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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이 승 우
오늘, 구평목 씨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의 결근에 바퀴벌레라는 미물이 연루되었을 개연성*이 있을 리 없고 보면, 부지불식간에 그의 결근 사유로 바퀴벌레를 내세운 나의 처사는 참 어처구니없고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얼핏 ‘구평목 씨의 결근’이라는 주어진 주제에 대해 진지성을 결한 임기응변으로 치부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리하여 사태를 엉뚱하게 오도하려 든다는 비난의 표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으며, 혹 그렇게까진 안 가더라도 그 시간과 자리의 분위기에 대한 정당한 고려를 외면한 채 무분별하게 내뱉은, 그래서 전혀 웃음을 만들어내지 못한 위악적인* 우스갯소리로 내몰릴 소지는 다분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비난과 의혹을 받아들여야 마땅한 장본인인 나로서는 기실 그 비난과 의혹이 섣부른 오해에 다름 아님을 밝히지 않고 넘어갈 순 없다. 빌어먹을 놈의 흉물…… 따지고 보면 문제는 모두 그놈의 바퀴벌레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나는 언제나처럼 조간신문을 건성으로 읽어 넘기며 활자의 크기와 기사의 무게, 기사의 크기와 내용의 무게 사이의 정비례 또는 반비례 관계를 가늠하는 따위로 업무 시작 전의 애매모호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마침 스푼과 잔이 부딪는 소리를 듣기 좋게 딸그락거리며 미스 석이 커피를 만들어 내왔다. 부드러우면서 자극적인 그 커피 향이 신문지의 잉크 냄새와 알맞게 어우러져 몸속의 내분비기관 하나하나를 착실히 깨우고 돌아다니는 과정을 조심스럽게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식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인데, 말하자면 그 난처한 사태도 거기 어디쯤에서 함께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던 셈이라고 하자.
다시 말하지만,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오른손에 펴 든 신문을 훑어내려가고 있었다. 신문은 한 소련 정보원의 망명 소식을 해설 기사까지 포함해서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었다.
커피는 우박처럼 체내에 부어져서 게으름이 체질화된 세포들을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아마도 뜨거운 커피잔을 입술에 가져갔다 내려놓기를 세 번 정도 반복한 후였을 것이다. 막 커피잔을 책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면서 나는, 언뜻,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듯한 수상한 예감의 엄습을 받았다. 막연하긴 하지만 결코 함부로 무시할 것을 허용하지 않는 위협적인 예감이었다. 나는 일순 심신 간의 모든 동작을 중지했다. 입 안에 옮겨 부어 반쯤은 식도로 통과시켜 버린 나머지의 커피액을 급히 입 안에 가뒀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줄곧 들고 있던, 망명한 소련 스파이의 단정한 얼굴을 버렸다. 이 수상한 예감은 어디서부터 발원하는 것인가. 나는 요모조모 숨 가쁘게 짚어나갔다. 그런데…… 맙소사. 나는 불시에 급소를 걷어챈 경우처럼 “읍” 하고 낮은 신음을 깨물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갈 기회를 유보당한 반 모금의 커피가 갇혀 있는 입 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윗니와 잇몸이 닿는 경계선상에서 그 지랄 같은 예감이 꼼지락거리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 깨달음은 선뜻 해명하기 어려운 불쾌감, 그러니까 나의 의사대로 조종할 수 없는 하나의 버젓한 생명체가 나의 입 속에서 기어 다니고 있는 듯한 섬뜩함이 동반된 이물감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자 나의 입 안,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윗니와 잇몸이 닿는 경계선상에서부터 시작해서 거기에 면해* 있는 혀의 민감한 돌기들 위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실제로, 꼼지락거리며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놈의 바퀴벌레.
그 수상한 예감의 실체가 한 마리의 곤충임을 확인하긴 하였지만, 그 확인은 그 난국을 빠져나오는 데 하등의 길잡이도 되어주지 못했다. 정 말로 어찌해야 좋을지 난감한 순간이었다.
삼킬 순 없었다. 그렇다고 사무실 바닥에다가, 그것도 하나같이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동료들의 면전에다 대고 토해낼 순 더욱 없는 일이었다. 천생 되도록 빨리 일어나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길이었는데 그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퀴벌레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삼키려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갑자기 경황이 없어져 버렸고, 그런 와중에서 그야말로 ‘경황없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것은, 실속이야 있든 없든 고조된 긴장에다 쉼표를 한차례 찍어보려는 시도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 자연스러울 터였다. 한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나는 경황없이, 그러나 마땅히 예상될 수 있는 반응으로써 침을 삼켰다. 침을 삼킨 사실이 하나의 굳어진 현실로 인식되는 그 매우 짧은 찰나에 나는 내가 단순히 침만을 삼킨 것이 아님을 더불어 인식해야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더더욱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울상이 되고 말았다. 엉겁결에 똥을 밟아버린 표정이고, 쓰디쓴 소태*를 씹는 낯색인 데다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바퀴벌레를 삼킨 자’의 낯색이었을 것이다.
“윤 형은 혹시 모르시오? 구평목 씨가 왜 못 나왔는지.”
아마도 달착지근한 커피잔에 슬떠시 기어 들어온 지저분한 곤충에다가 내가 전 신경의 올을 친친 감아대고 있는 동안, 동료들은 아직 자리가 비어 있는 구평목 씨의 결근을 화제 삼고 있었단 모양이었다. 그때까지 잠잠히 앉아 있는 나를 지목하여 권 부장이 말을 시켜왔다.
“그래도 윤 형이 구평목 씨완 젤 가깝잖소.”
