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주변에 소나무와 바위가 많아 솔바우 마을로 불리웠으며, 호수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수의 낚시터가 산재(散在)한 이곳 "솔바우마을"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때묻지 않은 농심(農心)이 살아 숨쉬는 마을
38°선상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춘천댐, 춘천호와 연접한 지역으로서 깨끗하고 수려한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으며 애향심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의 화합속에 자연과 함께하는 농심(農心)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이곳 마을은 일찍부터 논과 밭을 생활터전으로 대대로 이어온 마을로서 경종(耕種)농업 위주로 경작하던 지역이 새농촌건설운동을 위한 지역커뮤니티가 형성되어 마을단위 자체협의회, 신기술습득등 소득증대 및 지역차별화를 위하여 영농의 특화를 추진하고 있음.
지역의 여건과 특성을 살린 5개분야의 작목반이 조직이 되어 총 202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정기적인 자체모임과 신기술 습득을 위한 선진영농견학등 획기적인 소득증대 효과를 거양하고 있으며 고품질·무공해 농특산물 생산을 통한 직거래, 1농가 1특화작목 생산으로 부채없는 마을로 육성 2002년 강원도 선정 "새농촌건설우수마을"의 영예를 얻기도 하였음.
농촌정보화를 미리 준비한 마을
인터넷 사용의 보편화와 정보의 생활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2000년부터 농한기를 이용한 자체 정보화교육을 운영하였으며, 특히 지역에 거주하는 대학교수(서울대 송호근 교수, 한림대 박근갑 교수) 를 초청하여 농촌정보화의 필요성에 대한 특별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전 주민이 PC를 활용할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기 위하여 마을자체 기금 7,000만원으로 PC 35대를 구입, 가구 및 정보화교육에 활용하는 등 타마을보다 한발 앞서 정보화를 위하여 많은 준비를 한 결과 2001년 행정자치부로부터 정보화시범마을로 선정되었음.
솔바우 마을 마을역사
솔바우 마을은 이미 맥국시대에 북변지역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신라시대에는 우리수주의 속현 난산현(蘭山縣)이 되었으며 그 후 고난산현(古蘭山縣)으로 불리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고룬으로 불리다가 행정구역명이 생기면서 송암리(松岩里), 고탄리(古呑里), 인람리(仁嵐里)로 분할되었다.
송암리 (松岩里) 송암리(松岩里)는 본래 춘천군 북내 이작면(北內 二作面)의 지역으로서, 솔과 바위가 많으므로, 송암(松岩)이라 하였다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뒷골, 삽수리, 상송암, 재골을 병합하여 송암리(松岩里)라 하였다.
고탄리 (古呑里) 고탄리(古呑里)는 본래 춘천군 북내 이작면(北內 二作面)의 지역으로서, 이 부근인 고성리(古城里)와 인람리(仁嵐里)까지를 통틀어 고룬이라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습, 구마니, 양지울, 응달말, 적두니를 병합하여 고탄리(古呑里)라 하여 사북면에 편입되었다. 고탄이라는 지명은 옛 지명인 고난산현(古蘭山縣)의 <고난>이 유음법칙에 의해 <고란>으로 되고 다시 <고룬>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부터 <고탄:古呑>으로 불리게 되었다.
인람리 (仁嵐里) 인람리(仁嵐里) 본래 춘천군 북내 이작면(北內 二作面)의 지역으로서, 성종(成宗)때 시인 망헌(忘軒) 이주의 인람정(仁嵐亭)이 있었으므로 인람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탄하리(古呑下里) 일부를 병합하여 인람리(仁嵐里)라 하여 사북면에 편입되었다.
해방이 되면서는 38선이 이 지역을 통과하여 일부는 북한지역이 되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치명적인 전화를 입기도 하였으나 예로부터 살기 좋은 자연환경을 토대로 조상 대대로 인심 좋고, 근면함 그리고 미풍양속을 계승하여 오늘에 선진농촌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되니 행복한 미래가 약속되는 마을이다.
솔바우 마을 지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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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뎃구렁 : 한가운데 있는 골짜기
개적심터 : 가물 때에 개를 잡아서 물에 적시며 제사를 지내면 비가 온다고 함.
갬벌 : 뒷골 안산 밑에 있는 평평한 곳으로 개암나무가 많았다
귕골 : 송암리에 있는 골짜기로 쇠 귕처럼 생겼다
무넷빙 : 촛대봉 건너편에 있는 벼랑
삿갓봉 : 산이 삿갓모양이라 함
송공지뫼 : 송씨의 묘. 비석에 송공지묘라 새기었음
송공지묏구렁 : 송공지뫼가 있는 골짜기
싸리아칫고개 : 가일리로 가는 고개
싸리재 : 송암리에 있는고개
움텃골 : 제달골 옆에 있는 골짜기로 움집이 있었음
응달말 : 응달쪽에 있는 마을
촛대봉 : 촛대처럼 삐쭉한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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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탄리 (古呑里)
가마소 : 지금은 춘천호에 수몰되었음
고룬고개 → 새밑고개
고습안산 : 고습앞에 있는 산
괴산 : 고양이처럼 생겼다 하여 고양이산의 준말로 생긴 이름이며 그 앞에 쥐산이 있음
능장골 : 송화학교 남쪽 골짜기로 예전에 지위가 높은 사람의 무덤이 있었다는 골짜기
다릿골 고개 : 가일리 다릿골로 가는 고개
뒤버덩 : 적둔이 동쪽에 있는 산비탈 넓은 버덩
산제당골 : 예전에 산제당이 있던 골짜기
성문안 : 고탄에서 신북읍으로 바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옛날의 성터 안에 있는 고개
쇠파니 : 옛날 쇠를 팠다는 골짜기. 지금도 굴이 남아 있다
장망터 : 투구봉 부근에 있는 골짜기
절골 : 옛날에 양지울 남서쪽 성문안고개 산중턱에 절이 있던 골짜기
취큰최세가지 : 새밑고개 북서쪽 골짜기
인람리 (仁嵐里)
거리말 : 지금은 춘천댐 저수지 물속에 묻혇음
뭇푸레고개(수청령) : 인람리 남쪽에 있는고개
사평고 : 떼둔지 다리
삼막골 : 인삼캐는 사람의 막이 있었음
설들아웃골(뒴바웃골) : 인람리에 있는 골짜기,큰 바위가 있음
속새골 : 속새라는 풀이 많던 골짜기
수청령 : 뭇푸레고개
용모번드기 : 인람리에 있는 버덩
점말(점촌) : 예전에 옹기점이 있었음
점촌 : 점말
솔바우마을 메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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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는 장을 담그는 기본재료이며, 콩,보리, 밀, 쌀 등을 익혀 띄워 만드는데, 장에 따라 메주 만드는 법이 다르다. 두장은 시와 말장으로 나누는데 말장이 오늘날의 메주로서 콩을 삶아 찧어서 덩이를 만들어 발효시킨 것이다. 우리나라 기후는 좋은 장을 담글수 있는 메주를 자연발효 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추운겨울 김장과 함께 한집안의 음식행사였던 메주는 온 집안을 구수한 냄새로 가득 퍼지게 했다.
