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결혼생활 풀 스토리
톱스타 커플의 원조 신성일·엄앵란 부부가 결혼 40주년을 맞았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행복한 순간도 있었고, 헤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영화 수백 편의 소재가 될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결혼생활.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40년 전과 똑같이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 풀 스토리 & 사진으로 본 영화와 결혼 이야기.
●취재/정연진 기자 ●사진/안진형(프리랜서)
1963년 여름, 영화 <배신>의 경기도 청평 야외 촬영장. 청평호수 중간 지점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 두 주인공이 키스 장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감독은 긴장한 눈빛으로 ‘레디 고’를 외쳤다. 감독은 두 번째 시도에서 만족을 했는지 OK 사인을 보냈다.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두 사람은 감독의 사인을 못 들었는지, 한동안 입을 맞추고 있었다. 키스 연기를 하다 연인관계가 들통 난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
1964년 11월 14일, 서울 광장동의 워커힐 호텔. 영화계는 물론 사회 각계의 인사들이 톱스타 커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언론에서도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취재 경쟁이 뜨거웠다. 이날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성일·엄앵란 부부는 영화 속 키스가 맺어준 최초의 커플로 기록되었다.
고부간의 갈등,
경제적 문제로 이혼 위기
1960년대 은막의 톱스타 커플이었던 신성일·엄앵란 부부가 결혼 40주년을 맞았다. 당시 최고의 스타가 결혼한다는 사실도 화제였지만, 신부가 연상이라는 게 오히려 더 큰 관심거리였다. 영화에서 만난 두 사람은 촬영을 하면서 사랑을 키웠고, 영화 수백 편의 소재가 될 정도의 파란만장한 결혼생활을 했다.
“100% 만족하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나요? 조금 부족하고 불만이 있더라도 내 사람이니까 서로 감싸안으며 사는 것이죠. 부부의 사랑은 나무랑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정성을 다해야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부생활은 특히 영화나 그림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결국 행복은 두 사람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죠.”
신성일 씨는 머리가 희끗해지고 엄앵란 씨는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지금도 전성기 때 못지 않은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신씨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면서 미국 뉴욕 액팅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등 영화계에서 ‘영원한 현역’으로 통한다. 30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생활하다 방송에 복귀한 엄씨는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녀는 최근 결혼 컨설턴트로 변신해 미혼 남녀들에게 삶과 사랑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요즘은 상대의 마음을 읽지 않고 겉만 보고 결혼하는 세상이에요. 그런데 행복한 결혼생활은 ‘몸짱’이나 ‘얼짱’이 보장해주지 않아요. 멀리 보지 않고 배우자를 선택하면 불쌍해지기 쉬워요. 조언을 구하는 젊은 친구들한테 쓴소리도 하고 잘 하라고 호통을 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결혼 40주년을 자축하는 특별한 행사를 준비했다. 40년 전과 똑같이 결혼식을 재연할 예정이다. 장소나 주례는 그때와 동일하지만, 결혼식 날짜는 다른 이벤트 때문에 10여 일 앞당겼다. 당시 주례를 맡았던 오재경(전 공보부 장관) 선생은 두 사람으로부터 “절대 이혼은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나서 주례를 승낙했다. 두 사람은 헤어질 위기 때마다 오 선생 앞에서 한 서약을 떠올리며 마음을 되돌렸다.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린 후 다음 날에는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경주로 신혼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결혼 40주년 기념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조촐한 파티를 열기로 했다.
“벌써 40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요즘 들어 더욱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느껴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어요? 행복할 때도 있었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요. 특히 우리들은 사생활이 모두 노출되는 스타 부부잖아요. 언론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 보니 사소한 일도 부풀려졌어요. 우리 부부를 이혼시키지 못해서 안달 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사람들 마음엔 ‘니들이 얼마나 잘 사나’라는 묘한 시기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 후 2년 정도가 흘렀을 때 처음으로 큰 위기가 닥쳤다. 집안의 경제권을 놓고 고부간에 갈등이 생긴 것이다.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야 할 신씨도 난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세 사람 사이에는 오해가 계속 쌓여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두 사람은 결국 별거라는 막다른 선택을 했다. 최고의 뉴스메이커를 주시하고 있던 언론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별거를 계속 하다가는 이혼까지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6개월 동안의 별거생활을 청산했다.
