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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에릭 오르세나
이번 주 월요일, 그러니까 6월5일 17시 45분까지, 우리는 정상적인 가족이었다. 엔지니어인 아빠, 영화 스크립터인 엄마,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누나, 그리고 나. 내이름은 빅토르고 언제나 리복 배틀그라운드를 신고 다닌다. 리복 배틀그라운드는 에어펌프 시스템을 갖춰 맘대로 공기를 부풀릴 수 있는 ‘죽이는’ 운동화다.
조심! 나는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말했지,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우리 아빠는 일을 너무나 많이 하는 반면, 엄마는 일을 별로 하지 않는다.(여러분들도 영화산업의 위기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누나 아폴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냥 누나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내 농구화가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집안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면 나는 신발의 붉은색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운동화의 밑창이 부풀어올라 내 발바닥을 감싼다. 꼭맞는 신발을 신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의 비결이다. 신데렐라도 내 말에는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의 연인, 나의 농구화가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이때부터다. 내 농구화의 펌프 시스템은 나에게 너무도 행복한 습관을 선사했다.
이번 월요일, 모든 것이 시작된 그날에, 나는 샤를르 드골 공항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드문 일이긴 한데, 엄마는 이번에는 제대로 된 영화에서 일하기로 계약을 했던 것이다. 8주 동안 모로코와 모리타니(아프리카 대륙 북서부에 있는 나라-옮긴이)그리고 세네갈 등지에서 우편배달 항공기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해야 했다. 그 비행기들은 60년도 전에 벼룩처럼 이곳저곳을 튀어다니며 편지를 배달한 것이다.
엄마 없이 8주나 보내다니!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승객들이 나오는 일은 더뎌졌다. 엄마는 햇볕에 검게 그을렀을가? 아프리카에서 무슨 선물을 가져왔을까? 혹시 제라르 드파르디유같이 유명한 배우와 함게 나타나는 것 아닐까? 아내가 아프리카에서 제라르 드파르디유 같은 배우와 함게 돌아오면 남편들은 질투를 할까. 아니면 아부를 할까?
아빠는 예외적으로 잠시 짬을 냈다. 그러나 일 중독이란 중병은 갑자기 완치되는 것은 아니어서, 쉴 새 없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 하나가 아빠를 공원 직원으로 잘못알고 싱가포르에서 오는 비행기가 얼마나 늦어지는지. 또 프랑크푸르트와 도쿄 간의 비행기가 취소되었는지를 묻기까지 했다. 생각해 보라. 아빠가 얼마나 열 받았을지를, 게다가 아빠는, 약간 귀가 먹어서 소리르 질러야만 알아듣는 영국인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누나는 빌어먹을 성적표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마치 8주 동안이나 제라르 드파르디유와 말을 트면서 지낸 엄마가, 문법 시험에서 10점 만점에 7점을, 일기 시험에서 10점 만점에 10점을 기록하고 있는 그까짓 성적표에 크나큰 관심을 갖기나 할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맘대로 움직일 수만 있었다면, 이런 치사한 짓거리, 결국엔 나로 하여금 수학 시험에 끔찍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파렴치한 행동에 대해 응분의 복수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신고 있는 새 가죽 신발은 조금만 움직여도 발이 너무 아파 소리를 지를 지경이었다. 농구화를 신고서 엄마를 맞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전화는? 정신없이 전화를 받으면서 기다리는 건 괜찮나?
바로 그때 엄마가 나타났다.
먼저 엄마를 본 사람은 아빠였다. 전화중독자에다가 일 중독자인 겉모습과 달리 아빠는 엄마를 정말 사랑한다. 엄마를 보자마자 아빠는 오른 손을 뻗어 가리켰다.
“저기 봐라. 엄마가 자동보도 쪽으로 오고 있네. 세상에, 완전히 까맣게 탔잖아!”