메주의 기원
메주의 기원은 한국에서의 초기 철기시대 말기에서 원삼국시대 초기에 걸쳐 막메주인 말장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이 중국의<사민월령>에 말도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그 후 6세기의<제민요술>에까지 이어졌다. 고려시대에는 장자체를 메주(미순)라 하였는데 조선초기에 그 뜻이 달라져서 말장(며주)이라 하였다. <훈몽자회>(1625)에서는 ‘장’자체를 일반적으로 감장, 간장이라 하였고, 또 액즙 상태의 것만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말장은 곧 '며주’,‘메주’를 한국에서는 소금물에서 숙성시켜 건더기는 된장, 즙액은 간장을 이용한다.
메주의 종류
메주의 종류에는 간장용 메주,고추장 메주, 고추장용 떡메주, 절메주, 집메주 등이 있다. 간장용 메주를 만드는 방법은 콩 ->수침(실온에서 12시간)->삶음->절구에 찧음->성형->겉말림(2~3일간)->재우기(짚을 포개어 씌움,4주간)->햇볓에 말림-> 다시 재우기(2개월)순으로 한다.
메주 만드는 원리
메주가 만들어지는 원리는 메주덩이를 따뜻한 곳에 보관하는 동안 볏짚이나 공기로부터 여러 가지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들어가 발육하게 된다. 이에 착생된 미생물이 콩의 성분을 분해할 수 있는 단백질분해효소와 전분분해효소를 분비하고 간장에 고유한 맛과 향기를 내는 미생물이 더 번식한다. 절메주는 조선시대 궁중에 바치던 메주로, 봄에 검을 콩으로 메주를 쑤어 보통 집메주보다 4배 정도 크게 넓적한 전석처럼 만들어 새 품을 베어가 메주 사이에 깔고 단시일에 까맣게 띄운 메주이다. 절메주는 훈조계에서 맡아 공물로 바쳤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던 절메주에 대하여 집메주는 일반가정에서 만든 메주를 가리킨다.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누런 메줏빛은 시골에서 자란 이의 향수를 자극하는 빛깔이지만 점점 우리 주변에서 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솔바우마을 메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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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언제부터 메주를 쑤어왔을까? 이는 콩의 유래로 부터 그 답을 구할수 있다. 우선 콩의 원산지는 야생콩의 자생 지역이면서 야생콩, 중간콩, 재배종의 각형이 가장많은 곳이라 보고 있는데, 이러한 조건에 가장 잘 부합되는 곳이 바로 만주남부 지역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작고한 이성우 박사가 많은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 유전학적 고증 등을 통해 4000년 전에 벌써 콩을 재배했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한 바 있어 그 유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일찍부터 재배된 우리나라의 콩은 중국에도 전해졌다. 이때가 기원전 7세기경이니, 중국의 '시경'에는 '제나라 환공이 산융에서 비로소 콩을 중국에 가져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콩 문화의 발상지였던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이 콩으로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었던 것이다. 물론 이때 장이라는 개념 자체는 고대 중국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중국의 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담그는 우리의 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주례'의 기록을 통해 당시 중국의 장이 어떠한 것이었나 하는 것을 파악해보기로 한다. "장에는 해와 혜가 있는데, 해는 새고기, 짐승고기, 물고기 할 것 없이 어떤 고기라도 이것을 햇볕에 말려서 고운 가루로 하여 술에 담그고 여기에 조로 만든 누룩과 소금을 넣어 잘 섞어 항아리에 넣고 밀폐하여 100일간 어두운 곳에서 숙성시켜 얻은 것이며, 혜는 재료가 해와 같으나 청매즙을 넣어서 신맛이 나게 한 것이다."
위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중국의 장은 식해의 일종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선조들이 중국이 장 가공 기술을 콩에 도입하여 전혀 새로운 장의 형태를 재창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기를 언제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중국 문헌에 기록된 메주
290년경에 만들어진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고구려인의 장담그기, 술 빚기의 솜씨가 훌륭하다고 하여,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발효식품을 잘 만들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무문토기 유적지에서 발효식품을 담았음직한 뚜껑 있는 항아리가 나오고, 고구려의 안악 고분 벽화에 발효 식품을 갈무리 한 듯한 독이 우물가에 보이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대략 부족국가 말엽에서 삼국시대 초기에 메주를 쑤어 장을 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로 오면 메주는 무려 20여종에 달하는 장(간장, 된장, 고추장, 청장, 즙장,담북장, 청국장, 청태장, 소두장 등등)의 원료로 쓰이고 있다.
이웃나라의 식생활에 큰 영향을 준 우리나라의 메주
우리 민족 특유의 콩 가공품인 메주는 이웃 나라인 중국에도 전래되었다. 중국인들이 고구려 사람들을 보고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한 점, 발해의 특산물로 메주를 꼽은 점, 진, 한대 이전까지만 해도 메주를 외국의 산물로 본 점, 메주 냄새를 고려취라고 한 점 등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메주가 전래되면서 중국에서는 종래의 장이었던 식해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장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메주는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전래되었다. 그 증거로 701년에 저술된 일본의 '대보율령'에 시란 용어가 나오고 있다. 또한 771년에 저작된 '봉사일절경소고삭해'에는 콩 5말로 메주를 만들고 이것을 소금물로 담가 간장 4말 2되를 얻는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장 만드는 원리와 일치함을 보여준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콩 문화의 발상지답게 콩 가공품인 메주를 만들어 이웃나라에까지 전래하여 그들의 식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솔바우마을 메주의 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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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에 있는 주성분은 단백질과 지방 등이다. 콩 속의 단백질 중에서 필수아미노산이 40%이고, 단백가는 약94로서 식물성 단백질 중에서는 가장 양호한 편이다.
실지로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익(李瀷.1681-1763)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星湖僿設)>(1723년)에서 콩의 유익성에 대해, "콩은 오곡의 하나인데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곡식이란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면, 콩의 힘이 가장 큰 것이다. 후세 백성들은 잘 사는 이는 적고 가난한 자가 많으므로, 좋은 곡식으로 만든 맛있는 음식은 다 귀한 신분의 사람에게 돌아가 버리고, 가난한 백성이 얻어 먹고 목숨을 잇는 것은 오로지 이 콩 뿐이었다. 값을 따지면 콩이 쌀 때는 벼와 서로 맞먹는다. 벼 한 말을 찧으면 4되의 쌀이 나게 되지, 이는 한 말 콩으로 4되의 쌀을 바꾸는 셈이다. 손실에 있어서는 5분의 3이 더해지는 바 이것이 큰 이익이다. 또 맷돌에 갈아 즙의 액만을 취해서 두부를 만들면, 남은 찌꺼기가 많은데 끓여서 국을 만들면 구수한 맛이 먹음직하다. 싹을 내서 콩나물로 기르면 몇 갑절이 더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21세기 건강식인 콩과 발효식품
콩은 대체적으로 인체에 유익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날콩에는 tripsin inhibitor나 알파-amylase inhibitor가 있어서 이것이 단백질의 소화흡수나 녹말의 소화흡수를 저해하기도 한다. 콩지방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서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동맥경화를 막는다. 또 인지질의 일종인 lecithin은 노화방지나 콜레스테롤의 제거 등에 효과가 있다. 콩의 daponin도 노화방지, 지방의 합성억제, 지방분해의 촉진 등에 도움을 준다. 또 콩에 많이 들어 있는 식물섬유는 대장암 예방효과가 있고,검은 콩의 saponin과 색소에는 강력한 해독작용이 있다.
