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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존(世尊)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시며, 모태 중에서 중생 제도하기를 마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
그래서 지난주에 1조. <세존이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셨다>. 도솔천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왕궁가에 내리실까.. <모태 중에 중생제도를 마쳤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일까.> 그래서 도솔천이 무엇이고 왕궁가는 무엇이며, 모태중은 무엇이고 중생제도를 마쳤다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사실은 이 자리를 ‘아~ 이거구나~’ 하고 아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여.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여. 그것은.
그 중생제도를 마쳤다는 그 자리를 그대로 관화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이것이 비로소 의두요목인거예요. 이해하실런가 모르겠네.
2. 세존이 탄생하사 천상 천하에 유아 독존(唯我獨尊)이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
<세존이 탄생하사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 하셨다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고 했어. 오직 홀로 존귀하다. 이것과 이따가 할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과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똑같은 소리예요. 이 독존의 자리를 알 때 비로소 ‘아~우리가 나라는 존재가 이 공(空)이구나. 그래서 공(公)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거여. 그래서 이 독존의 자리를 알 때 비로소 이 텅빈 마음에 우주만유 전체가, 시방일가나 나와 둘이 아닌 것을 알게 돼서, 그대로 이 공심(空心)으로 살면서 공심(公心)으로 살지 않을 수 가 없다. 선택이 아니라 이것은 필연인 거예요. 이 자리를 알면 그렇게 되는 거여. 남의 집 일이 아니야.
이 중생은 가짜에 속고 살다가 죽는 거예요. 진짜를 모르니까 가짜에 속고 살다 죽어. 참 불쌍하지. 부처님의 이 은혜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야 이거 가짜다 말이야~ 야! 생사 이거 가짜다~ 부귀빈천 이거 다 가짜다~ 그거 다 변하는 거야, 실체가 없는 거야~ 이걸 알려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그 변화하는 그것이 변하지 않을 걸로 착각하고 그것이 마치 실체인양 온갖 에너지를 거기에 들이고 살아거더라.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바로 일원상 자리여. 그래서 이것이 우리의 수행문이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문인 것입니다. 따로 있는게 아니에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알면 그 독존의 자리가 비로소 공(空)해서 공(公)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얼마나 좋을까요. 응? 먼저 특신급만 되도 아 내가 추구하던, 이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던 재색명리, 돈, 온갖 재미와 어떤 재산 그리고 한갓 허공의 꽃 같은 명예, 그것이 마치 진짜인냥 그것을 향해서 살아가는 그런 삶에서 탁! 벗어날 수 있다 이 말이여. 얼마나 좋냐~ 그것을 위해서 일생 에너지를 쓰는 사람과 진짜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쓰는 사람은. 부처님은 참 자기가 칼로 자기 얼굴을 찢고 자기 몸을 상처를 낸다고 하셨어. 왜? 모르거든. 더 무지막지한 말은, 막 마셔~ 근데 그 안에 독약이 든 줄을 모르고 마셔, 그러다가 언젠가는 죽는다 이 말이여. 독약인 줄을 몰라.
3. 세존이 영산 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대중이 다 묵연하되 오직 가섭 존자(迦葉尊者)만이 얼굴에 미소를 띠거늘, 세존이 이르시되 내게 있는 정법 안장(正法眼藏)을 마하 가섭에게 부치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
<세존이 영산 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대중이 다 묵연하되 오직 가섭 존자(迦葉尊者)만이 얼굴에 미소를 띠거늘, 세존이 이르시되 내게 있는 정법 안장(正法眼藏)을 마하 가섭에게 부치노라 하셨다>
꽃을 딱 들으셨는데 가섭존자만이 딱~~ 미소를 진다 이 말이여. 사람이 태어나서 이 성자와 신심상연(心身相連)하고 심월상조(心月相照)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한다, 참 행복자입니다. 꽃을 들었는데 뭔 소리인지를 몰라. 대종사님이 법문을 했는데 그 본의를 몰라. 문자에 얽매이고 그 현상에 얽매이고. 그게 아니라 그 본의를 딱 알아서 ‘아하~!’ 하고 아신다 그 말이여. 얼마나 좋겠어. 비로소 부처님의, 대종사님의 참 제자이지요. 교당이 아무리 시설이 좋고 사람이 많아도 참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몇 명이냐, 그게 큰 교당이라고 그러셨어요. 참으로 대종사님 법을 알아보고 그 대종사님 법을 공부해서 그 대종사님 법으로 참 나를 알아서 그 세상을 향해서 아니할 수 없는 공심으로 아니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이 대종사님의 참 제자다.
4. 세존이 열반(涅槃)에 드실 때에 내가 녹야원(鹿野苑)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 일찌기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
<세존이 열반(涅槃)에 드실 때에 내가 녹야원(鹿野苑)으로부터 발제하(跋提河)에 이르기까지 이 중간에 일찌기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노라 하셨다 하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48년간 법문을 하셔놓고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답니다. 있다가도 나옵니다. 제가 엊그제 불국사를 다녀왔어요. 거기에 무설전(無說殿)이다 탁 써졌어. 또 무설당(無說堂)이다 써져 있어. 저는 그것을 보면서, 여기를 다녀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저 무설전, 무설당을 보고 무설당 무설전을 알까? 얼마나 알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문화해설사에게 소개해줬어. 요 뜻이 요런 뜻이요~ 하고.
똑같은 이야기예요, 이게. 뭣이 들어서 설했어요? 제가 지금 뭣이 들어서 말하지요?? 살아있는 실체는 있는데 뭣이 들어서 설하냐 이 말이여. 설하는 작용은 있어, 이렇게 말은 해. 무엇이 이렇게 말하고 있냐 이거죠. 서가모니부처님은 이 말씀을 하신 것이더라, 무엇이 들어서 설했냐? 48년간 법문을 설해놓고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기가막힌 법문이예요. 최상법문이라.
5.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만법귀일(萬法歸一)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오> |
5번, <만법이 하나에 돌아갔다 하니, 하나 그것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만법귀일이요, 일귀하처라.>
만법이 아까 유아독존의 자리로 돌아갔어, 짝하지 않는 자리로 돌아갔다고. 꿈도 없이 아는 그 영지 자리로 돌아갔다 이 말이여. 그것이 무슨 뜻이냐?
자 6번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뭔 소리인줄 모르겠죠? 네? 다른 사람이 모르는데 나만 알 때 그 재미가 있더만. 응~~ 알려주는 재미도 있지만, 모르는 거 골려먹는 재미도 있어요. 여러분이 진짜 자존심이 있다면 화가 나야합니다. 분심의 화가 나야 합니다. ‘내가 기어이 저거 알아버려야겠다!!’ 제가 여러분 골려먹는 게 아니라 그걸 노리는 겁니다. 정말로 화가 좀 나십시오. 부처는 뭐고 중생은 뭐냐? 도대체 이게 뭐냐? 내 이~C 기어이 한번 내가 이 자리를 알아서 참 나로 한번 살아보고 정말로 알뜰한 대종사님의 제자로, 대종사님과 속속들이 그 마음을 함께 해서- 파수공행이라, 손을 맞잡고 대종사님하고 한번 가보겠다 말이지. 그런 생각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입니다.
6.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인가. <불여만법위려자 시심마 (不與萬法爲侶者 是甚麽)> |
6. What is that thing which is not associated with the myriad dharmas? |
자 같이 읽지요! 6번.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이 그 무엇인가.> 한번 더 읽죠.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이 그 무엇인가.>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이 있나봐요. 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짝하지 않는 것. 만법은 다 짝하지요~ 대게가. 그죠?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하시고 변산에 가셨는데 이 절에 딱 <불여만법 위려자 시심마(不與萬法 爲侶者 是甚麽)> 딱 붙었더라 이 말이여. 이게 그 소리거든요. 근데 탁 막혔데 한번. 저는 솔직히 말해서 대종사님이 처음 본 단어라 뭣인가 잠깐 했지, 아니면 우리들에게 자비 방편으로 알려주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대각하신 분이 어찌 그걸 몰랐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도 알겠는데.