그건 그렇다. 유난히 비사교적인 데다가 말까지 더듬는 구평목 씨가 이 사무실 내에서 사적인 이야기를 제법 부담 없이 꺼낼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대학 후배인 나뿐이었으니까. 어제도 퇴근 후 나는 그와 술집에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보다 더 마시고 나보다 늦게 취했다. 비사교적 인 사람이 으레 그렇듯이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서 그도 물론 평소보다 말이 많아져서 횡설대긴 했지만…… 우리가 어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던가. 어렴픗한 대로 술자리가 늘 그러하듯 직장의 상사 한두 사람을 안줏감으로 상에 올렸고, 도대체가 오리무중인 말단 샐러리맨의 막막한 시야에 대해서 자조적인 독백을 주워섬기기도 하였고, 그러다 제법 지사껸하며* ‘사회구조의 체질적 모순’ 따위를 들먹였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그 술자리의 막판이 희미하기만 하다. 확실한 사실은 그가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각난 사람의 몸짓으로 후닥닥 자리를 박차고 나갈 쯤 해서 나는 꼭대기까지 술이 차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나라고 오늘의 그의 결근에 대해 무슨 의견이나 힌트를 가지고 있을 리 만무였다.
“구평목 씨가 결근한 것을…….”
사실을 말하면 그가 결근한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아직 나의 관심 밖이었다. 나는 그저 엉겁결에 식도로 내려 보낸 바퀴벌레가 그 날랜 발을 움직여가며 나의 심장, 허파, 간, 위장, 심이지장, 그리고 정맥과 동맥 속을 헤엄쳐 다닐 것을 상상하면서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힘겹게 참아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서정이고 보면 구평목 씨의 결근이 좀처럼 나의 관심을 끌 수 없었으리라는 검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나는 “구평목 씨가 결근한 킷을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하는 반문 형식으로 내게 향해진 질문읕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태는 거기서 한 번 더 뒤틀리고 있었다. 내가 막 “구평목 씨가 결근한 것을…….” 하려는데 그때까지도 역시 건성으로 신문을 뒤적이고 있던 맞은편의 최 기자가 심상치 않은 나의 낯빛을 포착해버린 모양이었다.
“어쩐 일이야? 된장인 줄 알고 똥이라도 잘못 삼킨 사람의 얼굴을 하고. 결근을 해야 할 쪽은 윤 형인 것 같은데?”
‘경황이 없었다’는 말만큼 그 의미의 진폭이 크고, 그만큼 쓰기 편리한 표현이 있을까. 난 경황이 없었다. 이 경우 이 표현법은, 머릿속을 드나드는 이런저런 자극들에게 질서를 부여하여 적절하게 반응하도록 유도하는 뇌의 고유 기능이 더 이상 작동하기를 그쳤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난 경황이 없었다. 나는 그때 권 부장의 질문을 돌려주려고 바퀴벌레가 들어간 이후 줄곧 닫혀 있던 입술의 문을 딸싹 거리려던 순간이었다. 한데 바로 이어서 접수하고만 최 형의 의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곧장 해명을 시도하려 드는 조급증의 발동이 문제였다. 일의 우선순위나 시간의 편차에 따른 원근법의 지배로부터 풀려나온 의식상의 무정부 상태라고나 할까. 질서를 통제받지 못한 무정부주의자인 ‘말’들이, 그리하여 권 부장과 최 형을 향하여 한꺼번에 터져 나왔고, 그러자 터져 나온 말들은 풀풀 날아다니며 대기
속에다가 혼란한 무정부를 세웠다.
“구평목 씨가 결근한 것은…… 빌어먹을, 바퀴벌레 때문이에요.”
이쪽저쪽에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힐난조의 반응이 일어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왜, 바퀴벌레 무서워서 일 못하겠대? 그럴만도 하지. 좀 극성이어야 말이지. 그래도 귀엽잖아. 사무실이 한층 운치 있어 보이고. 그놈의 운치 한번 별종이로군. 운치 두 번 있다간 벌레하고 동침할라. 하긴 그 친구 바퀴벌레에 지나치게 과민한 면이 있었어…… 제각기 한마디씩 뱉어내며 낄낄거리는 바람에 사무실 안은 갑자기 왁자지껄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윤 형도 참, 아침부터 웬 실없는 소린.”
권 부장은 그렇게 말함으로써 나의 오접(誤接) 된* ‘말’들을 실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그 순간, 그게 반드시 실없는 소리에 불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의혹이 역습처럼 고개를 쳐드는 컷이었다. 그러니까 “빌어먹을 바퀴벌레 때문”이라고 나의 ‘바퀴벌레 삼킨 표정’에 대해 해명을 하는 순간에, 나는 구평목 씨의 결근이 실제로 좁은 사무실의 집기들을 터전으로 하여 왕성하게 기식(寄食)하는* 바퀴벌레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추측을 무의식적으로 저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퀴벌레라고 하는 곤충에 대해선 대체로 불쾌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에 대해 보통 이상으로 혐오감을 표시해오던 구평목 씨이고 보면 나의 뜻하지 않은 믿음은 전혀 엉뚱한 발상이라고만 몰아붙일 순 없는 일이다. 사람 수대로 다닥다닥 붙어 앉은 책상들과 캐비닛, 겨우 왕래할 수 있을 만한 공간만을 비켜서 무질서하게 들어차 있는 각종 책들로 더욱 비좁아 보이는 스무 평의 이 사무실은 바퀴벌레에겐 호조건*의 군집 처소임에 틀림 없다. 놈들은 때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와 책상 위를 기어 다니기도 하고, 쓰고 있는 원고지의 빈칸에 들어앉기도 했다. 본시 야행성인 그들의 습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그러한 대낮의 잦은 출현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맹랑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건 아무래도 놈들의 증대한 군거 집단의 간접적인 시사일 테지만, 이 사무실에 조금만 오래 있게 되면 놈들의 그 같은 대낮 출현에 대해서도 그리 신경을 곤두세우지는 않게 된다. 나중에는 어떤 이상한 친근감까지가 생겨나 못 쓰는 종이를 가지고 날렵하게 덮쳐잡는 데서 묘한 쾌감을 즐기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가령 그런 식의 바퀴벌레 사냥을 점심 시간 이후의 나른함이나 무료함을 처분하는 데 더없이 좋은 소일거리로 느끼기 시작할 때, 그 사람은 필요에 따라 점심시간을 한 시간 정도 앞당기거나 늦출 수 있는 직위에 있게 되었다고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구평목 씨의 경우는 어느 쪽이냐 하면, 도대체 잡지 만드는 사무실에 무슨 일거리가 그리 많다고 벌레까지 동참시키느냐고 윽박지르는 편이었다. “내가 아무래도 요놈의 바퀴 등쌀에 오래 못 살지” 하고 투덜거리기도 했고, 그보다 더 자주 그 지독한 바퀴벌레의 활보에 대해서 초연한 다른 직원들의 무신경을 이해 못 했다.
