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뉴스를 보니 퇴역한 해군함정 한 척과 해경함정 두 척을 남미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 무상으로 양도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우리가 미국에서 받기만 했는데 이젠 우리의 위상이 많이 높아져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 원조를 해 주는 나라가 되었으니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하다.
내가 해군에 있을때만 해도 미국에 함정을 인수하러 가면 2차대전 때 만들었다가 쓰지 않고 그리스만 발라서 매달아 놓았던 함정들을 인수요원들이 가서 그리스 닦아내고 기름철 하고 포만 새로 바꿔 달아 인수해 오곤 했다. 함정을 인수해 올 땐 세관을 거치지 않으므로 '두바리작전'이니 뭐니 하면서 화장품을 기관실이나 갑판 창고에 가득 숨겨 오기도 하였다.
당시 월남전도 진행중이어서 우리 함정이 월남으로 갈 때는 수병들이 라면 등을 싣고 갔고, 어떤 친구는 국산 지포 라이터를 브랜드 없이 가져가서 월남에서 미제라는 가짜 이름만 찍어 다시 한국으로 가져 오면 미제 지포 라이터로 둔갑하여 값이 네 배로 뛰었다고 들었다. 또 어떤 친구는 라이터 돌을 밀수하여 꽤 재미를 보았다는 소문도 들렸다. 군사작전 도중에도 영악한 넘들은 장사를 했고 육군이나 해병대로 파견됐던 군인들은 PX에서 TV를 2대 사서 1대는 자기들 집에까지 운반해 주면 나머지 1대는 운반 수고비로 해군 수병한테 맡겼다. 그랴서 진해가 전국에서 TV 보급률이 제일 놓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네. 콜롬비아에 기증한 함정이 익산함이라고 하니 우리가 해군에 있을 때는 그런 이름을 들어 보지도 못했으니 아마 우리가 해군에서 제대한 다음에 신조했던 함정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 되는가? 아직도 나라에서 부르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생각인데 해군 할아버지라 하지 않겠는가? 각설하고.
17일(현지시간) 주콜롬비아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우리 해군이 콜롬비아에 기증한 퇴역 함정 익산함이 '알미란테 토노함'이라는 새 이름으로 콜롬비아 영해에서 해양작전을 수행하고 있고 한다.바다를 통해 유통되는 마약을 감시하고 단속하는 것이 알미란테 토노함의 주요 임무란다. 1988년 취역한 초계함 익산함은 30여 년간 우리 영해를 지키고 2018년 퇴역한 후 중남미 유일의 6·25 참전국인 콜롬비아에 양도됐다.배가 만들어지기도 13년전에 이미 해군을 떠났으니 그럴만도 하다.
지난해 11월 콜롬비아에 도착한 후 지난달 콜롬비아 북부 카르타헤나 해군기지에서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취역식이 열렸다고 한다. 카르타헤나는 70여 년 전 콜롬비아 참전용사들이 한반도를 향해 출항한 곳이고, 당시 콜롬비아가 파견한 프리깃함 3척 중 1척의 이름이 '토노함'(카피탄 토노)이었단다.
콜롬비아의ㅜ두케 대통령은 취역식에서 알미란테 토노함이 한국과 콜롬비아의 굳건한 동맹을 상징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단다.
해경에서 퇴역한 두 척은 에콰도르에 기증되었다고 한다. 당시 해경은 초창기여서 해군에서 전역한 군인들이 간부로 많이 가기도 하였고 해군 퇴역함정을 해경이 받아서 운항하기도 하였다.
앞에서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콜롬비아는 6.25사변때 우리나라를 도왔던 나라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고 도운 그들의 호의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공업화로 우리가 그들보다 잘살게 되었다고 배은망덕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신뢰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엎지른 물'이 되기 때문에 복구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국가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간 다시 말해서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는 말이다. 즉 죽어서라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는 말인데, 그 유래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군주 위무자에게는 애첩이 있었다. 어느 날 병석에 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 자신이 죽으면 애첩을 재가시키라고 말하였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위독해진 위무자는 자신이 죽으면 애첩도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는 난감했다. 처음에는 시집보내라고 했다가 다시 자신과 함께 묻으라고 유언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고민하던 그는 결국 첩을 살려 주어 다른 곳으로 시집보냈다.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깊어지면 생각이 흐려지기 마련이오. 정신이 맑을 때 아버지가 처음 남긴 유언을 따르는 게 옳다고 생각하오.”
그 뒤, 진나라가 다른 나라(秦)에게 침략당하자 위과는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터로 향했다. 양측이 싸움을 벌일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위과의 군대는 적군의 공격에 몰려 위태로운 처지에 빠져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나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잡아매어 온 들판에 매듭을 만들어 놓았다. 적군들은 말을 타고 공격해 오다 거기에 걸려 넘어져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그 틈을 타, 공격하자 위과는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적의 용맹한 장수 두회도 사로잡았다.
위과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져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에 그 노인이 나타나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친정아버지요. 그대가 첫 번째 유언대로 내 딸을 살려 주어, 그 은혜에 보답했다오.”하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이렇게 하여 죽어서도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곡 갚는다는 의미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