아빠는 전화를 끊는 것도 까먹은 채 말했다. 아빠의 영국인 사장님은 전화기 안에서 계속 소리를 질러 댔다. 하지만 아빠는 듣지 못했다. 아빠는 그저 더듬거리며 ‘그런데 …… 그런데 ……’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프리카 미인이 되어서 온 엄마 때문에 아빠가 갑자기 말더듬이가 되어 버렸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경을 썼음에도 나는 먼 게 잘 안 보인다. 게다가 유리참 안은 반사되는 빛 때문에 보기가 더 힘들다. 샤를르 드골 공항의 수하물 코너는 마치 수족관처럼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엄마가 세관을 지나서 나올 때야 비로소 알아보았다. 아빠와 누나는 이미 엄마가 제라르 드파르디유와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러니, 엄마가 양 옆에 흑인 아이 둘을 끼고서, 한껏 미소를 지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두 아이는 각각 엄마의 한쪽 손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마르게리트는 너랑 동갑이란다. 빅토르, 또 바바카르는 5학년이고, 얘네들 부모님은 오시시 못했어. 대신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셨지, 그리고 나도 너희들에게 애들을 부탁한다. 쌍둥이 형제들이라 생각하고, 지내렴 올해 말가지 아니 어쩌면 좀더 오래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될 것야.”
그리고서야, 정말 그러고 나서야. 엄마는 아빠를 껴안았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았다. 마르게리트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잼 니얌?”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만 (즉, 넌 마음이 편하냐?) 그당시, 그러니까 6월 5일 17시 45분에, 오로지 영화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만을 기다리던 나는 이 월로프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더욱이 앞으로 우리 네 형제에게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갑자기 사람도 피부색도 두 배로 늘어난 이 괴상한 가족에게 말이다.
그때부터 엉망진창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이틀 전에 외곽 순환도리에서 차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철을 타고 가야만 했다. 첫 번째 장애물이 등장했다. 자동으로 내려가서 마지막에는 계단이 사라져버리는 에스컬레이터가 그것이었다. 두 촌놈들은 자기들 발도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하냐면 고집을 부렸다. 엄마는 에스컬레이터가 그렇게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는데 마침내 성공했지만, 그러는 동안 우리 뒤로는 사람들이 한참 밀려 있었다. 무슨 창피람! 다행히도 내 친구들이 거기 없었으니 망정이지, 특히 시모네트가 없어서 정말 당행이었다. 플랫폼에 서자 아버지는 마침내 온전한 말 몇 마디를 했다.
“서둘러라. 열차가 들어온다!”
열차가 들어오자 마르게이크와 바바카르는 두 귀를 막았다. 나는 다시 한번 촌놈들이 고집을 피울 것이라 생학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열차에 올라탔다.
사나흘 정도, 탈 많은 적응 기간(시장에서 쇼핑 카트로 경주를 벌이기도 하고, 전열대 위에 넘어지기도 하는 등 숱한 사고들로 얼룩진 그 기간)이 지난 뒤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그래서 나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리게 되었다. 이 상황을 이용해서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리자티 수녀님, 즉 우리 학교의 교장 선생님께 복수를 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이 뜻하지 않게 도와주신 셈이 됐다.
8일 목요일, 운명의 날에 나는 두 친구를 처음으로 학교에 데리고 갔다. 학교에 도착하자 마르게리트는 내 손을 꼭 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신발의 펌프에 바람을 조금 넣은 뒤, 새로 남매가 된 마르게리트를 데리고 지옥의 문 앞에 섰다!
주저하면서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리자티 선생님의 목소리에 비하면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소프라노 가수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마르게리트를 앞세우고 용기를 내서 들어갔다. 괴물이 우리 코앞에 있었다. 선생님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우리를 똑바로 쳐다봤다. 침착해야만 했다.
“교장 선생님, 여기 제 쌍둥이 남매를 소개할게요 …….”