“이놈들이 얼마나 불결한지 모르는 거요? 이것들은 전형적인 잡식성이에요. 닥치는 대로 처먹는다구요. 게다가 주로 적당히 따뜻하고 습한 장소, 이를테면 퀴퀴한 쓰레기통 같은 데를 좋아한다구요. 인체에 해로운 병해충 따위를 쓰레기통 같은 데서 옮기기도 하고, 또 놈들의 충체(蟲體)*에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그리고 원충류⁕ 같은 것들이 우글거린단 말입니다.”
구평목 씨는 바퀴벌레가 보이기만 하면 가만 놔두려 하지를 않았다. 안절부절못하는 꼴이 꼭 한 마리라도 놓쳤다간 사무실 안에 무서운 전염병이 퍼지게 된다고 믿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하나 바퀴벌레란 놈의 동작이 좀 빠른가. 그 날랜 세 쌍의 다리를 이용하여 덮쳐오는 구평목 씨의 손바닥을 잽싸게 피해 책 무더기나 책상의 틈새로 활활 달아나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러면 그놈을 잡겠다고 책을 들춰내고, 책꽂이를 끄집어내고, 책상을 밀치는 등 하도 집요하게 매달리는 바람에 한동안 사무실 전체가 북새통으로 변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 웅얼거리는 소리로 “이놈의 사무실에 불을 지르든가, 내가 월급쟁이를 그만두든가 해야지” 어쩌고 하며 털씩 주저앉는 것이었다.
그 불길한 벌레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잦은 대면으로 하여 익숙해진 다른 직원들은, 바퀴벌레의 출현에 대해 그런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평목 씨를 오히려 이상하게 보는 입장이었다. 좀 지나치다는 느낌을 다들 가지고 있었으며, 적절하지 않은 대상에 대한 과잉 관심, 또는 불필요한 신경과민 정도로 간단하게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결근의 이유로 바퀴벌레를 상정한 무의식적인 나의 믿음은 얼추 그와 같은 사정에 뿌리를 박고 있을 터였다.
“누가 전화라도 한번 해보지그래. 자매복지원 취재도 그 친구가 가야 할 게고…….”
권 부장은 그때까지 한 손에 들고 있던 신분을 접어 밀쳐놓으며 그 대신 업무 시작의 신호로 수첩을 펴 들었다.
최가 전화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거기다 대고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구평목 씨의 결근 사유가 바퀴벌레임을 강변하려 하였다. 그런데 식도를 타고 내려간 그 몹쓸 벌레를 기도를 통해 언어로 다시 건져 올리려고 ‘바퀴벌레’라는 단어를 막 조형하려는 찰나 무언가 그 ‘바퀴벌레’의 발목을 사정없이 낚아채는 끈끈하고 억센 힘을 느꼈다. 그것은 나의 언어 기능을 마비시키는 완강한 거부의 중량이었다. 그 힘의 정체를 확연하게 이해하기엔 너무 궁색한 정황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거기서 일종의 죄책감과 연계된 위축의 감정만은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죄책감이 무엇이었을까. 일차적으로 그것은 어떤 연유로든 그가 동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자리에서 그중 각별한 사이인 내가 그를 해명하거나 비호하는 역할을 기피했다는 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언제인가 구평목 씨가 “자네에게만 해주네만” 하고 진지하게 꺼내었던 그의 비밀한 고백을 퍼뜩 떠올렸던 것이다.
“자주 한 무리의 바퀴벌레에게 내 빈약한 육체가 점령당하는 꿈을 꿔.”
고기 굽는 냄새가 지지직거리는 매우 원시적인 분위기의 술집에 앉아 그는 소주 때문에 반쯤 꼬부라진 혀로 은밀하게 말을 시작했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놈들은 군집성이 매우 강해. 하나의 거대한 집단을 형성해서 엉겨 살지. 바퀴벌레는 개체 수의 밀도가 높을수록 생장 속도는 그에 비례하여 빨라진다는 보고가 있어.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살기 어려워지는 인생살이완 사못 다른 셈이지. 뭐라더라. 놈들의 몸뚱이에서 분비되는 ‘페로몬’ *인가 하는 물질의 영향 때문이라나·…· 암튼 엄청난 수의 바퀴들이 내 몸 이곳저곳을 뿔뿔거리며 기어 다녀. 내 몸이 흡사 바퀴로 떼*를 입힌 무덤 같애. 시꺼먼 바퀴벌레들의 떼. 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달라붙은
벌레들은 급기야는 나의 입을 강제로 열고 내장으로 쳐들어오기도 해. 끔찍해. 죽을 지경이야. 그런 밤이면 땀을 한 바가지씩 쏟아. 그런데 그런 꿈이 거의 매일 밤 반복돼.”
