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재씨와 전현주씨 결혼식에 갔다가 포스터 보셨죠?
괜찮은 사람의 괜찮은 전시화라 소개하려는데,
마침 저의 다른 모임 사이트에 올려져 있는 글이 있기에 퍼왔습니다.
<<이 유쾌한씨를 보라>>
주재환의 첫 번째 개인전의 제목은 삐삐밴드 2집 <불가능한 작전>에 수록된 "유쾌한씨의 껌씹는 방법"에서 따온 건데,
정말이지 아주 그럴듯하게 맞아 떨어지는 제목입니다.
주재환의 미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반골적인 성향이 '유쾌한(주재환) 씨가 껌을 씹으며 삐딱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는 거죠.
올해 예순의 나이에 아무 혐의없이 기상천외 재기발랄한 주재환은
삐삐밴드가 언더로서 갖는 발랄함에 뺨을 치고도 남습니다.
미술과 세상사를 바라보는 연륜과 시정신과 산문정신의 뿜어내는 위력은
권위나 체면에 개의치 않고 마음대로 그려대는 아이들의 미술 행위와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짜장면 배달>,<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볼펜의 수명>,<웃음소리>,<내돈>,<몬드리안 호텔> 따위의 제목에서 뭔가 느낌이 오지않나요?
<짜장면 배달>은 유화그림인데 한손은 오토바이를 몰고 다른 한쪽손엔 뜨거운 짜장면을 들고 ?나게 달리는 그림이고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페러디한 작품으로 계단의 층층이 서있는 사람들이 아래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죠.
맨 위쪽에서 내려오는 오줌발은 다음 단계로 내려가면서 점점 더 굵어지고 따라서 제일 아래에 있는 사람은 온 몸이 오줌에 절게 되는 거죠.
프랑스의 현대미술의 기수, 변기를 전시장에 옮겨와 <샘>이라고 이름 붙인 작품으로 유명해진 "뒤샹의 현대"가 반도땅으로 와서 "한국의 현대미술"은 이렇게 바뀝니다.
<볼펜의 수명>은 모나미 볼펜같은 싸구려 볼펜을 사서 그것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신나게 그어댄 겁니다. 볼펜의 수명이죠. "이게 예술작품"이냐구요? "그래서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웃음소리>는 "하하하하하하하하하"를 화면에 가득 써서 채운 그림입니다.
"이것도 예술"이냐구요? "그렇다면 예술이 뭐죠?"
<내돈>역시 내돈이라는 글자를 화면 가득히 썼어요. 러시아 절대주의를 만들은 말레비치라는 화가의 그림을 페러디했구요.
<몽드리안 호텔>은 재현으로서의 회화를 쪼개고 쪼개서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만든 몽드리안의 황금분할 속에 호텔에서 벌어지는 상류사회의 꼬릿꼬릿한 호텔 문화를 만화로 그려넣은 겁니다.
그 밖에도 작품이 참 많아요.
<쇼핑맨>,<폰팅맨>,<미제 껌 송가>같은 작품도 있고 <도망가는 임산부>라는 작품도 있고 천상병이나 옛시인의 시에 이미지를 넣은 작품도 있어요.
언젠가 춘천교대에 계신 김상욱 교수가 "민중미술 15년전"을 "민중미술 20년전"으로 기억하시고 글을 올린 내용 가운데 토해내기식으로 목소리 큰 다른 작품이 아닌 아주 조그만 그림하나를 이야기하신 적이 있는데 저는 주재환의 작품일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목이 <원앙생>인지 <비천상>인지 분명하지 않은데 그 작품은 구십년 오월 정국 때 수많은 목숨들이 분신, 투신하고 맞아죽고 짖밟혀 죽던, 김지하의 "죽음의 판굿을 때려쳐라"가 조선일보에 대서 특필되던 그 달의 그 죽음들을 달력에 낱낱이 옮겨 기록한 정치포스터입니다.
작품의 오른쪽에는 노동조합 위원장의 시신을 빼돌리기 위해 백골단들이 영안실 벽을 해머로 부수고 들어온 순간을 잡은 사진이 있었고
다른 한켠에는 오월달 달력에 죽음들을 하나하나 기록한 글씨와 통일신라 시대의 최대 걸작의 하나인 <비천상飛天像>-보살님 한분이 무릎을 꿇고 두손으로 가만히 연꽃을 든- 이 달력 상단에 조그맣게 탁본되어 있구요.
주재환은 4.19세대이면서 80년대 미술운동의 말없는 주역으로 세상의 격동의 중심에서 몸을 아끼지않고 살아온 분이기도 합니다.
그 이는 나이 쉰이 넘어서 마침내(어차피?) 작품에 몰입합니다.
전에는 이 사람이 화가라는 정도만 증명하듯 한 해에 한 두 소품 정도만 보여줬죠.
예전에 "4.19 35주년 기념전"에 저도 그림을 냈더랬는데 뒤풀이를 마치고 방향이 같아 주재환 선배와 뒷자리에 타게 되었어요. 운전은 화가인 박불똥 선배가 하구요.
모두들 술이 거나하게 취했는데 연로한 주 선배는 내 팔 하나를 꼭 껴안고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어요.
키는 작고 존 레논의 동그란 안경에 머리가 아주 커서 외계인같이도 한 그 분이 그렇게 저에게 의지해 조용히 잠든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요.
제가 그 분의 일화가 하도 재미있어 그림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있는데 이런 이야깁니다.
조그만 앉은뱅이 이젤위에 파스텔로 하늘에 떠있는 노랗고 둥근 달을 그리는데 그게 잘 안되더랍니다.
그래서 그위에 다시 파스텔을 먹이고 또 먹이고 자꾸자꾸 그렇게 하는데 마음에 차지가 않았나 봐요. 며칠을 그렇게 하니 노란색 파스텔이 하나도 없겠지요?
그래서 보니까 이젤 아래 노란 파스텔 가루가 소복하더랍니다.
그 작품이 마무리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 이의 그러한 마음이 참 그림같지않나요?
제 작업실에 유일하게 붙어서 떨어지지않는 작품 하나가 있는데
그게 주재환의 <잠>이라는 작품이죠.
성경책 위에 소주병이 있고 소주병의 주둥이 뒤에 달인지 후광인지가 둥글고 노랗게 떠있습니다.
4호 정도되는 아주 조그마한 그림인데 저는 이 그림을 보면 초현실주의 그림보다도 더 몽롱해져요.
술에 아주 은근하고 아득하게 취한 것처럼 말이죠.
주재환의 유화그림은 왠지 은근하며 아득한 마음을 일게 합니다.
야경꾼에서 출판사 주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그 이의 작품세계는 그렇게 살아온 이력만큼이나 다양하죠.
주재환이야말로 진정한 모더니스트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리얼리스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혼자보고 말기가 아까워 한 번 가셔서 보시면 참 좋을 것같아 글 올립니다.
2000년 11월25일부터 2001년 1월 21일까지 소격동 화랑가(경복궁 맞은편)에서 정독도서관방향으로 한 이,삼분 걸어 올라가면 왼편에 "아트선재센터"라는 곳에서 전시중입니다.
입장료가 이천원이래요.
싼가요?
비싸다구요?
아주 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