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11
지동귀지
지갱미동
- 움직임을 그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진정한 멈춤에서 다시 아미타가 움직인다
송
기분이 몹시 나쁜 일이 생겼다.
아! 과거에 기분이 몹시 좋은 일의 인과로구나.
몸이 몹시 아프다.
아! 과거에 몸을 써서 즐겼던 인과로구나.
강설
지동귀지를 해석할 때, 대개는 '움직임을 그치면 멈춤으로 돌아간다'라고
해석한다. 또 지갱미동을 해석할 때, ' 멈춤이 다시 움직이게 된다'라고
해석하는 예가 많다.
이와 같이 해석하는 이유는 멈춤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것을 그친다는 것이니,
멈춤이란 다시 움직이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양변은 결국
분별심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진정한 멈춤이란, 움직이는 것을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도 멈춤도 모두 사라지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변의 분별을 떠나라는 뜻이다.
이런 견해는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동지귀의 귀지는 적정한 견성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번뇌의 움직임을 멈추어서 적정한 곳으로 돌아가게 되면, 지갱미동, 그 고요한
곳에서 다시 아미타불의 움직임이 시작된다는 뜻과 순조롭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세속적인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 출세간적인 지혜의 움직임이 두루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구절 게송의 낙처는 분별심을 완전히 그치게 되면 중도의 세계적인 열반,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분별이 없는 지혜 광명이 비치는 아미타불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이는 중생의 분별된 마음으로는 전혀
상상도 못할 자비와 지혜가 충만한 세계이다.
아무튼 매일매일 강조한 것처럼 중생은 욕심을 부린 만큼의 과보를 받아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 만큼 고통과 괴로움을
받게 된다. 너도나도 간단한 자업자득, 자작자수의 인과 법칙인데, 이를 알면서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조주스님의 말씀처럼 이러한 인과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방하착, 즉, 무조건 마음을 내려놓아 더 이상의 분별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지 못하거나, 설사 안다 해도 쇳덩어리같이 굳어진 업장 업식에 묶여 있다.
따라서 이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거나 놓지 못하겠다면 착득거 즉, 내려놓지 않고 들고 살아갈 수밖에는 없다.
대신 자신이 탐하고 성내고 잔머리를 쓴 만큼의 고통과 괴로움은 스스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고통, 고민, 불행, 슬픔, 애탐, 걱정, 근심, 번뇌, 망상, 아픔 등의 괴로움이 생길 때는,
반드시 내가 욕심을 부린 대가라는 것만은 꼭 알기 바란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거나, 이유 없이 생기거나, 공짜로 나타나는 것은 절대로 없는 법이다.
다만 내가 즐긴 만큼, 기쁜 만큼, 행복한 만큼, 편안한 만큼, 좋은 만큼, 얻은 만큼의 괴로움이 생기고,
슬픔이 생기고, 불행이 생기고, 나쁜 것이 나타나고,
잃게 되는 인과의 과보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과의 대가를 받지 않으려면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원하는 것도 벗어놓고, 모든 것을 인연
인과에 맡기고, 무조건 놓고 또 방하착하는 것만이 지동귀지 지갱미동이 된다.
어제는 기분 나쁜 일이 두 번 생겼다. 그렇다면 '과거에 기분 좋은 일이 두 번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가 몹시 아파
기분이 나빴다. 그렇다면 '과거에 먹은 것이 소화가 잘되어 기분이 좋았던 때가 있었으리라'하고,
' 그 인과가 나타났구나'라고 되뇌인다.
같이 있는 사람의 언행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미워하는 마음이 크다. 그렇다면 과거에 어떤 사람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그 사람을 예뻐한 적이 있었으리라. 그 인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예뻐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기분이
좋은 것도, 기분이 나쁜 것도, 모두 모두 놓고 또 놓고.....방하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면,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으로써 힘을 길러 방하착을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지동귀지
지갱미동
- 움직임을 그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진정한 멈춤에서 다시 아미타가 움직인다
신심명 강독, 진우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