그와 나의 사이가 친분이 깊다거나 교분을 가진 지가 퍽 오래되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내가 4년간 매달렸던 국문학이라는 전공의 효용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기 시작했고, 그 심각한 회의가 식욕 따위의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하등의 도움도 줄 수 없음을 곧 깨달았으므로 어찌어찌하다가 ‘평범한 사람들의 복지를 지향한다’는 자못 사회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복지사회』의 기자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인데, 구평목 씨는 나보다 불과 세 달 정도 전에 입사해 있었다. 그는 가끔씩 술을 사고, 자주 하숙방으로 불렀다. 다분히 비사교적이고 폐쇄성이 있는 그의 인상을 염두에 둘 때, 학교 후배라는 명분만으로 내게 자기의 내심을 꺼내 보인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랄 수 있었으며, 그건 또한 뒤집어 생각하면 피상적인 인상관 달리 오히려 사람과의 사귐에 그만큼 굶주려 있다는 반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수선한 대학 시절이었지. 4년 동안 한 학기라도 휴교령을 피해보지 못했으니까…….”
환기 기능이 불량한 술집 안은 주객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와 삼겹살 따위가 늘어붙으면서 내질러 놓는 매캐한 냄새로, 그의 불행했던 대학 시절만큼이나 어수선했다. 그는 취해가고 있었다. 그의 취기가 그의 의식을 담백하게 걸러내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스스럼없이 자기를 개방해 보이기 시작했는데,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어떤 억압의 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알코올의 힘에 의지하고서였다. 그는 그 시절의 캠퍼스를 들뜨게 하던 정열과 낭만, 그 정열과 낭만이 코트처럼 걸치고 다니던 이념에 대해선 이야기를 생략했다. 곧바로 마지막 학년의 첫 학기에 관여했던 학생 시위의 주동자로 몰리면서 그가 최초로 경험해야 했던 격리의 장소에 대해 회상했다. 그 격리의 장소에서 그는 매우 이례적인 양식으로 바퀴벌레를 체험하였다, 라고 나는, 지금 말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그 체험이 그의 의식의 늪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숨어 있었다, 라고.
거의 하루 종일 어둡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밤이 오는 것은 두려웠다. 밤은 그가 해진 담요 한 장으로 감당해내기엔 너무 추웠다. 마룻바닥은 차고 딱딱했다. 손으로 바닥을 쓸면 엉겅퀴꽃가루 같은 뽀얀 먼지와 함께 틈새에서 모래가 묻어나곤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밤에, 그 방에 별의별 벌레들―특히 바퀴벌레 떼가 그렇게 왕성하게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놈들은 밤만 되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살금살금 기어 나와서는 그의 따뜻한 살 속으로 파고들어 오곤 했다. 목덜미나 사타구니께를 꼼지락거리며 기어다니는 그 징그러운 바퀴벌레는 그의 신경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기력이 없었지만, 그는 잠을 자다가도 몇 번이나 벌떡 일어나야 했다. 그때마다 담요와 옷을 탁탁 털어내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금 후면 다시금 온몸의 이곳저곳이 가려움을 호소해오는 바람에 견딜 수 없어지곤 했다. 그는 밤이 두려웠다. 아니, 밤의 벌레들이 두려웠다. 밤은, 그에겐 곧 벌레였고, 그래서 밤을 맞는다는 것은 곧 벌레를 받아들여야 하는 고역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로서는 그 밤들, 즉 벌레들을 도저히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 무렵쯤 해서 공교롭게도 같은 신세였던 동료들 중 그만이 유일하게 풀려나왔다. “개전*의 정이 뚜렷하고 시위에 충동 참가한 사실이 인정되어서였다. 그는 그 후 그에게 던져지는 비난과 경멸이 섞인 모든 질문에 대해서 “바퀴벌레 때문에”라는 명분을 마련했다. 친구들 중 어떤 이는 그가 말하는 바퀴벌레가 어떤 바퀴벌레인가를 따져 물었다. 납작한 몸체와 미끈미끈한 등짝의 광택을 이용하여 현저하게 좁은 틈새로 잽싸게 숨어 들어가는 도피성으로서인지, 아니면 예민한 더듬이를 안테나처림 현란하게 움직여 거기에 어둠이 탐지되면 비로소 기어 나와 눈치를 살피며 거동을 시작하는 기회주의로서 인지, 그것도 아니면 퇴화된 날개를 장식처럼 달고서 하늘을 꿈꾸는 대신 장판 밑의 그늘에 안주하는 패배주의로서인지, 그가 말하는 바퀴벌레가 무엇의 상징으로서의 바퀴벌레인지를 캐물으며 비웃었다.
그런 질문 앞에서, 그가 말하는 바퀴벌레가 무엇의 상징이 아닌 ‘바퀴벌레’라는 말 자체가 그 기초적인 울림으로 지시하는, 새까맣고 작은 불쾌 곤충의 이름임을 구태여 밝히려 하진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방에 있었거나 바로 옆방에 있었던 동료들이 하나같이 그의 ‘바퀴벌레에 의한 수난’을 한마디로 일축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누구도 바퀴벌레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오기 때문에 잠을 설친 사람은 없다고 했으며, 하다못해 그놈의 벌레를 한 마리라도 구경했다는 사람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구평목 씨는 ‘바퀴벌레’ 라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 별명을 얻어 가지게 되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얼마간의 야유와 경멸을 섞어서, 그리고 그를 구별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순수를 역으로 비호하려는 은밀한 의도를 뒤범 벅해서 그를 향해 ‘바퀴벌레’ 라고 숙덕거리곤 했다. 그런 경우 그들이 말하는 ‘바퀴벌레’가 어떤 바퀴벌레인가를 구평목 씨는 또한 알고 싶어 하였다. 납작한 몸매와 미끈미끈한 등짝의 광택을 이용하여 현저하게 좁은 틈새로 잽싸게 숨어 들어가는 도피성으로서인지, 아니면 예민한 더듬이를 안테나처럼 현란하게 움직여 거기에 어둠이 탐지되면 비로소 기어 나와 눈치를 살피며 거동을 시작하는 기회주의자로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퇴화된 날개를 장식처럼 달고서 하늘을 꿈꾸는 대신 장판 밑의 그늘에 안주하는 패배주의로서인지,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바퀴벌레가 무엇의 상징으로서의 바퀴벌레인지를 못내 궁금해했으나, 그것을 직접 묻지 않았다.
