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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세를 표현한 말들
@ 고대 티벳인
바르도(bardo): 한 상황의 완성과 다른 상황의 시작 사이에 걸쳐있는<과도기> 또는<틈>을 뜻하는 티베트어. (죽음에서 환생 사이의 중간 단계) bar; 사이. do; 매달린, 던져진. 죽는 순간에서 다음 삶을 받기까지의 기간을 일컫는다. 보 통 49일 동안 지내게 된다고 한다.)
@ 고대 이집트인
아멘티: 영혼이 다시 새로운 육체에 들어가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기까지 행 복하게 지내는 곳.
@ 일본의 오끼나와
구쇼(後生): 육체를 떠난 영혼이 이 세상으로 돌아오기 전에 사는 곳.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안제아: 죽어서부터 다음 태어나기 전까지 사는 지상 거처.
@ 고대 헤브라이인
파르다쉬: 영혼이 다음 삶을 위한 가르침을 받으며 머무는 곳.
@ 불교
중유(中有): 사유(四有)의 하나.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이르며, 이 동안에 다음 삶에서의 과보(果報)가 결정된다고 한다. 또는 중음(中陰).
@ 로마 카톨릭
연옥(煉獄): 죽은 사람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남은 죄를 씻기 위하여 불로써 단련 받는 곳 등.
※ 중간세란 대체적으로 빛과 환희, 사랑, 행복, 평화가 지배하는 곳이고, 이미 타개한 가족․친구․지도자․안내인의 안내를 받아, 계획자․상담자․권위자․심판관 등과 만나서, 지나온 생들을 회고하고, 조언을 듣고, 다음 인생의 계획을 세워서 이 세상으로의 귀환을 준비하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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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인용되는 이행(移行)의 원형인 ‘터널 체험’은, 이 세상을 떠날 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휘튼 박사의 피험자들은, 아래쪽에 누운 자기 육체를 본 뒤에 긴 원통 모양의 통로로 빠르게 끌려 들어갔다고 되풀이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육체를 떠났고, 남겨진 친척과 친구를 달래고 안심시키는 일이 이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불가사의하고 멋진 체험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은 곧 사라져 버린다. 관(管) 또는 터널은 내세로 통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행 도중 ‘안내인들’ 을 만나 중간세로 이끌려 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혼자서 여행을 계속해 마지막에 낯선 사람들의 무리와 합류한다고 한다. 바르도에 새로 도착한 사람들을 최종적으로 맞이하는 사람(이미 타개한 집안사람이나 친구, 지도자. 안내인 등으로 지금까지 자기가 맡은 역할의 생활을 줄곧 지켜본 사람)이 앞길을 비추기 위해 횃불을 들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비물질적인 인상이 어떻게 상징으로 옮겨지는가가 이 횃불 든 모습에 잘 나타난다. 중간세는 그 본질상 ‘장소’가 아니며 횃불 같은 이 세상의 도구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사고(思考), 곧 무의식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뀐 사고뿐이다. 작가 스튜어트 C. 이스턴은 중간세 상태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중간세는 하늘 위나 다른 어떤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내지 유형의 세계와 관련되는 모든 것을 완전히 잊어버림으로써만 상상할 수 있는 존재의 상태라고 생각하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차원을 지각하게 된다면 그 추상적 요소는 현재의 삶이나 다른 삶에서 알게 된 상징을 써서 이미지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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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빛과 압도적인 광명이 중간세에 들어갔을 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우주의식이라는 바다같이 넓은 체험은 이 빛을 느끼는 작용일 것이다. 이 세상의 어떤 행복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은 사람 모두를 삼켜버리는 이 순수한 황홀감에 필적하지 못한다. 존재하는 것은 단지 ‘사랑’이 전부이다. 영혼이 나누어지는 일 없이 하나인 존재로 다시 흡수되어 갈 때, 강렬한 황홀감이 밀려와 두렵고 부정적인 것은 사라져 버린다. “죽음의 단계를 넘어서면 황홀해 지면서 자기 육신이 완전히 변해 버렸음을 느낍니다. 내 몸은 방에 꽉 차도록 커지고, 지금까지 느껴본 적도 없는 무한한 행복감이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이렇게 느끼면서, 자신이 사실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존재하며 우주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을 완전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의미가 있고, 무엇이든 완전히 옳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 합니다. 평상 의식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껴안는 그 사랑과 그 지식 그 안도감을 뒤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분이 우울하고 특히 삶이 싫어졌을 때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죽음이 그 멋진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까지는 죽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젠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어느 여성 사회사업가 -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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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황홀감, 무섭도록 눈부신 빛, 나는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신체가 아니라 그림자 신체인 아스트랄 체(신지학 용어로 유체·성기 체라고도 한다. 보통 육체와 겹쳐 있는데, 잠잘 때나 최면 상태에서는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초감각적 실체이다. 스토아파· 신플라톤파· 파라겔 수스 등에 의해 그 존재가 옛날부터 주장되어 왔다)를 가지고 하늘에 떠 있습니다. 땅도 하늘도 없고 경계 따위는 없었습니다. 무엇이든 훤히 다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생각을 전달하고 싶으면 말을 하거나 듣지 않아도 뜻이 통했습니다.”
