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쭉빵 (CAP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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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인생은 어느 시점부터 고정되어버렸고, 엄마를 구하기에 너무 늦어버렸다는 걸 큰딸들은 대체로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엄마도 그랬지. 쟤 아무것도 못한다며 아무것도 안 시켰잖아. 못 해도 시켜서 가르쳤어야지. 꼭 엄마만 그렇다는게 아니라 진짜 대한민국 엄마들은 봉준호의 <마더>를 세 번씩 봐야해. 엄마랑 아들들 사이가 이상하게 병적이란 말야.
이질감이 들었지만 꾹 눌러삼켰다. 눌러 삼키는 것은 첫째들의 특기였다.
- 정세랑 <재인 재욱 재훈>
내 말 아직 안 끝났잖아. 앉아, 앉아서 들으라고.
도대체 내가 뭘 들어야 하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 김혜진 <딸에 대하여>
나는 가끔 엄마가 딸의 몸무게가 아닌 영혼의 무게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자유로워서 좋았다고 했다. 자유로웠다는 게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그녀가 대뜸, 네가 없었다는 뜻, 이라고 말할까 보아서였다. 그러면 나도 아예 태어나지 않았을 때가 제일 자유로웠다고 응수해야할 것 같았다.
-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그래서 할머니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쁘고 부당하게 대했다는 걸 엄마도 알잖아. 왜 그걸 부정해. 지금 엄마 누구한테 화났어?
엄마랑 좀 그만 싸워라. 설거지하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여자들끼리 신경전 벌이고 그래. 서로서로 양보하고 그래야 가정이 평화롭지.
용서해도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언제까지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겠지만 오늘 같은 순간들이 만들어낸 거리를 좁힐 방법은 없다.
- 최은영 <당신의 평화>
이 집은 정상이 아니야. 엄마 아빠는 정상이 아니야. 나는 여기서 도망쳐야해. 오랫동안 정상인 줄 알았다. 누나가 참아야 하니까. 남자애들은 원래 그런다니까.
애정은 주지 않으면서 고된 일은 첫째에게 떠넘기는 엄마였다.
- 정세랑 < 피프티 피플>
키우는 동안 부모는 두 오빠들과 나를 비교적 동등하게 대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집으로 배달되어오는 요구르트는 늘 3인분이었고, 갈치구이도 공평하게 세 토막씩 접시에 올랐다. 부모는 언제나 오빠들에게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신경을 쓰라고, 더 다정하게 대하고 관심을 기울이라고 주문하곤 했다. 그 말들은 오빠들과 내가 다른 존재임을 확연히 드러냈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게 무슨 차별이냐고, 오히려 너를 위해주는 거였다고 반박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정이현 <언니>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어머니에게서 숨어 살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살아야 해, 라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마치 어머니가 그녀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다는 듯, 그녀가 틈을 보이기만 하면 언제든 그 끔찍한 삶을 전가할 것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살 수는 없다고 변명했던 것이다.
- 정한아 <그랜드 망상 호텔>
이름을 효도 효에 다할 진으로 지은 것부터가 이기적이지 않아? 신생아에게 그런 명령어를 입력하다니 너무하잖아.
띄엄띄엄 돌아갈 때마다 마음이 누그러지기는커녕 거기가 내 집이 아니란 것만 더 확실해졌어.
다 멈추고 내려가기엔 내가 그만큼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어.
- 정세랑 <효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 최은영 <씬짜오 씬짜오>
첫댓글 좋다 잘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