“몸이 아프다는군요. 하숙집 주인인 모양인데, 꼼짝 않고 누워 있대요.”
구평목 씨와의 인연을 끊기라도 하듯 매몰차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최가 말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대? 아프면 아프다고 전화라도 좀 해줘야 할 게 아냐. 사람이 왜 그렇게 매사에 어영부영인지.”
권 부장은 무언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어쩌면 구평목 씨의, 예의를 싹 건너뛴 듯한 평소의 행동거지를 상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매복지원 취재 건은 더 미룰 수도 없는 형편이고, 누가 대신 가야겠는데, 누가 가겠소? ……윤 기자가 갔다 오지.”
임무를 맡길 때마다 반드시 형식상의 질문을 던져놓고는, 그에 대한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곧바로 “윤 기자가 갔다 오지” 하는 투로 심드렁하니 대화를 마감해버리는 것이 부장의 상투적인 명령법이었다. 그런 경우 도대체 윤 기자가 갔다 오지 않을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평목 씨의 몫으로 되어 있던 자매복지원 취재는 내게 떨어졌다.
나는 취재를 떠나기에 앞서 자매복지원의 정확한 위치와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구평목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걸로 보아 심하게 앓고 있는 것 같다는 하숙집 주인 여자의 설명을 재차 듣긴 하였지만, 나는 나의 신분을 밝힌 후 거듭 그와 직접 통화할 수 있기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와 통화하는 데 실패했다. 하숙집 여자의 설명에 따르면 웬일인지 그가 전화 받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는 눈치였으며, 아예 문을 걸어 잠가버린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결근 사유가 신체상의 질병에 있다고 믿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나의 생각이 무언가 믿을 만한 근거나 이유를 확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막연히 그럴 것 같은 의외로 질긴 예감이었는데, 그 예감의 뿌리에는 세포의 원형질 같은 ‘바퀴벌레’가 어떤 양태로든 여전히 막연한 채로 자리하고 있음을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자매복지원은 가리봉동의 공단 모퉁이에 세워진 3층 건물이었다. 칠십이 넘은 원장은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정했다. 그녀는 자매복지원의 설립 동기와 과정, 현재의 활동 상황, 이용 방법 등을 소상히 설명해주었다. 그곳에서는 주로 무단가출이나 무작정 상경 등으로 역 주변을 배회하는 소녀들을 일시 보호하여 귀가시킴으로써 윤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고 했다. 취업을 알선해주기도 하고, 원치 않은 임신 때문에 고민하는 미혼모들에게 출산의 처소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후하게 보아주어도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십칠팔 세의 배불뚝이 소녀들이 무거운 몸으로 등공예를 매만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차마 카메라를 누르지 못했다. 권 부장이 그런 나를 보면 아직 기자가 덜 된 탓이라고 힐난할 터이지만.
자매복지원으로부터 돌아오는 길에 구평목 씨를 찾아가게 된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예상 밖으로 취재가 빨리 끝난데다가 그의 하숙집이 가리봉동에서 멀지 않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그러자 어젯밤의 어슴푸레한 술자리가 무언지 분명치 않은 의구심으로 충동질을 해대었던 것인데, 말하자면 그런저런 사정이 두루 작용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형편없이 술에 전 그를 부축해 갔던 언젠가의 기억을 더듬어 신도림동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의 하숙으로 이어지는 모퉁이의 작은 가게에서 과일과 캔 콜라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허름하고 어두운 방에 들어섰을 때 그는 한쪽 벽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아마도 잠옷의 대용일 게 분명한 하늘색 추리닝 차림에다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뒤엉킨 머리 모양을 하고 동그마니 앉아 있는 그는 흡사 망가진 장난감 같아 보였다. 그렇게 초라했고, 어쩐지 왜소했다. 들어서는 나를 쏘아보는 눈빛만이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신체 중에서 두 눈만이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질 정도였다. 그 뜻하지 않게 맹렬한 눈빛 때문에 불현듯 이런 경우에 어울리는= 몸가짐을 만드는 데 자신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사과와 콜라 봉지를 거북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비닐봉지를 방바닥에다 어색하게 내려놓으며 나는, 어디가 아프냐고 문병 온 격식을 갖추었고, 그 물음을 던지면서 그의 걷어 올린 팔뚝에서 잉크가 밴 듯한 시퍼런 멍과 긁힌 자국을 보았다.
“그 팔뚝의 상처는 뭔가요?”
“별거 아냐.”
“어젯밤에 다친 상처 같은데. 나도 어젠 몸을 못 가누게 취해버린 바람에……”
“난 멀쩡했어.”
마치 내가 그의 만취를 책망하기라도 한 듯 방어적인 반응을 즉각 보내왔다.
“난…… 취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생각나? 우리 앞쪽에 앉아 있던 그놈의 칼날 같은 눈빛을 눈치 챌 만큼은 정신이 있었어.”
“그놈의 칼날 같은 눈빛이라니요?”
“어제저녁에 들렀던 광화문 뒷골목의 그 소줏집 말이야. 우리 자리 맞은편에 혼자 앉아저 시종 눈알을 번뜩이던 그 사내, 생각 안 나?”
