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께 감사하라 사사기 4:12-16
6.25사변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끌려가서 나무에 묶였습니다. 인민군들이 끌고 온 사람들을 나무에 묶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죽였습니다. 이제 어린아이가 총살당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한 인민군이 그 아이를 죽이려는 인민군의 손에 돈을 쥐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저 아이는 내가 더 조사한 후 죽이겠으니 저 아이를 내게 맡기시오.”
그러자 아이를 죽이려던 인민군이 돈을 받고 아이를 넘겨주었습니다.
돈을 건네 준 인민군이 아이의 손을 잡고 산등성이를 넘더니 말했습니다. “얘야, 빨리 도망가라.”
“아저씨는 누구세요? 왜 저를 살려 주시는 거예요?”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인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너를 살려 주는 것이 아니다. 어린 네가 총살당하는 것이 불쌍해서 살려 주는 것이니 어서 도망가거라.”
아이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지금 우리 나라 굴지 기업의 회장입니다. 그 기업의 이름을 말하면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분이 지금도 인터넷은 물론 각 방면으로 자기를 살려 준 생명의 은인을 찾고 있습니다. 생명의 은인을 찾기만 하면 정성을 다해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 인민군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벌써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 텐데 그분 때문에 살았으니 그 회장님은 그분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 회장님뿐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도 인생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 고맙게 해 주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복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 은혜를 끼친 사람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을 해치고 배신한 사람,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만 기억하고 이를 갈면서 복수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내게 섭섭하게 하고 잘못한 사람은 잊어버리고 고맙게 해 준 사람을 기억하여 은혜를 갚으며 살아갑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이가 죽은 뒤라도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고사성어입니다.
<창세기>에는 야곱이 세겜이라는 도시를 위해 은혜를 갚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형 에서와 형식적으로나마 화해한 야곱이 한때 세겜에 거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창세기 33:18).
탈무드는 ‘야곱이 평안히 세겜에 이른 사실’에서 외삼촌 라반과 형 에서로부터 적지 않은 물적, 심적 고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세겜에 이르러 신체적, 경제적,영적으로 만족스런 상태였다는 것을 유추합니다(Shabbat 33b).
야곱이 그 은혜를 갚으려고 세겜 주민들을 위해 뭔가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야곱은 아마도 그들을 위해 화폐를 만들거나, 시장(市場)을 세워주거나, 목욕탕을 지어주는 등 세겜 사람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만한 일을 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평화로운 관계는 불행히도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세겜 추장의 아들이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 악행에 대해 세겜 주민 전체를 몰살하는 것으로 앙갚음을 하게 됩니다. 서로 은혜을 배신해 불행한 상황을 만든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호의에도 영원히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탈무드 책에서는 자기가 마신 적이 있는 우물에는 흙덩이를 던져 넣지 말라는 격언도 있습니다(Baba Kamma 92b). 이는 어떤 장소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면 그 장소에 대해 최소한 험담을 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좋은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직장에서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었다면 그 은혜를 생각해서 그 학교와 직장에 대해 험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험담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닙니다.
스피로스 제임스 하데스는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것은 상황을 밝게 하고 이기는 비결이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상황이 밝아지고 그 상황을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1. 우리가 가장 감사할 대상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허물과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외동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어 우리 죄를 사하시고,
마구간 같은 우리 가슴에 성령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만 입이 있어도 다 감사하지 못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품어서 안 될 생각을 품고 잘못을 많이 했는데도 다 용서하시고, 계속 새롭게 하시고 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찌 다 갚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큽니다. 성경 한 절 한 절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다 갚을 수 없고 다 찬송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가나안 왕 야빈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의 압제 아래 36년간 고생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 아래 20년간 한숨을 쉬면서 고생의 떡과 물을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가 없었습니다.
애써 농사를 지어도 다 빼앗겼습니다.
가축을 길러 놓아도 좋은 가축은 다 빼앗겼습니다.
무기가 없어서 군사 훈련도 시키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를 비롯한 뜻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향해 소리쳐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바락을 세우시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군사 일만 명을 뽑게 하시고, 그 일만 명의 군사를 통하여 야빈 왕의 엄청난 군대를 쓸어버리셨습니다.
야빈 왕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나라의 가장 큰 무기인 철병거(탱크) 900대와 온 군사를 기손강으로 유인하여 다 쓸어버리셨습니다.
사사기 5장 4절에 보면 하늘의 구름이 비가 되어 내려오고,
사사기 5장 5절에 보면 지진이 일어나서 그들을 흔들어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사사기 5장 21절에 보면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그들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철병거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사람이 그 안에 숨어서 화살을 쏘아 적을 쓰러뜨리는데, 강물이 불어나 철병거에 물이 가득하니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냥 죽었습니다. 또 그 병거에서 뛰쳐나와 보았자 물결에 휩쓸려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군사와 말이 휩쓸려 청소를 당했습니다. 수영을 잘 해서 강 위로 올라온 사람은 일만 명의 이스라엘 군사가 다 쳐죽였습니다.
그래서 야빈 왕의 그 많은 군사는 삽시간에 전멸을 당하고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습니다.