신씨의 여자문제는 결혼생활 내내 두 사람을 괴롭혔다. 남편의 의지든 말 좋아하는 사람들의 헛소문이든, 아내는 이 문제 때문에 평생 속을 태워야만 했다. 엄씨는 이에 대해 “사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결혼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 신씨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한 번은 오랫동안 쉰 뒤 여동생과 함께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신문에 ‘신성일 애인 생겼다’는 기사가 나온 겁니다. 어느 바보가 백주 대낮에 애인을 데리고 행사에 나갑니까? 더욱이 난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배우잖아요. 물론 스쳐지나간 여자가 없었다고 말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온갖 루머처럼 방탕하게 살진 않았어요. 하늘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볍게 행동하겠어요?”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위협했던 또 다른 문제는 돈이었다.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을 때 젊은 부부는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었다. 주위에 그 돈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파리 꾀듯 들끓었다. 1967년 당시 어마어마하게 큰돈이었던 1억 원을 사기 당하기도 했다. 젊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가족이 해체될 수도 있는 위기였다. 큰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아파트를 담보로 영화를 제작한 것이 잘못되어 거리로 나앉을 뻔한 일도 있었다.
“그때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죠. 아주 비싼 수업료를 내고 돈의 의미를 알게 된 겁니다. 그 다음부터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온갖 부와 명예를 다 누려본 우리 부부에게 남은 욕심이 뭐 있겠어요? 아이들도 다 출가시켰는데. 남은 인생 우리 부부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면 됐지, 바랄 게 또 뭐가 있겠어요.”
참을성과 믿음이
오랜 결혼생활의 비결
결혼생활의 연차가 쌓이다 보니 원만한 부부관계의 노하우도 쌓였다. 부부싸움 잘하는 법, 위기상황 대처법 등과 같은 노하우도 결혼생활 40년을 통해 얻은 것이다. 신씨는 부부의 행복 조건을 믿음과 신뢰라고 말한다.
“서로 마음이 안 맞아 헤어졌다면 아마 수십 번은 이혼을 했을 겁니다.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다들 고개를 끄덕이겠죠. 우리 부부는 아무리 싸우더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만큼은 버리지 않았어요. 미워도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헤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죠.”
10여 년간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부부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 엄씨는 좀더 구체적인 비결을 제시했다. 그녀가 가장 강조한 것은 ‘참을성’이었다. 싸울 일 많은 세상에서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려면 웬만한 일은 가볍게 참고 넘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상대방을 감싸안을 줄 아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만큼 시부모와 친정 식구들을 잘 아우를 수 있는 지혜와 세상을 넓고 깊게 보는 안목도 전제조건이다.
“여성계에서 나한테 참으라고 강요한다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내 말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여자는 대자연의 원리에 의해 모든 것을 포용할 줄 아는 ‘엄마’로 태어났어요. 남자들은 원래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로 태어났어요. 어르고 칭찬해서 내 편을 만들어야지 싸워서 적을 만들 이유가 뭐 있어요?”
그러나 현실과 이상이 일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싸움을 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엄씨는 이럴 때 가슴에 쌓아두지 말고 풀어버리라고 한다.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하거나 목욕을 한 후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남편 욕을 하거나 어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구경하는 방법도 있다.
“부부관계라는 것이 탁구의 복식경기와 비슷한 점이 많아요. 내가 못하면 파트너가 대신 받아줘야 하고, 파트너가 힘들어 하면 내가 도와줘야 하잖아요. 두 사람이 서로 믿지 못하거나 돕지 않는다면 경기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제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결혼 50주년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조용한 데서 우리 부부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겁니다.”
첫댓글 원래는공미도리 라는재일교포와결혼시킬려고했었다는군여 신성일 님모친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