어제저녁, 나는 그에게 이끌려 광화문 뒷골목의 허름한 소줏집에 따라갔었다. 삼겹살과 소주를 시켜놓고 제법 주기*를 과장해가며 언성을 높였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놈의 칼날 같은 눈빛’만은 영 재생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어제 나는 의외로 빨리 취해버렸던 것인가. 구평목 씨는, 내가 그 ‘칼날’의 사내를 기억해내지 못한 데 대해 비난하진 않았다. 그 대신 내 부재한 기억의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해주었다.
“자넨 그자와 등지고 앉아 있었으니까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
내가 구평목 씨와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술을 마셨을 것이 확실한 일이고 보면, 구평목 씨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는 자리의 ‘칼날’이 위치상 나와 눈을 마주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나의 왜소한 등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구부정한 어깨선만을 살필 수 있었을 것이고, 혹시 탁월하게 정밀한 투시력을 소유한 자였다면 그를 향해 있는 구평목 씨의 눈동자에서 나의 똑같이 왜소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내가 어쨌단 말인가. 아니, 그 사내에 의해서 구평목 씨가 직면했던 사정 이란 무엇이었단 말인가. 나는 되도록 겉으로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잽싸게 지난밤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갔다.
……술이 들어가면서 그는 제법 말이 많아졌다. 그것은 그의 버릇이었다. 평소엔 말을 못하는 벙어리라고 오인받을 정도로 지나치게 과묵하지만, 적당량의 알코올을 수용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뱉어내는.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구평목 씨는 대중찹지로 전락해가는 『복지사회』의 편집 및 취재 안목에, 그 안목의 졸렬함과 천박성에 한 동안 신랄한 집중사격을 퍼부어 대었고, 나는 긍정의 뜻으로 시종 고개를 끄덕여주었던 것 같다.
그는 턱 없이 홍분해가지고 닥치는 대로 난도질을 해대었다. 대단한 독설이었다. 일관성 있는 화제가 따로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스포츠의 득세로 인한 정신문화의 피폐화를 우려하는 쪽으로 화제가 기울게 된 것은, 마침 카운터 쪽 선반에 놓여 연신 씨름판의 모래를 흩뿌려 대는 텔레비전 화면 탓이었을 것이다. 두 개의 근육덩어리가 맨몸으로 한데 엉겨 끙끙거리는 모양을 보면서 화면 밖의 술꾼들까지도 환호하고 있었다. 씨름판의 두 사내의 등은 점액질의 땀이 흘러 미끌미끌했고, 한 번씩 힘을 쓸 때마다 팔뚝이며 허벅지로 관능적인 근육들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그 거대한 근육들이 펄쩍 뛸 때면 모래들이 한 움큼씩 튀어 올라 브라운관을 때리곤 했다. 텔레비전 카메라는 수시로 관중석을 비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차곡차곡 쟁여 넣은 듯 인파로 꽉 들어찬 실내 체육관의 관중석. 박수를 보내며 환호하는 관중석의 남자들, 여자들, 노인들, 어린애들.
“운동경기에 인생을 걸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쌍판들이로군. 광신자들이 황홀경에 빠졌을 때의 그 초현실적인 표정을 꼭 닮았어. 하기야 스포츠만큼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종교가 이 시대에 더 있을라고.”
그는 스포츠가 상품화된 섹스와 함께 현대인의 우상으로 부각하고 있는 현상을 가장 우려할 만한 말세의 징표라고 해석 했다. 왜냐하면 그는 설명하기를, 자기가 섬기고 있는 대상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객관적인 궁극성이 확보되지 않은 맹신은 곧 패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오르테가*였던가. 현대의 대중은 문명의 들창문을 넘어 들어온 야만인이라고 표현한 사람이 있었다. 조급하고, 과거와 같은 규범이나 기준을 전혀 허용치 않으며 부표(浮漂)처럼 그저 ‘흘러가는’ 야만인. 저 야만인들을 보라. 저 문명의 기생충들을 보라. 패망과 멸절의 구멍으로 미끄러지는 줄도 모르고 눈앞의 쾌락과 흥분에 정신이 팔린 저 불쌍한 원시인들을……
구평목 씨가 그런 식으로 자기 감정에 못 이겨 이야기를 전개해가고 있는 동안, 나는 시종 듣는 쪽이었다. 그의 견해를 반박할 만한 특별히 다른 견해가 있을 리 없었던 탓이기도 하고, 그의 취기가 좀처럼 내게 말할 기회를 허락지 않은 까닭이기도 했다.
“역사를 안다고 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나 또는 미래의 삶에 어떤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아. 하지만 로마가 목욕탕과 권투 때문에 멸망했다는 사실(史實)이 오늘 같은 우리 문화의 참담한 전락에 어떤 각성은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역사의 지식이, 확실한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는 해줄 테니까. 그런데 우라질! ‘목욕과 권투’에의 이 집요한 몰두. 병은 중한데, 약도 전혀 없진 않은데, 입에 쓰다고 먹으려 들질 않아. 이런 젠장…….”
구평목 씨가 맞은편 좌석에서 ‘칼날 같은 눈빛’을 포착한 게 이때쯤이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추측한다. 나의 기억이 거기서부터 더 이상 그의 언어를 재생해내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조차 별반 고려하지 않고, 말하자면 내친김에 예까지 쏟아놓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런데 그 순간 무언지 대단히 불길한 어떤 예감이 그의 고개를 쳐들게 하였던 것 같다. 어쩌면 ‘칼날’은 그 예감의 최초의 이름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불시에 고개를 치켜들었고, 그리하여 맞은편에서 그의 눈을 붙잡고 있는 예의 그 눈빛을 만난 것이다.
“기분 나쁜 놈이야. 벌써부터 쭈욱 내 이야길 듣고 있었음에 틀림없어. 혼자였어, 물론 술병과 술잔이 마른안주와 함께 놓여 있었지만, 술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한다는 걸 눈치 채긴 어렵지 않았어. 놈의 자세는 술자리에 앉은 자의 자세가 아니었고, 놈의 눈은 술에 몰두한 자의 눈이 아니었어. 꼭 집어서 단정 짓긴 어렵지만, 아무튼 그 눈빛이 술꾼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실해.”
