신효진
미이행자 : 없음
마르크스주의는 어느 지역에서 발생했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전합니다.어느 시기, 어떤 장소, 어떤 민중인지에 의해 그 발전 양상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마르크스주의가 확산됩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민중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환영받지 못했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마르크스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번 발표를 통해서 어떤 이념을 받아들이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이론이 확산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