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할미꽃으로 피어난 보랏빛 봄을 만나다
정선 동강 길
강원 정선군
수정일 : 2021.04.01
나뭇가지 끝에 연둣빛이 돌고 쌀쌀하던 바람이 어느샌가 포근해졌다. 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겨우내
진회색 빛으로 무표정하던 바위 절벽에 드문드문 보랏빛이 보인다면 그때가 비로소 동강의 봄이다. 동강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동강할미꽃이야말로 봄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동강할미꽃을 만나러 정선 동강 길로 떠나보자.
동강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동강할미꽃_정선군청 제공
봄 마중하러 동강변을 걷다
동강은 오대산에서 발원해 평창, 정선, 영월을 거쳐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강폭이 넓지는 않지만 맑고 깨끗한 물줄기가 지나는 길목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펼쳐낸다. 풍요로운 생태계와 숱한 석회암 동굴을 품고 있는
보석 같은 강이기도 하다.
동강 곳곳이 절경이지만 봄철에 걷기 좋은 길은 정선읍 광하리와 귤암리 일대다. 이맘때 귤암리 강변에서는
한국 특산식물인 동강할미꽃을 만날 수 있다. 동강변 석회암 지대 바위틈에서 자라는 동강할미꽃은 3월 중순
경에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이면 시들기 때문에 꽃을 보고 싶다면 이 시기에 맞춰 방문해야 한다.
구불구불 휘감아 도는 동강_정선군청 제공
동강 풍광에 동강할미꽃 감상까지 하려면 귤암리 동강할미꽃 서식지를 중심으로 강 상류나 하류를 오가는
트레킹을 추천한다. 먼저 들러야 할 곳은 광하교 인근에 있는 동강 광하 탐방안내소다. 동강 탐방을 위한
정보는 물론 동강할미꽃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자세하게 안내받을 수 있다. 안내소가 문을 닫았을 경우
안내소 바깥에 안내 표지판이 있어 참고할 수 있다.
광하 탐방안내소를 지나 1.4㎞ 정도 더 가면 동강생태체험 전시관이 나온다. 동강이 생겨난 과정, 동강에 깃들어 사는 다양한 생명, 동강의 사람들 등 동강과 생태에 관한 전시로 꾸민 곳이다. 뗏목 노를 저어보는 체험형
전시가 인상적이다. 전시관 야외에 마련된 동강생태체험학습장도 잠시 짬을 내어 둘러볼 만하다.
동강 탐방을 위한 출발점 동강생태체험 전시관
동강생태체험학습장은 너른 부지에 동강할미꽃을 비롯해 동강과 정선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야생화를 볼 수 있도록 잘 가꿔 놓았다. 체험장 옆, 산 위까지 긴 선이 여러 줄 연결된 것이 보인다. 동강의 구불구불한
물줄기를 감상하며 짜릿한 속도까지 즐길 수 있는 정선의 대표 레포츠 중 하나인 아리힐스 짚와이어다.
아리힐스에서 출발한 짚와이어의 도착 지점이 바로 동강생태체험학습장이다. 정선 아리힐스에 오르면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첫 번째는 동강을 굽어보는 아찔한 스카이워크, 두 번째는 풍경과 스릴을 동시에 맛보는 짚와이어, 마지막은 산 위에서 즐기는 글램핑이다.
동강생태체험학습장을 방문한 여행객
스카이워크 아래 동강이 보임
바위 절벽에 피어난 동강할미꽃
동강생태체험 전시관 주차장에 차를 두고 강변을 따라 동강할미꽃 서식지까지 걸어 보길 추천한다.
약 1.2㎞ 거리로 느긋하게 흘러가는 동강의 물줄기와 그 옆으로 형성된 절벽이며 강변 풍경이 아름다워
발걸음이 가볍다.