대단히 불길한 애초의 예감은 그의 취기로 어지럽혀진 의식 속에서 현실화되었다. 구평목 씨는 그 사람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자기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미행자쯤으로 단정을 내리고 말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왜? 왜 그는 그렇게 돌발적으로 불안한 의식의 변이를 경험해야 했을까. 통상, 무언가 의심받을 만한 행위를 범하게 되면 공연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처럼 그도 자신이 무언지 ‘의심받을 만한’ 일을 행했다고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그 의심받을 만한 ‘일’ 이란 결국 그의 ‘말’일 터인데, 그가 그 자리에서 늘어놓은 그 숱한 말들 가운데에서 과연 그 ‘말’은 어떤 말이었을까. 혹 내가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그러니까 그가 ‘의심받을 만한’ 무슨 말을 한 것이 아니라면, 구평목 씨의 돌연한 불안은 그의 신경과민의 결과로 돌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기를 노리고 있는 (듯한) 유별나게 날카로운 눈매를 불시에 만났을 경우, 그 눈초리에 자신이 온통 벌거벗겨지는 체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는 법이니까. 더구나 그 ‘유별나게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가 구평목 씨의 ‘칼날’처럼 점퍼 차림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더 말할 것이 없지 않은가. 나는, 말하자면, 구평목 씨가 직면한 사태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그야 어쨌든, 그의 의혹을 더욱 견고히 구축하기라도 하듯, 그 사내는 줄곧 구평목 씨로부터 ‘칼날’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뒤늦게 ‘아차’ 싶었고, 졸지에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었으며, 갑작스러운 공포가 전신으로 물밀듯 확산되었던 것이다. 더욱 난감한 것은, 그 순간 대학 시절에 경험하였던 통제된 공간과 그 밤들, 그 밤의 끔찍스러운 벌레 떼들이 확산되는 공포의 밀물을 타고 일시에 습격해 들어온 일이었다. ˙ ……거칠긴 하지만, 그러니까 이상이 어젯밤 그와의 술자리가 그럴 만한 사유도 없이 중도에서 동강 나버린 사정에 대한 설명인 셈이었다. 그는 그 시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허겁지겁 집으로 향했던 것 같다.
나는 작위적으로 낄낄 웃어가면서 구평목 씨의 그 ‘칼날’에 대한 의심이 다분히 신경과민적인 것이며, 사실무근임을 납득시키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것이 신경과민이라면, 그의 신경과민은 의외로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러 있었다고 보아야 옳았다.
“그럼 자네는 지금 내가 헛소릴 하고 있다는 말이야? 천만에. 놈은 내가 그 술집에서 빠져나오고 나서도 계속 나를 미행 했어.”
“그 칼날 같은 눈빛이 말입니까?”
“……그건 아냐. 이번엔 가죽잠바였지. 하지만 그 둘이 한패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내가 일부러 버스를 두 대나 그냥 보내고 나서 올라탔는데 그 가죽잠바도 그때까지의 여유를 거두며 황급히 뒤따라 뛰어올랐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갈수록 태산이라는 식의 기분이 되어 나로서는 참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일 순 없었다.
“중간에서 도로 내렸지. 새로운 승객들이 다 올라타고 막 발차를 하려는 찰나를 택해서 가까스로 뛰어내렸어. 그렇게 해서 힘겹게 따돌리긴 했는데…… 언제 놈들이 다시 들이닥칠지 몰라. 워낙 집요하고 교묘한 묘략가(妙略家)들이 니까.”
구평목 씨는 악몽이라도 내쫓는 시늉으로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내게는 모든 그의 행동이 얼마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보다 훨씬 안쓰럽게 여겨지는 것이어서, 맘 놓고 웃을 수도 없고 기왕의 실없는 농담 투로 유지할 수도 없었다. 웬일인지 그건 구평목 씨에게 할 짓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피해의식에 동조하여 잔뜩 뒤틀리고 협착해진* 그의 세계에 갇힐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나의 자리가 더할 수 없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그 자리에서 그와 나와의 관계의 줄이 위태롭게 끊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그 피차의 줄이 방향을 제대로 못 잡고 엉뚱한 데로 뻗어가고 있다는 뜻이든가.
차 스푼이 잔에 부딪치는 딸그락 소리를 듣기 좋게 내가며 미스 석이 커피를 만들어 내왔다. 직원들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신문을 한 장씩 나눠서 간밤에 세상이 안녕하였는지를 확인하고, 그 신문지상으로부터 시시껄렁한 흰소리를 만들어내려고 노력 하고 있었다. 출근하고 30분까지는 늘 그랬다.
“이거 별일이네, 카톨릭에서 주는 가요상에 이런 게 어떻게 올라가지?”
최가 드디어 안경을 고쳐 써가며 탐독하던 연예면에서 흰소리거리를 하나 낚아 올린 모양이었다.
“뭔데? 뭐가 받았는데?”
“아직 상을 탄 건 아니고, 후보곡으로 올랐어. 왜 있잖아. 「비 내리는 잠수고」라고, 간드러지게 넘어가는 뽕짝 말이야. 가사도 순 60년 대 식으로 ‘비에 젖어 눈물에 젖어’ 어쩌고 해대는……”
“아니, 「비 내리는 잠수고」는 상 좀 받으면 안 돼? 별일은 무슨 별일이야?”
“아, 최 형한텐 별일 아닌 게 있어? 미스 석이 파마머리를 하고 와도 별일이고, 파마한 크 머리를 다시 풀고 와도 별일이고, 조금 일찍 퇴근해도 별일, 퇴근 시간이 되어서 자릴 지키고 있어도 별일…… 최 형의 별일은 보통 일이라는 거, 잘 알면서 그래.”