콩의 지방을 구성하는 지방산을 보면, 약 59%의 linoleic acid와 약 10%의 linolenic acid, 약 18%의 oleic acid가 있다. 이들 지방에 대해서 인체 비만에 대한 영향을 조사한 연구를 보면, linolenic acid의 경우 현저한 비만억제효과가 있고, 그 다음이 linoleic acid임이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콩으로 메주를 쑤어 만든 우리의 장류는 어느 식품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한 식품임을 알 수 있다.
과거 고구려인들을 일컬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한 점에서 보듯이 된장은 삼국시대부터 만들어 왔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초기의 된장은 간장과 된장이 섞인 것과 같은 걸쭉한 장이었으며, 메주를 쑤어 몇 가지 장을 담그고 맑은 장도 떠서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민요술>에 따르면 '콩을 쪄서 볕에 말리고 열탕에 넣어 껍질을 벗긴 것에 소금, 황.,밀로 만든 가루, 향초를 섞고 발효시켜 소금물에 넣어 자주 저어주면 20일에 먹을 수 있고, 맛 좋은 것은 100일이 지나야 한다' 고 만드는 방법을 기록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장 담그는 법에 대한 구체적인 문헌이 등장하는데, <구황보유방>에 의하면, 메주는 콩과 밀을 이용하여 만들어져 오늘날의 제조법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팔진미의 주인' 즉 음식 맛을 낼 때 가장 으뜸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된장을 일컫는 말이다.
"5가지 덕"으로 비유되는 된장의 맛
된장의 '된'은 되직한 것을 뜻하는데, 메주를 발효시킨 뒤 그 물(간장)을 뺀 남은 메주덩어리로서 조미료로 음식의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기본식품일 뿐만 아니라, 식물성 단백질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식품이다. 된장은 영양이 풍부하여 100g당 열량은 128Kcal이고,단백질 12g,지방 4.1g, 탄수화물14.5g,회분,철분,인,칼슘,비타민까지 함유되어 있다. 옛 문헌을 보면 된장의 맛을 5가지 덕으로 비유하는데, 다른맛과 섞여도 제맛을 잃지 않는 단심(丹心) 오래 두어도 변질되지 않는 항심(恒心) 기름진 냄새를 제거해주는 불심(佛心) 매운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잘 조화되는 화심(和心)으로 높이 평가했다.
"정성의 산물"인 된장
된장은 담그는 시기를 중시한다. 때를 놓치면 장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보통 입춘 전, 추위가 풀리기 전인 이른 봄에 담가야 장맛이 좋다고 한다. 시기와 함께 중요한 것은 독이다. 독이 더러우면 장맛이 변한다고 하여 장 담그기 일주일 전부터 하루에 두 번씩 맑은 독을 씻어 주어야 한다. 바로 된장은 정성의 산물인 것이다.
간장은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콩으로 만들어지는 발효식품으로서 불교의 보급과 더불어 육류의 사용이 금지된 상태에서 발생하였다.
간장의 '간'은 소금기의 짠맛을 의미하며 <규합총서>에 '지령'이라 표기되어 있고, 서울말로 '지럼'이라 하였다.
<조선조리제법>에 의하면 장을 맛있게 담그는 방법으로 쇠고기를 겉만 살짝 익히거나 또는 날 것을 도라지, 인삼과 함께 바닥에 숯을 달궈서 넣고 꿀을 한 사발 붓고 메주를 얹어 장을 담그면, 장맛이 좋고 장을 다먹고 난 다음에 바닥의 고기를 썰어 먹으면 맛이 좋다고 전해진다.
간장은 단백질을 공급하며 오래도록 저장이 가능한 식품이고 음식을 만드는 데 기본이 되는 음식으로서 음식생활에 있어 기여한 바가 크다.
간장의 종류
우리나라의 장은 주로 콩메주를 소금물에 담가서 만들어지는 간장과 된장이다. 간장은 된장에서 추출된 용액이다. 간장을 여러 해 묵힐수록 빛깔이 짙어지고 감칠맛이 세어진다. 과거 궁중에서는 '절메주'를 써서 간장을 담가 몇 해를 묵혀 두었다. 그러면 메주가 푸석푸석할 정도로 진이 다 빠지게 되는데 이것은 건져내고 검고 단 간장을 빼내는데 이것을 진장이라 한다.
간장은 다른 음식물에 첨가되는 양념류이므로 먹기 전에 투입하는 것이 좋으며 돼지고기나 생선류를 요리할 때 사용하면 맛도 증가되고 영양도 보충되며 육질도 쫄깃하며 특유의 냄새도 제거할 수 있다. 보통 된장을 덜어낸 남은 물을 간장으로 사용하는데 맛있는 간장을 얻기 위해서는 따로 장을 만드는 것이 좋다.
조선시대 고추의 수입으로 인해 고추장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추장은 우리나라역사에 있어 새로운 창조물의 하나였다. 고추장제조에 관한 내용은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되어 있다. 막장과 같은 형태의 장으로서 말린 생다시마 등을 첨가하여 맛을 좋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때 타 지역에 비해 담그는 법이 독특했던 순창고추장은 전복, 큰 새우, 홍합, 생강 등을 첨가하여 맛이 월등하여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한다.
<역주방문>의 고추장 담금법에는 보리쌀을 섞는 고추장 담금법이 기록되어져 있고 <규합총서>에서는 조금 더 진보되어 고추장 메주를 따로 만들어 담그는 방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어 현재의 고추장 담금법과 비슷했던걸로 추측되어진다. 그 뒤 점차적으로 고춧가루의 사용량이 늘어나 현재와 같이 식성대로 소금물로 간을 맞추는 방법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힘 "매콤한 고추장"
고추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성을 지닌 음식의 하나다. 한국의 힘은 언제나 매운맛에서 시작된다. 고추장은 콩으로부터 얻어지는 단백질원의 구수한 맛, 찹쌀, 멥쌀, 보리쌀 등의 탄수화물에서 얻어지는 당질과 단맛, 고춧가루로부터 붉은 색과 매운맛, 간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 간장과 소금으로부터는 짠맛이 한데 어울린, 조화미가 강조된 영양적으로 우수한 식품이다. 고추장은 된장 못지않게 단백질, 지방, 비타민B2, 비타민C, 카로틴 등과 같은 유익한 영양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청국장은 콩 발효식품류중 가장 짧은 시간에 완성시킬 수 있고 그 냄새가 특이하고 영양적 경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콩의 섭취방법으로 전해져 왔다.
옛 문헌 <증보산림경제>에 의하면 '대두를 잘 씻어 삶아서 고석에 싸서 따뜻하게 3일간을 두면 생진이 난다'고 하여 청국장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또한 <산림경제>에서 '진국장'이라는 명칭이 처음 거론되었으며, 제조법도 실려있다. 전시에 부식으로 단시간 제조가 가능했기 때문에 '진국장'이라는 설과, 청나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의미로 '청국장'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라도나 경상도 즉 남부지방에서 식용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효능의 차이를 가져오는 발효균
청국장은 된장의 한 종류이지만 발효세균이 다르다. 된장은 누룩곰팡이 주 발효균이나 청국장은 콩과 볏집에 붙어있는 Bacillus subtilis균이 주 발효균이다. 이 균은 장내 부패균의 활동을 약화시키고 병원균에 대한 항균 작용이 인정되며 부패균의 활동을 억제함으로서 부패균이 만드는 발암물질이나 암모니아, 인돌, 아민 등 발암촉진 물질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청국장은 각 지방 또는 가정마다 제조방법이 일정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 볏짚을 이용할 때 생기는 고초균 양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다르다. 고초균이 많은 볏짚으로 담글때는 청국장이 맛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맛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부패, 변질될 가능성도 높다.