여기에 보면 먼저 짝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짝할 수 없는 것이 아니에요. 천지차이입니다. 짝하지 않는 것과 짝할 수 없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자~ 이 문제는 먼저 만법이 무슨 뜻인가, 그리고 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기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법이 뭐죠? 이 법이라는 것은 앞에다 만(萬)자를 쓰기도 하고 제(諸)자를 쓰기도 합니다. 제법(諸法) 만법(萬法). 이 법이라는 것은 모든 대상을 말합니다. 모든 대상을 말해요. 그냥 우리가 법률할 때 법자랑 좀 다릅니다. 제법 만법. 모든 대상을 만법이다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여기다가 억을 쓰겠다, 억법이다~ 상관없습니다. 여기다 만을 쓴 것은 꼭 만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의미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만법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삼라만상이요, 천만교법이요, 모든 사상 모든 것이더라. 모든 것 일체가-천삼라 지만상이라고 하지요.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바로 만법이다. 그런 것이죠.
이 짝한다. 위려자. 짝하는 것, 이건 뭐냐면 음과 양입니다. 일종의 상대적인 걸 말하죠.
어제 서울교당에서 가족관련 세미나를 했어요. 거기를 갔는데 신부님이 나와가지고 요새 젊은 사람들한테 골치 아픈 일이 있다는 거여. 그게 뭐냐. 이 도덕적 상대주의라는 거예요. 그게 뭐냐. 나는 내 알아서 할 테니까 상관마라. 어? 나는 내 알아서 할테니까 상관마라. 내가 동성애를 하든 동물하고 하든 내가 뭘 하든 상관마라. 이것을 상대적 도적주의, 도덕적 상대주의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듯이 짝한다는 것은 상대한다는 이야기예요. 크게보면 음과 양이겠지요. 또 이따가 더 구체적으로 짝하는 것의 예를 같이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더 쉽게 풀어보면, 무엇과도 상대하지 않고 무엇과도 상대 지을 수 없는 것. 상대지어지지 않는 것. 그 말이 맞겠습니다. “상대지어지지 않는 것”, 이렇게 다시 고쳐주세요. 상대지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그 주제입니다.
여당이 있고 야당이 있고,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좋고 안 좋고, 기쁘고 슬프고, 온갖 것들이 있죠? 그런데 그 상대할 수도 없고 상대지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네. 이것은. 주관과 객관도 넘어서는 거예요. 주체와 객체를 넘어서는 겁니다.
가) 크기로도 그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대포무외 大包無外> 작기로도 그보다 더 작은 것이 없고 <세입무내 細入無內> 나) 밝기로도 그보다 더 밝은 것이 없고 <명막명어기명 明莫明於其明> 어둡기로도 그보다 더 어두운 것이 없으며 <암막암어기암 暗莫暗於其暗> 다) 오래 되기로도 그보다 더 오랜 것이 없고 <구막구어기구 舊莫舊於其舊> 새롭기로도 그보다 더 새로운 것이 없으며 <신막신어기신 新莫新於其新> <선천지이무기시 (先天地而無其始) 후천지이무기종 (後天地而無畿終)> 라) 신묘하기로도 그보다 더 신묘한 것이 없고 <묘막묘어기묘 妙莫妙於其妙> 간명하기로도 그보다 더 간명한 것이 없으며 <간막간어기간 簡莫簡於其簡> <조화무궁 신묘불측(造化無窮 神妙不測)> 마) 강하기로도 그보다 더 강한 것이 없고 <강막강어기강 强莫强於其講> 유하기로도 그보다 더 유한 것이 없다. <유막유어기유 柔莫柔於其柔> 이것이 만법으로 더불어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니, 과연 이것이 어떤 물건인고? 4) 실천적으로 나투어 보라. 이 물건을 확실히 증득한 분은 능대능소(能大能小)하고 능명능암(能明能暗)하며 능강능유(能剛能柔)하고 능구능신(能舊能新)하며 은현자재(隱顯自在)하여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이 될 것이다. 5)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범부중생의 본성이라 언하에 직관하라. 이 법 외에 또 무엇이 있는가? |
그래서 거기 우리 각산님이 쓰신 거. 저를 보세요. 지금 저를 보고 있는데 무엇이 보고 있죠? 무엇이 보고 제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무엇이 보고 제이야기를 듣고 알고 있어요? 눈과 귀가 보고 듣는 건 아니죠? 시체도 눈 귀는 다 있어. 이 보고 알고 듣고 알고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 훤한 이것이 과연 무엇이냐.
이것은 크기로 말하면 대포무외여, 훤해~ 이것은! 하도 커가지고 바깥이 없어. 작기로 말하면 세입무내야. 너무 가늘고 작아서 좁쌀보다도 더 작아, 작다고 할 수도 없어. 우리 반야심경에는 무상주요 무등등주여. 무상이래! 위가 없대. 무등등이래, 등이 없네. 1등 2등 최등 이런게 없어. 무등산이 그런 거거든. 등이 없는 산이다 그 말이여. 등이 없는 게 무엇이야 말이여~ 등이 없는 게.
밝기로 말하면 그보다도 밝은 것이 없어. 태양은 말이죠, 항아리 속 뚜껑을 딱 닫으면 그 안은 못 비춰. 근데 그 훤한 그것은 딱 보면 알아. 이것보다 밝은 게 어디있냐 이 말이여. 촉유즉명유일월(燭幽則明逾日月)이라고 하거등. 일월보다도 더 밝다 이 말이여. 어둡기로 보면 그보다 더 어두운 것이 없다.
오래되기로 하면 이보다 오래된 것이 없어. 이것은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있던 거여. 지구가 생기기 전에도 있던 거여. 이것은. 새롭기로 하면 이보다 새로운 것이 없어. 지금 이 찰라 이 순간에 이 마음보다 더 새로운 게 어디있냐 이 말이여. 신세대는 지금 이 마음을, 어떻게 이 요란함 이 어리석음 이 그름을 어떻게 잘 챙겨서 하느냐가 신세대거든. 나이가 젊다고 신세대고 패션을 뭐 입었다고 신세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이게 신세대지.
강하기로 하면 이보다 강한 것이 없네. 보통 강한 것은 불에 하면 녹아버리던가, 두드려 깨면 깨지던가 하는데, 이것은 그냥 아이고. 여러분 이 가죽(손바닥 피부)이 오래 쓰는지 알지요? 몇십년 쓰는데, 그렇게 써도 써도 이 가죽이. 요것에 비할 바가 아니여~ 이 마음이라는 것은. 부드럽기로 하면 이보다 부드러운 게 없네. 물보다도 부드럽고 어떤 것보다 부드러우려면 부드러울수 있다. 어디나 다 들어갈 수 있어, 그래서.
그래서 능대능소하고 능염능엄하고 능강능유하고 능구능신하며 은현자재. 숨었다 그 소리는 뭐라고? 없다는 소리가 아니죠? 숨었다 그 소리는 뭔 소리여? 그늘이란 소리는 뭔 소리여? 그늘은 해가 지금 있는데, 있는데 없는 거지?! 그걸 은이라고 해, 숨을 은자. 우리는 해가 안 보이면 없대. 지금 맨하탄이 있을까 없을까? (있어요) 가봤어? 난 가봤는데. 맨하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어요) 많은 사람들은 내 눈에 안 보이면 없대. 없어?? 내가 모르면 없어? 내 눈에 안 보이면 없어? 한밤중에 지금 해가 안보여, 그러면 해가 있어 없어? (있어요) 어떻게 알아? 없는데. 안 보이는데. 안 보이지만 있잖아요. 우리가 다음생이 있냐 없냐, 자기가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모른다고 하면 틀린 답은 아니라니까. 맞는 것도 아니지만, 틀린 답은 아니여. 근데 없데! 다음생이! 지금 해가 안보이니까 해 없데! 그와 똑같은 이치여.