강변에 곧추선 수직의 바위 절벽을 정선 사람들은 ‘뼝대’라고 부른다. 1997년 식물 사진가 김정명 씨가 거친
뼝대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보랏빛 동강할미꽃을 촬영해 다음 해 꽃 달력을 만들어 세상에 알렸다. 이를
눈여겨 본 식물학자 이영노 박사가 연구 끝에 한국 특산식물임을 밝히고 동강변에 자생한다고 하여 이름을
‘동강할미꽃’이라 했다.
동강변 수직 절벽인 ‘뼝대’가 동강할미꽃의 거처
토종 동강할미꽃과 달리 꽃이 활짝 핀 뒤에도 고개를 꼿꼿이 들고 있으며 꽃잎의 색깔 또한 보라색으로 독특
해 동강할미꽃은 사진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동강할미꽃의 발견과 동강의 풍부한 생태계 덕분에 동강댐(영월 댐) 건설이 무효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동호인들의 대규모 출사와 태풍 루사, 매미의 영향으로 동강할미꽃은 한때 멸종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하나뿐인 동강할미꽃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마을 사람들은 동강할미꽃 보존회를 만들어 2005년부터 꽃 지키기에 발 벗고 나섰다. 보존회의 노력과 사람들의 인식 개선 덕분에 동강할미꽃은 이제 동강의 봄을 상징하게 되었고 꽃이 피는 시기에 동강을 찾는 이들에게 곱디고운 얼굴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보랏빛이 신비로운 동강할미꽃_정선군청 제공
귤암리 동강할미꽃 서식지는 앞에 표시도 되어 있고 꽃을 훼손하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주변에 붙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꽃을 꺾거나 묵은 줄기를 뜯는 등의 행위를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동강할미꽃은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한 뿌리에서 첫 싹이 돋아 첫해에는 꽃이 한 송이, 다음 해에는 두 송이
가 피고 차츰 꽃송이가 늘어나 풍성한 꽃 무더기를 보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린다. 보라색 꽃이 많고 분홍색,
자주색, 흰색 꽃도 있다. 흙이 거의 없는 바위 틈 사이를 비집고 나와 솜털 가득한 꽃봉오리를 펼치는 모습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감동을 준다.
귤암리에 있는 동강할미꽃 서식지를 찾은 사람들
바위 절벽에서 동강할미꽃을 찾다 보면 초록색 가느다란 잎사귀 끝에 하얀 꽃이 맺힌 식물을 만날 때가 있다. 줄기가 황새다리를 닮아서 정선 황새 풀이라고 부르는 동강 고랭이다. 동강할미꽃과 같은 서식지에서 자라서 동강 할배라고도 한다. 묵은 잎이 아래로 축 처진 모습이 할아버지 수염 같다. 독특하게도 동강 고랭이는 암수가 따로 있는데 암꽃은 흰색, 수꽃은 누런색으로 핀다.
동강할미꽃과 같은 서식지에서 자라는 동강 고랭이
동강할미꽃과 동강 고랭이를 실컷 봤다면 다시 동강생태체험학습장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동강을 따라 봄
햇살을 즐기며 걷는 길은 마음속까지 강물처럼 청량해지는 기분이다. 동강의 이모저모를 좀 더 보고 싶다면
동강 드라이브에 나서자. 강변도로가 광하리, 귤암리, 가수리, 운치리까지 이어진다. 내내 동강을 끼고 달리는 덕분에 눈이 호강하는 구간이다.
여행 정보
동강생태체험전시관
- 주소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동강로 2908
- 문의 : 033-560-3470
- 홈페이지 : https://www.jeongseon.go.kr/tour
동강 탐방안내소 (광하 탐방안내소)
- 주소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 동강로 3043
- 문의 : 1544-9053 (정선군 종합관광안내소)
여행 팁
- 동강할미꽃이 피는 시기는 3월 중순경부터 4월 중순이다. 3월 마지막 주말이나 4월 첫 주말에 찾는 게 꽃을 볼 확률이 높다. 꽃 사진을 촬영할 때 꽃이나 주변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차량은 동강생태
체험학습장에 주차해 두고 동강 풍광을 감상하며 동강할미꽃 서식지까지 도보로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글 : 여행작가 김숙현
사진 : 한국관광공사, 정선군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