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 "레지나"로 더 유명하신.. 현직변호사 구율화님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입니다.
올해는 제 개인적으로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에 서있는 시점인데,
마음 다 잡기 위해서 다시 읽어봤는데, 역시 좋은 글인 것 같네요...
많은 야구팬들에게는 야구말고도 인생에 중요한 것은 많고 당장 하루하루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야구팬들에게 있어 인생과 같이해온 야구와 야구를 즐기면서 살아온 이야기와 추억들은..
그저 재밌는 시간 때우기, 그깟 공놀이로 폄하하기에는...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런 심정을 글로 잘 표현해주신 것 같아 회원 분들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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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내가 야구를 사랑하게 된 계기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 퍼펙트게임을 눈앞에서 놓치고
쓸쓸히 돌아서는 빙그레 이글스를 본 순간,
야구와 이글스는 내 가슴에 아프게 박혀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쓸쓸한 달밤에는 ‘그때 내가 해태의 팬이 되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난 아마 기어코 이글스 팬이 되었을 것이다. 그게 운명이자 팔자소관이고 사랑이니까…
야구팬이 된 지 올해로 딱 20년. 그간 내 삶의 갈피갈피 어느 순간을 돌아보아도 항상 야구가 존재한다.
학생시절에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의 캐스터가 되겠다며 각 방송사에 시험을 쳤다가 번번이 낙방했고,
그러던 1999년에 나의 이글스가 기적적으로 우승을 했다.
그 순간 잠실야구장의 3루 응원석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어쩌면
나도 사법시험이라는 것에 도전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고,
정말로 세상에 불가능은 없는 것인지 나 또한 기적적으로 합격을 했다.
연수생 시절에는 일산에서 잠실까지 야구를 보러 다녀 ‘아버지가 야구단을 운영하신다’는 소문이 돌았고,
지금은… 나를 한화 이글스 소속의 변호사로 오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다가
각종 시상식, 행사장에 가면 자연스럽게 구단 관계자석에 앉는다.
틈틈이 야구 관전평(주로 자조섞인 욕설)을 쓴 블로그가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져,
2009년부터는 네이버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다.
그러고 보면, 야구는 어느새 내게 있어 취미의 영역을 넘어선 듯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야구로 인해 즐거울 때보다 괴롭고 힘든 순간이 훨씬 더 많다.
심지어 최근 2년간은, 응원팀이 맡아 놓고 꼴찌자리에 붙어 있었으니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다.
어쩌자고 야구는 일주일에 6번씩이나 할까. 어쩌자고 이 팀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그것도 간신히 이기는 것일까.
그나마 에이스 류현진마저 없었더라면 정말로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설 같은 기록을 깨버릴 참이었는지…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단 말인가. 에라, 니들이 응원해라 내가 야구할게.
기타 등등의 자조와 자학의 말들을 수십 번도 더 내뱉다 보면,
대체 내가 왜 이토록 괴로워하면서도 매일같이 야구를 보고 있는지 스스로도 의아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생사에 온전히 기쁨과 환희만을 안겨주는 일이 어디 그리 있으랴.
사랑에도, 성공이나 청춘에도, 어둡고 질곡 같은 면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인생과 참으로 많이 닮아있다.
어차피 돌고 돌아 홈(집)으로 다시 오기 위해 출발하며, 그렇게 루상을 도는 동안 참으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진다.
때로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횡사하기도 하고, 바로 앞에 홈 베이스를 두고도 밟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며,
찬스를 잡지 못하면 바로 위기가 오고, 그 어떤 위기에도 살아날 방도는 항상 마련되어 있다는 것.
이제는 정말 안 되겠구나 싶은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는 것을…
인생의 귀중한 진리를, 나는 야구를 보며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구는, 우리네 인생에 있어 영광 저편의 쓸쓸한 순간과 가장 많이 닮아 있다.
제일 잘 친다는 타자도 10번 중에 7번은 아웃되며, 시즌 우승팀도 4할 가까이는 패배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생 또한 성공하고 환호하는 일보다, 단 한 끝이 부족해서 쓸쓸히 돌아서야 하는 날이 더 많지 않던가.
내 인생에 내가 도전해서 성공한 일들을 승률로 환산해보면 1할2푼5리쯤이나 될까.
그러고 보면 내가 그토록 욕하면서 응원하는 나의 팀도 승률이 나보다는 높다고 생각하니, 한편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살다보면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야구는 내게 삶을 비춰주는 멘토이자 거울이다.