그래서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자유자재 하는 것이여, 은현자재하는게 이 마음이여. 우리 마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여. 그러기 때문에 대 자유인이 되자는 것은, 내 본래 마음을 알아서 경계 속에서 속지 말고 잘 지켜서 그대로 걸림없이 툭 터진 이 마음, 훤하고 밝은 마음을 그대로 쓰자, 이것이 그대로 자유인이여. 그런데 실지 경계에서 그렇게 되냐 이거여. 어느새 감정이 나오고, 어느새 이해관계가 얽혀버리고 어느새 자기의 주관적 생각이라나~ 자기 자아라나 뭐. 자기가 자아도 모르면서 자아래. 자기 자아가 뭔데? 응? 이것은 주체도 없고 객체도 없는 것이여. 주체라는 것이 있으면 객체가 있는 것이지. 이것은 주체라는 것이 없어서 객체도 없는 것이여.
현실에 이렇게 유형의 것들, 아니면 이념적인 것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다 짝을 합니다. 상대가 있다 이 말이여. 그죠? 고가 있으면 낙이 있고.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고는 싫어하고 낙을 쫒아가. 그런데 원불교인들은 뭘 쫓아가야해? 고락을 초월한 극락! 이게 원불교 교도여.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생로병사의 자연적 고. 또 내가 마음으로 짓는 어떤 애별리고(愛別離苦)라던가 뭐 이런 고통. 이런것들이 알고 보면 더 나아가서는 고도 낙도 다 가짜여, 알고 보면. 진짜는 고락이 없는 겁니다. 심지는 원래 고락이 없어. 경계따라 고락이 심하게 있지? 하하하하. 심하게 있지~~,
조금 고급 중생은 본래 시비가 없는 건데 온갖 옳다 그르다 시비가 그냥, 목숨 걸고 달라 들죠. 사상의 노예라~ 시비의 노예, 관념의 노예. 아 왜 일생 여당을 해야 하고 야당을 해야 하고 아니면 보수를 해야 하고 진보를 해야 혀? 예 일생? 보수는 다 틀리고 진보는 다 맞고, 진보는 다 틀리고 보수는 다 맞나? 이 자리는 불이문이여. 그래서 자타도 없는 거여. 내가 있으면 니가 있어. 그러니까 보통 범부는 나를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 상대를 항상 의식하면서 경쟁 속에서 어떻게 되지요? 결정적일때는 너도 먹고 나도 먹고가 아니라 너 죽어~ 나 먹고, 나 먼저 먹고 너는 죽어. 그러죠. 이렇게 상대적 세계로 간다.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결정적일때는 말이죠~ 니가 먼저 죽어라, 니가 손해봐라, 니가 찌그러져라, 이렇게 살아간다.
불보살들은 그런 일을 안 해. 불보살들은 그런 일을 안 만들거나, 사전에 준비해서 자리이타로 하던가, 아니면 내가 손해봐버려. 짧게 보면 손해지, 그러나 길게 보면 그분이 진짜 이득을 얻는 사람인데. 우리 대종경에도 중생은 영리하게도 자기 일을 잘 챙겨, 불보살들은 어리석게도 남의 일만 해줘.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된다고? 중생은 손해를 보고 불보살은 결국 이익을 얻는다. 이 법문이 이해가 되셔야 하거든. 중생은 절대 용납 못해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제게 와서 말해요. 겁나게 부담스럽데, 막 가슴을 콕콕 찌른다는 거여. 왜 그러죠? 자기 에고가 강한 사람은 아주 괴로운 겁니다. 왜? 자기는 삶의 방향과 행복관이 최대한 자기를 위해서 채울려고, 자기 행복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데, 교무님은 자꾸 손해봐라~ 줘라~ 자꾸 막 ~이러니까, 봉사해라~ 그러니까 자꾸 괴롭지. 내꺼 다 채워놓고 기분좋게 한번씩 줘야하는데, ARS 한번씩 눌러줘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여.
강약. 하이고~ 좀 강자면 목에 힘주고, 약자면 나 죽겠네~ 그러고. 본래 강자 약자가 어딨어~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되고 그런 거지. 지가 짓는 바에 따라 다 다른 건데.
노사가 아니라 노소죠. 늙고 젊고. 나이드시면 젊은 분이 부럽지, 뭐가? 건강과 어떤 활력과 피부와 체력이 부럽죠. 그것도 다 속는 겁니다. 화엄사상이라는 것은 말라비틀어진 꽃도 화엄이여, 그 꽃봉오리가 뚝 떨어져도 화엄이여, 그거거든. 왜냐? 나타난 솟아오른 꽃이나 봉우리 맺어진 꽃이나 활짝 핀 꽃이나, 지금 잎사귀가 떨어지는 꽃이나 꽃대리가 똑 떨어진 꽃이나 하나의 뭐여? 제행무상이라.
남녀. 요새 그냥 대학로에 2만명이 넘게 모인다고 그래. 일명 패미니스트. 참 그동안 사실 너무 남자들이 못됐어요. 너무 못됐지, 자기 마누라 두고 말이야 또 옆방에다가 둘째 셋째 마누라 들이고 말이야. 얼마나 괴로웠겠어 그거. 나쁜 놈들이지. 응? 지금 뭐 유리천장이라고 해서, 기업도 마찬가지 공무원도 마찬가지 학교도 그러고, 현 정권에서 20~30%를 여성장관을 임명하겠다고 하는데 쉽지 않지요? 그러나 일반 학교같은데나 기업체에서 보면 10%로 어렵습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고. 유명한 대기업에 넘버 1,2,3 들어가도 50% 이상이 5년 내에 여자들이 그만둡니다. 경력단절이 오죠. 임신 출산 육아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을 얼마든지 보는 시각따라 다르잖아요. 여러분도 누군가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어머니 손에 의해서 컸잖아요. 너무나 소중하게 컸잖아요. 이게 남녀 간에 하나인 줄을 모르고. 성품에는 남녀 없어, 이게.
노소도 없어, 선악도 없어, 선악도. 여러분 경계따라 겁나 착했다 때로는 안 착했다 하죠? 그래 안 그래? 난 착하다 손들어 봐! 난 안 착하다! 손 들고 싶지? 하하. 사실은 착하다고 해도 다 손들고 싶고 안 착하다고 해도 다 손들고 싶어야 맞아요. 경계따라 착할 수도 있고 안 착할 수도 있자나. 그러나 더 들어가면 본래 그러냐 그 말이여. 본래 그러냐?
빈부도 마찬가지다. 귀천? 흥망? 흥망이 순환하고. 흥망이 본래 만법과 더불어 짝하는 것은 흥망이 없어, 그냥 여여자연해. 그냥 여여자연하거든. 근데 흥망에 따라 거만하다가 우쭐하다가, 날마다 술 퍼먹고 나 가겠다고 한강다리 갔다가 서해대교 갔다가, 배타러 빠질까 절벽에 떨어질까. 왜? 자기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놀아나는 거여.
대소. 키가 크면 좀 크다고 양~. 작으면 작다고 그냥.
미추로 할까 미추? 이쁘면 이쁘다고, 좀 추하면 추하다고 그냥. 마음이 예뻐야~ 대지~.
장단. 유무. 상생상극. 본래 있었을까? 상생상극이? 저도 살아보니까 정말 가까운데서 생깁디다. 상생상극이 멀리 있는 사람이 상극이 될 것 같지? 여러분 상생상극이 정말 가까운데서. 보시라이가 가까운 데에 당했거등, 중국의 상무위원이. 시저도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당했거든. 박정희도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당했거든. 상생상극이 멀리 있는 게 아니더라. 더 들어 가서 본래 상생도 상극도 없다. 그래서 우리 참회문에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이런 표현이 있지요? 아 상생은 좋은 것인데 왜 상생도 벗어나라고 그려? 그 상생도 짝하는 마음이다, 짝하는 마음이다. 요거하다가 끝나 버리겠네 큰일났네.