메주 보관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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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잘 일어낸 콩을 큰 가마솥에 넣고 푹신 삶아서 찧어, 목침만한 메줏덩이를 짓는다. 이것을 깨끗한 짚으로 엮어 아랫목에 놓거나 대청의 시렁에 매어 달아 띄우면, 숙성/발효가 되면서 한국인 식탁의 기본 양념인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드는 재료인 메주가 된다.
잘 띄어진 메주빛깔
처음 달아맨 메주는 메주콩의 빛깔보다 약간 짙은 누런빛이다. 그런 메주가 시간이 지나면서 황동색, 적동색으로 변하면 잘 띄워지고 있다는 표시가 된다. 그게 아니라 청동색, 오동색으로 변하면 메주가 썩거나 곪고 있는 상태임을 우리의 어머니들은 메주의 색깔을 보고 구별해 냈다.
발효가 되어 잘 띄워진 메주는 흰 색이면서 갈색 빛을 띄며, 흰 곰팡이가 겉으로 나온 것이 좋고 속은 황갈색이 좋다. 메주가 잘 띄워져야 장맛이 좋은데, 메주가 검은 색을 띤것은 잡균이 부패를 일으킨 경우로 장 담궜을 때 맛이 쓰고 짜다. 메주에는 이로운 곰팡이인 누룩 곰팡이가 생기는데 잘못하면 푸른 곰팡이가 생기기가 쉽다. 이것을 방지해주는 가장 큰 비결은 짚에 있다. 우리조상님들 지혜에 탄복을 하게되는데 이 짚이 바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는 것이다. 청국장 만들어 보신분들께서는 어떨 때는 잘 되다가 어떤때는 전혀 되질 않는 경우를 많이 겪으실것이다. 바로 이 짚을 속에 넣고 띄우면 실패가 거의 없다. 요즘 도시에서는 메주를 만들 수가 없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도시에서 메주를 직접 만드는 가정을 쉽게 볼 수 없는데 아마 이 곰팡이 생성에 이롭지 못한 환경탓이 아닌가 싶다. 발효가 끝난 메주는 통풍이 잘되는곳에 저장했다가 사용한다.
솔바우메주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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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간강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메주가 좋아야 한다. 메주는 새 콩이 나오는 가을에 쑤어 잘 말려야 하므로 음력 10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 쑤어야 좋다고 했다. 9월과 12월에는 메주를 쑤지 말라고 했는데 그까닭은 9월에 메주를 쑤면 메주가 너무 많이 뜨게 되고 12월에 쑤게 되면 메주가 제대로 뜨지 않게 되어 장맛이 없기 때문이다. 맛있는 메주가 되기 위해서는 콩이 깨끗해야 한다.
1.메주콩 찧기
먼저 콩에 들어있는 가투(벌레먹은 것과 기형적으로 생긴 콩)와 이물질을 잘 가려낸 후 콩을 그릇에 담아 물을 붓는다. 뜨는 콩은 바구니를 놓고 따라내고 다시 물을 붓고 세게 저어 가면서 씻는다. 씻은 물을 따라내기를 세 차례한 후에 다시 콩을 문질러 씻는다. 문질러 씻는 것도 세 차례하고 잘 일어 행군 후 깨끗한 물에 담궈 둔다. 물에 담궈둔 콩이 불은 후에는 콩을 삶는데 먼저 물을 끓인 후 끓는 물 속에 콩을 넣는다. 그 까닭은 솥 밑에 콩이 눌어 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콩을 삶을 때에는 특히 삶는 물이 넘지 않게 솥뚜껑에 찬물을 끼얹어 가면서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삶아야 한다. 서너번 끓으면 불을 줄여 콩이 무르도록 서서히 삶는다. 콩이 갈색으로 변하고 손으로 만져보아 뭉개질 정도가 되면 삶은 물에 윤기와 찰기가 도는데 이 때 콩을 소쿠리에 건져 물을 바쳐준다. 콩은 뜨거울 때에라야 잘 찧어지기 때문에 물이 빠지고 나면 곧 절구에 넣고 찧는다. 콩의 형체가 완전히 부서지고, 찧을 때 공이가 메주콩에 박혀 잘 빠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을 찧어진 것이다.
2.메주성형
찧은 콩으로 메주를 만들 때 일정한 크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바가지나 됫박으로 재어 만드는 것이 좋다. 찧은 콩을 도마와 같이 단단하고 바른 물건 위에 놓고 그 위에서 양 손바닥으로 사방팔방을 반듯반듯 세게 두르러주면서 뭉쳐야 한다.
3. 메주 띄우기
메주가 만들어지고 나면 우선 세워두고 하루 이틀쯤 볕을 쬐어 메주 겉몸의 물기가 걷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런 뒤 따뜻하게 불을 지핀 방에 짚을 깔고 메주가 서로 붙지 않게 해야 한다. 메주가 잘 뜨게 하기 위해서는 3,4일 간격으로 메주를 돌려 주어야 하며 공기가 약간 통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너무 덮어 씌워 공기가 잘 통하지 않으면 검은 곰팡이가 쓸고 메주에 물기가 돌게 된다. 장냄새가 약간 나면서 노르스름하게 뜬 메주가 좋은 메주이다. 20일 정도 메주를 띄운 후 밖에서 겉에 있는 곰팡이를 털고 볕에 말린다. 메주는 잘 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말라야 하므로 자주 돌려가면서 말린다. 메주를 띄우는 방법으로는 짚으로 메주를 엮어 통풍이 되면서 따뜻한 곳에 달아 놓고 띄우면서 말리면 더욱 좋다.
우리마을 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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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바우마을은 소득증대사업을 위해 30평의 메주공장에서 메주제조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솔바우 정보화마을 부녀회에서 생산되는 메주는 춘천호의 아름다운 주변 마을에서 생산되는 국산콩으로 메주를 생산하기 때문에 신토불이의 메주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솔바우 마을 주변에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생산업체가 하나도 없는 무공해 지역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부녀회에서 휴경지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콩과 연초의 후작으로 생산되는 콩을 계약, 엄선 선별하여 생산하기 때문에 원가절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는 우리 농산물에 대한 만족감과 신뢰도를 높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수입한 콩(유전자 콩)으로 생산되는 메주와는 비교가 안된다고 말할 수 있으며, 메주를 생산할 때 사용되는 물은 일급수 중에 일급수이기 때문에 솔바우 정보화마을 부녀회에서 생산되는 메주를 자신있게 권해 드립니다.
