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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무벌
월척시즌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입학시즌, 졸업시즌, 결혼시즌. 여행시즌, 사랑시즌, 무슨 무슨 시즌, 다 들어봤지만 월척시즌이란 말은 없다.
월척시즌이란 말을 듣자 도치씨는 숨이 막히고 가슴이 뛰어 터질 지경이었다. 우아영이나 혜림을 만났을 때도 이만큼 뛰지 않았다.
밤 10시37분.
시간이 촉박하다.
어서 이 초소를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잡혀 놓고 가라면 한쪽 팔이라도 내놓고 가고 싶었다. 아니지, 팔이 없으면 월척 끄집어낼 때 지장이 있을 테니 팔은 아니다. 월척이 한두 마리라야지. 빨래판이나 도마만한 월척을 상상하자 도치씨는 차라리 불알을 떼어 놓고 가라면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초소장은 얼른 일행을 보내 줄 기색이 아니다.
조바심 때문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었다.
도치씨의 이런 조바심을 부채질하는 말을 초소장 옆에 서 있던 병장이 눈치 없이 말했다.
“사건 전날 이북초교 선생님이 두 시간에 월척21마리 잡았다고 소문나면서 그날 쑥대밭이 됐어요.”
무심결에 한 병장의 말이 도치씨 귀엔 정확히 들어오지 않았다. 병장은 간첩의 공격으로 입원한 대원의 피습사건을 말함인데 도치씨 귀엔 그 사건이 월척21수 노획한 사건으로 접수되었다.
도치씨는 아시다시피 이력이 날정도로 무수한 월척을 한 베테랑이다. 곡우도 지나지 않았는데 메기나 잡으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월척이라면 두 손가락을 세 번 꼽아야 할 정도다.
도치씨는 그렇게 많은 월척을 했는데도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매사 반복되면 세상에 질리지 않는 것이 어디 있을까?
보는 것도 질리고 맡는 것도 질리고.
연애하는 것도 질리고 그리워하는 것도 질리고.
이별하는 것도 질리고 우는 것도 질리면.
먹는 것도 질리고 사는 것도 질리는데.
세상에서 질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드뇨? 그렇게 묻는다면 도치씨는 단연 이렇게 말할 것이 틀림없다.
“내 인생에서 질리지 않는 것은 여자 낚는 것과 돈쓰는 것과 물고기 끌어내는 것인데, 그 중에 참으로 질리지 않는 것은 월척 끌어내는 것이다. 여자야 마음만 먹으면 낚고, 돈이야 벌면 되지만 월척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꼬신다고 오는 것도 아니다. 월척은 축복 받아야 가능한 것이니까.”
도치씨는 입이 바스락 타 들어갔다.
수준이 다르긴 하지만 월척이란 말에 흔들린 것은 이감독 그리고 우아영과 오진숙도 마찬가지다.
우아영이나 오진숙은 아직 월척 맛을 보지 않아 조금 덜했지만, 쌈빡한 모델을 걸어 놓고 월척 하러 가서 산으로 뛰었던 이감독도 흥분했다. 그때 월척하고 도치씨에게 상납한 우아영도 곁다리 오진숙도 함께 탄성을 질렀다.
“네에에? 워어얼척을 21수나요?”
초소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월척이 그렇게 좋습니까?”
“네에!”
“여러분은 월척이 애인보다 더 좋습니까?”
“아니오!”
“아니에요!”
분명히 이렇게 말해야하는 것이 순리인데 아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네’하고 대답하는 사람도 없었다. 서로 눈치 보느라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초소장이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분들도 확실히 낚시메니아들이시군요. 허지만 여러분은 오늘 낚시 하실 수 없습니다. 검문에 불응하고 튀지만 않았어도 봐드리려고 했는데.”
“네에? 어떡해? 난 몰라!”
초소장의 농기 어린 말에 네 사람은 너무 실망해 탈진 직전으로 침몰했다.
순식간에 목에 힘이 빠진 도치씨가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초소장이 너무 실망해서 충격 받은 네 사람에게 말했다.
“오늘밤, 여러분은 여러분이 놀라신 것보다 우리가 더 놀랐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포지리지서에 낚시터진입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마터면 사고때릴뻔 했기 때문입니다.”
“네에? 무슨 말이에요? 우린 사고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낚시 오셨다는 것을 우리가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미한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지 우리가 방심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겠습니까? 만약 사고가 났다면 우리는 또 한동안 비상근무해야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비상근무! 초소에서의 비상근무를 여러분은 정말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그 벌로 여러분을 오늘은 일출까지 억류합니다.”