그런데 이 짝하지 않는 마음이 있는데 이 자리를 고와 락을 초월한 극락이요, 선과 악을 초월한 지선이요. 그쵸? 이게 독존의 자리요 무설이라 무설. 그리고 무상이여, 본래 상이 없는 것이여. 아이고~ 지가 좀 잘났으면 잘났다고 상내고, 지가 뭣 좀 했으면 뭣 좀 했다고 상내고. 하이고~ 생병이 나고 난리여.
지금 이제 우리 원불교가, 종법사님이 바뀌지요? 수위단원도 바뀌고, 아마 전체 인사이동이 반정도 될 것 같아요. 교무님들. 천오백명 중에 칠팔백명이 아마 인사이동을 할 겁니다 곧. 아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종법사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수위단원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이리 갈수도 있고 안 갈수도 있는 거지, 그 같은 놈의 것. 그죠?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어디로 내려? 왕궁가에.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왕궁가에 내리는 그 시공을 여의지 않는 마음. 환경을 초월한 마음. 이 마음이 진짜로 보배올시다. 이 자리는 진짜 참나요, 큰 나요, 그리고 무생법인이라. 생긴바가 없어, 이 자리는. 불생불멸이기 때문에. 이 자리는 대적광전이여. 공적영지해. 공적영지가 대적광전이거든. 고요한 가운데 이렇게 훤히 아는 이 마음이여. 무극이라. 이것이 비로소 주인공이라 그런 거여. 이것을 법신불이라하고 진여라하고, 이걸 여래라 하고 사실은 이걸 하나님이라고 한다. 이것은 짝하지 않는, 즉 둘이 아닌 하나라 이 말이여. 이게 하나님이다. 여기를 여기 중국에서는 상제라고 해. 법왕이라고 해. 심군본심 천지모 천지의 어머니다. 이 마음이 들어서, 이것이 들어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거여. 복과 혜의 원천이 이 것이여. 무진장의 보고라고 해 이것은.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이것은 무진장의 보고지.
무진장의 보고인 이것을 잘 수행할 것 같으면 온갖 본래 자유인 이 마음이 회복되고 그리고 상이 없는 마음을 그대로 텅 빈 마음에 온갖 나없는 나이기 때문에, 세상이 모두가 나이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 살지 않을 수 없는 이 세계다 이 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내가 보은하지 않을 수 없어. 이 자리가 바로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 부모출생전(父母出生前)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 자리더라~ 그 말입니다.
자 요개 죽비여. 탁! 이 죽비를 죽비라고 하면 틀렸고 죽비가 아니라고 해도 틀렸어. 뭐라고 하실래요? 응? 뭐라고 하실래요? 이래도 저래도. 이것을 짝하지 않는 이걸 넘어서야 참 자유인이 된다.
우리 정산종사님은 대종사님을 만난 이후로 아버지 출가하셨죠? 동생 출가했습니다. 당신 자녀 출가했습니다. 당신도 출가했습니다. 3대가 다 출가하셨습니다. 정산종사님 돌아가셨는데 사재(私財)와 집 수저 하나도 당신 것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이 분은 공(空)과 공(公)으로 사신 거여. 그대로. 나라는 것이 없이 살았던 거여. 그러니 여래위이시죠. 이분은 무소유를 소유하신거야. 무소유 소유. 시방삼계가 다 내 소유거든. 그래서 이 중생들을 위해서 즉 모두가 나이기 때문에, 이 아픈 중생들을 위해서 오직 대도회상을 창립하셔서 순일무사하시고, 희생정신으로 다 바치신 생불이셨던 분이 우리 정산종사님이셨다. 이것이 바로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이 마음을 체로 잡아서 만법을 운용하신 그런 스승님이시다! 이 말씀을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부>>
자기의 감정에 짝하지 않고 자기의 이긋에 너무 짝하지 않고. 짝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면 상대한다는 뜻도 되고 주착한다 나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
자! 짝하지 않는다는 게 무엇이죠? 모든 형상있는 것은 짝합니다. 그러나 생각 이전의 자리, 그 형상 이전의 자리, 이 자리는 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이것은 짝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지난주에 ‘edge’다 그런 표현을 했을거에요. 또는 영어로 becoming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독일어로 리스라고 합니다, 틈이라고 해 틈. 이건 주어가 없습니다. 주체 객체도 없습니다. 주관 객관도 없는 겁니다. 참 주관은 주관 객관이 없는 가운데 나타난 가운데 주관이 참 주관이고, 참 주체라는 것은 주체 객체를 넘어서서 거기에 바탕한 주체가 비소로 참 주체성인 것입니다. 불법이라는 것은 이 진공의 자리에 체를 삼았기 때문에 불법이 뛰어난 것입니다.
7. 만법을 통하여다가 한 마음을 밝히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통만법 명일심 (通萬法 明一心) |
7. Illuminate the one mind by penetrating the myriad dharmas. What does this mean? |
자 같이 읽으시죠~ 7조. <만법을 통하여다가 한 마음을 밝히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한번 더. <만법을 통하여다가 한 마음을 밝히라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대종사님은 성리품에 <큰 도는 서로 통하여 간격이 없건마는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스스로 간격을 짓게 된다> 본래 큰 도는 간격이 없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서 이렇게 간격을 짓고 울을 짓고 국을 짓는다 이 말이여. <누구나 만법을 통하여 한 마음 밝히는 이치를 알아서 행하면> 따라서 해요 거기. < 가히 대원정각(大圓正覺)을 얻으리라.> (가히 대원정각을 얻으리라). 누구나 만법을 통하여 한 마음 밝히는 이치를 알아 행하면 가히 대원정각(大圓正覺)을 얻으리라. 그러셨습니다. 우리 솔성요론 맨 마지막에는 16조죠. <어떠한 원을 발하여 그 원을 이루고자 하거든 보고 듣는 대로 원하는 데에 대조하여 연마할 것이니라.> 즉 항상 목적 서원반조를 해라. 참 중요하지요. 참 중요해.
어제 신부님이 기가 막힌이야기를 하나 해주던데. 배가 난파하면, 조난당하면, 그 사람들을 케어해주는 대피소를 어렵게 겨우 만들어가지고 했데요. 그래서 거기서 열심히 보초를 서가지고 배가 난파하거나 그러면 얼른 해결하고. 또 그 사람들을 그 좁은 집에, 허름한 집에 모셔서, 인공호흡도 하고 안 춥게 해주고 생명을 살려냈어.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칭찬을 하고 박수를 치고, 살아온 사람들은 너무 고맙다고 희사를 하고. 그래가지고 이제 거기다가 너무 집이 허름하니까 좀 잘 짓자~ 잘 지어. 그러고나서는 거기서 이제 사람들이 모이니까 뭐 하게 되요? 여러분 대학가면 동아리가 있어요, 동아리. 그 동아리가 뭔 동아리인줄 아세요? 무슨 동아리를 떠나서 다 노는 동아리입니다. 거기서 연애하구요. 영어 동아리든 등산 동아리든 원불교 동아리든 뭔 동아리든 보면, 동아리의 목적은 저리 가버리고 연애하고 술 먹고 사람 만나고. 똑같은 현상이 거기서도 일어난 거여. 집을 지어놓으니까 사람들이 모여, 거기서 화투쳐. 그러니 보초 서고 망보는 건 제대로 안 하는 거여.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니까 오히려 뭐라고 한 사람을 쫓아내. 그러면 옆에다 따로 짓고 너는 망봐라~ 우리끼리 놀란다. 이게 뭐냐면 주객이 전도된 거여.
