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에서 문짝 두 개를 꺼내 왔다. 윗부분과 중간과 아래쪽은 정사각형 모양이고, 문틀에는 동그란 문고리가 달려있다. 정방형 문살이 전통적인 한옥 문짝임을 말해준다. 투명한 큰 유리와 회색 알루미늄으로 만든 신식 문에게 자리를 빼앗기면서 시골집 창고 구석으로 밀려난 신세가 되었다.
옛 물건을 좋아하는 나와 그 문짝이 인연을 맺은 것은 복숭아꽃이 만발할 무렵이었다. 고향 모교에서 열리는 동창회 겸 체육대회에 참석했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이 반갑기도 했지만 짬을 내어 고향 동네로 갔다. 부모님을 잠시 뵙고 돌아올 참이었다. 짧은 시간에도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묵나물과 참깨 등을 챙겨 주겠다며 창고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면서 창고 안에 숨은 듯 서있는 문짝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따라 부산으로 온 문짝은 편안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또 십여 년을 뒷전에서 허허로이 서 있었다. 늙수레한 문짝은 아파트의 현대적인 소품들과 어울려 지내기가 편하지 않았다. 가구나 물건은 나름의 수명이 있어 시기가 지나면 존재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거처할 자리마저 달라졌으니 더욱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뒷방 늙은이 신세가 저런 것일까 싶었다.
어머니는 초가을 햇볕 좋은 날, 문짝을 떼어 한지를 새로 바르곤 했다. 물 한 모금을 문살에 뿜어, 묵은 창호지를 떼어 낼 때면 나와 동생은 어머니의 일손을 돕는다는 생각으로 물 뿜는 장난을 보탰다. 문 크기에 맞게 새 창호지를 재단하고 문틀과 문살에 풀을 골고루 발랐다. 물에 약한 창호지를 문틀 위에 고이 앉히고는 빗자루로 살살 쓸어내렸다. 또 한 번 물을 세세히 뿜으면 가느다란 무지개가 피어났다. 한지와 풀과 햇볕이 어울린 한나절이 지나면 탱탱해진 새 문틀에서 향그스럼한 분 냄새가 피어올랐다.
어머니가 매만져 내는 문짝은 봄. 가을의 모습이 달랐다. 봄을 맞이하는 문에 바르는 창호지는 문짝 크기에 딱 맞았지만, 가을이 되면 문 가장자리에 문풍지를 달았다. 손잡이 옆에는 마른 꽃잎을 넣어 한지를 한 겹 더 붙였다. 멋도 내고 손이 자주 닿는 곳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문에 깃든 어머니의 정성을 알아차리고는 문을 여닫는 손놀림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문짝은 겨울 삭풍을 막느라 삭아 내리고 여름 장맛비를 가리느라 퇴색된다. 식구들이 번갈아 여닫는 충격으로 문살이 휘고 문틀이 부셔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숨 내지 않고 사계절 한해를 맞이하고 보낸다.
주택으로 이사 온 후 한가로운 주말을 맞아, 온갖 풍상을 묵묵히 견뎌낸 문짝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문살에 낀 먼지를 털어내고 부러진 문살은 같은 색실로 묶어 모양을 바로 잡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속내 못지않게 겉모양도 반듯해야 한다. 신언서판도 안에서 풍겨 나오는 품격을 짐작하는 척도가 아닌가?
드나들며 열고, 닫던 문짝을 가리개로 사용하기로 했다. 거실 한쪽에 가리개가 있을 만한 자리를 마련했다. 문 두 짝에 장석을 붙여 160도 각을 만들었다. 미리 준비해 둔 한지를 펼쳤다. 한지와 한지 사이에 적당한 간격으로 꽃을 넣어 말리니 예쁜 꽃지가 되었다. 꽃지는 뒤쪽에 배경으로 붙이고, 국한문 혼용으로 훈민정음이 씌어진 얇은 한지를 적당히 잘라 앞쪽에 붙였다. 물뿌리개가 있지만 어머니처럼 입에 물을 머금고 푸르르 뿌려 보았다.
통로 역할을 하던 문이 가리개가 되어 내 등을 지켜본다. 예로부터 남자들의 처소에 병풍으로 품위를 더 했다면 가리개는 여인의 처소를 포근하고 아늑하게 꾸며준다. 가리개 앞에 남원에서 사 온 개다리소반을 놓았다. 그 위에는 두어 해 쓰다가 시간 내기 어려워 말려둔 붓과 벼루를 놓았다. 소담스레 줄기를 늘어뜨린 스킨다비스도 옆에 두었다.
저무는 햇살을 등으로 맞으며 바라보는 문짝이 내 운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숨 가쁘게 변해가는 세상을 곤두박질치듯 달려왔다. 등에 얹힌 짐은 항상 나의 능력보다 무거웠다. 7종반의 맏며느리, 세 아이의 에미였던 나에게, 나로 살 수 있는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혼 7년 만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 그 사람도 한 줌 흙이 되었을 세월이다. 35년 동안 세 아이의 가리개가 되어, 뒤에서 부는 바람은 등으로 막고, 앞쪽에서 오는 바람은 가슴으로 막았다. 아이들 앞에 나침반을 놓아주고, 걸음걸이 무겁지 않게 박수치며 응원했다. 내 가족의 비바람을 막느라 앞뒤 돌아보지 못한 사이에 60 고개를 넘었다.
가리개 앞에 두 무릎을 포개고 앉았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내 짐이 버거워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심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독단적이기도, 상처주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등에 졌던 짐, 마음을 누르던 짐을 부려놓고, 앞, 뒤, 위, 아래를 돌아보며 살 때가 되었다. 부드러워진 손길로 주변을 보다듬고 다독이며 살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세상 문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산다. 그들의 등 가리개로 산 세월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제 내 등은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쇠락한 문짝이 가리개로 거듭나듯 남은 시간은 ‘나’로 살 수 있기를 바래 본다. 붓털 가다듬어 집안 가득 묵향 풍기며, 가리개에 어울리는 밑그림 같은 나이를 먹고 싶다. 창호지 냄새와 묵향 따라 어머니의 물 뿜어내던 소리가 뒤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