생산규모
메주공장 : 30평
생산량
메 주 : 3000장(콩 100가마)
판매가격 : 1장(14,000원), 택배비 수취인부담
주소 및 연락처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송암리(부녀회 메주공장)
Tel 033) 244-1135
솔바우메주공장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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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사북면 송암리 2반 383번지에 위치한 솔바우 마을에서 운영하는 메주공장은 2001년 11월에 설립되어 총면적 30평으로 준공되었다. 2001년 12월부터 메주를 쑤는 작업을 시작하였고 부녀회원들이 공동으로 작업하여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다. 연간 콩 100가마를 이용하여 메주 3000장을 생산해내고 있으며 솔바우 마을에서 직접 생산해내는 콩으로 메주를 쑤기 때문에 믿을수 있다.
콩은 10월에서 11월초사이에 수확하여 탈곡을 거쳐 농한기인 12월에 메주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정보화 시범마을로 선정된 후 메주를 마을의 주력 특산품으로 내놓고 솔바우 마을이 정보화마을로 자리잡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현재는 메주만을 판매하고 있지만 앞으로 콩과 메주로 만들 수 있는 된장, 고추장, 청국장도 판매할 계획이다.
문의전화 Tel 033) 244-1135(부녀회)
고탄낚시터
산수가 빼어난 물맑은 낚시터
고탄낚시터는 화천으로부터 용화산의 계곡물이 춘천호로 유입되는 곳으로, 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으며, 더불어 캠핑도 가능하다. 또한 견지로 피마리와 끄리, 루어로 배스와 끄리를 낚을 수 있는 계류 낚시터로도 유명한 곳이다. 수상좌대가 설치되어 있고, 낚시터에 휴게소와 식당이 있다.
춘천댐 못미쳐 교차로(서원삼거리)에서 우회전(화천행 신도로)하여 호수를 따라 5km쯤 가면 고탄낚시터가 나온다. 붕어, 누치, 피라미가 많이 나오며 운이 좋으면 대형 잉어와도 인사를 할 수 있다. 좌대가 설치된 곳은 수심 1m이내의 가장자리에서 2~3칸대로 공략하면 좋다.
주변 식당에서 식사가 가능하고 미끼와 간단한 채비도 구입할 수 있으며 산중턱에는 인삼 메기 매운탕을 맛있게 하는 ‘춘천호(243-4904)가 있어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또한 고탄리는 겨울철 빙어낚시터로도 유명하다. 겨울철 낚시로는 빙어낚시가 있는데 인람리 중상류 산기슭쪽은 항상 마릿수를 보장하는 곳이며 지암리 상류쪽으로는 전역이 고른 조황을 보이고 있다.
오름 수위 최고의 씨알터
고탄리 일대는 길가에 위치해 사람들이 많이 찾기는 하나 포인트 찾기가 쉽지 않다. 고탄 검은 적벽은 햇볕이 많이 드는 지역으로 늦가을 낚시에 최고의 지역이며 고탄 맞은편은 도로공사 중 무너진 돌무덤으로 인해 생긴곳으로 최적의 요지가 된 곳으로 쏘가리 서식지로 유명하며, 돌무덤지역과 바닥이 만나는 지점(7~8m)부근은 베이트 피쉬가 자주 머무는 지역이다.
금번 춘천호 출조에서는 확실한 늦가을 패턴임을 알 수 있었고 지류권, 물골, 채널등이 만나는 지점과 곳부리 지형이 안정적으로 바이트된다. 시간대는 해뜨기 전후 7~9시와 해지기 전후 5~6시에 입질이 활발하다. 빙어는 겨울이 되어 수온이 떨어지면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먹이를 찾는다. 그 앞에 통통하고 살찐 구더기를 내려주면 빙어는 줄줄이 물밖 구경을 하게 된다.
특히 무리를 지어 다니며, 낮은 수온에서 더욱 왕성한 입질을 보이는 습성으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마릿수 재미를 볼 수 있다. 빙어낚시 채비는 다른 낚시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므로, 낚시터 근처에서 쉽게 구입(3~4천원)할 수가 있다.
인근관광지 : 용화산, 고탄눈썰매장
오시는 길
서울→46번국도→청평→가평→춘천→화천, 고탄방면 407번 지방도로를 우회하여 3분정도
용화산
처녀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작은 금강산"
춘천에서 북쪽으로 28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용화산(878m)은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를 이루며 아직도 처녀림을 그대로 간직한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사랑하는 몇몇의 적은 산악인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구전으로 전해 주어 더욱 유명한 산이다. 굴곡이 많은 12km의 등산로를 따라 만장봉 정상에 오르면 멀리 화천댐 파로호가 조망되고 주변의 주전자바위, 마귀할멈바위, 장수바위 등 갖가지의 전설을 간직한 기묘한 바위가 이어지는 산이다.
아기자기한 등산로
용화산은 춘천시 사북면에서 시작하여 화천군 하남면을 거쳐 간동면 유촌리 북쪽으로 뻗어 있는 해발 878m의 산이며 춘천댐 오른쪽길로 접어 들어 고탄리 종점 마을에서 등산은 시작된다. 산 정상까지 약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며 가볍게 등산하기 알맞은 코스이다.
멀지 않은 곳에 주전자의 주둥이 같이 생긴 바위가 있는데 예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개를 잡아 주정자 부리 밑에서 기우제를 지내왔다. 개의 피를 주전자 부리에 바르고 돌아서면 곧 비가 오기 때문에 비옷을 미리 갖추고 기우제를 지내러 갔다고 한다. 개의 피로 바위를 적신다고 해서 기우제를 ‘개적심’이라고 부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바둑판 바위’는 가로 세로 2m정도 되는 바위로 선녀가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 해서 바둑판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1. 시내버스 가. 양 통 행 : 05:30~18:40 중 5회 운행 (50분 소요) 나. 용화산행 : 06:00~21:00 중 60분 간격 (50분 소요) 2. 자가운전 서울 → 46번 경춘국도 → 춘천댐 방향으로 15분 → 고탄리 → 용화산
춘천호
맑은 호수와 아름다운 주변경관
춘천호는 춘천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이다. 춘천호는 1965년 2월, 콘크리트 중력댐인 춘천댐이 준공됨으로써 이루어진 광활한 인공 호수다. 춘천댐의 길이는 453m, 높이는 40m이며 저수량은 1억5천만t, 발전량은 5만7천6백KW다. 춘천호에 담긴물은 북한강 상류지역을 호수화하여 멀리 화천군 파로호 부근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하류는 의암호의 상류이다.
북한강 상류에 위치한 춘천댐은 주변의 경치가 무척 아름답고 교통이 편리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며 춘천 ~ 화천 간 국도의 교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연인들은 의암호를 따라 이어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 가족단위의 관광객은 낚시가 적격이다. 총면적 15평방km 남짓한 춘천호는 쏘가리, 잉어, 붕어를 비롯한 민물고기의 천국이기도 하다.
댐 주변에 형성된 매운탕골은 전국적으로 그 맛이 정평나 있는데 자연산 메기 매운탕, 쏘가리 매운탕의 진미를 맛볼수 있다. 또 춘천댐 계곡과 삿갓봉, 수려한 자연환경과 조용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집다리골 휴양림 등이 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깨끗한 호수와 울창한 송림의 조용한 숲속에 캠프촌이 어울어져 호반의 정취를 더욱 느끼게 하고 겨울 빙어 낚시의 묘미를 느낄수 있다. 숙박, 편의시설이 형성되지 않아 약간의 불편이 있으나 시내와 가까우므로 시내의 숙박시설을 이용하면 무리가 없다.