낙심한 도치씨가 물었다.
“낮에도 월척이 나오나요?”
초소장이 웃었다.
“제가 용왕님이 아니라 그건 알 수 없구요.”
“아! 미치겠네!”
도치씨가 한숨을 팍 쉬는 모습을 보며 초소장이 말했다.
“여러분이 검문 중 튀지만 않았더라도 정상 참작했겠지만 억류하는 저희도 안타깝습니다.”
초소장의 말에 세 사람은 이감독을 집중해서 쏘아봤다. 오진숙이 이감독에게 말했다.
“이건 감독님 때문에 일어난 불행이니까 감독님이 전적으로 책임지세요.”
이감독이 난처해서 어쩔 줄 몰라 쩔쩔 맸다. 이감독의 난처한 입장에 초소장이 퇴로를 만들어 줬다.
“게다가! 차이나타운 투 라는 분은 조폭일지 모르니 전과를 조회해봐야 합니다.”
오진숙이 화들짝 놀랐다.
“투가 아니고 뚜 라니니까요.”
우아영이 오진숙의 말에 발짝 했다.
“얘! 니 입으로 투 라했잖니? 우리 둘이라면서.”
“아유! 언닌? 그때가 언제야? 투 가 굳어버리면 뚜 맞잖아? 아영언니가 뚜잖아?”
두 여자의 오리발을 쳐다보는 초소장의 얼굴에 억지로 참는 웃음이 찌그러져 있었다.
도치씨가 초소장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초소안의 모든 시선이 도치씨에게 모아졌다.
“다른 게 아니고. 여기서 말썽을 안 피운 사람은 나뿐이잖아요?”
도치씨의 말에 초소장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사장님만 빼 달라 이거네요?”
도치씨의 눈이 빤짝했다.
“그럼요. 바로그겁니다. 무전무식無錢無食 무죄무벌無罪無罰 원칙에 입각해서요.”
초소장이 말했다.
“돈 없는 놈은 못 먹고, 죄 없는 놈은 벌 안 받는다?”
“네! 세상사는 이치죠.”
“아하 혼자 살겠다? 정말 기막힌 팔자성어입니다. 빛나는 의리네요. 허지만요.”
“허지만요?”
“허지만 물에 빠지면 안 젖는 사람 있나요? 비행기 추락하는데 죄 없다고 살아나요? 허지만.”
“허지만?”
초소장의 말끝에 달린 주석 ‘허지만’에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초소장을 빤히 쳐다봤다. 희망이 보였다. 눈앞에서 월척이 어른거렸다. 그럼 그렇지.
그러나 초소장의 말에 도치씨는 여름날 뙤약볕에 타들어가는 나팔꽃이 되고 말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세분들의 드러난 혐의는 별로 문제가 안 됩니다. 이미 신원조회가 끝났으니까요. 그렇지만 사장님의 이름 때문에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도치씨가 버럭 소리쳤다.
“왜요?”
“물론 한자로는 좋은 이름이겠지만 왠지 어감이 도둑놈이나 조폭똘마니 같아서 전과조회 다시 해봐야겠습니다.”
초소장의 말에 성질 급한 도치씨는 금세 사기를 잃었다. 그믐밤이지만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목구멍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월척이 꼬리로 도치씨의 눈탱이를 후려치며 공중으로 비상하는 것 같았다. 아찔했다.
도치씨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에 이감독이 부채질했다.
“으흐흐흐, 으흐흐흐흐!”
첫댓글 도치가 무벌무죄 한것으로 생각하고 실오라기 만한 희망을 갖어 봤지만
그것마저 수프로 돌아 갔군요.,
언제니 부지른하신 젠틀맨님
오늘은 황사가 장난 아닙니다
조심하시고 행복 즐거움 다하는 날되세요
무죄 무벌 좋을려다 버렸군요..
낚시광 도치의 일행 마음을 해아려 보내요..
ㅎㅎㅎㅎ
고소하죠?
저도 고소합니다
제 성깔이 못되서 그런가봐요...남 잘못되면 왜 그리 좋은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행복한 날되세요
낚시하다 큰 피해를 보네요
초소장 월척이야기로 몸이 잔득 달아오른 도치.
그러나 안타깝게 낚시는 할수없게 되었네요.
그러게요....ㅋ
오늘은 황사가 장난 아니었는데 괜찮았는지요?
편한 밤되세요
태안반도 초소 소장의 주의 사항듣고,
오늘의 낚시이야기는 끝이 나는듯 하군요.
제미있게 잘보았슴니다.
ㅎ
아직요.
첩첩 산중이라잖아요? 산아래님.
고은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