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토)는 오전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날씨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우리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새벽에 출발해 '대암산 용늪' 탐방안내소에 도착했다.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까지 갔는데, 가보니 그곳은 휴전선 바로 아래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용늪'을 탐방하기 위해서 갔다.
워낙 전방지역이고, 생태보전지역이라 사전에 탐방신청이 필수였다.
개인적으로는 입산이 금지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동일한 시간대에 탐방신청을 했던 낯선 사람들과 함께 저마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 채 출발했다.
점점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대암산 '용늪'은, '용이 승천하다가 잠시 쉬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그만큼 고지대(1280 M)에 위치한 독특한 식생이자 생태환경이었다.
연평균 기온이 4.5도였다.
그런 낮은 기온 때문에 수증기가 증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시사철 물이 고여 있는 '고지대 평탄 습지'였다.
1973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우포늪'과 함께 '람사르 습지'로 등재되었다.
길이 275 미터, 폭 210미터 정도의 타원형 평탄 습지인데 온갖 동,식물들의 보고였다.
그곳엔 252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263종의 곤충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천혜의 구중심처였다.
맑은 날도 있지만 연중 6-7할 이상은 안개나 운무로 인해 시계가 제약을 받고 있었다.
한마디로 높고 깊은 심산의 늪지였다.
나는 지금까지 '우포늪'을 두 번 탐방해 보았다.
첫번째는 혼자서 했고, 두번째는 아내와 둘이서 갔다.
탐방할 때마가 해당 계절과 그곳만의 독특한 풍광이 달랐고, 그로 인한 감동의 차이와 깊이가 상이했다.
그런데 이번 '용늪'은 고산지대에 그것도 산정 부근에 형성된 대자연의 기막힌 걸작이었다.
그리고 반경 수 킬로 미터 이내에 민가나 군부대 등 인간의 족적이 거의 없는 완벽한 산간 오지였다.
학술적, 연구적, 보존적, 자연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큰 곳임을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용늪' 탐방을 마치고 하산길에 드디어 비가 그쳤다.
비탈진 산길이 빗물을 흠뻑 머금고 있어 몇 번씩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용늪에 대한 감사의 마음, 감동의 전율을 간직한 채 시동을 걸었다.
그때가 오후 2시 45분경이었다.
바로 '인제군 서화면'을 떠나 '화천군 하남면'으로 향했다.
'용화산'을 탐방하기 위함이었다.
이동 시간만 1시간 40분이 걸렸다.
현재 우리 부부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탐방하고 있는데 '용화산'이 96번째였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던가.
'인제군'에 간 만큼 그 옆에 있는 '화천군'에 들르지 않고 귀가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 못가면 차후에 다시 일정을 잡아서 와야 하는데 그러긴 싫었다.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곳까지 거리와 시간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내도 좋다고 했다.
비는 그쳤지만 세상은 짙은 운무에 휩싸여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 암봉과 단애들 사이 사이에 독야청청한 소나무들의 조화에 연방 탄성이 터졌다.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늦은 오후 시간이라 깊고 높은 산 속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싶었다.
거대하고 울창한 무주공산에서 둘만이 호기롭게 트레킹을 이어 갔다.
색다른 감흥으로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어제 담아온 사진 중 몇 장을 소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