한바탕 왁자지껄한 웃음이 좁은 사무실 안을 휘저어놓았다.
나는 어제의 불유쾌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문보다는 커피잔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동료들 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희떠운* 소리들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건성으로 어정쩡하게 따라 웃으며, 책갈피를 비집고 나온 바퀴벌레 한 마리가 민감한 더듬이를 안테나처럼 흔드는 모양을 주시하고 있었다. 놈은 이쪽저쪽으로 안테나를 옮겨가면서 탐색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요놈 봐라. 마시던 커피잔을 한쪽 손에 쥔 채 나는 놈의 행방을 좇았다. 여차하면 휴지 조각을 꺼내어 덮칠 심산이었다.
“구평목 씨한테서 연락 온 거 없어요? 정말로 어디가 크게 아픈 건지…… 내가 전활 한번 해봐야겠군.”
권 부장은 짜증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전화기를 잡았다.
나는 어제 구평목 씨의 하숙집에 찾아갔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난감했던 때문이기도 하였다. 어쩌면 침묵하는 것이 구평목 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판단되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어제 그를 만난 사실에 대해 묵비(默秘)하였고,* 당연히 그를 붙잡고 있는 야만적인 피해망상의 폭력에 대해서도 모른 체했다.
“우리 이들 후보 중에서 어떤 곡이 카톨릭 가요대상을 수상하나 내기를 겁시다. 참말로 별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어렵게 건져 올린 농담거리를 쉽게 놓아줄 리 만무였다. 저들은 할 수 있는 한 오래, 끈질기게 매달릴 터였다.
“그거 좋네. 점심 식사로 하지. 한정식 수준으로.”
“자, 그러면 후보곡을 부르겠습니다. 소신 있게 판단하시어 서슴지 마시고 거시기 바랍니다. 붙으면 이천오백 원짜리 한정식 이 공짜. 1번 후보 채진화의 「사랑의 행로」. 2번 임정관의 「인생」. 3번 고찬병의 「개나리」. 마지막 4번 후보, 아까 말씀드린 주미연의 「비 내리는 잠수교」. 자, 붙으면 이천오백 원짜리 맛있는 점심이 공짜, 거세요, 빨리 빨리 거세요.”
바퀴벌레란 놈이 점점 대담하게 나왔다. 책꽂이의 철판을 타고 뽀르르 기어 내려오더니 급기야 그 잽싼 여섯 개의 다리를 빠르게 교차시켜가며 책상을 횡단했다. 책상 귀퉁이에 잠시 멈춰서서 예의 안테나를 요리조리 흔들어 탐색하더니 책상 다리를 타고 급히 하강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바퀴벌레가 그 날랜 다리로 횡단해 간 책상의 한복판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빌어먹을. 구 씨 이 사람, 대체 어떤 사람이야? 어젯밤에 짐 싸 들고 나갔다는군. 결혼도 안 한 총각 짐이래야 뻔한 거지만, 그래도 그렇지, 한밤중에 홉사 도망치듯 빠져나갈 게 뭐야?”
부장이 탁 소리가 나게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잔뜩 부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나는 짧은 순간, 바퀴벌레에게 빼앗기고 있던 시선을 들어올려 권 부장의 투덜거리는 입술을 쳐다보긴 했지만, 그의 입술이 의외로 두껍고 툭 불거져 나왔다는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고 있었을 뿐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도 마치 그가 집을 옮긴 사실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뜻밖에도 담담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나의 그런 태연함은, 어쩌면 내가 어제 그를 만났을 때 그렇게 불안하거든 쥐도 새도 모르게 한밤중을 이용하여 토망가라고 충고라도 하지 않았을까 의심하게 할 정도로 단단한 것이었다.
‘뭐라더라? 누군가 자길 쫓아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 하숙집도 곧 들통이 날 터이므로 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나.”
권 부장이 그렇게 덧붙였지만, 사무실 안에 있는 누구 하나 구평목 씨의 전격적인 행방불명에 대해 우려라든가 최소한의 관심을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 내리는 잠수교」냐, 「사랑의 행로」냐 하는 도박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곧 무연한* 시선을 회복하여 아래로 떨어뜨렸다. 마침내 바닥에까지 내려간 바퀴벌레를 포착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놈은 나의 왼쪽 구두의 발가락 부분과 오른쪽 구두의 뒤축 부분을 잇는 선의 중간 직점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유냔히 빠르게 흔들리고 있는 더듬이가 불안했다.
“김 형은 「개나리」고, 미스 석은 「사랑의 행로」. 좋다, 나도 그럼 「사랑의 행로」에다 걸겠어. 미스터 방은 어디에 걸겠소? 윤 형은? 자, 서둘러 골라잡으세요. 싸요, 싸.”
떠돌이 노점상 흉내를 내며 어지럽게 늘어놓는 최의 입담을 흘려 들으면서, 나는 왼발을 살짝 들고 앞창 부위에 힘을 모아 사정없이 내리눌렀다. 그리고 다시 좌우로 비껴 문대면서 압력을 더해갔다. 신발 밑창으로부터 끈끈한 핏덩 이가 뭉개지는 감촉이 불쾌하게 전달되어왔다. 아마도 그 불쾌감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날렵하고 영악하며 눈치 빠른,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흉물스러운 그놈의 바퀴벌레가 사무실 바닥에 검붉은 얼룩만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후에도 한동안 왼쪽 발을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문학사상』 163호(1986. 5); 『검은 나무』(민음사 2005)
이승우(李承雨)
1959년 전납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신학대를 졸업했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중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인간에게 있어 신과 종교란 무엇이고, 초월을 꿈꾼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문제 삼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소설집 『구평목 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심인 광고』,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가시나무 그늘』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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