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견인의 교리를 반드시 바르게 알아야만 할까요?
서울에 큰믿음교회를 개척하기 전 저는 울산에서 약 10년 동안 작은 개척교회를 했습니다. 울산은 고신 교단이 많습니다. 고신은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큰 교단이 아닙니다. 그러나 울산과 경상도 지역에 주로 몰려 있다 보니 그 지역에서는 고신 교단들의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고신이 가장 좋은 교단인 줄 압니다. 물론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을 비롯해서 고신의 장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고신은 다분히 교리적이고 가장 종교적인 교단입니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교단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고신이 강세인 지역의 낮은 복음화율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신 교단이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이런 착각은 고신뿐 아니라 각 교단들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장로교가 심합니다. 우리나라는 장로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신자들도 교회를 선택할 때 장로교인지 아닌지를 묻곤 합니다. 심지어는 이단시비 때 장로교의 교리와 전통이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마구 이단을 양산해냅니다. 우리 교회가 그 대표적인 피해자이지요. 장로교만 개신교가 아니건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저는 고신 교단에서 신학을 한 후 우리 교회 목회자가 된 박민우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고신 교단이 영남에서는 다수지만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소수인 것처럼, 장로교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다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소수라는 것입니다.
※ 2014년 세계 선교 통계
| 이슬람교 | 16.6억 | 23.0% | 중국 민간신앙 | 4.3억 | 5.9% |
| 천주교 | 12.2억 | 17.0% | 독립교회 | 4.1억 | 5.6% |
| 힌두교 | 10,0억 | 13.7% | 정교회 | 2.8억 | 3.8% |
| 개신교 | 5.4억 | 7.5% | 민족교회 | 2.5억 | 3.4% |
| 불교 | 5.1억 | 7.1% | 기타 | 9.5억 | 13.0% |
이처럼 전 세계 개신교인의 수는 5억 4천만 명입니다. 이 중 장로교 신자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최소한 3-4억은 될 것 같지요.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 세계 개신교 교단별 통계
| 성공회 | 9200만 | 1.3% | 장로교 | 1800만 | 0.3% |
| 침례교 | 9000만 | 1.3% | 기타 개신교 | 2.6억 | 3.6 |
| 감리교 | 7600만 | 1.1% | | | |
이처럼 겨우 1,800만 명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감리교가 오히려 약 4배나 많은 7,600만 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도에 조사한(10년 주기로 조사하기 때문에 이것이 최신자료입니다.) 종교인구 통계를 보면 기독교인의 수는 861만 6,438명입니다.
※ 한국 종교인구 통계
[일반 국민의 종교 분포(단위:명, 괄호 안은 %, 2005년 기준)]
{전체 인구: 4,704만1,434}
1) 종교 없음: 2,186만5,160 2) 불교: 1,072만6,463(22.8)
3) 기독교: 861만6,438(18.3) 4) 천주교: 514만6,147(10.9)
5) 원불교: 12만9,907(0.3) 6) 유교: 10만4,575(0.2)
7) 증산교: 3만4,550 8) 천도교: 4만5,835
9) 대종교: 3,766
10) 기타종교: 16만3,085
11) 미상: 20만5,508
< 자료: 200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
이 자료에는 없지만,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종교현황'에 의하면 문광부에 등록·미등록한 개신교단은 모두 232곳인데 이 중 180곳(77.5%)이 장로교입니다. 따라서 2005년 통계청이 발표한 개신교인 861만 명 중 장로교인은 약 80%인 689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수치입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얼마나 큽니까? 그런데 미국의 장로교 신자가 285만 명입니다.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됩니다. 그리고 전 세계 장로교 신자가 1,800만 명이므로 그중 3분의 1이 한국에 있는 셈입니다.
