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에서 승리전망대까지
송엽/박 기선
처음에는 망설이다 모두가 타는 것을 나만 안타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래프팅을 타기로
했다. 다리가 보기 흉하니 반바지를 가지고 왔어도 긴 바지 그대로 입고 팔이 아프니
조심을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말이다.
한탄강 래프팅은 일생을 통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포기하기
에는 좀 아쉬움이 많다고 보아 일행과 합류하기로 하고 구명조끼를 입고 헬멧을 쓰고
따라나섰다.
다른 사람들은 보드에 오르기 전에 준비 운동을 하고 물에 들어가서 온몸을 적시는
과정을 거처 보드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연세가 있다는 예우로 주의 사항만
몇 가지 주지시키고는 보드에 올라 안쪽 발은 고정 띠에 끼고 노를 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왼쪽 다리가 불편하였다. 그러나 이제 어쩔 수 없이 동반자로 함께 한배를
탔으니 같이 움직여야 한다.
안내하는 안내자의 지시대로 따르며 흐르는 물 위를 흘러가기 시작한다. 안내자가
#준비하면 우리도 준비를 복창하고 시작하면 우리는 노를 젓기 시작한다. 하나 하면
둘하고 하나 둘 하면 셋 넷 한다. 얼싸 하면 영치기 하고 영치기 하면 얼 사로 받으며
노를 젓는다.
물살이 심한 대는 안전 끈을 잡고 내리막에서는 아찔한 전율을 맛보기도 한다.
펑퍼짐한 곳에서는 여유를 가지고 주위 경관을 바라보며 만 양 즐거워하는
모습들에서 천진난만한 동심을 엿볼 수가 있었다. 젊은 직원들은 뒤에서 구호를
외치며 쫓아 와서 물을 튀긴다. 나이 많은 임원도 대응을 하면서 즐기기도 한다.
한탄강 이름하여 그 옛날 농사꾼이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있어야 하는데 절벽 아래
물이 유유히 흘러도 그 물을 길어 올려 쓸 수가 없으니 바라만 보아야 하는 그 마음
탄식과 한이 맺혀 한 많은 강이라 하여 한탄강이라 했고 태봉국 궁예 왕 옥좌를 내 주고
도주하는 길 앞에 넓지도 않은 강 깊기만 하여 건너지 못하고 잡히니 한 많은 강이
한탄강이라 했단다. 이 말은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한이 서려 있는 강이라 전해져오는
전설 같은 강의 유래인 것 같다.
절벽은 숱한 세월만 금이나 흐른 흔적의 모습은 흐르는 물에 각인되어 있는 별의별
형상을 보는 사람마다 표현도 가지각색으로 나타나 보였다. 해골의 모습 악어의
모습 생쥐의 모습 등을 안내자는 내려가면서 여유를 보이며 들려주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호텔은 화성 호텔이고 한탄강 중류에 있는 지방기념물
제8호로서 고석정이 있으며 철원팔경의 하나로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있는 곳이며
강 중앙에 고석바위와 정자 및 그 일대의 현무암(구멍이 뚫린 검은 돌) 계곡을 통틀어
고석정이라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현무암은 화산이 터져 내려 생긴 돌인데 언제
어디서 발생했는지 발원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멈춘 뜻이 흐르는 물 위에서 아이들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8K로의 장장 긴 여정을
마치고 점심으로는 메기 매운탕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날씨는 너무나 맑고 구름 한 점
없으니 뜨거운 태양열에 땀을 흘리며 식사가 끝나는 대로 승리 전망대를 견학하기로 하였다.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 소재한 전망대를 가는데 길섶은 울창한 나무로 이어져
있었는데 이제야 만개한 아카시아 꽃향기를 품어내며 우리를 반기는 듯했습니다.
검문소에서 절차에 의한 검문을 받고 마현리 매표소에서 안내를 받아 승리 전망대에
오르게 되었다. 전망대에 가서도 나이 먹은 대접을 밭았다, 위에까지 차로 갈 수 있는
배려를 하여 주니 말이다.
바라보이는 북한 땅 그곳에도 사람은 살고 있는데 마음 놓고 오고 가지 못함이
안타까운 숙제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육안으로는 그냥 산과 붉은 산길 몇 안 되는
집들이다. 북한군 하전사 교육장과 아침 리 마을 등 북한 지역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전망대라고 한다.
망원경으로 보아도 보이는 곳은 산과 산길뿐이었다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북쪽 나라 북쪽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기에
보이지를 않고 휴전선 비무장지대에 잡초만 우거져 말이 없는 세월만 흐름을 알고는
있는 걸까.