-어느 체면피험자의 말-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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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쁘고 심원한 계시의 내용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아마도 그 사람의 경험· 의식· 기대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기쁨과 평화의 느낌을 발산하는 빛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고 느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지개의 일곱 빛깔마저도 무색케 하는 휘황찬란한 색체를 보았다고 한다. 또한 자기가 생애를 바쳐 추구해 왔고 흥미를 느낀 대상과 직접 관련된 계시의 형태로 깨달음을 얻는 사람도 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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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 퇴돌은, 바르도에 사는 사람이 스스로 마음에 생각하고 있는 대로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낸다고 거듭 말하고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이미지가 죽은 다음에 우리의 주위 세계로서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그려진 모든 것이 사후 영혼 앞에 대파노라마로서 나타난다.”고 그는 말한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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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피와 살의 신체를 지니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떠한 소리와 빛깔과 광선도 너를 괴롭힐 수 없고, 너는 죽을 수도 없다.····이것이 바르도 상태임을 알라.
-바르도 퇴돌(티벳 사자의 서)-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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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에서는 시간의 경과나 삼차원적 감각이 완전히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이 세상 관점에서 보면 논리도 없고 질서도 시간의 경과도 없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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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는, 우주와 일체가 되기 위해서 사고 과정을 정지해야만 한다. 명상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중간세에서는, 자기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위해 우선 생각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육체를 떠나면서부터 삶은 무의식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며, 중간세에서는, 생각한다는 행위를 통해서라야 존재라는 끝없이 퍼져있는 구름 속에서 한 조각구름의 끄트머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바로 중간세 상태이다. 거기에는 사고가 개입되지 않는 존재의 체험이란 없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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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세로의 퇴행최면 여행
“당신이 마사가 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시오.” 그러자 그녀의 표정은 쉴 새 없이 변하여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듯했고, 입술은 그 표정과 함께 희미하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눈을 끔벅이기 시작했다. 말을 찾아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입술을 계속 꿈틀거리다가 드디어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처럼 억양 없는 어조로 천천히 힘들여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하늘……위에 있습니다……농장의 집과 헛간이 보입니다……지금은 이른……아침입니다. 태양은……막 떠오르기 시작해, ……추수가 끝나……불에 탄 들판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있습니다.” 박사는 다시 “당신은 하늘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태어……나기를……기다리고……있습니다.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머니는 우물가에……있습니다. 양동이를 채우는데……아주 힘들어……힘들어 합니다.” “왜 힘들어 합니까?” “내 몸이……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어머니께 조심하라고……조심하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당신의 이름은?” “내겐……아직……이름이……없습니다.”
- 조엘L. 휘튼․ 조 피셔《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