우리 인생이 그렇게 삽니다.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 몸에서 몸을 받았는데, 이 몸 받은 나가 난 줄 알아. 그러고 진짜 몸 받기 전의 나는 나가라 그래. 하하하하. 그리고 몸 받은 나가 난줄 알고 살아. 똑같은 이치여 이게.
누가 교무하려니까 꽃꽂이도 해야 하고 피아노도 쳐야하고 영어도 해야 하고 한문도 해야 하고 하다 보니, 진짜 교무가 해야 하는 게 뭐죠? 진리를 깨쳐야지! 삼대력을 갖춰서 교화를 해야 할 것 아냐. 그랬더니 이걸[교화] 하기 위한 이것[꽃꽃이 피아노 영어 한문]만 하고 있는 거지. 그런 꼴이 참 많거든.
이 인간으로서 태어나가지고 다른 동물과 달리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양심이요, 바로 서원이라고 하는 거여. 그래서 이 서원을 보고 듣는 그 모든 것에서 항상 이 서원을 놓지 않아야 하는 거여. 그러니 서원을 놓지 않는 것과 한 마음 밝히는 것이 둘이 아닌 거지요! 한 마음 밝히겠다는 게 서원이잖아. 한마음 밝혀서.
한마음 밝히는 게 뭐냐면 수양 연구 취사거든. 밝히는 것은, 경계 따라 내가 비우고 멈추고[수양], 그리고 내가 경계 따라서 밝혀, 속지 않아![연구] 육신이 나 인줄 아는데 속지 않는다 말이야. 진짜 나는 육신이 아니라, 이 육신을 운용하는 이 것, 이 참마음이 나다 이걸 밝혀라! 이 한마음. 그런데 이 밝히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지 경계 속에서 활용한다 이 말이여. 실천한다 그 말이여.[취사] 다음에 잘 할께요~가 아니라 당장 한단 말이여. 내 힘에 맞게, 내 여건에 맞게. 이것이 밝히는 거여. 삼학공부를 말하고 있잖아. 그러니 대원정각 할 수 밖에.
그래서 만법은 아까도 나왔죠. 이 전 시간에. 만법은 모든 대상. 그래서 성즉법(性卽法이)라는 말이 있어요. 성즉법이야, 심즉불(心卽佛)이고. 성(性), 성품이라는 것은 모든 대상이거든. 그리고 그것이 마음이 들어서 운용하더라, 그 마음이 들어서. 그래서 그 성품이 나타난 것이 마음이고 그 마음을 작용하는 데에 성품이 있더라. 지금 이렇게 말하는 데에 있지. 지가 어디가 있어, 따로. 지금 이 순간에 있잖아.
<만법을 통하여다가>, 이 소리는 만법을 확실히 통달해서. 그래서 그 만법은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라고 볼 수도 있어요. 일과 이치여 결국 그것은.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경전이지요. 그래서 대소유무의 이치를 아는 것이 바로 뭐냐? 우주관을 아는 거여~ 우주관. 그리고 시비이해를 아는 것이 인생관을 아는 거여. 나는 이것이 옳다하고 했어~ 이렇게 하는 것이 행복인줄 알고 이렇게 하는 것이 돈이 될 줄 알고 이렇게 하면 기쁠줄 알았는데, 그것이 시(是) 인줄 알았어. 근데 그게 뭐여? 비(非)더라 이 말이여. 시(是)는 뭐가 와야하냐? 이(利)가 와야 되거든, 그게 진짜 시(是)거든. 근데 이 비(非)는 뭐냐? 해(害)가 오거든. 그래서 이 시비(是非)가 인(因)이 되고 이 이해(利害)가 과(果)가 되는 거거든. 그런데 시와 비를 구분을 못해. 왜? 대소유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러니까 시를 비로 알로 비를 시로 알아. 아니면 더 중생은 당장 이긋만 보지, 이긋만 보다 보니까 주위에 사람이 다 떠나고 무시 받고 나중에 손해만 보는 거지. 장사를 해도 그래요. 장사를 해도 살살 둘러먹어. 살살 거짓말해. 그랬더니 서서히 속네. 사람들이 서서히 속아서 처음에는 좋았는데, 이제 서서히 알게 되어서 다 떠나. 그 참 사람이 거짓말 참 많이 하데. 저도 참 많이 했더라고 옛날에 보니까. 하루에 몇 십번 한다나 보통. 진짜 나를 비워버리면. 왜 거짓말을 하죠? 나를 위해서. 작은 나, 나의 이긋을 위해서, 나의 자존심을 위해서. 뭔가 감추고 싶고 뭔가 포장하고 싶고 뭔가 보이고 싶어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거잖아. 뭔가를 취하고 싶고. 근데 그 나를 탁 놔 버린다고 할까, 그 나에 속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럼으로써 갈수록 시가 되고 갈수록 이긋이 되요. 근게 그 나에 속을수록 그것이 비가 되고 해가 되는 거여. 그것이.
만법을 통하여다가, 즉 모든 대상 대상에서 이 한마음이 경계에 속지 않고 경계에 멈춰서 그 경계에 놀아나지 않고 온전한 내 참마음, 이 한마음을 내가 밝힌다! 이게 원불교 마음공부거든요.
여러분이 제일 속아버린 게 뭐여? 응? 뭘 한 마음을 밝혀~ 돈을 밝혀야지. 쾌락을 밝히고 자존심을 밝히고 즐거움을 밝혀야지 뭔 한 마음을 밝혀~~. 한마음 이야기하는 사람은 고리타분한 사람이잖아. 안 그래요? 재미없는 사람이잖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잖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니야? 그러나 사실은 이 한마음이 들어서 나를 운용하고 있거든. 순간순간 이 한 마음이 들어서 운용을 하는데 이 한마음을 밝히지 않고! 뭘 밝혀? 짝하는데 밝혀. 밖에다가 에너지를 밝혀. 경계만 오면 자빠져버리고 경계만 오면 속아버리고 경계만 오면 넘어져버리고. 그래서 양 그놈의 경계 때문에 이 핑계, 경계 때문에 저 핑계, 경계 때문에 또 핑계. 하하하. 핑계대지마~하는데 참말로. 응?
그래서 만법을 통하여다가 그 속에서 대소유무와 시비이해를 잘~ 경전을 통해서 밝히고, 방향을 잡아서 실지 경계에서 이것을 잘 멈춰서 다시 한번 세워서 다시 밝히고 본래 마음을 갖다가 본래 걸림 없는 이 마음을 그대로 툭! 과감하게 씀으로써 느껴지는 그 쾌감과 기쁨과 든든함과 그 참 응! 누가 칭찬해주고 안하고 상관없이! 내 스스로 얼마나 환희용약하는 재미의 세계가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한 생 잘 먹고 잘 살자 그 중생적 욕심이 아니라, 정말로 내 이 한생 스승만나서 대도를 깨쳐서 이 한생 이 주인공이 체가 되서 영생을 한번 내가 불보살로 나도 한번 세상을 위해서 살아보겠다 말이지. 이것을 생각하신다면 만법을 통하여다가 만법과 놀아나는 것이라, 그 속에서 착 서원에 대조해서 한마음 밝혀 나간다 이 말이여. 즉 삼학공부를 한다~ 이 말이여.
거기에 써놨죠. 아무리 석사 박사 천하제일 권력과 재력이 있어도 뭐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는 재주가 있어도, 한 경계에 자기 마음 밝히지 못하면 결국 윤회하게 되어있어. 그래서 건져주 살려주 하고 있다 이 말이여. 경계 경계에 내 이 한마음 밝히는 것. 따라서 하세요. 통만법(통만법) 명일심(명일심) 통만법 명일심.(통만법 명일심.) 만법을 통하여다가 한마음 밝히는 것. 이것이 원불교 삼학공부의 전체올시다. 이게
어느 절에서 행자들이 ‘풍동(風動)인가? 번동(幡動)인가?’로 시비하는 것을 보시고
육조대사께서 ‘비풍동(非風動)이요, 비번동(非幡動)이며
인자심동(仁者心動) (그대(仁者)의 마음이 움직인다) 이라
하신 것도 통만법 명일심의 길을 직시해 주신 것이 아닌가 한다.
