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걸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는 식도락(食道樂) 문화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 각종 포털사이트나 사내 식도락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인구가 20만 명이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여행 패턴도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보다는 맛을 찾아나서는 음식 기행이 늘어나는 추세다. 최고의 요리를 만들거나 맛보며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가장 깊게 자리 잡은 음식은 어떤 것일까. 과연 그들이 최후의 만찬을 해야 한다면 어떤 음식을 메뉴로 선택할까. <Why?>가 국내 음식문화를 이끄는 인사 12명에게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꼭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선택은 쉽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음식을 요리했고, 맛을 봤기 때문일까? 음식의 대가들은 거의 대부분 단번에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거나, 심지어 며칠 후에 답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대다수가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먹을거리를 최후의 음식으로 선택했다. 몇몇은 요리는 정말 먹고 싶은 게 없다며 귤이나 술지게미를 이 세상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은 맛이라고 말했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추억 전세계에 퍼져 있는 힐튼 체인 가운데서 현지인으로는 첫 총주방장에 오른 박효남(46) 힐튼호텔 상무. 그는 죽음 직전에 먹고 싶은 마지막 음식으로 군감자를 꼽았다. 그는 강원도 고성에서 중학교 1학년까지 보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소를 끌고 풀을 먹이러 나갔다. 하지만, 소 먹이는 일보다 자신들이 먹는 일이 더 급했다. “감자 서리를 해서 땅에 묻고, 나뭇가지를 모아 그 위에 불을 때죠. 나중에 땅을 파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가 나옵니다.” 요리경력 29년의 박 상무는 요리라는 것은 만드는 사람도 행복하고, 먹는 사람도 행복해야 한다며 어린 시절 감자를 구워 먹을 때 두 가지 행복을 모두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 요리가 전공인 이민(46) 웨스틴조선호텔 상무는 순대국밥을 선택했다. 그는 최후의 만찬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음식을 만들면서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며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외국에 가서도 소문난 음식을 모두 찾아 다니며 먹다 보니 하루 저녁에 세 종류의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시장에서 파는 순대국밥. 이 상무는 고등학교 졸업한 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던 까닭에 포장마차를 하며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왕십리 중앙시장에 장을 보러 다녔죠. 그때 먹었던 따끈한 순대국밥이 그리워 시간이 나면 가끔 찾아갑니다.” 요리경력 23년의 이 상무는 최고의 향신료는 정성이라며 국밥 한 그릇이 맛있는 것도 내장을 푹 고을 때의 정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4년 노동부가 선정하는 요리 명장에 뽑혔던 정영도(55) 프레지던트호텔 조리이사는 술지게미(술을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를 꼽았다. 지난 1969년 배가 고파 접시닦이로 호텔 주방에 들어간 지 35년 만에 임원이 됐다. 포항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까지 2㎞를 걸어다녔다. 배가 고프던 시절, 학교에서 500m쯤 떨어진 바닷가에 있는 양조장에서는 술지게미를 모래사장에 버렸다. 정이사는 친구들과 말라버린 술지게미 주워 모래를 털고 먹었다며 겨울철에 학교에 가서 나무로 난로 불을 때면 술기운이 올라와서 꾸벅꾸벅 졸다가 선생님이 던진 분필에 머리를 숱하게 맞았다고 회상했다. 방앗간에서 주워온 등겨로 만든 등겨떡(그는 사투리로 딩게떡이라고 했다)과 술지게미를 놓고 고민하던 그는 가슴 찡한 추억이 담긴 술지게미를 마지막으로 먹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전국의 맛집을 발로 뛰며 소개하는 음식평론가 고형욱(41)씨는 실제로 뭔가 먹고 싶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먹을 수 있는 요리에 대한 경험은 거의 다 해본 극단까지 가버린 불쌍한 미식가의 최후일 것이라며 뭔가 억지로 꼭 먹고 죽어야 한다면 귤을 먹겠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제주도. 어렸을 때 그는 귤을 따는 부모님을 따라 과수원에 가서 혼자 하루 해를 넘겨야 했다. 그의 입에선 팔삭, 병귤, 산물(산귤),진귤, 온주… 등 귤 이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고씨는 기억 속에 제일 오래 남아있는 귤에 둘러싸여 질리도록 먹다가 가고 싶다고 말했다. 케이블방송 MBC 에브리원의 요리 프로그램 쿡 앤 톡(Cook & Talk)의 진행을 맡고 있는 탤런트 김호진(37)씨는 어렸을 때 명절이나 잔치 때만 먹을 수 있었던 소갈비찜에 쌀밥을 먹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 2002년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시작으로 일식·중식·양식·복어조리사 자격증까지 딴 요리 전문가다. 