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하다”와 “절실하다”는 뉘앙스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한 뜻의 말로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절박하다(切迫--)” ‘매우 다급하고 절실하다’, 영어로는 ①urgent, ② become acute >
<“절실하다(切實--)” ‘매우 시급하고 중요하다’, 영어로는 ①serious ② severe>
이렇게 보면 우리말 사전에서는 두 말의 뜻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迫 다그칠 박.
① 다그치다 ② 궁하다 ③ 급하다 ④ 재촉하다
實 열매 실
① 열매 ② 이르다 ③ 결실하다 ④ 차다
한자의 뜻은 이렇게 다릅니다. 그러니 ‘절박하다’와 ‘절실하다’는 분명 의미가 달라야 하지만 우리말의 특성상 두리뭉실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2002년 대선 당시의 일이다.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8일 밤, 새천년민주당 노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했던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지지를 철회했다. 노 후보 측 선대위원장이던 정대철 헌정회장이 소식을 듣고 당사로 향했다. 무작정 노 후보를 차에 태웠다.
“어디를 갑니까?” 정 회장은 정 후보 집으로 간다고 답했다. “형 나 안 가! 돌려.” 노 후보의 답이었다. 워낙 거부 의사가 강해 정 후보의 서울 평창동 자택에 도착하기까지 한강을 건넜을 때, 이화여대 앞에서, 광화문 인근에서 등 세 차례나 차를 돌렸었다는 게 정 회장의 회고다.
설득 끝에 노 후보는 정 후보 자택 문 앞까지 갔고, 정 후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장면이 TV로 중계됐다. 실제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다음날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문자로 투표 독려 현상이 발생했다. 이 장면이 안쓰러워 노 후보를 찍으러 갔다는 이들도 있었다. 대선에선 노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57만여 표 차이로 이겼다. 후보가 싫어하는데도 끝까지 찾아가는 모습으로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한 것은 대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해 3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변신도 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준 쪽은 국민의힘이었다. 대선이 한참 남았을 때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이길 후보를 찾기 어려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공고했고, 180석 거대 여당이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적이고 고령층 당원이 많은 국민의힘 지지층이 '30대, 0선'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았다. 골수 보수 지지층만으로는 안 되고 중도층을 흡수해야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에서 수사팀장으로 활동했다.
2019년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선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그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고 대선에 나서자 자당 후보로 선출했다. 대선은 0.73%p 차이 신승이었는데,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층의 선거 승리를 향한 열망이 밑바탕이었던 셈이다.
한국 정치에서 고정관념을 깨는 양상으로 선거판을 흔든 사례는 민주당 계열에서 자주 나왔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수 계열과 손잡은 ‘DJP 연합’으로 집권했고, 2002년 호남 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이 일었던 게 사례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민의힘이 오히려 앞서가는 것 같다.
최근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선거 때 표를 얻으려 한 것”, “전광훈 목사가 우파 천하 통일” 등 설화를 일으킨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당원권 정지 1년 처분을 내렸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총선에 나갈 수 없는 중징계다.
그런데도 김 최고위원은 “재심 청구나 가처분 소송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다”고 받아들였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여소야대 구도를 바꾸지 못하면 사실상 ‘식물 정권’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런 변화의 배경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심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재명 당 대표가 대선 패배 후 곧바로 지역구 출마에 이어 대표 경선에 나섰다. ‘사법 리스크’로 조용할 날이 없지만, 민주당 당원들은 이 대표를 선택했다.
더 심각한 것은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발생하고 생생한 녹취 파일이 공개됐는데도 송영길 전 대표나 관련 의원들이 마치 거리낄 게 없다는 듯한 태도를 노출하고 있다. 자진 탈당하는 게 고작이다.
거액의 가상자산 투자 논란 끝에 탈당한 김남국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하기까지 민주당 지도부는 ‘선 진상조사, 후 제소 검토’를 고수했다. 그러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떠밀리듯 늑장 대응했다.
이런 문제가 설화보다 훨씬 심각한 것 아닌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텃밭 호남과 윤 정부에 등 돌렸던 20~30대에서까지 흔들리고 있다.
내년 4월 총선까지 10개월여가 남았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승리했던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패했다.
다음 총선에선 민심을 무시한 채 오만하고 무례하게 구는 쪽이 질 것이다. 선입견과 확신에 빠져 뻔히 보이는 변화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쪽이 질 것이다. 절박함이 덜한 쪽이 질 것이다. 누가 승자일까.>중앙일보. 김성탁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 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절박한 쪽이 이길텐데, 어디일까
저는 프로야구에서 한화이글스의 팬입니다.
지난 10년이 넘게 이글스는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습니다. 그동안 매우 유명한 감독, 여러 명을 데려왔고 좋은 선수들을 많이 뽑았지만 성적은 결코 나아지지 않아서 팬들의 실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글스의 경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선수들이 절심함이 없다는 판단입니다. 내가 최고의 타자, 투수가 되겠다는 다부진 자세가 없고, 삼진을 당하거나, 안타를 맞아도 절치부심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선수가 눈에 띄지를 않습니다.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저 대충하고 연봉 적당히 받으면서 선수 생활을 하면 된다는 보신주의가 팽배해서 이글스가 상위권으로 도약하지 못한다는 것이 늘 제 판단입니다. 그런 선수가 많다보니 뛰어난 신인이 들어와도 이내 거기에 매몰되어서 다 그저 그런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김성근 감독이 있을 적에 몇 번 타석에서 잘 친 강 아무개 선수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감독님의 특타(특별타격훈련)’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가 그 뒤에 미끄러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글스의 선수들이 그런 자세가 오늘날 리그에서 가장 아래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늘 생각합니다.
김성근 감독의 지론이 “1구2무”입니다. 공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건다는 얘기입니다. 두 번째는 필요가 없다는 말, 바로 그게 절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적이 안 좋으면 바로 퇴출이 된다면 누구도 절심함으로 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다 절실함도 절박함도 없습니다. 자기 진영이면 무조건, 따지지 않고 지지해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절실함이나 절박함이 없어도 굴러갑니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를 망치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