자. 옛날에 육조대사가 어느 절에를 갔는데 스님들 둘이. 옛날에 절에 가보면 이렇게 깃발을 걸어요. 그래서 우리가 깃발을 해놓고 바람의 속도나 방향이나 이런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스님 둘이가 지금 풍동이다 번동이다. 즉 “바람이 움직인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잖냐~” 하고 옥신각신 하고 있으니까. 비풍동 비번동이요~ 바람이 동하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동하는 것도 아니고 뭣이라고? 인자심동이라고 했어. 여기서 인자는 어질인자가 아니요, 다른 사람, 상대편을 이야기할 때 쓰는 인자입니다. 그대의 마음이 동(動)이라! 그대의 마음이 지금 동하고 있다. 기가 막히죠!
쉽게 말해서 만법을 통해서 -깃발이냐 바람이냐 하는 상대적 세계에서 그런 현상에 끌려버린 삶이 아니라, 현상의 이면인 뭘 봐? 그 마음을 보는 요것을 육조대사가 말씀하신 거다. 그래서 청지불문(聽之不聞)이여. 듣긴 듣되 뭐여? 마음을 뺏기지 않고 듣는 거고. 시지불견(視之不見)이여. 보긴 보되 내 마음을 뺐기지 않고 보는 거여. 이게 한 마음 밝힌 사람이여. 그런데 들었는데 들은 바가 있어 버리네. “니가 그려?” 봤는데 보는 바가 있네. 막 끌려가버려. 들은 바가 보는 바가 없이 듣고 보는 이 마음.
내가 오늘 여러분 점 배 아프게 하고 있는데 배 안 아픈가바. 배 안 아퍼? 다 아시니까 그러지? 둘 중에 하나여야거든. 셋 중에 하나겠네. 나하고 같이 즐기던가, 아니면 화가 나 있던가, 아니면 멍 때리고 있던가 셋 중에 하난데 뭣인가 모르겠네.
이 만법이 사실은 뭐냐? 바로 성품이예요. 만법이 뭐냐? 바로 일과 이치여. 만법이 뭐냐? 바로 경전이다 이 말이여. 이걸 볼 수 있는 눈이 있느냐. 그러면 그 사람은 그 경전을 통해서 일과 이치를 알게 되고 그 일과 이치는 결국 세상이요 그 세상이 만법이더라~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눈이 떠진다 이 말이여. 그러니까 산시산이요 수시수지(山是山 水是水). 처음에는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 아니였는데 나중에는 산이 산이고 물이 물이라. 그런 눈이 떠지면 그렇게 된다 이 말이여. 그래서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하지. 그래서 시인들이 보면 그러지. 아지랑이가 피고 꽃이 하나 피고 풀이 하나 돋아나는 것, 이슬 방울 맺힌 것이 그렇게 소중하게 보이는 시기가 요런 시기. 다르거든. 그러니까 이제 사은의 은혜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거라 이게. 내가 숨 하나 쉬는 것, 내가 말 하나 하는 것, 내가 밥하나 먹는 것, 이게 정말 사은의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이게 바로 진리구나, 진리의 작용이구나. 이게 일원상이구나 말이지. 이 눈이 떠져야 한다.
인도품 12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못 당할 일은 남도 못 당하는 것이요, 내게 좋은 일은 남도 좋아하나니, 내 마음에 섭섭하거든 나는 남에게 그리 말고, 내 마음에 만족하거든 나도 남에게 그리 하라. 이것은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이니, 이와 같이 오래오래 공부하면 자타의 간격이 없이 서로 감화를 얻으리라.] |
인도품 12자에 보면 안 좋은 것은 나도 싫고 좋은 것은 누구나 다 좋아하죠. 역지사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게 참 안 되죠. 내 마음과 니 마음이 하나가 안 되니까 자기밖에 없고 매일 요구밖에 안 해. 내 팔뚝이 아프디야~ 맨날. 남은 지금 팔뚝이 끊어졌는데 상관없어, 내 팔뚝의 상처가 더 아퍼 지금.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유학자 자공(子貢:BC 520?∼BC 456?)이 공자에게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그것은 바로 용서의 '서(恕)'이다[其恕乎].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勿施於人]"라고 말하였다. |
옛날에 공자님께 자공이 물었어요. 제가 평생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마디를 해주십시오~ 하셨어요. 그랬더니 공자님이 서(恕)라. 如+心. 여여한(如) 마음(心)이거든, 일심, 한마음이 서라 그래. 용서할 서자여 이게. 기서호(其恕乎)라 그러셨어. 그러면서 덧붙이신 말이,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지 말아야 한다. 기소불욕이이면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하라. 이 말은 좀 알아두셔도 됩니다. 기소불욕이면 물시어인하라.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지 마라. 우리 솔성요론 16조와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만법은 큰 경전이다. 이 세상의 산 경전을 밝혀다 내 마음을 밝혀라. 그리고 내 마음을 밝히면 결국 ‘아~ 나라는 것이 본래 없는 가운데 모두가 나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서 공심(公心)을 아니 낼 수가 없다.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고, 아프리카 사람은 굶어죽는데 말이야, 나는 배 터져라 퍼먹고 말이야 니나노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 과연 인과의 이치에 따라 어떻게 될꺼냐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과연 시방일가를 아는 사람이냐 이거지. 모른 사람이다 그 사람은.
금강경 32장 모든 함이 있는 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幻)과 같으며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나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觀)을 할지니라.] 一切有爲法이 如夢幻泡影하며 如露亦如電하니 應作如是觀이니라 |
금강경 32장에, 일체 함이 있는 유위법(有爲法)은 뭣 같다고? 꿈 같데야. 꿈꾸고 나면 허망하지. 그리고 환과 같애. 환상이야. 그리고 거품과 같애. 여러분 그 바닷가 가면 파도가 막 치는데 보면 거품이 있죠. 그 거품 같은 것이거든. 그리고 그림자 같은 것이여, 실체가 없이. 그리고 이슬 같은 것 같애. 해가 나면 금방 사라져 버려. 번개와 같애, 반짝하고 사라져 버려. 우리 생사가 숨 한번 들이마셨다 내쉬는 것과 같다고 하셨거든. 이것을 관해 봐라. 이것이 금강경 32장의 말씀입니다.
시간이 많이 가고 있네요. 자 8장 하겠습니다.
8. 옛 부처님이 나시기 전에 응연(凝然)히 한 상이 둥글었다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
8. Before the buddhas of antiquity appeared, this one shape was perfectly round. What does this mean? |
같이 읽겠습니다. 8. <옛 부처님이 나시기 전에 응연(凝然)히 한 상이 둥글었다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한번 더. <옛 부처님이 나시기 전에 응연(凝然)히 한 상이 둥글었다 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가.> 네.옛 부처님이 나시기 전에 일원상이 있었다 그 말이죠? 그 뭔소리예요? 원래는 이게 우리 대산종사님 대적공실에 나왔던 3번째 의두입니다. 여기에도 넣어놓으셨어요. 대산종사님께서.
자각선사[慈覺禪師] (1053년 ~ 1113년 ) 중국 하북서로(河北西路) 낙주(洺州) 영년(永年) 사람으로 속세의 성은 손(孫)이고, 법명은 종색(宗賾), 호는 자각선사(慈覺禪師)이다. 중국 남송(南宋) 휘종(徽宗) 때의 고승(高僧)으로 29세에 진주(真州) 장호(長蘆) 원통법수(圓通法秀) 선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에 광조응부(廣照應夫) 선사의 법통을 이었다. |
중국에 자각선사라는 분이 하신 말씀 중에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석가유미회 가섭기능전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응연히 한 상이 둥글었다. 석가께서 아직 알지 못하거늘 가섭이 어찌 능히 전하랴. 여기서 가섭은 석가 제자 가섭이 아니예요. 석가 위에 가섭입니다. 석가 위에 가섭이 또 있어요.