그럼 왜 우리나라에만 이렇게 장로교가 많을까요? 그것은 장로교가 개신교의 기준이거나 다 교단보다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19세기 말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했던 교단이 미국 북장로교(서울 전체와 경기도 일부 그리고 경상북도 전체와 충청북도 일부를 담당)와 남장로교(전라남북도와 제주도 전체와 충청남도 일부를 담당), 호주 장로교(경상남도 전체를 담당) 등 주로 장로교 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갑질'이 자주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덩치가 거지고 힘이 생기면 안하무인이 되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갑질'이라는 것을 합니다. 갑질은 유교의 오랜 영향을 받은 한국 사람의 주특기입니다. 그런데 갑질의 대명사는 지금 교도소에 있는 대한항공 부사장이 아닙니다. 바로 장로교고 그중에서도 통합 교단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백석 교단에서 두 해 동안 조사를 받았고, 그때 저의 책과 설교를 듣고 연구한 교수들이 "성경적으로 흠 잡을 데가 없다"는 보고를 총회장에게 올렸습니다. 백석 교단 총회장과 총무가 직접 제게 말한 대로 이단사설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교리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 교단에서 가장 큰 교회의 목사가 교인 하나 옮긴 것에 앙심을 품고 정치적으로 장난하여 제명 출교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최삼경의 주도하에 통합 교단을 비롯한 일부 장로교 교단들이 일절 소명 기회도 주지 않고 거짓으로 매도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왜곡 아니면 거짓말 일색입니다. 제가 실제로 믿거나 가르치는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만 제가 가르친 것이었는데 구원받은 사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진리였습니다. 이것은 이단사설이 아닙니다. 감리교와 성결교를 비롯한 많은 교단들의 정통 교리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저를 정죄하기 위한 첫째나 둘째 이유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이것을 집어넣었습니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갑질 행세를 해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장로교의 세력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장로교뿐 아니라 감리교와 성결교 목회자들조차 그 흐름에 편승하여 줏대도 없이 칼빈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신자들도 그 흐름 때문에 뭣도 모르고 장로교, 장로교 합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덩치는 크지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고 국민들로부터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디 가서 목사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칼빈의 교리를 맹신하지 말고 베뢰아 성도들처럼 성경을 잣대로 분별해야 합니다.
장로교의 교리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성도의 궁극적인 구원' 혹은 '견인의 교리'입니다. 이 교리를 성경대로 바르게 아는 것은 중요한 것을 넘어섯 문자 그대로 사활적으로 중요합니다. 김세윤 교수님은 서울 명동 청어람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행위 없이 믿음으로 구원받거나, 한 번 받은 구원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면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겠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 또 서울 영동교회에서 열린 목회자세미나에서 "한 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윤리란 몇 가지를 하거나 하지 않는 걸로 끝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견인의 교리는 개인이 천국에 가거나 버림받고, 교회가 성별되거나 세속화가 되는 것을 좌우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따라서 저는 견인의 교리에 대한 칼빈과 웨슬리의 주장 중 과연 어느 것이 성경적인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확실하게 증명해드리고자 합니다.
(1) 견인의 교리는 성화가 아니라 복음의 일부입니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면 복음이 능력일 필요가 없습니다. 죄를 이기고 순종하지 않아도 천국에 간다면 복음이 굳이 능력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면 하나님은 행한 대로 심판하는 분이라는 사실도 무의미해집니다. 믿기만 하면 죄를 지어도 천국에는 간다고 하니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진리도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새 언약을 통해 굳이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견인의 교리는 복음 안에 깊이 스며들어가 있는 진리입니다. 복음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복음진리의 일부입니다.
김세윤 교수님이 잘 설명한 대로 구원은 구원의 서정보다는 칭의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은 과거적 칭의인 "의의 선물"(롬 5:17), 현재적 칭의인 "의의 열매"(빌 1:11), 미래적 칭의인 "의의 소망"(갈 5:5)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칭의를 얻었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홍인규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서 6장(특별히 6:12-23)에 근거하여, 많은 학자들은 칭의(justification)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이고 그 뒤에는 성화(sanctification)가 뒤따른다고 생각한다(예. Bruce, Murray). 그러나 성화를 단순히 칭의의 다음 단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칭의와 마찬가지로 성화는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통치 안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주된 관심은, 완전에 이르는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칭의의 단회적 종말론적 구원행위를 항상 새롭게 붙잡는 데 있다. 그렇다면, 성화라는 것은 칭의와 동시에 시작되어 칭의 때 일어난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출을 언제나 새롭게 체험하는 것이다."
이처럼 칭의와 성화 즉 의의 선물과 의의 열매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의의 열매를 맺어야 의의 소망(궁극적인 칭의)에 이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의의 열매가 자동적으로 맺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릇된 선택을 하여 버림받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복음 안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워니 아니라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이 버림받을 수 없다는 오류는 성화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복음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이 보여주듯이, 우리가 복음진리만 바르게 알아도 견인의 교리에 대한 케케묵은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견인의 교리를 여러분에게 밝히 보여드리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