맛있는집
춘천댐 매운탕골 : 033) 244-2172 댐 주변에 매운탕, 토종닭 등을 취급하는 전문 음식점 산재
장절공은 918년 배현경,홍유, 복지겸등과 왕건을 추대해서 고려건국의 대업을 이루었다. 태조 10년(927)대구(현재의대구)에서 신라를 도와 후백제의 견휜군과 싸우다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자 공은 태조를 수풀속에 숨기고 임금수레를 타고나가 역전하다가 전사하여 태조의 위급을 모면케하였다. 태조는 공의 죽음을 슬퍼하여 시신을 거두고 신숭겸 장군의 희생에 대한 보답으로 머리가 잘린 신장군의 머리를 순금으로 만들어 춘천 방동리에서 장례를 치러 주었고 전하한 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공의 명복을 빌게하고 공의 아우 능길과 아들보고 원윤을 삼았다.
태조는 금으로 만든 신장군의 머리가 도굴될 것을 염려하여 춘천의 방동, 황해도 구월산, 대구 공산등지에 똑같은 묘를 만들어 어느 묘에 금머리가 들어있는지를 모르게 하였다고 한다. 춘천방동의 묘에 여러번 도굴이 시도 되었으나 그때마다 묘소를 지키는 도깨비들이 나타나서 도굴꾼들을 혼내주어 도굴을 방지했다고 한다. 또한 태조는 팔관회때 공과 김낙등의 전사한 공신들을 생각하고 가상을 만들어 열석시키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였다. 이것은 그 후 전승되었는데 예종이 팔관회에서 이를 보고 두장수의 후손을 불러 시를 지어 내리고 충절을 기리는 도이장가란 노래를 지었다. 조선조 순조5년(1805)에 세운 신장절공 신도비는 당시의 세도가 영안부원군 김조순이 짓고, 시,서,화의 삼절로 이름난 자하신위가 썼다.
신숭겸과 관련된 일화
어느날 신숭겸이 태조왕건과 함께 평산을 거쳐 가게 되었는데 세 마리의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태조가 여러 장수들에게 “저 기러기를 활로 쏘아 맞추어보라”고 하자 신숭겸이 “어느 기러기를 맞칠까요?” “왼쪽 기러기의 날개를 맞추라” 라고 명령하자 화살 한개로 정확히 맞추니 태조는 감탄하고 평산지역의 땅을 신숭겸에게 주니 평산 신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인근관광지 : 용화산, 삼악산, 춘천인형극장, 춘천댐, 집다리골휴양림
오시는 길
서울 → 46번 국도 → 강촌 → 의암댐 → 서면 → 방동2리 마을로 좌회전
고탄 눈썰매장
겨울설원을 마음껏 느껴보자
겨울 설원을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면 눈썰매를 타보는 건 어떨까. 아이들과 연인이나 벗들과 함께 눈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에는 눈썰매가 그만이다. 특별한 장비나 복장을 갖추지 않고도 저렴한 가격에 맘껏 소리치며 눈밭을 내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얀 눈밭을 질주하면서 쾌감을 맛볼수 있다
눈썰매를 즐길수 있는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9시까지이며 겨울방학을 맞아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고 겨울내내 추위를 이길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곳이다. 매장내 매점이 마련되어 있어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으며 눈썰매가든에서는 막국수와 회를 즐길수 있다. 눈썰매장이 있는 곳은 춘천댐 못미처 교차로에서 우회전(화천행)하여 고탄낚시터를 지나 용화산입구쪽에 위치하고 있다.
운영시기
매년 12월초부터 2월말까지
주변 음식점
선돌가든 [ 토끼탕,토종닭,막국수 Tel 033) 243-2400 ] 춘천매운탕골 [ 향어,송어 회전문 Tel 033) 244-2172 ] 메기매운탕 [ Tel 033) 243-4900 ]
오시는 길
춘천시 사북면 고탄리 산 23번지에 위치한 고탄 눈썰매장은 춘천에서 10분거리에 있다. 매일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는데 3시간 간격 1일 3회 운행하고 있고 출발시간은 9시,12시,3시이다. 셔틀버스가 정차하는곳은 시내버스정류장이다.
문화재
용화산성
용화산성은 고성리와 화천의 간동면 하남면의 경계지점인 용화산(해발878m)정상에 돌로 쌓은 성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용소산석성]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둘레 452보, 높이 4척이며 작은 샘이 3개소 있다고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조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세기에 이르러 폐성된 것 같다. 동국여지승람]의 춘천도호부조 성지를 보면 신라 문무와 13년 수약주에 주양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위치가 정확하지 않고 현재 춘천지역에서 발견되는 성이 적은 관계로 인하여 정확한 위치가 고증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성이 와암성이라고도 불리고 있어 의암댐이 있는 의암리 일대가 혹시 산성을 쌓은 곳이 아닐까 예상하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용화산은 춘천시와 화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 서쪽은 사북면 고성리가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화천군 유촌리 일대와 병풍산까지 보인다. 남쪽면은 모두 암벽으로 둘러쌓여 있어 천연적인 성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춘천방면과 화천방문에서 접근하는 모든 상황이 한 눈에 조망되고 있어 성지로서의 좋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성지의 축조공법은 우물정(井)자식으로 축조되어 한 켜는 세로 또 한 켜는 가로로 쌓는 공법을 택했으며, 1898년 12월(광무2년)에 발행된 "규장각도서 낭천군지 성곽조"에 의하면 [석축주위 956척, 고2척 유3정 금칙퇴락]이라 하였다. 유3정이라 했음은 산성내 우물을 세군데나 파서 유사시에 식수를 해결한 것으로 보이는데 2곳은 찾을수가 없고, 1곳은 현재 사용중이다.
산 꼭대기 서쪽의 절벽과 맞 닿는 지점에서부터 서→북면에 이르는 부분까지 축성하였으나 북쪽에는 경사가 가파르고 성불 령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제외하고는 산의 경사면 곳곳에 암벽이 가로 막힌 험한 지대이기 때문에 사실상 이곳으로의 접근이 불가능하므로 서→북에 이르는 구간만 돌을 쌓았다. 큰고개에서 용화산 꼭대기 쪽으로 오르다보면 해발 약 800m 지점부터 왼편 산 중턱을 따라 돌려 쌓았다. 산성의 시작은 서문터에서 시작되는데 능선위에 바위가 놓여 있어 더욱 좁아진 지점에 성벽을 쌓고 동북방향으로 문을 만들었던 것 같으나 석재 등은 발견되지 않아 성벽만 튼튼히 하여 단순한 통로 정도로 문을 만들었던 것 같다.
오시는 길
1. 시내버스 가. 양 통 행 : 05:30-18:40 중 5회 운행 (50분 소요) 나. 용화산행 : 06:00~21:00 중 60분 간격 (50분 소요) 2. 자가운전 서울 → 46번 경춘국도 → 춘천댐 방향 → 407번 지방도(신도로)로 우회전 → 춘천호 → 고탄리 → 용화산
충효정
울창한 나무와 푸른 숲, 아름다운 경치에 둘러쌓여 이웃간에 사랑과 웃어른을 공경하는 경로효친사상이 넘치는 솔바우마을은 누구에게나 고향, 어머니의 포근한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조용하고 인심좋은 솔바우 마을의 발전을 위해 손사덕 노인회장, 권오충 청년회장, 김정욱 부녀회장 등 여러분들이 봉사하며 마을을 이끌어 가고 있다. 김정욱 부녀회장을 비롯한 마을주민들은 경로효친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충효정은 사북면 고탄리 2반 도로변에 있으며 고탄노인정건립추진위원회의 발의로 세워진 정자이다.