찬스마다 한방 쳐줄 수 있는 대타가 항상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위기마다 철벽 마무리가 준비된 것도 아니며,
때로는 아까 홈런 맞은 그 코스에 또 쳐보라고 집요하게 던지다가 다시 통타당하고 무릎 꿇는 순간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끝은 아니지 않는가.
내일은 내일의 그라운드가 있으며,
이렇게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다 보면 언젠가 승리의 함성을 지르게 될 날도 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난 오늘도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또 매일같이 야구를 본다.
이미 지나가 버린 야구의 추억, 내가 사랑했던 전설 같은 선수들을 되새기며,
그리고 언젠가는 내게도, 내가 사랑하는 팀에게도 영광의 순간이 찾아올 것을 믿는다.
그 유명한 야구 격언대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 말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esteelauder/120141444196
첫댓글 제가 올해 야구에 빠져서 야구에 관련된 책 몇권 봤었는데 "야구생활" 이라는 책에서 이글스팬으로 이 분이 글을 쓰셨는데 넘 재밌고 감동적이게 쓰셨더라구요.......이 분이 변호사 였군요 ......아~~ 더 멋져보이는 듯.........
오..야구생활이라는 책도 있었군요..한번 찾아서 읽어봐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잘치는 타자도 10번중에 7번은 아웃된다...
요즘 조금은 힘든 저에게 힘을 주네요
진짜 잘치는 타자는 덜 아웃되겠지만.ㅋ 말이 의도하는 바는 그게 아니고 진짜 말뜻을 헤아린다면...
네 마음 편하게 도전할 수 있는 글귀인 것 같아요~~
게시판에서 읽었던 어떤 글보다 오랫동안 생각날 거 같습니다. 추천 백만개 누르고 싶지만 ㅋ 추천 꾸욱 누르고 갑니다~
네 저도 어쩌면...평생 기억에 남을 글 같습니다..그래서 어렵고 힙들때마다 찾아볼 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좋은 글입니다~~잘읽었어요ㅎ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멋진 글입니다...뭉클하네요ㅎ
제가 멋진 글 쓰는 재주는 없지만, 멋진 글을 알아보고 소개하는 오지랖(?)은 좀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왠지 기분이 좋네요!!
제 글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같은 글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아 왠지 훈훈하네요~
참고로 이글은 제 입장에서는 롯데에게 20:2로 패한 다음날 읽었던 글이라 더욱 와닿았답니다...
사직롯데는 한화밥이었는데....ㅋ
경기결과 링크 - http://sports.news.naver.com/gameCenter/gameResult.nhn?category=kbo&gameId=20111004HHLT0
레지나님은 저희 큰누나에요// 간만에 카페에서 누나 글 보니까 새롭네요// 블로그에 가끔 등장하는 남동생이 저구요. 야구생활에 누나가 가족이야기를 썼었는데, 저랑 막내누나 얘기는 편집되서ㅠ 제얘기는 안나왔죠ㅠㅠ
오오 레지나님 친동생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와~~가족이 모두 이글스 팬인거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속 등장 인물을 만나다니 엄청 반갑네요^^..........편집 되어서 엄청 속상했겠네요 ㅎㅎ 글 속에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보여서 읽는 내내 훈훈 했는데 ^^
레지나는 세례명 아닌가요??
어린시절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도 좋아했고 겨울에는 농구와 배구에 야구만큼 빠져살았었는데 어느 순간 다른 스포츠는 그냥 재미와 흥미가 떨어져 안보게 되더군요. 근데 이상하게 야구만은 그 흥미와 재미가 사그라들지가 않더란 말이죠. 그게 아마도 인생과 닮았다는 것때문이 아닐까 종종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글이 정말 더 마음에 닿네요.
잘 읽고 갑니다. 정말 좋은 글이네요^^
레지나입니다.카페에 오랜만에 왔는데 제 글을 소개한 게시글을 보니 너무 너무 반갑네요. 뭐라 말씀드릴 수 없을 만큼 감사합니다. 저 글은 대한변협신문에 기고했던 글인데 <변호사의 이색취미 열전> 이라는 코너에... 아니 왜 야구가 이색취미인지 말입니다...TT
그리고 저 위에 내 동생아. 공부는 안하고 여기서 뭣하는 거니 ... 매형이 매일같이 너 걱정한다 이 녀석아...TT
헐 본인이시네요... 우왕... 야구는 원래 따로 떼어놓을수 없는거랍니다. 인생하고.. 야구하면서 공부해야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