우리 목우십도송에도 맨 나중에 어떻게 되냐? 일원상이 딱~ 그려져 있어요. 여러분 절에 가면 소하고 목동하고 절 옆 벽에 그려져 있거든. 그런데 막판에 보면. 목우도도 있고 목우십도송도 있고 비슷하게 몇 개 있어요. 그 중에 보면 어떤 경우는 소를 올라탄 경우가 있고 소와 따로 노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는 일원상만 딱 그려져 있어. 소도 없어, 목동도 없어졌어. 소도 목동도 하나가 되어 버렸어. 그게 일원상 자리라.
그래서 우리 대종사님은 대각하시고 서품 1장에 보면.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道)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따로가 아니라 하나예요, 서로 바탕해서. 응. 유상으로 보면, 무상으로 보면 이거든.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이 기틀이 상이죠. 여기서 상은 무형지상이라고 해. 상없는 상. 형상이 없는 상.
또 대각을 이루시고 심경은,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 하셨다. 청풍에 월상이여. 그리고 만상이 자연명이라. 만상이 자연명이지. 자 이제 시간이 없으니까 생략해 가겠습니다.
《불법연구회근행법(첩1)》
속표지 : 일원상 아래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가섭유미회 석가기능전
(古佛未生前 凝然一相圓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이라 했다....
1940년(원기25)판 《불법연구회근행법(佛法硏究會勤行法)》에는
일원상 그림 아래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이란 글을 넣었고,
이 무렵 불단에 모신 목판 일원상에도 같은 글이 들어 있었다.
《불교정전》에 일원상의 개념은
“이상 원공(圓空)은
우주만물의 근원이요, 제불조사 정전의 심인이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요,
자각선사는 고불미생전에 응연일상원이라 하시고,
혜충국사는 형식으로써 이 원상을 그려내서 법으로써 그 제자에게 전했다”고 했다.
일원상장은 우리 불법연구회 근행법 첩 1에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가섭유미회 석가기능전> 이렇게 있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그 설명까지 나왔거든요. <이 원공은>, 즉 일원상은 <우주만물의 근원이요, 제불조사 정전의 심인이요, 청전법신 비로자나불이다.> 이렇게 썼어요. 당시 일제 강점기였기 때문에 불교경전으로 불교용어를 썼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적인 것이 더 많았어요. 나중에 정전을 펼 때는 그런 것들을 다 뺐습니다 조금.
그래서 자각선사는 <고불미생전 응연일상원> 이라 하시고, 혜충국사는 일원상을 그리셨다는 거여. 그래서 우리 대종사님도 저 어디여? 김제 대원사에 계실 때 이렇게 일원상을 그리셨다고 하죠? 절에 스님들도 보면 성철스님 책도 보면 앞에 일원상이 그려져 있고 그렇습니다.
고불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부처님을 말하죠. 석가세존 이전에 과거 7불이라고 있어요. 석가세존 이전에 과거 7불 뿐만 아니라 모든 부처님을 말해요, 어떻게 말하면. 응연히- 응연히, 하나로~ 한 덩어리로~ 어려있다, 한 체성이다 이 말입니다. 한 상. 한 모습이 있다. 두 가지가 아니라 한 모습이다. 둘이 아니다. 불이문이다. 아까 제가 무형지상이라고 했죠.
요 일원상의 진리는 누구것이에요? 주인이 누구여? 서가모니 부처님 아니여? 대종사님 아니여? 이전등기 하신 분들. 사실은 주인이 없습니다. 새로 없는 걸 만든 것도 아니고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니여. 누구나 이 자리는 깨쳐서 쓰면 그 사람꺼여. 이전등기하면 되, 다. 그 일원상은 신기해. 이전등기 해줄려고 대기하고 있어. 근데 이전등기를 안 해가네. 대기하고 있는데. 내가 전화해봤어. 야~ 빨리 이전등기 좀 해가라. 세계 최고 부자다잉. 이보다 큰집 없다. 기가 막히다. 무진장의 보고다. 복혜의 원천이다. 이전등기 좀 해가라고 지금 하고 있는데 가져가지를 안네. 가져가지를 않아, 참말로.
서가모니 부처님 것도 아니고 대종사님 것도 아니고, 서가모니 부처님도 생멸하시죠. 그런데 이 자리는 무시무종이야, 생멸하지도 않아. 본래 언제 생긴 것도 아녀. 여여자여해서 만상자연명이라~ 그대로 있는 것이여. 이것은. 그래서 이 자리는 깨쳐서 가져가면 돼. 누구나 가져갈 수 있어. 이거 한번 안 가져 가실래요?
그래서 우리 정산종사님은 요것을 가져오셔가지고 일원상 자리를 가져오셔서 딱 삼동윤리를 내놓은 거야. 야! 이 일원상 자리는 동원도리다, 한집안이다. 그리고 동기연계로 한권속이다. 그리고 동척사업으로 사실은 한일터여. 그래서 일원세계 한세상이다. 그러니 분열하지 말고 통합하고, 상극이 아니라 상생가고, 대립하지 말고 조화로 가고, 그리고 고해의 세계에서 이 낙원세상을 만들어 보자~ 하시고 이 일원상 자리를 알아서 내놓은신 것이 이 대종사님이시오 스승님들이시다. 정산종사님은 이것을 삼동윤리로 표현하신 것이여.
삼동윤리보면 겁나게 큰 소리 같죠? 당장 내 밥 나오는 것도 아니고 떡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이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일원상자리는 아는 사람은 이런 것을 하는 것이다.
자 넘어가시죠.
9. 부모에게 몸을 받기 전 몸은 그 어떠한 몸인가. |
9. What body did you have before your parents conceived you? |
<부모에게 몸을 받기 전 몸은 그 어떠한 몸인가.> <부모에게 몸을 받기 전 몸은 그 어떠한 몸인가.>
자, 엄마가 있네. 그리고 내가 있어. 남자라 할까? 여자라 할까? 하여간 있어. 부모님으로부터 몸 받은 내가 있지. 근데 임신했라, 그러면 몸 받은 나가 있죠. 근데 임신하기 이전이면? 몸은 어딨어요? 요거예요. 즉 몸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세 가지 몸이 다른 거여. 이전에 몸.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 몸은. 제가 설명해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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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몸(ㄱ)을 받기 전 몸(ㄴ)은 어떠한 몸(ㄷ)인가?
1) 이 문제는 「몸」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함으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몸(ㄱ)은 부모에게 받은 몸으로서 「현재의 나」를 의미하고,
몸(ㄴ)은 「모태 중에 들기 직전의 나」를 의미하며,
몸(ㄷ)은 「어떻게 생긴 모습」을 가리키는 듯하다.
고로 이 문제를 다시 정리해 보면
「부모에게 몸을 받기 전의 나는 어떻게 생겼는가?」는 질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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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게 부모로부터 몸이죠, 현재의 몸을 말해. 그리고 두 번째 몸은 받기 전 몸이지. 그러니까 뭔 몸이여? 태중에 들기 전 몸이여. 그리고 마지막에 어떠한 몸인가의 몸은, 어떻게 생긴 모습인가? 그 말이죠. 어떻게 생긴 모습인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부모에게 몸 받기 전 나는 어떻게 생겼는가? 그 소리여. 어떻게 생겼어? 기억나요? 어떻게 생겼어요~ 응?