2. 본문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사랑이 한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망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않으시고 고생하는 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자녀가 혹 실수해서 감옥에 가도 부모의 마음은 그 감옥에 가 있습니다. 아들이 군에 가 있으면 그 부모의 마음도 군에 가 있습니다.
아들이 이탈리아에 가 있으면 부모의 마음도 이탈리아에 가 있고, 아들이 감옥에 가 있으면 부모의 마음도 감옥에 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부모는 그 자식을 잊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하며 복되게 살 때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방탕하게 살고 막 살아도,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 하나님께 채찍 맞을 자리에 있어도 우리를 떠나지 못하시고 거기에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한 번 택하신 사람은 버리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한 번 택한 사람은 잘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한 번 택하신 사람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생 길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로운 그림의 내용으로 세계인에게 알려진 감동 깊은 이야기로 한 분이 꿈속에서 체험한 신비로운 사건의 간증입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자신의 일생을 비추어 주는데, 그 일생이 해변을 걷고 있는 장면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생의 여러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든 장면마다 자기 혼자 걷는데 발자국은 언제나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나 혼자 걸어왔는데 왜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지?’
그때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이야(어른이지만 주님께서는 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발자국은 내 것이다. 내가 항상 너랑 함께 걸어왔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너무 기뻐서 “아!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셨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걸어오셨구나.”하며 흥분합니다.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납니다. 신비로운 빛이 해변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비추어 주는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이 없고 가장 슬프고 가장 고통스러울 때의 장면이 보입니다.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모습인지…. 그런데 뒤에 나타난 발자국이 한 사람 것뿐입니다. 이제까지는 언제나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는 것을 보고 그가 주님께 따집니다.
“저는 당신을 이해 못 해요(I don't understand you). 저는 당신을 이해 못 해요. 절 버리지 않고 항상 저와 함께 걸어가신다고 약속하시고선 제가 가장 힘들고 슬프고 어려울 때는 왜 저를 떠나셨어요? 왜 약속을 깨셨어요? 저는 이해 못 해요.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당신은 저를 버리셨군요.”
그때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영어 그대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둘도 없는, 하나뿐인 나의 아이야, 나는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단다(My precious child, I love you).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아. 네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어. 다시 보렴. 그 발자국이 누구의 발자국인지. 네가 너무 힘들어할 때는 내가 너를 내 가슴에 안고 옮겼기(carry) 때문에 발자국이 하나뿐이란다. 그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야."
그는 그 발자국을 다시 봅니다. 자기 발자국이 아니라 주님의 발자국입니다. 보통 때는 주님께서 그와 함께 걸으셨는데 그가 너무 힘들어 할 때, 지쳐 있을 때는 주님께서 그를 안고 걸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 때도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방탕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때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3.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끝까지 그냥 지켜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왕 야빈의 말발굽 아래에서, 철병거의 세력 앞에서 20년간 고통 당하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그냥 보고 계시지만 않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움직이시고 지진을 일으키시고 홍수를 일으키시고, 바락 장군에게 용기를 주시고 일만 명의 군사에게 힘을 주셔서 가나안 군사를 치게 하심으로 다시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신다.”
여러분과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지만, 어려운 대로 끝까지 두지 않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짓눌려 살 때도 함께 하시지만,
항상 짓눌려 살지 않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낙심해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네 그물을 던져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니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 찼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일어나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락의 앞에서 싸우십니다. 바락과 일만 명의 군사가 싸우기 전에 앞에서 지진으로, 물로, 홍수로 적들을 쓰러뜨려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칼이 홍수고, 하나님의 칼이 지진이고, 하나님의 칼이 천재지변입니다. 하나님의 칼이 적들을 엎어버리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러분과 저의 적을 앞에서 막아 주십니다.
제거해 주십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지뢰 탐지반이 군인들이 오기 전에 지뢰를 제거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우리를 해치려는 지뢰와 함정을 발견하시고 제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4.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자.”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거라사인 지방에 귀신들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쇠사슬도 물어뜯는 그를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데, 그는 소리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돌로 자기 몸을 찍어 피를 흘리며 무덤에서 삽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자기 몸을 어떻게 돌로 찍습니까?
그러니 미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 몸을 찍습니다.
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술을 마시면 머리가 나빠지고 몸이 상하는데도 많은 사람이 밤마다 술의 돌로 자기를 찍습니다. 낮에도 술을 마시며 자기를 찍습니다.
또 담배는 건강에 얼마나 해롭습니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폐암에 걸리는 확률이 18배 더 높은데도 사람들이 담배로 자기 몸을 찍습니다. 자기 폐를 자기가 찍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마약을 하면 자기 몸을 다 찍어 없애는 것인데 마약의 돌로 자기를 찍습니다.
간음하고 음란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은 자기 가정을 찍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음의 날카로운 돌로 자기 아내, 자기 자녀, 자기 가정을 찍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다 귀신의 짓이고 미친 짓입니다.
왜 그런 돌로 자기 몸을 찍고 자기 가정을 찍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말씀하십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
술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죄나 다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풍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에게 거역하는 아내가 똑똑한 여자가 아닙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가 복 있는 여자입니다.
부모님께 거역하는 자식이 잘난 인간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복 있는 자녀입니다.
선생님께 바락바락 대들고 대꾸하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께 순종하는 학생이 좋은 제자입니다.
거스르면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