당시 위원장인 유성영씨가 앞장을 서서 군에서 3,000만원, 사북향우회에서 300만원, 고탄노인회에서 대지와 기금200만원을 모아 1993년 11월에 송암리 입구인 고탄삼거리 도로변에 세웠다.
경관을 보며 휴식하고, 풍유와 창작을 즐기고 또한 종회나 마을 사람들의 동희, 그리고 각종 회의 장소와 학문을 수행하는 정자의 기능에 따라 축조되었다.
정운호 신도비
정운호 신도비는 사북면 송암리 버들골에 위치하여 있다. 정운호(1563년[명종]-1639년[인조17])는 과거에 급제한 뒤에 검열, 전한, 대교, 교리등의 청직을 두루 역임하고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성에까지 올랐다. 계곡 장유가 정운호와 그의 조카가 중국에 사행으로 다녀온 일을 칭탄한 것으로 보면, 그는 선조~인조 년간에 활약하던 인물이다 병자호란 후에 일시 춘천에 은거하였으나 이내 다시 상경하여 한성부 좌윤을 맡아 전후 복구에 진력하였다. 그는 매일 밤 출사표나 정기가를 낭송하며 청나라에 대한 분함을 토로하다가 이것이 병이 되어 죽었다. 신도비는 후손 정규종이 쓴 것을 1981년에 세운 것이다. 묘비는 신도비가 있는 산언덕에 있다.
우리고장효자열녀
지은원
1903(고종 광무 7) ~ ? 춘천 신동면 송암리(현 칠송동) 출신으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서울 배화여학교 재학생이었다. 1920년 3·1운동 일주년이 되던날 아침 여학생들이 기숙사에 태극기를 달아 놓고 기도와 찬송가를 부르며 기념식을 가졌다. 이 무렵 뒷산에서 만세소리가 들리자 그는 왕종순, 윤경옥 등과 더불어 뒷산으로 올라가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만세를 부르고 있던 학생들은 한수자가 주동한 것이었다. 이에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출동하여 만세부른 학생들을 색출하였고, 결국 만세를 불렀던 학생 24명은 종로경찰서에 호출되어 1주일동안 모진 고문 끝에 송치됨으로써, 1920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만세를 부른 학생 24명 전원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때 지은원(당17세)은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형의 선고를 받았다.
차상찬
1887(고종 24) ~ 1946 춘천 신동면 송암리 출신으로 호는 청오이다.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때는 모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1920(당 33세) 때 개벽사에 입사하였고 다음 해에 주간으로 취임 17년간 복직하였다. 이에 [개벽]을 비롯하여 [별건곤],[신여성],[농민], [학생] 등 잡지의 언론인(기자)으로서 활약하였다. 또 그는 호 이외에 수춘학인·강촌생·취운생·월명산인·차천자·차돌이 등 필명을 사용한 시인·수필가로서 우리의 역사·유적·명승지에 관한 회고적인 글이 근간을 이루었다. 특히 [개벽] 신간호(1934)에 그가 게재한 <병신(1896),병란,관동의병란비화>는 강원도 의병사 연구에 기여하였으며 그의 야담 사화적인 저서로는 [조선사천년비사], [해동염사], [조선외교사] [조선인명전], [한국야담사화전집] 들이 있다.
메기는 아주 못생긴 생선이다. 빛깔이 거무튀튀하고 입이 죽 째진 게 영 볼품이 없다. 입가에 달린 긴 수염과 유난히 큰 입은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은 메기를 멀리했다고 한다.그러나 그건 양반님네들의 ‘실수’였다. 민물고기중에서 메기만큼 맛있는 것도 드물다. 메기 살은 보드랍고 담백하다.붕어 피라미 등에서 나는 민물고기 특유의 비린내도 거의 없다.
'겉 다르고 속 다른'게 바로 메기다. 메기가 맛있는 이유는 육식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메기는 철저한 야행성으로 낮에는 바위구멍이나 풀숲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다가 밤이 되면 먹이활동에 나선다. 슬슬 헤엄쳐 다니다가 한가로이 졸고 있는 치어나 개구리 등을 잽싸게 잡아먹는다. 씹고 말고 할 것도 없다.그 큰 입속에 집어넣고 트림 한번 하면 끝이다. 그래서 메기는 예로부터 탐관오리의 상징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메기의 영양
메기는 영양가도 만점이다. 질 좋은 단백질과 지방 칼슘 인 철을 함유하고 있다. '동의보감’에는 메기가 소변배출에 도움을 주어 몸이 부었을 때 메기탕을 먹으면 좋다고 했다. 더운 여름날 메기탕을 한 그릇 먹고 나면 몸 안의 노폐물이 땀과 소변으로 빠져나가 몸이 개운해지는 것이다.
메기매운탕의 요리법
메기매운탕을 끓일 때는 무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바닥에 깔고 양념장을 풀어 육수를 낸다. 그런 다음 메기를 토막쳐 넣고 미나리 대파 양파 감자 등을 넣고 한 차례 끓인다. 다 끓고 나면 수제비를 떠 넣어 먹는다.
막국수의 유래는 북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는 춘천을 비롯한 일대를 영서지방이라 하며 이지역에서는 예부터 메밀을 많이 재배하여 왔으며, 이것을 배경으로 토속 메밀국수를 즐겨먹었다. 메밀국수는 지열별칭으로 [막국수]라 하여 동란 이후부터 상품화되었다고 한다.
메밀의 영양
막국수를 만드는 재료는 메밀인데 메밀은 비타민이 쌀의 3배, 칼슘은 우유보다 50%많고 단백질은 3배, 철분15배, 나이신12배, 비타민D, 루틴,인산등이 다량 함유되어있다. 메밀은 75%가량의 탄수화물로 함유로 식사 대용으로도 거뜬하고 특히 무기질 - Ca, Fe, Mn등과 함께 비타민 B1, B2도 풍부하게 들어 있어 한참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간식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본다. 또한 섬유질의 다량함유로 인한 소화에도 무리가 없으며 요즘에는 메밀국수로 보편화 되어 있어 주변에서 구입도 쉬우며 요리 또한 간편하게 할 수 있다
막국수의 요리법
막국수의 기본재료는 국수600g, 닭고기200g, 김치200g, 오이, 동치미무와 간장, 고춧가루, 다진파, 다진마늘, 다진 생강, 풋고추, 설탕, 후추, 통깨, 참기름등이 있으면 맛있는 막국수를 맛볼 수 있다.