자 부모님이 임신을 했어. 임신을 하면 언제 영이 들어가는 줄 아십니까? 대게는 초반에 들어가요. 수행을 많이 하신 분은 늦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영이 나중에 들어가고 기와 질로, 호박같이 기와 질로 커 나가. 그런 아이들은 잘 안 움직여 배 속에서. 큰 도인들은 그래. 근데 보통은 그렇지 않아. 영기질이 같이 들어가. 그런데 그 영이 들어가지 전에 나는 어디 있는가? 짠! 하고 나타났는가? 응? ‘어! 이제 들어갈 때야’ 하고 확 들어갔는가? 어디 있다가 들어가? 어떻게 생겼어?
이것을 알면 진짜 삼세를 알게 되고, 정말로 아까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그 나를 알게 돼. 만법과 통하여 한 마음 밝히게 돼. 만법에 속지 않고. 그러니까 여기도 그렇게 설명이 나와 있죠. 이것이 내 몸 그래. 내 손, 내 머리, 내 팔 그래. ‘내’는 ‘나의’라는 소리잖아요. 그러면 나의 무엇을 떠나서 나 자체는 어딨어? 나의 손, 나의 머리, 나의 몸,이 아니라 나 자체는 어딨어? 내가 받은 이 몸이 나가 아니라, 몸 받기 전에 나 자체는 어딨냐? 어떻게 생겼냐? 어떻게 생겼어요?? 본래 자기는 뭐냐 이거여. 본래면목은 뭐냐? 내 참 고향은 어디냐? 부모 태중이전 고향 자리는 어디여? 태중에 들어가기 이전 고향 자리는 어디냐고.
지금 이것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거든. 근데 많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지. 이것이 이(몸) 안에 어딘가에 있겠지. 하트 아니면 어디~ 머리에 있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거꾸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못 뱉었어. 그러면 나는 어딨어? 몸 받기 전 나는 어디 있으며, 숨을 멈췄어~ 그러면 나는 또 어딨어? 몸 받기 전에는 나는 있었을까? 없었을까?? 몸 받기 전에 있었어 없었어?(있었어요) 이 몸은 아닌데 무형인데 영은 있거든. 응. 근데 그것은 신기하거든! 불에도 안타. 근데 이게 연을 만나서 또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불생불멸 영생하는데 영생을 하면서 지은 업과 연에 따라서 지은대로 또 받아, 인과로. 이 영생하면서 인과로 받아. 그래서 서로 이렇게 맞물려있거든.
천도품 12장 정 일성(鄭一成)이 여쭙기를 [일생을 끝마칠 때에 최후의 일념을 어떻게 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온전한 생각으로 그치라.] 또 여쭙기를 [죽었다가 다시 나는 경로가 어떠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잠자고 깨는 것과 같나니, 분별 없이 자 버리매 일성이가 어디로 간 것 같지마는 잠을 깨면 도로 그 일성이니, 어디로 가나 그 일성이인 한 물건이 저의 업을 따라 한 없이 다시 나고 다시 죽나니라.] |
그러니까 천도품에 <최후일념은 어떻게 하오리까.> <온전한 생각으로 그쳐라.> 최후일념이 최초일념이 되지요. 니가 자고 깨는 것 같다.
천도품 13장 한 제자 여쭙기를 [영혼이 이 육신을 버리고 새 육신을 받는 경로와 상태를 알고 싶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영혼이 이 육신과 갈릴 때에는 육신의 기식(氣息)이 완전히 끊어진 뒤에 뜨는 것이 보통이나, 아직 육신의 기식이 남아 있는데 영혼만 먼저 뜨는 수도 있으며, 영혼이 육신에서 뜨면 약 칠·칠(七七)일 동안 중음(中陰)으로 있다가 탁태되는 것이 보통이나, 뜨면서 바로 탁태되는 수도 있고, 또는 중음으로 몇 달 혹은 몇 해 동안 바람 같이 떠돌아 다니다가 탁태되는 수도 있는데, 보통 영혼은 새 육신을 받을 때까지는 잠잘 때 꿈꾸듯 자기의 육신을 그대로 가진 것으로 알고 돌아다니다가 한 번 탁태를 하면 먼저 의식은 사라지고 탁태된 육신을 자기 것으로 아나니라.] |
천도품 13중에 보면 새로 몸의 상태를 알고 싶다. 그러니까 시기의 조만의 차이는 있어. 그러나 보통은 몸을 받는 순간 과거는 잊혀져요. 그런데 아까 늦게 탁태되는 경우가 있어, 이런 경우, 즉 중음에 머무는 기간이 짧잖아요. 그리고 전생이 많이 닦은 사람은 내생에도 가져가는 게 있죠? 지은 업 복 인연, 특히 삼대력도 가져간다 말이야. 서원도 가져가거든. 그런 분들이 이 생에 이 법을 빨리 알아봐. 수행을 해도 빨리 그 자리에 들어가. 그런데 안 해본 사람은 어렵겠죠? 이게?
자기가 어떤 가죽을 쓰냐? 아까 개 가죽을 쓰면 월월월~~ 하게 되는 거여. 전생에는 사람이였는데. 그죠? 이제 다시 욕심이 많아가지고 살생을 많이 해가지고 내가 소로 태어났나하면 음머~음머~ 하고 소 소리 하고있네, 소가죽 쓰고.
한번 연마해 보세요.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의 나! 또 이생을 마감하고 나서의 나! 는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있느냐? 제가 제일 큰 힌트를 준다면 유무초월의 생사문이여. 그리고 대소유무의 분별이 없어, 그 자리는. 이것을 이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 이 몸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작다고 할 수 있습니까?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크다고 할 수 없고 작다고 할 수 없고, 있다고 하자니 형체가 없고 없다고 하자니 이렇게 분명히 작용이 있다 이 말이여.
10. 사람이 깊이 잠들어 꿈도 없는 때에는 그 아는 영지가 어느 곳에 있는가. |
10. When a person is in deep, dreamless sleep, where is the numinous awareness that makes one sentient? |
자, 10장입니다. <사람이 깊이 잠들어 꿈도 없는 때에는 그 아는 영지가 어느 곳에 있는가.> 시간이 없어서 짧게 하겠습니다.
저를 보세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의식하고 있을 때가 있지요. 그러면 의식하고 있는 나가 있거든. 꿈을 꾸고 있어요. 그러면 꿈을 꾸는 나가 있잖아요. 그죠? 근데 꿈도 없어.
자 보세요? 똑같아요 이것하고. 뭐냐면? 내가 완전히 꿈도 없이 잠 들었어~. 몇 시에 일어나? 그냥 대종사님 일과로 말씀드릴께. 알아서 일어나시겠지만. 자 내가 5시에 알람을 맞춰, 그러면 5시에 한 번에 못 일어나죠, 알람이 요새 기계가 좋아져서 몇 번 울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몇 번을 울리게 해놨어. 근데 꿈도 없이 잠들었다가 어느 순간 두 번째나 세 번째나 네 번째나 다섯 번째나 어떤 번째나 하여간에 “응~~아~~ 일어나야해~~ㅠ” 아직 소리는 있고 아는 내가 없다가 어느 순간! 아는 내가 나타났어. 이게 영지야. 그러면 그 듣는 나가 나타나기 전에 그 영지는 어디 있냐 이 말이여. 어딨어요? 뜨르릉~ 듣는 영지가 알기 전에, 아직 소리만 있고 영지는 못 알아 들었어, 그때가 있지요? 그때 이 아는 영지는 어디 있냐? 이 말이여. 지금 이렇게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영지가 어딨어? 잠 자는가? 안드로메다에 갔나? 쉬나? 그 영지도 귀 막고 자는가? 어디가 있습니까? 요것이 이제 다음 의두요목에 개령과 대령에서 같이 또 해볼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자 우리가 이 아는 이것은 어디에 있냐. 없으면서 있어요. 실체가 어딨냐? 실체는 모르겠고 작용은 있네 이게. “아~~ 알람이야~~ 아~~! 알람이야 ㅠ ” 이렇게 하는 작용은 있어. 그런데 무엇이 들어서 이렇게 알지? 한번 연마해 보시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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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선교도님 타이핑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혜롭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