마귀할멈은 이 엉뚱한 장난에 노발대발할 게 분명하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선생님의 호통을 기다렸다. 물론 더 기다려지는 것, 사정을 듣고 난 뒤 어쩔 줄 몰라 하며 내게 사과하는 것이지만!
“알고 있단다. 너희 부모님께서 방금 전화를 하셨더구나. 오전 중으로 등록을 하러 오실 거야, 새 친구는 환영한다.”
웬 친절함이람! 교장 선생님은 분명히 엄마의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고 싶어서 저러시는 거다. 거기서 제라르 드파르디유를 만나고 싶으니까…….
나는 결국 장난을 치려다 오히려 그 장난에 걸려든 셈이 되었다. 여전히 마르게리트의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운동장에서는 친구들이 휘파람을 불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야! 새 여자 친구냐?”
“그래, 마르게리트라고 해.”
나는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이 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시모네트가 다가오는 걸 미쳐보지 못했다. 시모네트는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이글거리는 두 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달래주어야만 했다.
“걱정하지 마, 쌍둥이 남매야.”
하지만,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시모네트의 손이 내 따귀를 때렸다. 별이 번쩍했다.
학교가 끝나자 바바카르아 아폴린이 교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르게리트와 나는 바바카르와 아폴린의 하루는 어땠는지 너무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바바카르와 아폴린에게 다가가려는데, 밥맛없는 안경잡이가 가스통이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여러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반에서 일등만 하고, 자기한테는 세상 모든 게 다 허락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녀석 말이다.
“야, 빅! 너 노예를 학교에 데리고 왔다면서? 게다가 네 작문 숙제를 검둥이한테 하게 했다니! 네가 무슨 공화국 대통령이라도 되냐?”
잘난 척만하는 이 밥맛없는 녀석은 게다가 인종차별주의자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내 안에서 박애정신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그래서 녀석의 버릇을 고쳐놓을 태세를 하고 있는데 ……. 손가락 하나가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르게리트였다.
“너, 나를 그렇게 취급하지 마!”
아폴린과 바바카르도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하필 그때 우리 부모님이 막 도착하신 거다. 가스통느 손간 백인 칼 루이스로 변했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결국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늘 이런 식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매년 2월이면,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산에 간다. 이번에는 영국인 사장님도 방해하지 못했다. 내 쌍둥이 형제들은 난생 처음 보는 것들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친구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밭, 발밑에 뽀드득 밟히는 눈, 빨갛게 얼어붙은 손, 바바카르가 부드러운 눈밭에 먼저 뛰어들었다. 그제야 눈을 뒤집어써서 하얘진 바바카르가 아폴린과 한형제로 보였다.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흘째 되던 날 갑자기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가 우리를 깨웠다. 아침 7시였다. 우편집중국의 책임자였다. 그는 상당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간밤에 우편물들이 죄다 적어서 망가지고 더러워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왜 왔는지 이해하는 데 반 시간이 넘게 걸렸다. 우리의 쌍둥이 남매들이 말도 하지 않고 세네갈에 있는 자기 가족들한테 선물을 보낸 것이다. 잔뜩 뭉친 눈 뭉치가 든 선물 상자를 말이다. 부모님은 그날 하루 종일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정신없으셨다. 그러나 인상을 조금 쓴 것 말고는 누구도 마르게르트와 바바카를를 탓하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와 기자들의 마이크 소리에 나는 회상에서 깨어났다. 나는 지금 엘리제 궁 계단에 서서 내 세네갈인 형제 칸테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꼭 맞는 구두를 신고서.
경찰 오토바이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리무진이 도착했다. 세네갈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붉은 카펫 위로 걸음을 뗀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 그를 맞이 한다. 손은 따뜻하다. 칸테 대통령이 나에게 선물 상자를 내민다.
“빅토르, 네 리복 운동화는 이제 너무 작아.”
바바카르는 예전과 똑같은 눈빛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