먼저 메밀가루에 녹말을 4:1의 비율로 혼합아여 끊는 물에 익반죽하여 국수를 만든다음 끊는 물에 삶아 건져 놓는다. 그다음 김치는 속을 털어내고 잘게 썰어 깨소금,참기름에 무쳐놓는다. 닭고기는 삶아 건져서 굵게 찢은 다음, 소금,후추,참기름에 무쳐 놓는다. 동치미무는 얇게 썰어 놓고, 간장에 고춧가루,다진파, 마을, 생강, 풋고추, 후추, 설탕, 통깨, 참기름을 넣어 다대기양념장을 만들어 놓는다. 사리에 닭고기, 오이채, 동치미무, 김치양념을 얹고 곁들여 담은 다음, 식성에 따라 동치미 국물로 말아 먹기도 한다.
요리할 때 포인트는 붉은 고추가 많이 나오는 계절에는 붉은 고추를 갈라 씨를 뺀후 물을 넣어 간다음, 다진 파, 마늘, 깨소금, 설탕, 후추, 참기름을 넣어 다대기양념장을 만들면 좋다.
맛볼 수 있는 곳
선돌가든 : 용화산 입구, Tel 033) 243-2400
가 격 : 4,000원 ~ 5,000원
닭갈비는 역시 춘천이 제 맛이야
춘천과 부근 화천, 양구에서 군대 생활한 사람들이나 춘천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춘천에서 다시 왔을 때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닭갈비 집이다. 경인지역 등 타지 여행객이 춘천에와 닭갈비를 먹으면서 하는 제일성은 "역시, 닭갈비는 춘천이 제맛이야!"다. 『양』과『맛』과 『분위기』와『가격』면에서 서울 닭갈비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춘천의 맛'이 닭갈비 원조의 별미이다.
감칠맛과 푸짐한 양
춘천 닭갈비의 매력은 춘천지역의 독특한 양념장이 배어 내는 『 감칠맛 』과 지방인심을 한 눈에 느끼는 『 푸짐한 양 』 과 대포집 같이 떠들썩한 말잔치와 조리연기로 희부연한 화덕주변의 『닭갈비분위기』 이다. 지갑 부담 없고 생기넘치는 닭갈비집의 특색으로 닭갈비 집에는 항상 휴가병, 대학생, 젊은 직장인들로 북적거리기 마련이다.
춘천닭갈비의 유래
춘천 닭갈비의 유래는 약1400년전 신라시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고 50년대 지금의 강원은행 본점자리에서 김씨라는 사람이 닭 불고기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70년대 초 요선동에서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좀더 확실한 것은 70년대 초부터 명동 닭갈비골목을 중심으로 4개업소본격적으로 닭갈비 요리를 발전시킨 점이다. “닭갈비”란 말은 원래 홍천에서 먼저 사용되었고 그 홍천의 닭갈비는 냄비에 육수를 넣고 닭요리를 한것인데, 홍천과 태백에서 지금도 이 음식이 남아 있다.
춘천에서 숯불 위에 석쇠를 얹어 닭고기를 요리했던 숯불닭갈비가 있었는데 71년부터 닭갈비판이 등장하면서 춘천 닭갈비가 태어난 것이다. 춘천에서 닭갈비가 발달한 배경중의 하나는 춘천지역이 양축업이 성했고 도계장이 많았던 이유다. 닭갈비는 지금도 그 맛과 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대단히 싸서(70년대초 닭갈비 1대갑은 100원이었다) 그별명이 [대학생갈비],[서민갈비]였다.
소나무향기와 바위가 어루어져 있는 마을이라 지명이 되어 버린 솔바우에서 마을주민이 만든 펜션입니다. 황토로 마감된 벽채가 있는 방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넓은 거실이 있어 단체 Workshop이나 동호회의 모임 장소로도 제격입니다. 펜션 뒤로는 푸른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논과 밭이 펼쳐 있으며 춘천호에 만들어진 호수가 있어 겨울에는 얼음 낚시도 즐기수 있으며 편안하고 안락한 쉼터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1박 2일 기준으로 평일 (150,000원), 주말(180,000)이며 인원은 10명이상으로 최대 50명까지 가능합니다 예약은 전화로 예약확인 가능하니 전화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전화 문의는 솔바우영농조합 사무장 길대수(011-368-7126)로 주십시요
버스 -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천방면 수시운행(15분간격) 상봉터미널에서 춘천방면 수시운행 기차 - 청량리역(경춘선) : 무궁화호 6회운행, 통일호 9회운행 소요시간 : 무궁화 1시간 34분, 통일호 1시간 45분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탄방면버스 37번 버스를 이용하여 1시간소요. 송암리 입구에서 하차.
위 치 : 강원 춘천시 사북면 송암리 501
개 요 : 비옥한 땅, 깨끗한 공기, 1급 지하수로 푸르른 들녘 순박하고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
예부터 소나무와 바위가 많아 솔바우로 불려온 이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때묻지
않은 농심이 자랑거리이다. 또한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즐비하니 눈의 피로가 싹
가시니 수험생과 샐러리맨들에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휴식처이다.
춘천댐과 춘천호 등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사람
들은 순박하고 건강한 우리 먹을거리를 생산해 내기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이 마을에서 생산하는 오리농법쌀과 강원도 감자, 느타리버섯, 메주 등은 품질을 인정
받아 주민들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솔바우쌀은 비옥한 땅, 깨끗한 공기, 1급 지하수를
이용해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데,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 전량 공급할 만큼 밥맛이
뛰어나다.
한편, 이 곳에서는 농촌에서 사계절 자연과 벗하며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놓고 있다. 눈에 띄는 체험거리들보다는 자연의 소중함과 우리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인식시킬 수 있는 것들로 마련 돼 매년 수천 명의 체험객이 마을을 다녀간다.
지정현황 : [녹색농촌체험마을] [팜스테이마을]
연 락 처 : 운영위원 길대수 011-368-7126
체험안내 : * 체험거리 - 고추따기, 옥수수따기, 감자캐기, 계곡체험, 손수건물들이기
* 특산물 - 쌀, 감자, 느타리버섯, 찰옥수수, 자연산송이 등
* 먹거리 - 순두부, 된장국, 산나물, 옥수수밥 등
* 볼거리 - 용화산자연휴양림, 짚다리자연휴양림 등
* 프로그램
1) 봄 - 모내기, 산나물채취
2) 여름 - 오리입식체험, 감자캐기, 옥수수따기, 계곡캠핑, 일소 쟁기질체험, 일소타기
3) 가을 - 벼베기, 탈곡하기, 고추따기, 디딜방아찧기, 무공해 김치 담그기, 메주 담그기
4) 겨울 - 온돌 구들방에서 숙박체험, 빙어낚시, 썰매타기, 짚공예
5) 연중 - 소달구지타기, 유기농 느타리버섯 재배장 견학
길 안 내 : 서울 - 46번국도 - 청평 - 가평 - 강촌 - 춘천 - 화천, 고탄방향 - 407번지방도 - 마을
화천, 고탄방면으로 407번 지방도로 우회-> 5분 정도 지나 솔바우 정보화시범마을
지역간 대중교통 : * 버스
동서울터미널에서 춘천방면 수시운행(15분간격)
상봉터미널에서 춘천방면 수시운행
* 기차
청량리역(경춘선)
지역내 대중교통 : 시내버스
춘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고탄방면버스 37번 버스, 1시간 소요, 송암리 입구에서 하차
정보제공 : * [2006년 농산어촌체험여행]
* 농림부, 해양수산부, 농촌진흥청, 산림청, 한국농촌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