그는 추석 때 상에 오른 갈비를 친척들과 나눠 먹다 보면 배불리 먹지 못했다며 그 국물에 밥을 비벼 먹었을 때의 환상적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신인 탤런트 시절 친구들과 집에서 갈비찜을 해먹다가 압력솥이 터지면서 얼굴에 화상을 입는 사고까지 당했지만, 갈비찜의 매력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육즙과 간장의 향이 어떻게 어우러지느냐가 갈비찜의 맛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정이 담긴 부모님의 손맛 한식요리전문가 박종숙(49)씨는 아버님이 해주시던 감자전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진 뒤 줄곧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컸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가끔 아버지가 해주던 특식. 참새를 잡아 다진 뒤 불고기 양념을 해서 너비아니식으로 먹는 요리, 깡통을 편 뒤 못으로 구멍을 숭숭 뚫어 만든 임시 강판에 감자를 갈고, 마당에 있던 부추를 넣어서 부쳐 먹던 감자전…. 한참을 망설이던 박씨는 감자전이 좋겠다고 답했다. 일식요리 전문가 안효주(49) 스시 효(孝)사장의 별명은 미스터 초밥왕이다. 초밥을 만들기 위해 밥알을 딱 잡으면 영락없이 350알이다. 도통한 일식 요리의 달인이 실제로 즐겨 먹는 음식은 한식이라고 했다. 국내 어지간한 한정식집은 다 가봤다고 한다. 그가 최후의 만찬으로 선택한 음식은 고추장 돼지불고기였다. 역시 식당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남원이 고향인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요리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께 비법을 전수받았다고 했다. 돼지고기 삼겹살을 두툼하게 썰어서 먼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낸다. 기름기를 빼기 위한 과정이다. 그 다음에 설탕, 물엿을 포함한 갖은 양념을 한 고추장에 버무린 뒤 요리하는 것이다. 생김치 겉절이를 곁들여야 완성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겠다 12명의 음식전문가들 가운데는 두 명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그 두 가지 요리는 여러 가지 재료가 한데 어우러진 모듬식 요리였다. TV드라마 대장금의 음식 자문을 맡았던 한복려(60) 궁중음식연구원장은 사람들이 신선로라고 부르는 열구자탕(입을 즐겁게 해주는 탕)을 만들어 먹고 싶다고 했다. 한 원장은 신선로는 다 된 음식을 모아서 또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며 색의 조화, 그릇의 특별함, 그 자리에서 끓여서 내놓는 특징 등을 갖춘 한국 궁중 음식의 대표라고 말했다. 한 원장은 요리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라며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교감이 있어야 제대로 된 요리라고 설명했다. 신라호텔 조리담당 임원인 후덕죽(58) 상무는 화교(華僑)다. 1994년 삼성그룹이 도입한 전문임원제도에 따라 요리사 최초로 전문이사 자리에 올랐다. 곰발바닥 요리, 불도장(佛跳牆) 등 최고급 요리부터 빨간 자장면, 된장 자장면에 이르기까지 300가지가 넘는 음식을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냈다. 죽기 전에 먹을 음식을 왜 물어보느냐고 면박을 주던 그는 이틀 뒤 전화 통화에서 내가 만든 불도장을 먹겠다고 했다. 불도장. 수행중인 승려가 그 냄새를 맡고 담을 넘었다는 이름의 유래에서 보듯 중국음식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마른 전복, 생선부레, 사슴 힘줄, 송이버섯, 마른 관자, 오골계, 멧돼지고기, 배추, 삭스핀 등 10가지 이상 재료가 들어간다. 1980년대 홍콩에서 불도장을 처음 먹었다는 그는 항아리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진미를 보면서 무척이나 놀랐다며 불도장 한 그릇을 먹으면 세상 음식을 다 먹은 셈이라고 말했다.
잊을 수 없는 맛 음식 대가들 가운데도 음식에 중독된 이들이 있었다. 개그맨이자 MC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박수홍(37)씨는 3년 전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자장면 마니아인 그는 자장면을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했다. 요즘도 일주일에 평균 3번 이상 자장면을 먹는다. 그는 어렸을 때 특별한 날에만 먹던 자장면의 맛을 잊을 수 없었다며 군대에 있을 때도 자장면이 제일 먹고 싶었고, 지금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음식전문가인 신계숙(44) 배화여대 중국어통번역학과 교수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요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죽기 전에 먹는 것은 물론이고, 죽은 다음에 무덤에 함께 묻어달라고 하고 싶은 요리가 있다고 답했다. 신 교수의 선택은 훠궈(火鍋)였다. 훠궈는 중국 쓰촨(四川)성의 음식이다. 짐을 나르던 인부들이 집에서 음식을 들고 나와 양재기에 물을 끓여서 익혀 먹던 것이 유래라고 한다. 기본 베이스는 닭소스인데 오리와 돼지 살코기, 돼지뼈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육수만으로도 몸보신이 된다는 것이 신 교수의 설명이다. 돈 있는 사람은 전복을 넣어 먹으면 되고, 없는 사람은 오징어를 넣어 먹으면 되기 때문에 신분이나 경제적인 능력 때문에 제약을 받지 않는 것도 매력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중국의 총칭(重慶)에서 4박5일 동안 훠궈를 점심, 저녁으로 먹고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저녁 메뉴로 먹었을 정도로 중독됐다고 했다. 빅마마로 알려진 요리연구가 이혜정(51)씨는 헝가리의 구야쉬(Goulasch·독일어로 굴라쉬라고도 발음한다) 수프를 마지막 요리로 골랐다. 이씨가 구야쉬 수프를 처음 먹은 것은 혼자 동유럽 여행을 하던 1990년대 초. 시청의 안내를 받아 묵었던 민박집 주인이 커다란 냄비에 끓여낸 헝가리 전통요리를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을 한 달 동안 헤매느라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먹은 요리의 맛이 그렇게 그리워했던 육개장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다. 소고기 덩어리와 감자, 피망 양파, 토마토 등의 야채를 넣고 파프리카로 양념하여 만든 매콤한 요리다. 이씨는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큰 냄비에 하나 끓여서 먹곤 한다며 죽어서 귀신이 되면 음식도 못 먹을 텐데 구야쉬 수프나 양껏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